
19일 오후 경북 의성군 의성읍의 한적한 시내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날 개관한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었다.
기념관에서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 건 흙이 깔린 ‘열린마당’이었다. 자연과 건축물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마치 방문객을 환대하는 주기철(1897~1944) 목사의 품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면에 보이는 한옥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조선 시대 때 지었던 건물로 일제강점기 의성경찰서 본관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왼쪽에는 부속건물이던 일본식 건물이 있다.
두 건물은 모두 고증을 따라 이번에 복원했는데 의성 지역 교회들의 3·1운동 역사와 주기철 목사가 ‘의성 농우회 사건’으로 압송된 배경, 경찰서 재현 공간 등을 볼 수 있다. 이 건물 뒤쪽에는 상설전시실과 사무실이 있는 신축 건물이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의 강요를 거부하다 순교한 주 목사는 의성경찰서와 모진 인연이 있다.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부산 초량교회와 마산 문창교회에서 목회한 주 목사는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사역하던 중이던 1938년 경북 의성까지 끌려와 고초를 겪었다. 일제가 장로교의 신사참배 결의에 앞서 조작한 의성농우회 사건에 연루됐다는 거짓 혐의 때문이었다. 일제 패망 직전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던 주 목사는 해방을 1년여 앞둔 1944년 4월 21일 가혹한 고문을 받다 옥중 순교했다.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사업회’(사업회·회장 오정호 목사)가 의성경찰서 옛터에 주 목사의 순교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을 세운 이유다.
이날 사업회는 기념관 열린마당에서 개관 감사예배를 드리고 주 목사의 영적 DNA가 후대에도 이어지길 소망했다.
‘누구를 만족시킵니까’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김관선 서울산정현교회 목사는 “주기철 목사님은 사람을 만족시키려 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만 위해 살며 복음적인 삶의 모범을 보이셨다”면서 “신앙의 후대인 우리가 살길도 자기 만족을 배제하고 주님만 만족시키는 삶에 있다”고 말했다.
회장 오정호 새로남교회 목사는 “주기철 목사님은 신앙 절개를 지킨 우리의 표상으로 세속화 물결에 빠진 한국교회에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기념관을 통해 순교자의 영적 DNA가 우리에게 계승되길 소망한다”고 바랐다.


의성군에는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 외에도 의성군 문화유산 제35호 중리교회 예배당과 종탑, 엄주선 강도사 순교지, 의성 3·1운동 발상지 공원 등 순교 유적지가 적지 않다. ‘의성군 순교애국관광 벨트’ 사업에 관한 관심이 큰 이유다.
이날 격려사를 한 김주수 의성군수도 “의성군에 있는 중리교회 예배당 등 여러 기독교와 독립운동 사적지를 서로 연계해 신앙의 뿌리가 퍼지고 관광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의성=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한국 교회사의 기념비적 장소를 보존하고, 교육하는 일에
새로남교회와 오정호 담임 목사께서 앞장서실 수 있도록 사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