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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자녀의 엄마로 산다는 것

 

 

김은희 선교사 (남아공 더반)

 

 

2살 난 아들과 채 3개월이 안 된 딸을 업고 밟게 된 남아공 땅.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들판과 지평선이 선명하게 보이는 푸른 하늘. 2000년 10월 7일의 하늘은 온통 보라색으로 물들인 만발한 자카란다(벚꽃처럼 이른 봄에 피는 나무)로 그 신비감을 더하고 있었다.

선교에 대한 분명한 부르심으로 신학 공부를 시작한 목사와 그의 아내로 한 가정을 이루며 함께 선교의 꿈을 키워 가던 중, 개인적인 선교사로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위해 몇 달을 고민하며 기도하던 내게 하나님은 룻의 고백을 이해하게 하셨다. 어머니의 믿음을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정든 고향과 친척, 아비 집을 떠난 룻의 결단을 묵상하며 선교사의 삶이 남편 한 사람이 아닌,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출발한 선교지의 삶은 아골 골짝 빈 들에도 복음 들고 찾아가리라는 찬송가의 고백처럼 다부지게 시작되었지만, 이내 밥하고 빨래하고 두 꼬맹이를 키우며 씨름하는 가정주부의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른보다 큰 아이로 자라가는 아이들

남한과 비슷한 5,500만 명이 살고 있지만 그 면적은 무려 남한의 12배나 되는 아프리카 대륙의 끝단에 자리한 거대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무지개 나라’라는 별칭에 걸맞게 공용어인 영어와 아프리칸스어 외에도 11개의 부족어를 사용하며, 백인, 흑인, 인도인, 혼혈인 등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혼재해 있는 나라다. 이곳 유치원을 가게 된 2살, 4살 난 아이들의 유치원 생활은 매일 아침 눈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영어도 줄루어도 아프리칸스어도 아닌 이상한 말들을 중얼거리며 어렵지 않게 현지인들과 닮아 가고 있었고 우리 또한 아프리카 선교사로 조금씩 자리잡고 있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 일이다. 선교대회 참석차 케이프타운 근교를 운전하던 중 우리 눈앞에 펼쳐진 산들과 기묘한 바위, 입을 다물 수 없는 장관에 “어머… 저기 봐. 진짜 멋있다. 우와… 저 산 좀 봐”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을 때 희영이가 중얼거렸다. “하나님은 참 무겁겠다”라고…. 뚱딴지같은 딸아이의 말에 어리둥절해 하며 그 이유를 물었더니 교회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우리에게 불러 주었다. “‘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온 세상이 하나님 손안에 있어요).” 우리는 그저 앞에 펼쳐진 장관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 때, 이제 4살 난 희영이는 그것을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 성봉이는 어려서부터 수영을 좋아해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계속 학교 수영선수로 활동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성봉이는 중이염 증세로 한동안 수영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반 지역 초등학교 수영대회만은 꼭 참석해 달라는 학교 측의 요청으로 아침에 진통제를 먹이고 대회에 나가게 했다. 대회를 마치고 오는 길에 성봉이는 “엄마 이제 귀가 안 아픈데?”하고 말했다. 난 “아침에 먹었던 진통제가 너한테 잘 맞는가 보다”라고 했다. 이에 성봉이는 “기도도 했는데…”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약도 먹긴 했지만 낫기를 위해서 기도했는데 그 기도의 응답 때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증세가 호전된 것이 단순히 진통제 효과란 생각만 하고 있었던 우린 순간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듯 성봉이와 희영이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른보다 큰 아이로 그렇게 성장해 가고 있었다.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 된 작은 선교사

자신의 선택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선교사 자녀’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갖게 된 성봉이와 희영이는 중3과 중2였던 시절 우리가 하던 선교 사역에 한인교회까지 맡게 되면서 교회이자 사택이 된 집에서 온 가족이 한방에서 함께 지내야만 했다. 본인만의 공간들을 내어 준 채 예배당 청소와 찬양단, 아이들을 돌보는 일 또한 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한창 예민한 시기였던 아이들은 본인들이 선교사도 목회자도 아닌데 왜 이런 헌신을 해야 하냐며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다가 참석한 2014년 아프리카 코스타는 우리 아이들에게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강사로 오신 홍민기 목사님은 “선교사 자녀인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며 너희를 세계 속의 주인공으로 준비시키기 위해 부모님을 선택해 미리 이곳까지 오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우리 아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고 더 이상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되어 아이들이 처한 환경을 바라보게 했다. 이제까지 의무로 느끼며 불평해 왔던 많은 일들을 선교사 자녀로서의 특권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달란트를 통해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섬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했다.

그리고는 우리의 사역지인 고아원과 성경클럽, 초등학교 등을 따라다니며 학교에서 배운 기초적인 과학 상식들을 직접 실험을 통해 가르치고 교육 수준이 낮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더 나은 삶의 방식을 갖도록 계몽하는 일에 앞장섰다. 또한 주일에는 교회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 첼로로 예배를 돕고 또 에이즈 병동에서 연주를 통해 아픈 자들을 위로했다. 이렇듯 우리와 함께한 선교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들만의 특별한 교육의 장이 되었고, 이러한 작은 헌신들은 켜켜이 쌓여 그들만의 독특한 스토리가 되어 자신들의 비전을 발견하고 더 구체화시켜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 빈민 지역을 다니며 덕지덕지 폐양철로 지은 집들과 성냥갑같이 빼곡히 들어선 빈민가 판잣집들을 보고 이들에게 좀 더 안식을 줄 수 있는 집을 지어 주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된 아들 성봉이, 그리고 에이즈 고아원과 병동에서 고통당하는 아이들과 환자들을 보며 에이즈를 연구하여 그들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길 꿈꾸는 희영이는 언제나 우리의 가장 큰 동역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이다.

 

최고를 내려놓을 때 최고의 선물을 주시는 주님

학원도 정보도, 변변한 교재도 없는 아프리카에서 두 아이를 한국 대학에 보낸 날들을 되돌아볼 때 그저 주님의 은혜였다고밖에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다.

영주권이 없어 남아공 의대 진학이 불가능했던 희영이에게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한국의 의대는 너무도 높은 벽이었다. 이 벽을 넘기 위해 기도하며 학교 공부에 최선을 다했지만 한국에서는 국제학교가 아닌 남아공 현지 학교의 학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한국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미국 입학시험을 치러서 그 결과로 실력을 입증해야만 했다. 이 시험을 위해 주변의 많은 분들은 한국 학원에 가서 고액의 수업을 받을 것을 권했다. 희영이도 혼자 공부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고2 겨울방학에는 딱 한 번만 한국 학원에 보내 달라고 울면서 부탁했다. 난 딸아이의 눈물을 외면할 수도 없었지만 자녀 교육에 있어서 고지식하고 완고한 남편을 설득할 엄두도 나지가 않았다.

고지식하고 완고한 남편…. 자녀 교육에 있어서 현실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나와 선교사로서의 본분을 고집하는 남편 사이에서의 의견 차이는 갈등 아닌 갈등을 불러올 때가 종종 있었다. 남아공 더반은 치안의 불안과 학교폭력, 마약 등의 이유로 대부분의 한인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낸다. 국제학교에 비해서 등록금이 저렴하긴 하지만 공립학교의 몇 배를 내는 부담은 어찌할 수 없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이 나 역시 엄마인지라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들 교육만은 최고로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최고가 최선은 아니다”며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는 남편은 참으로 야속했다. 또한 “엄마…, 한 학기에 만 원을 내는 미술반을 해도 돼?”라며 조심스럽게 묻는 아이들을 보며 미안함과 속상함으로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런 내 마음을 위로하시듯 감사하게도 두 아이 모두 65% 장학금을 받고 명문 사립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정말 우리가 최고를 내려놓고 주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다.

결국, 고2 겨울방학 동안의 한국 학원행을 두고 딸아이의 눈물과 완고한 남편 사이에서 고민하던 우리는 이번에도 일반적으로 말하는 최고가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했다. 한국 방문을 포기하고 책과 인터넷 교재들로 방학 동안 최선을 다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미국 시험만이 아니었다. 한국 대학 진학에 대한 어떤 경험도 정보도 없이 그저 인터넷을 뒤지며 난감해하던 고2 겨울방학, 경기과학영재고등학교 교사가 박사학위를 위해 남아공 더반으로 오게 되었다. 희영이가 남아공 대표로 참석한 국제생물올림피아드에서 만난 2명의 한국 학생들을 직접 지도했던 교사가 우리가 살고 있는 더반에 와서 기꺼이 희영이의 대입 준비에 도움을 주시겠다며 자기소개서 작성 요령을 가르쳐 주셨다. 또한 원서를 작성할 무렵, 남아공 더반으로 에이즈 연구를 위해서 오게 된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박사인 한국 자매의 도움으로 에이즈 연구소에서 일주일간의 훈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에이즈를 연구하고 이 질병의 퇴치를 위해 수고하는 분들과 만남을 가졌는데 이는 희영이가 가졌던 막연한 의사의 꿈을 좀 더 구체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대학 진학을 두고 기도하면서도 별다른 방도가 없었던 우리에게는 상상치도 못한 여호와 이레였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또 한 번의 최고의 선물이었다.

발표가 나기까지 한 달간을 저녁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하던 희영이는 감사하게도 2018년 3월 서울의대에 진학하게 되었고, 고3 당시 사역지의 어려움으로 한국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현지 대학의 건축공학과를 다니던 성봉이도 같은 해 9월 한국 대학으로 재입학하여 현재 한양대 건축학과에 재학 중이다.

한국이라는 낯선 환경과 부모를 떠나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적지 않은 부담을 안은 채, 오늘도 주님 안에서 꿈을 향해 열심 내며 수고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선교사 자녀’라는 그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이름이 헌신을 강요하는 굴레가 아닌, 특권임을 깨닫고 주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며 감사하는 ‘하나님 자녀’로 더 성숙해 가길 소망해 본다.

 

두 자녀를 고국으로 떠나보내고

우리 부부는 다시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다. 언어에도 문화에도 생활에도 익숙한 남아공 더반. 제2의 고향이 되어 버린 이곳에서 다시 교회와 성경클럽, 에이즈 고아원, 유치원, 장학회, 선교사 훈련원 등등의 사역에 우리의 시간과 마음을 쏟는다. 아프리카의 선교적 부흥과 더 행복한 아프리카인의 삶을 위해서 노력하는 일 말이다. 이제… 엄마라는 무게를 조금 덜어 내고 선교사로, 사역자로 좀 더 단단해진 나를 발견하길 소원한다.

 

 

글/김은희 선교사

남편 강병훈 선교사와 2001년 인천 열린선교회 파송으로 남아공 더반에서 줄루족을 대상으로 선교 사역을 해 오다가 2007년에 GMS 선교사로 재파송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녀로 아들 성봉과 딸 희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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