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난해 겨울이 생각난다.

남편이 내게 세족식을 해주던 밤. (우리 그날 많이 울었지?)

서로 할퀴고 뜯었던 상처를 보듬으며 같이 부둥켜안고 한없이 울었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남편의 '아버지학교' 수료식 날이었다.

초대되어 갔던 밤, 수건과 물담은 대야를 들고 부인들 앞에 엄숙히 정렬한 남편들...

 

그 겨울 세족식의 빚을 드디어 갚았다.

그 겨울의 세족식처럼 감동이 밀려들고 눈물이 있는 세족식은 아니었지만,

너무 즐겁고 사랑이 샘솟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남편은 감동을 조금 기대했던 것도 같은데 어찌 감동보다는 서로 너무 좋아서

그 시간을 기다리며 웃기만 열심히 웃었던 것도 같다.

간지럼 많이 타는 남편덕분에 더욱 진지한 분위기는 안되어가고 약간 허무하게 끝이 나고 있었다.

그 때 나의 신경은 남편 뒤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큰 딸에게 더 가있었던 것도 같다.

큰 딸이 며칠 전 학교에서 선생님께 실수를 한 일이 있어

나도 그 아이도 심적인 괴로움과 힘듦이 가시지 않았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 때 작은 딸이 다가와 즐겁게 웃으며 "아빠 한 다음엔 나!"하고 줄을 섰다.

"아빠는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다니시는 귀한 발이니까 씻겨 드리는 건데,

너희들은 발 씻겨줘야 할 정도로 열심히 너희 일을 했니?"

꼭 실수투성이 큰 딸을 의식한 내 물음인것도 같았다.

 

남편 발을 정성껏 닦아주고 조용히 큰 딸을 불렀다.

따뜻한 물을 다시 담고 쑥스럽게 자기 발을 맡기는 아이를 보며 가슴속으로 눈물이 흘렀다.

'예수님께서 주와 선생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처럼 엄마인 저도 제 딸의 발을 씻어 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이렇게 씻으시고 사랑하신 것처럼, 저도 제 딸의 허물을 이렇게 씻고 사랑합니다'

며칠 새 또 버겁고 밉고 서운했던 사춘기 큰 딸이 다시 나의 연약하고 귀한 딸이 되고 있었다.

 

한참 줄을 서있던 작은 딸도 씻겨주었다.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이 녀석은 아직도 참 어리구나' 생각하는데

"엄마, 이번엔 내가 엄마 씻겨줄께"

난 그 때 눈물이 왈칵났다.

별 생각없이 했을 법한 그 어린아이의 말에 난 또 가르침을 받았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서로 씻겨주어야 했다.

사랑의 표현도 섬김이고, 용서의 표현도 섬김이구나!

내 발을 닦느라 자그맣고 동글게 구부린 작은 딸아이의 모습을 보며

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와 섬김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