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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앞에서는 찡그린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활짝 웃고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 여러 교회의 목사님들과 대표 장로님들이 모여서 의논하는 노회가 마친 후에 교회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함께 노회에 참석한 우리 교회 목사님들과 함께 계룡산 입구를 들렀습니다.
왜 들렀는지는 짐작하시겠지요.
바로 만개된 벚꽃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벚꽃이 연출하는 광경은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야 꽃이다. 활짝 피었네. 타이밍을 기막히게 맞추었네. 역시 담임목사님의 통찰력은 대단하다니까!”
목사님들이 아부성 감탄사(?)가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옥에 티가 있는 것처럼 거기에도 극복해야 될 문제는 있었습니다.
온통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원근각처에서 몰려온 장사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생활수단이나 주체측의 피치 못할 일도 있겠지만.
어차피한 일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강력한 음식 냄새 때문에 꽃의 향기를 가까이 하지 못한 안타까움도 있었으니까요.


어째든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우리 일행은 오랜만에 봄의 황홀한 자태에 취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답니다.
돌아오면서 저의 마음속에 만개한 벚꽃과 더불어 오버랩 되는 남다른 느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진정한 꽃은 산야에 피어나는 꽃들도 있지만 사람 꽃, 인간 꽃이 최고 최선의 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은 자연의 꽃을 꽃이라 말하고 인간 꽃을 추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 꽃이 참 꽃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창조하신 자연의 꽃으로부터 몇 가지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동기의 순수성
매사에 동기가 흐려지면 과정이 어그러지고 과정이 어그러지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꽃이 피어날 때 남의 눈을 의식해서 피어나는 법은 없습니다. 철따라 시간 따라 세월 따라 하나님이 지정하신 자리에서 마음먹고 꽃을 피워낼 뿐입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환호를 받기 위하여 꼼수를 쓰는 일도 없습니다.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늘 웃는 모습으로 대할 뿐입니다. 그래서 꽃을 순수의 대명사로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새로남공동체가 꽃보다 더 예쁜 동기의 순수성을 늘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봉사의 자발성
강요되어 꽃을 피우는 법은 없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일깨우면 스스로 맡은 임무에 충실합니다. 자발적인 마음이 꽃의 마음이기에 밤이나 낮이나 사람들이 보아주거나 아니 보아 주거나 묵묵히 소임을 감당할 뿐입니다.
꽃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십니까? 사람들은 남들의 환호에 의하여 울고 웃습니다. 좋은 일을 시작한다고 큰 소리 치다가도 주위에서 호응도가 조금만 떨어지면 스스로 힘들어 합니다. 인간의 자발성이라고 하는 것은 속이 들여다 보일때가 많습니다. 체면치레의 봉사와 명예로 덧칠해진 섬김은 언젠가는 추진력을 잃어버리게 마련입니다. 얼굴 때문에도 아니고 직분 때문에가 아니라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동력이 되어 자발적인 봉사로 열매 맺는다면 얼마나 품격이 있고 은혜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행하는 봉사에 자발성의 축복이 늘 함께 하기를 기도해 봅니다.

*존재의 자족성
꽃은 비교하지 않습니다. 장미가 화려하게 피었다 해서 옆에 있는 이름 모를 들꽃이 시샘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갈 따름입니다. 만약 온 산야가 벚꽃으로 뒤덮인다든지 혹은 할미꽃으로 뒤덮인다든지 혹은 패랭이꽃으로 뒤덮인다든지 한다면 일순간은 좋을지 모르나 얼마나 싱겁겠습니까?
또 봄에 피는 꽃은 여름에 피는 꽃에 대해서 감정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꽃은 여기 저기 간격을 두고 동료들과 떨어져서 피어납니다. 그러나 어떤 꽃은 군락을 이룹니다. 군락을 이루었다고 해서 외따로 떨어져 피는 꽃을 왕따 시키지도 않고 숫자가 부족하다고 해서 전체에 대한 반감으로 응어리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있는 모습대로, 주어진 모습대로 피어날 뿐입니다.
인간세계는 많이 가진자와 적게 가진자의 갈등이 끊임이 없습니다. 많이 배운자와 적게 배운자의 반목질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잘 생긴 사람과 못 생긴 사람이 사회적 갈등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얼짱이니 몸짱이니 맨짱이니 하는 단어는 인간세계의 전유물이지 자연세계에는 없습니다. 그 차이는 자족성의 차이입니다. 꽃들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창조주의 부르심에 만족하며 살아가기에 갈등은 없습니다. 완벽한 조화만 있을 뿐입니다.

봄의 허리를 지나는 때에 믿음의 가족 모두가 예수님이 보혈의 자양분을 공급받아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꽃으로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향기를 간직하여 보는이로 하여금 “야 꽃이다. 향기가 좋아!” 감탄사를 발하게 하는 주님의 꽃이 되었으면 하는 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