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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은 다른 어떤 능력보다 먼저 구해야할 목회의 덕목이라 믿습니다.
필자가 현재의 목회지에 부임할 때에 목양의 현장은 갈등의 현장이기도 하였습니다. 전임자께서 갑자기 다른 목회지로 떠나고 나서 남겨진 양 떼 사이에 숨어 있었던 갈등이 수면 위로 표출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살벌한 교회가 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재판인 양 생각될 정도로 파당으로 나뉘어졌습니다. 당회에서, 안수집사 간에, 남녀전도회에서, 심지어 교회의 갈등이 노회에까지 악영향을 미쳐 노회원들 사이에도 갈등의 기류가 흘렀습니다.
그 당시 기도 제목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은혜로운신 주님! 우리 교회 화목한 교회 되기를 원합니다.” 그때에는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기도 제목이 지금 와서는 가장 지혜로운 기도 제목으로 열매 맺었습니다.
만약 또 다른 능력을 구하고 화목함과 연합, 그리고 덕스러움을 상실했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겠습니까? 화목의 은혜를 간구한 자체가 주님의 돌보심이라 믿습니다.

“교회의 화목함은 자연발생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은혜를 깨닫고 연합과 일치를 위하여
자기의 몸을 던져 교회를 위하여 희생할 때 경험하는 축복입니다.“


원하지는 않지만, 지상 교회는 질그릇처럼 불완전하기에 금이 갈 수 있고 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습니다. 지상 교회를 전투적 교회라 부르는 이유를 알 만합니다. 밖에 있는 적들과 싸우면서 교회의 본질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보혈로 값 주고 사신 교회가 화목함이 넘쳐야 하지만 현실은 꼭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내부적으로 갈등하는 교회가 적지 않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골리앗 앞에서 동생 다윗을 꾸짖고 비난했던 큰형 엘리압처럼 말입니다. 실상 하나님의 심정과 애국의 마음으로 거룩한 진노를 발하여 담대하게 깨뜨려야 할 대상은 골리앗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형제들은 오히려 다윗을 비난하는 일에 힘을 쏟았습니다. 다윗이 형들의 비난과 질타에 대하여 기분 나빠하며 무릎을 꿇고 전쟁터를 떠나버렸다면, 이스라엘의 영광 됨과 다윗의 하나님의 종 됨은 역사의 뒤편으로 쓸쓸히 사라졌을 것입니다.

교회의 화목함은 자연발생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은혜를 깨닫고 연합과 일치를 위라며 자기의 몸을 던져 교회를 위하여 희생할 때 경험하는 축복입니다.
특히 담임목회자가 목양의 중심을 잡고 좌로 기우로 나 흔들리지 않으며 공명정대, 공평무사함의 신뢰의 탑을 쌓을 때 비로소 목양현장에서 열매로 나타나는 덕목이라 믿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세속화와 이단들의 교묘한 술책 앞에 마치 벌거벗겨진 아이의 모습으로 서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교회연합기관이나 총회와 노회와 지방회를 볼 때에 화목의 은혜를 확산하는 주의 종들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직분은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라고 허락하신 사명인 줄 알기에 다시 한번 힘을 내어 화목의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 앞에 엎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가지 조건 좋은 스펙을 갖춘 목회자를 선호하는 시대이지만, 주님께서 찾으시는 목회자는 가는 곳마다 화목함의 열매를 추구하는 마음 따뜻한 목회자라 믿습니다.
어찌 주님뿐이겠습니까? 양떼들의 마음도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따가운 눈길로 교회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도 동일하게 기대하리라 생각합니다.

출처 | 월간목회 2013.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