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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우등생으로 서라


  교회 우등생은 반드시 사회 우등생으로서야 한다. 우등생을 학력지수로 오해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신앙지수는 반드시 성숙한 삶의 지수로 나타나야 한다는 의미이다. 삶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신앙생활은 허구이다. 크리스천의 빛 됨과 소금 됨이 삶을 통한 복음의 정수가 나타남을 의미한다. 공허한 삶이란 크리스천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성숙한 삶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철저한 계획과 실천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기름붓듯해야 삶의 향기는 나타난다. 치열한 자아와의 싸움이 없는 성숙한 삶이란 아스팔트위에 꽃향기 가득한 정원이 생기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적당주의와 공짜 심리는 자기성숙을 지향하는 크리스천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간교한 장애물이다.

훈련을 두려워하지 말라
  40을 바라보는 연구원으로 재직하는 교우의 훈련에 대한 소감이다.「제자훈련은 저에게 새롭고, 신선한 자극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배웠지만, 나의 삶에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체질화하는 적용을 소홀히 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그러나 누가 훈련을 좋아하겠는가? 훈련은 크리스천의 전공필수이지, 선택과목이 아니다. 교육의 목표가 지식의 증가에 있다면, 훈련은 지식의 증가를 넘어 삶의 변화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정보의 취득(information)이 변화(Transformation)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껍질을 깨는 아픔을 동반하는 훈련이야말로 크리스천의 골수를 윤택하게 하는 축복이 된다.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훈련에 대한 맹목적인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마치 훈련의 홍수로 이름지을 만큼 많은 평신도 대상 훈련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식상한 경험이 한 두 번은 모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아픔과 부정적인 생각이 미래의 축복을 거부하는 요인으로 제공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유교의 전통가운데 선지후행(先知後行)을 주장한 주자(朱子)의 학설은 왕양명(王陽明)의 지행합일설(知行合一設)과 함께 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쳤다. 학력중심의 사회가 고착될수록 삶의 변화보다 밖으로 보이는 것, 꾸미는 것에 대하여 감각이 계발된다. 신행일치(信行一致)의 덕목을 기뻐하는 크리스천이 많지만, 막상 삶으로 진리를 옮겨내는 인카네이션의 삶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자신을 여는 만큼 변화와 성숙을 체험할 수 있다. 꼭 틀에 짜인 훈련프로그램은 아니라 할지라도 나를 던지는 훈련의 과정없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설 수가 있겠는가

가정을 세우라
  올바른 훈련의 첫 번째 열매를 꼽으라면 단연코 가정의 변화라고 지적하고 싶다.
「훈련과정 가운데 조금씩 바뀌어 가는 집안의 분위기를 먼저 알아챈 것도 저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가정예배를 인도하고 제자훈련을 위해 책을 읽고 성경을 읽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예배를 사랑하고, 성경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로 바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의 부모 특히 가장이 자신을 다듬어가면 그 영향력은 반드시 가정에 나타난다. 분위기가 밝게 바뀌는 것은 물론 가족 구성원사이의 따뜻한 교감이 일어난다. 교회의 우등생은 가정의 지킴이로 든든하게 서게 된다. 이상할 것이 없는 이유는 교회와 가정의 머리가 바로 동일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수년전부터 가정사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세미나가 빈번해지는 역설적인 이유는 교회우등생이 가정에서 별 영향을 미치고 있지 못하다는 현실과 맞물려 있다. 크리스천들이 기도에 관한 책을 유행처럼 구입할 때가 가장 기도가 빈곤할 때라는 현상과 빗댄다면 무리일까? 교회에서 쓸만한 사람은 가정에서 쓸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교회를 이끄는 사람은 반드시 그의 가정의 지도자로 서야 한다.
하루아침에 교회의 자랑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가 만들어지지 않았듯, 하루아침에 교회의 아픔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가정을 세우는 원리는 전혀 복잡하지 않다. 교회에서 받은 말씀의 교훈을, 훈련을 통하여 얼마나 많이 신속하여 적용하는가의 문제이다.

주도적이 되라
  교회건, 가정이건, 직장이건 마지못해 끌려 다니는 사람은 생산적인 분위기 조성에 기여할 수 없다.
사회의 축소판인 직장생활에서 열매맺는 크리스천으로 서려면 분명한 원칙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 원칙 없는 직장생활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다. 크리스천들에게는 소소한 술, 담배 문제부터 가치관의 문제까지 넘어야할 고비가 많다.
저글링하는 사람이 공 하나라도 떨어뜨리면 안 되는 것처럼, 교회생활, 가정생활, 직장생활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는 남다른 각오와 결단이 요청된다. 먼저 자신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믿음생활과 직장생활은 조화시키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떨쳐버려야 한다. 기업체 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40대 초의 크리스천의 경험담이다.

  새롭게 접하게 된 성경공부와 신앙훈련은 저의 가치관과 안목을 새롭게 변화시켜 갔으며 직장생활도 점차 활기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경의 원리들을 직장생활에 실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웠습니다.
1.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탁월한 윤리성과 정직성을 갖춘다.
2. 내게 맡겨진 업무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 직장상사와 동료, 부하직원과 관계를 신의를 바탕으로 맺어 가며 회사와 동료들을 사랑하고 비방을 삼간다.
3. 항상 웃는 얼굴로 누구에게나 먼저 인사한다.
4. 회사와 직장동료들의 가정과 업무의 발전을 위해 기도한다. 특별히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동료들을 비판하지 않고 용납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진다.
5. 직장동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한다.

  당신의 직장생활의 원칙은 무엇인가? 그리고 붙잡은 원칙의 출처가 어디인가?
주도적으로 섬김과 사랑을 실천하는 직원이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할까. 문제는 설익은 과일처럼 단맛을 내지 못하는 준비되지 않는 크리스천에게 있지 않을까.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동일하게 일터의 주인이시기도 하시다. 교회의 일꾼은 사회의 일꾼으로 견고하게 서야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처한 현실속에서 치열하게 벧엘을 확산시켜 나가기를 원하신다.

직장인으로서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임양빈-

  저는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알기 전에는 나 중심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나 자신의 성취와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왔지요.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면서 가치관과 안목의 새로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제 삶의 여러 모습들을 변화시켰는데 특별히 저의 직장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제 나름대로의 직장생활의 원리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1. 나는 직장동료들의 삶과 가정이 건강하고 행복하며 직장동료들의 발전을 위하여 매일 기도한다.
2. 나는 각종 회의에서 열린 마음으로 직장 동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좋은 의견을 수용한다. 또한 그들이 직장에 기여하고 있는 부분을 공개적으로 인정한다.
3. 나는 동료 및 후배 교수에게 권한을 위임하여 서로의 재능과 영향력이 함께 상승하는 시너지(Synergy)효과를 창출한다.
4. 나는 하나님께서 직장 생활속에서 겪을 수 있는 위기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기적'의 주인공으로 나를 사용하시도록 내어드린다.
5. 나는 나 자신의 내면의 질서와 영적성장을 위하여 쫓겨다니는 인생(Driven People)이 아니라 부름 받은 인생(Called People)으로 산다.

*건양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임양빈집사는 대전에서 부인 이영미집사와 찬혁, 채리, 성희 3남매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