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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8. 12 대전일보
오정호 목사
르호보암의 비극


자신의 역사를 소홀히 대접하는 민족은 화를 당한다. 역사의 준엄한 교훈은 역사를 무시하는 개인과 나라는 반드시 역사의 변방으로 사라진다는 원리이다. 그런데 인간의 역설은 역사를 통하여 결코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르호보암이라는 사람을 아는가? 르호보암은 저 유명한 솔로몬대왕의 아들이다. 아버지 솔로몬을 이어 마흔한살에 이스라엘 왕위에 올라 십칠년간 나라를 다스린 인물이다. 혹자는 십칠년간 다스린 사실을 두고 꽤 정치력이있고, 백성의 신뢰도가 높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을 알면 절대로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 것이다. 왠가하면 르호보암은 그의 할아버지 성군 다윗, 그의 아버지 지혜의 왕 솔로몬의 업적과 영광을 다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에 관한 역사의 개요는 이렇다. 위대한 업적으로 온 땅을 진동시켰던 솔로몬이 죽자 왕위를 계승한 르호보암은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정적과 온 백성이 그에게 나아와 그의 선왕 솔로몬시대의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줄 것을 탄원한다. 솔로몬 치세당시의 대토목공사로 인하여 백성들의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임금 르호보암은 삼일후에 회답을 줄 것을 약속하고 백성들을 돌려보내었다. 그 약속한 삼일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겠는가? 우선 르호보암은 선왕을 보필하여 정치했던 원로그룹의 자문을 구한다. 그들은 왕에게 백성의 마음을 얻으라고 간언한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비결은 백성들을 후대함에 있다고 귀띔한다.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섬기는 지도자상(Servant Leadership)을 보여 줄 것을 주문했다. 원로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르호보암은 또 다른 그룹의 의견을 구한다. 새로운 그룹은 함께 자라난 동료그룹이었다. 그들은 원로그룹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자문을 하였다. 솔로몬이 채찍으로 다스렸다면, 왕은 왕권을 확립하기 위하여 더욱 엄하게 전갈로 다스리라고 채근하였다. 르호보암이 원로들의 말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리석은 왕 르호보암은 소장파 그룹의 조언에 혹하여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왕의 정책에 실망하고 분노한 백성들은 세력을 규합하여 조직적으로 대항한 결과 그의 왕국이 두 조각 나는 예견된 분열을 맛보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광에 먹칠을 한 것이다.
르호보암의 비극은 어디로부터 출발했을까?
첫째, 경청하는 귀를 가지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최고 지도자는 혼자서 일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요즘 지도력을 말할때 약방 감초처럼 언급되는 항목이 경청하는 지도력이다. 역설적으로 경청하기가 지도자에게 그만큼 힘이 든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닌가? 백성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먹은 지도자는 모든 시대의 화의 근원이 되었다. 자기 주장이 너무 크면 건성으로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 건성으로 듣는 지도자의 심리속에는 “나는 너보다 낫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얼마나 위험한 태도인가. 경청의 지도력은 마음의 귀를 열어놓는 작업이다. 마음의 귀가 열려있는 지도자가 목마른 세상이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상대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는 지도자가 널려 있다. 르호보암은 경청의 흉내는 내었으나, 잘못된 대상을 선택함으로 지도력의 함량미달을 만사람에게 알리고 말았다.

둘째, 역사의 순리를 거역했다는 교훈이다. 역사의 발자취는 인간의 유한성을 일깨워준다. 인간이 아무리 잘난들 천사가 될까. 인간사에 대한 앞서보는 눈인, 예견(foresight)과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는 눈의 통찰(insight)에 대한 힘은 하루아침에 생성되지 않는다. 이러한 차원 높은 인식은 고도의 자기절제와 겸손한 마음속에서 잉태된다. 사람사랑의 마음속에서 태동한다. 역사는 생물과 같아서 단절이 없다. 잘나도 내역사, 못나도 내역사이다. 역사에 의도성을 가지고 메스를 갖다 댈수록 흠집이 생길 뿐이다. 자기를 먼저 돌아보는 지혜를 역사는 소리높여 요청한다.

셋째, 자신의 그릇을 과대평가 했다는 비극이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지도자마다 그릇이 다르다. 모두가 큰 그릇이기를 기대하지만 기대한다고 큰그릇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숙한 지도자일수록 자신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존경받는 지도자일수록 타인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이렇듯 어려운 일 중의 어려운 일이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이다. 백성의 소리를 가볍게 대접한 지도자치고 변변한 지도자가 있었는가? 자기의 소리와 코드가 맞는 측근의 소리에 취해 있는 지도자라면 이미 병이 들어도 한참 중병에 들어있다. 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길은 자신을 찾는 길이다. 엄격한 자기 성찰이 없는 지도력은 공멸을 부른다. 내면의 소리, 역사의 소리,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우릴 줄 아는 지도력은 상생을 가져온다. 르호보암은 왜 선왕 솔로몬과 같이 지혜로운 마음을 갈구하지 않았을까? 혹시 어리석게도 자신을 솔로몬 이상으로 과대평가 한 것 아닐까. 역사가 웃을 일이다. 자기의 전존재를 정확하게 바라보려는 마음에서 역사의 진보는 일어난다.

나라가 어렵다. 내우외환이 겹쳐 일어나고 있다. 신문을 펼쳐 들기가 민망하고, 라디오와 TV를 켜기가 두렵다. 어찌하여 우리나라가 겪었던 백년전의 국제정세가 자꾸 머릿속에 떠오를까? 역사속에서 겸손하게 배우지 않았던 르호보암은 오늘의 우리에게 반면교사의 전범이 된다.  사람에게 나서서 가르치려는 주제로 자신을 먼저 가르쳐야 품격있는 역사를 펼쳐갈 수 있다. 머리에 띠를 띠고 거리로 나서기전에 역사의 소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 역사는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는 민족에 대하여 관대하다. 이 사실 또한 역사의 지울 수 없는 교훈의 아니던가.
앞을 보고 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