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대전일보 (040715)
오정호(새로남교회 담임목사)
웰빙의 조건



온 나라가 웰빙 바람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웰빙을 마다 할 사람이 누구 있을까?
그러나 웰빙을 바람으로 불어오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상 웰빙은 바람이나 유행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다.
손 끝에 다가온 여름휴가를 앞두고 웰빙의 진면목을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웰빙은 구호로 부르짖는다고 체험되는 것이 아니라는 성격을 미리 인지해야 한다.
오히려 웰빙은 한 사람이나 한 사회의 건강한 태도에 달려있다.
과연 웰빙의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 웰빙은 웰빙추구자의 눈에 보이는 환경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 즉 인간 내면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웰빙을 소유지수나 경제지수 관점에서 접근한다. 더 나은 물질생활의 체험이 웰빙을 이야기하는데 빠질 수는 없지만 절대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웰빙은 마음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내면세계가 건강하려면 존재 가치감, 자존감의 상승, 숨겨둔 죄책감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수적이다. 자신과의 화해는 자기용납을 빼놓고는 성립될 수 없다. 자기와 불화하면 자기파멸로 귀결된다. 자살 신드롬이 온 땅에 가득한 이유는 건강한 내면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생명이 전제되지 않은 웰빙은 이 땅에 발을 딛고 설 수 없지 않겠는가?

길거리의 모든 간판은 우리의 외부세계를 꾸미라고 권유한다. 화려한 치장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속사람 즉 인격의 치장을 소홀히 한 채 겉꾸밈으로만 치닫는 현상이다. 속없는 겉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얼마전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만두사건은 겉의 문제가 아니라 속의 문제였다. 속이 불량한 만두가 폐기처분되었다면 만두와 비할 바 없는 존귀한 존재인 인간의 속은 무엇으로 채워져야 하는가. 정신이 산란하고 복잡한 사람은 생활도 무질서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반영일 뿐이다.
감옥에서도 호텔처럼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호텔에서도 감옥체험을 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웰빙은 전 인격의 문제이다. 웰빙은 웰빙추구자의 마음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인간내면세계의 건강을 전제하지 않는 웰빙은 뜬구름 잡는 일이다.

둘째, 웰빙은 관계의 축복으로 맛볼 수 있다. 깨어진 인간관계와 파괴적인 대인관계에서 웰빙은 결코 꽃필 수 없다. 대립적인 관계가 상생의 관계로, 파괴적인 관계가 생산적이고 호혜적인 관계속에서 웰빙은 자리잡기 시작한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불신하고, 부모와 자녀가 반복하는 토양에서 어떻게 웰빙이 가능할까? 세차게 가정이 흔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족 공동체의 안녕을 무시한 채 웰빙이 논의되는 것 자체가 낯설게 다가온다. 무인도에 조난 당한 로빈슨크루소가 그리워했던 것은 사람이었다. 네가 없는 나는 무의미하다. 자기와 화해의 악수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도 화해의 악수를 할 수 있다.


셋째, 웰빙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타인을 미소짓게 한 경험이 있는가? 자신의 마음속에도 미소가 있으리라. 나만의 미소는 온전한 미소가 아니다. 서로 웃을 수 있음이 축복이 된다. 다른 사람을 분노에 빠뜨리는 사람인가? 그 자신도 분노의 대상으로 자리 매김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소를 유통시키라.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자신을 기꺼이 내어 주라. 원래가 이기적인 인간을 내버려두면 다른 사람을 찌르는 가시로 자랄 것이 분명하다. 사람은 독초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유실수로서 살아야 한다. 독점욕에 사로잡혀 살기보다 나눔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환경이 웰빙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 믿고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이가 많다. 숨가쁘게 달려온 바쁜 생활을 잠깐 뒤로하고 온가족이 손을 잡고 산과 바다와 계곡을 찾아 여유 있게 나들이하는 장면은 정겹다. 그러나 산세의 수려함이나 바다의 매력보다 동행하는 가족들의 아름다운 관계가 더 본질적이지 않을까?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에덴동산은 더 이상 에덴동산이 아니다. 목소리를 높여 상대의 단점을 하이에나처럼 놓고 늘어지는 사회는 이미 중병에 걸려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과 우리 땅을 행복의 동산으로 만들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

웰빙이라는 단어가 없는 자연만물은 이 순간도 노래하고 꽃 피운다.
진정 웰빙하려면 “다른 사람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신도 윤택하여 지는 원리”에 눈을 떠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유행 따라 웰빙을 외칠 때
“어떤 목적으로 살아 갈 것인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 것인가?”하는 질문에 무게를 두고 자신의 삶 전체를 던져 웰빙의 조건을 이룬다면 이미 그 사람은 웰빙족의 범주에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