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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목양하는 교회의 이름은 “새로남교회”지만 별명은 교회건물 외벽에 써서 게시하고 있는 “영혼이 미소짓는 교회”이다. 그렇다. 영혼이 미소 짓는 것은 인간됨의 놀라운 축복이다. 영혼이 진정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교회는 재정적인 성공과 처세술을 가르쳐주는 곳이 결코 아니다. 교회는 영혼이 영원히 미소 지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눈뜨게 해주는 곳이다. 무너진 영혼의 질서를 회복시켜 주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는 인간 내면의 문제 곧 영혼의 건강에 관심이 있는 터에 루오전의 슬로건을 볼 때 마음이 끌렸다.

  루오를 “영혼의 자유를 지킨 화가”라고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래, 영혼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는 영혼이 미소 지을 수 없지!” 바쁜 시간을 쪼개어 기대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였다. 혼자만 아니라 필자의 교회에서 함께 목양하는 여러 목사님들과 동행했다. 관람하는 동안 진한 여운을 남긴 감동의 밀물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작품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듯 루오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사랑, 희망, 인내, 관용의 미덕을 노래했다. 그는 또한 인간성의 파괴를 슬퍼하고, 아파하는 따뜻한 마음을 그림을 통하여 메시지화하였다. 그 누가 루오의 작품을 통하여 전달되는 따뜻한 온기에서 피하여 숨을 수 있을까?


  대전시민의 자부심을 고조시키는 시립 미술관과 이웃한 문화예술의전당은 나 같은 평범한 시민에게 마음의 휴식을 안겨주는 축복의 센터이기도 하다. 귀한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어 일상의 찌든 때를 벗겨 주고 먼지를 털어 주어 삶의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하여, 마음의 산소를 공급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루오는 두 가지 걸작으로 필자에게 다가왔다. 하나의 걸작은 그의 인생여정이다. 또 하나의 걸작은 그의 인생여정이 빚어낸 그림이다. 어린 시절 루오는 그의 인생 전반에 큰 족적을 남긴 스승 귀스타브 모로를 만난다. 얼마나 스승의 영향이 강렬했는지 스승이 별세하자 루오는 한동안 정신적 충격을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그가 방황의 시기를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던 비결은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속에 내재한 죄성을 간파하고 성찰한 이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의 빛을 받기로 결심한 때문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창작 능력을 극대화 시켜 가면서 루오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폐쇄된 공간이 아니었다. 모두가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공감의 열린 공간이었다. 그만큼 루오의 마음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의 대명사인 광대, 곡예사, 비참한 여인등을 포용하며 희망의 빛을 추구하였다. 루오는 인간애를 바탕한 자기고백으로 우리의 딱딱한 마음을 녹여낸다.

    필자는 학창시절의 은사이신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장이시며, 대학사학회장으로 계시는 이석우 교수님의 루오작품에 대한 해석은 필자의 마음에도 동일한 중량감으로 와 닿는다. “루오의 ‘성스러운 얼굴’의 예수상은 그 큰 눈으로 자애롭게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모든 아픔과 고뇌와 방황과 걱정,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너희 인생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리고 그 짐을 나와 같이 나누어 갖자고 요청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대전시민의 격조 있는 예술체험을 위하여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기획과, 도전을 통하여 루오展을 유치한 대전일보사와 시립미술관의 열정에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