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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키스

2011.08.25 09:24

2011. 8. 24 대전일보
오정호(새로남교회 담임목사)

할머니의 키스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부축을 받으며 식당문을 나서시던 하얀 머리 할머니가 배웅인사를 하는 필자의 볼을 향하여 입술을 갖다 찍으신(?) 것이다. 그 날은 광복절 66주년을 기념하는 축복된 날이었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고국을 방문하신 1922년 출생 송신도 할머니는 돌아가시기전에 고향을 한번이라도 더 밟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낮에는 대전시청을 방문하여 염홍철 시장 초청 광복절 경축행사에 참석하였다. 저녁에는 대전의 친척들과 저 멀리 전남 신안에서 올라온 조카 가족과 함께 만찬을 하였다. 만찬 자리에서 90세의 할머니는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 같은… 고향을 떠나온지 몇 몇해련가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메는 이 몸 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을 차마 못 잊어” 할머니는 자청하여 익숙하지도 않는 모국어로 가슴속에 담겨 있던 그리움과 서러움을 뱉어 놓았다.

송할머니는 지난번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 현장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다. 가장 피해가 컸던 미야기현에 거주하던 중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출하여 지금은 도쿄에 거주하고 있다. 할머니는 1922년 논산에서 태어나 일제에 의하여 중국땅을 헤메이면서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가 끔찍한 고통을 당하였다. 이러한 개인의 아픔과 조국의 비극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할머니가 맞이하는 8.15광복절과 할머니가 부르는 ‘타향살이’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나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키스의 자국을 왜 남기고 싶어 하셨을까? 할머니의 키스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할머니의 입맞춤은 감사를 담고 있는 입맞춤이었으리라.
한평생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채 힘겹게 살아온 세월 조국마저 나를 잊었을까? 얼마나 수많은 날을 고민했을까? 그런데 조국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광복의 의미를 다시 온몸으로 체험하였으니 그 감격이 환희의 입맞춤으로 승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입맞춤은 단순하게 필자에 대한 입맞춤을 뛰어넘어 조국의 가슴에 올려드리는 감사의 입맞춤이었으리라.

실제로 할머니는 만찬석상에서 여러 차례 “이제는 여한이 없다”고 말하였다. 또한 할머니의 입맞춤은 아픔의 입맞춤이라 생각한다. 한 여성으로서 기구한 인생여정을 지내온 할머니의 삶의 자리는 삶의 피곤함과 눈물이 담겨진 생애였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맞물려 있는 할머니의 아픈 세월을 그 누구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할머니는 현재 일본에 거주하면서 유일하게 종군위안부 피해자임을 아픈 마음으로 드러내어 10년 세월동안 소송을 벌인 할머니이다. 진실을 드러내는데도 아픔은 살아있다. 이번 방문에서 할머니는 한국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가 주최한 ‘제10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특별강연을 하였다. 16살 어린 나이에 일본제국에 속아서 날려버린 아픔의 세월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여인으로서 얼마나 수많은 날들을 회한의 눈물로 밤을 보냈을까? 할머니는 조선인이며 위안부였다는 사실 때문에 일본 사람들로부터 온갖 핍박을 받으며 살아왔다.
할머니의 키스에는 후세대를 향한 교훈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국권을 탈취당하면 개인의 삶이 어떻게 동시에 흔들리는가하는 것을 여과 없이 우리에게 보여준다. 조국을 팔아 개인적인 명예와 부를 쌓은 못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은 나라 빼앗긴 설움에 숨도 쉬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세월이 있었다. 할머니의 일생은 조국의 역사의 어두운 면을 송두리째 간직하고 있다. 국운이 기울어짐과 한 꿈 많은 소녀의 인생이 강압에 의해 해체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송신도 할머니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할머니들이 이제 70명이며 송할머니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유일한 생존자이다.

이번 송할머니 환영만찬에서 소중한 분들과의 만남을 경험하였다. 20년전부터 일본에서 송할머니를 돌보고 있는 자원봉사팀의 양징자 회원은 한국어 통역과 번역도우미로 마치 딸처럼 봉사하고 있었다.
한국정신대 문제대책협의회의 상임대표 윤미향씨는 이름대로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 분이었다. 지금도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주도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다. 한국교회희망봉사단의 김종생 사무총장의 헌신 또한 빛났다. 이러한 좋은 분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는 사실이 위로와 축복이 된다.

올해의 광복절에 경험한 할머니의 키스는 필자에게 조국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주권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우쳐 주었다. 위당(爲堂) 정인보 선생은 광복절의 노래에서 이렇게 조국해방의 감격을 노래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할머니의 키스는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자유임을 계속적으로 기억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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