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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2194한경직·박윤선·이중표… 다시 만나고픈 신앙의 선배들
한복협 5월 월례회서 오정호·박삼열·이윤재 목사 발제 [2009-05-09 06:55]

“누군가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참 복된 일입니다. 한국교회는 유행을 좇느라 신앙의 선배들을 그리워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김명혁 목사).”

8일 오전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 이하 한복협) 5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에서는 ‘신앙의 선배들을 기리며’를 주제로 한경직, 박윤선, 이중표 목사 등 한국교회 주요 목회자들을 회고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날 오정호 목사(대전 새로남교회)는 한경직·옥한흠 목사, 박삼열 목사(인천 송월교회)는 박윤선·박도삼 목사, 이윤재 목사(분당 한신교회)는 이동휘·이중표 목사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오정호 목사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들 말로 표현하는 게…”


▲오정호 목사. ⓒ이대웅 기자
오정호 목사는 한경직 목사와 옥한흠 목사를 각각 ‘인격 목회와 청빈 목회의 대명사’, ‘한국교회의 미래를 열어간 목회자’로 요약했다. 그리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들을 언어적으로 표현한다는 게 참 어렵다. 감정이 이입돼야 하는데 여기서 엉엉 울 수도 없고…”라며 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발제문에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한경직 목사에게는 ‘사목자곡(思牧者曲)’을, 옥한흠 목사에게는 ‘목사님의 사랑의 그늘이 오늘의 축복으로 이어집니다’는 제목의 편지글을 덧붙였다. 사목자곡은 한경직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후 쓴 글이고, 옥한흠 목사에게 쓴 글은 지난 2001년 사랑의교회 출신 목회자 일동의 이름으로 오정호 목사가 작성한 글이다.

사목자곡에서 오 목사는 “저는 평소 한경직 목사님의 주님 사랑, 양떼 사랑의 목회와 고매한 인격목회를 흠모해 왔습니다”라며 “지난 장례식 참석 이후 부족한 글이지만 큰 스승 목사님에 대한 후배 목회자의 사목자곡으로, 저는 새로남교회가 복음의 위대성과 교회의 영광을 간직한 교회로 주님 오시기까지 서 있기를 소원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 “목회자다운 목회자, 성도다운 성도가 그리운 때입니다”라며 “할 일 많은 이 강산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위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소유한 제2의 추양 한경직 목사님이 더욱 그립습니다”라고 노래했다.

옥한흠 목사에 대해서는 “저희 형이 옥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교회를 맡게 돼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럽다”면서도 8년간 사랑의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그리고 이후 옥 목사를 멘토로 삼아 목회했던 기억들을 풀어놓았다. 그는 “목사님의 품을 벗어나 전국각지 사역의 현장에서 목양하는 동안, 한 시도 목사님의 가르침과 친히 보여주신 목자의 본분을 잊은 적이 없었다”며 “충성된 제자는 스승의 삶을 자신의 삶을 통해 오늘 현장에서 재현하는 것처럼 목사님의 건강한 교회에 대한 비전을 저희들도 온 몸과 마음으로 전수받아 목양의 현장에 뿌리내려 꽃피우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박삼열 목사 “신앙의 선배들 따르는 길, 너무나도 쉽지 않다”


▲박삼열 목사. ⓒ이대웅 기자
박삼열 목사는 박윤선 목사에 대해 “한국교회 성도들의 손에 성경을 들려주신 목사님”이라고, 자신의 선친인 박도삼 목사에 대해서는 “사랑의 씨를 뿌린 농부”라고 표현했다.

박윤선 목사는 80이 넘었을 때도 설교 순서가 될 때까지 의자에 앉아 고개를 깊이 숙이고 몸을 흔들며 “주여! 주여!”를 외치며 기도했다고 박삼열 목사는 회고하면서 “성경을 다 주석하셨고 일평생 신학생과 목회자들을 가르치셨던 분이신데 무엇이 저토록 부족하고 간절하게 할까 생각해 봤다”며 “온 몸을 다해 설교하시던 그 모든 힘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됐고, 그것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말씀을 잘 전하기 위해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하셨던 진실하고도 뜨거운 영력의 목사님”이라고 전했다.

박삼열 목사는 선친 박도삼 목사의 목회를 본받기 위해 노력했으나 곧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목사님은 새벽기도를 마치고 골목골목 믿는 가정이든 믿지 않는 가정이든 방문해 기도해 주곤 하셨고, 그들은 그러는 동안 가랑비에 속옷 젖듯 신앙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불평이란 것은 거의 하지 않았고, 칭찬을 많이 한 분이셨다”며 “소천하신 후 장례를 치를 때 정말 많은 분들이 빈소를 찾으시는 것을 보고 사랑의 씨앗을 우직하게 심어 나갔던 목회자라는 것을 다시 실감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윤재 목사 “이중표·이동휘 목사, 모두 별세의 사람”


▲이윤재 목사. ⓒ이대웅 기자
심한 감기몸살로 발제를 많이 준비하지 못했다던 이윤재 목사는 이중표 목사를 회고하면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애써 참는 등 열정적으로 두 목회자를 회고했다.

이동휘 목사에 대해 “하도 기도를 많이 해서 밤새 모시적삼을 입고 교회에서 철야 기도하면 다음 날 아침 모시적삼이 빨개졌다”며 “밤새 모기에게 수없이 물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주안디옥교회 시무 시절 선교비에 교회 전체 예산의 70%를 쏟아붓다 IMF 이후 오히려 80%로 늘렸던 사실을 밝히면서 “당신의 네 자녀까지 모두 선교사가 되게 하는 등 선교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람”이라고 전했다. 은퇴 후 수원으로 간 이유를 묻는 질문에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라고 답했던 이동휘 목사에 대해 그는 “‘불편하게 삽시다’를 실천한 목회자”라고 밝혔다.

이중표 목사에 대해서는 “예수님 얘기가 나올 때마다 늘 눈물을 보이셨던 분”이라며 “설교 중에도 2-3번은 꼭 우셨다”고 회고했다. 그의 ‘별세(別世)목회’에 대해 “목회 현장에서 우러나온 신학”이라며 “그의 개인적 삶에서도 4번의 수술 가운데 죽음과 삶이 백지장 하나 차이라는 사실을 늘 인식하셨다”고 증언했다. 1980년대 ‘별세’를 주장한 데 대해서도 “사람들이 먹고 살만해지자 그리스도에서 떠나 물량주의로 흘러갔고, 이를 탄식하시면서 시대적인 반성 끝에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순교에 대한 강한 소원을 갖고 있던 이중표 목사는 병으로 소천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예수 안에서 이미 별세하고 암을 맞게 돼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고 그는 전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명혁 목사는 앞서와 같이 말한 후 “은퇴 이후 작은교회를 돌며 설교하고 있는데, 1년 4개월간 했던 설교문을 다시 들여다보니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얘기를 100번 중 40번이나 했더라”고 존경하는 목회자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특히 합동측인 오정호 목사님이 통합측인 한경직 목사님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표시한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복협은 매달 둘째주 금요일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갖고 있으며, 다음달에는 작은교회 목회자들을 초청해 그들의 고충을 듣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오정호 목사, 허문영 박사, 손봉호 교수, 정진경 목사(왼쪽부터) 등이 발제를 경청하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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