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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작성일 2005-11-16 
원본링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4?sid=103 
언론사 국민일보 
기자  

누가복음 17장 111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을 때 한센병 환자 10명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목소리로 이 기회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예수님을 향해 우리를 고쳐주셔서 우리 삶에 희망을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자비로운 예수님께서 그들의 사연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몸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제사장에게 가는 동안 몸이 깨끗하게 나은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치료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열명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명만 돌아왔습니다. 나머지 아홉명은 사라졌습니다. 왜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은혜를 받고,기도응답을 받고,기적을 체험했는데 왜 주님께 감사하러 돌아오지 않았을까요? 옛날에 한센병은 치유 불가능한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을 당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치료를 받았다면 자나깨나 입에서 찬송이 나오고 감사가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왜 돌아오지 않았을까요?

때때로 과거의 아픔이 장기화될 때 부정적인 습관을 만들어냅니다. 부모로부터 혹은 가족으로부터 버림 받은 상처가 오랫동안 지속될 때 그것이 마음에 한이 되어 부정적인 습관을 만들어냅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버림과 냉대 속에 구걸하며 살면서 익숙해진 부정적인 습관이 감사를 잊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은혜를 바르게 알았던 사마리아인은 이 습관을 넘어섰습니다.

또한 그들은 받은 복 때문에 복을 주신 주님을 망각했습니다. 받은 복 때문에 주님을 망각하는 것은 이 시대의 아픔입니다. 내가 가진 사업,직위,취미,심지어는 가족까지 주님의 손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직위가 오르고,사업이 잘됨으로 인해 주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를 전혀 하지 못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고침을 받은 것을 출발역이 아니라 종착역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치료하고 고치신 것은 주님 뜻대로 살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찬양과 봉사와 섬김을 하며 살라고 주신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고침 그 자체가 삶의 종착점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수의 유혹이 있는 시대입니다. 존 맥스웰은 “만족하는 사람은 자신이 받은 복을 하나씩 헤아려본다. 그러나 불만족하는 사람은 남들이 받은 복을 세워보면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즐거움도 없다고 불평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볼 때 축복지수와 감사지수는 비례하지 않습니다. 은혜 받은 지수만큼 주님께 경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아픔입니다. 우리는 은혜 받은 자입니다. 용서 받은 자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진정한 감사와 경배를 드리는 성도에게 새롭고 더 큰 복으로 채우시고 만나주십니다. 주님 앞에 홀로 엎드려 절하며 감사하는 사마리아인에게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돌아오지 않은 아홉은 육체의 치료는 받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혼의 용서는 받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새롭고 더 큰 복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감사의 제목을 더 풍성하게 주십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한 자로서 진정한 감사의 예배자로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오정호 목사 (대전새로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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