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작성일  
원본링크  
언론사  
기자  
새로남교회 오정호 담임목사 -새 성전 건축으로 제2의 출애굽 꿈꾼다

                                                                                             기사입력: 2004-06-19 오전 10:10:25


1. ‘크다’, ‘작다’가 아니라 무엇을 할까, 어떤 역할을 할까가 중요


  어려서는 얼굴만 보고서 사람을 판단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판단하기 위하여 많은 기준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나이가 더 들면서부터는 사람의 속을 판단하기 위하여 그를 둘러싼 테두리를 보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무엇보다 그가 살아가는 공간을 어떻게 가꾸고 만드는지 꼼꼼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마음과 꿈을 읽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였다. 새로남교회(담임목사:오정호)가 대전시 서구 만년동에 새로 지은 교회당을 둘러보면서 나는 새로남교회의 교인들과 목회자들이 품은 마음과 꿈을 읽어내었다.

부지 1,050평, 연건평 6,000평의 거대한 교회당은 넓거나 휑하거나 생각 없지 않았다. 거대한 교회당의 호사스러움과 권위주의적 자태를 보면서 때로 분노하였고, 비좁고 눅눅하며 천장 높은 교회당의 오래된 현실에도 고개를 돌렸다. 새로남교회는 내게서 교회당에 대한 그런 크고 작은 기준들을 정지시켰다. “왜 교회가 이렇게 커야 해요?” 하고 묻는 아들에게 오정호 목사는 “질문을 바꾸자”고 말하였다. “크다, 작다가 아니라 무엇을 할까, 어떤 역할을 할까가 옳은 질문이 아닐까?”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영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였다.

여느 교회당이 가진 시설은 그들의 마음을 담아 그들의 시설답게 꾸몄으며, 여느 교회당이 지니지 못한 시설들은 그들의 꿈을 이야기하였다.

10층 스카이라운지에서 그들은 대덕연구단지와 충남대학교 과학기술대학교, 정부청사, 공장단지를 내려다보았다. 건물을 보면서 그들은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았다. 오정호 목사는 복음으로 영향을 끼치는 교회를 바랐으며, 그 영향력이 미쳐야 할 곳을 그들의 스카이라운지에서 보았다.

예배실은 크고, 작고, 더 작은 다양한 크기에 다목적으로 활용하도록 꾸몄다. 예배실마다 강단과 예배자 사이의 거리를 좁혀 청중에서 참여자로 예배하는 문화를 반영하였다. 중간 크기의 예배실에서는 연극과 영화와 콘서트는 물론 예식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들이 영향을 끼쳐야 할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10층 높이의 청소년 비전센터와 돔형 예배당 사이는 유리로 연결된 구름다리가 놓였다. 다리 아래로 광장을 열었으며, 광장 지하로는 체육관 시설을 넣었다. 300석의 관람석까지 갖췄으며 청소년들을 위한 공연장으로도 활용할 계획이었다. 건물외벽은 모두 유리로 마감하여 움직이고 일하는 교회를 느끼게 하였다. 선교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히스토리 홀도 만들었다. 지금까지 교회를 위하여 일한 많은 선배 신앙인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구석구석 그들의 손길은 정갈하였다. 옥상을 정원으로 꾸민 뒤 ‘하늘 정원’이라 불렀고, 벽을 평면이 아닌 곡면으로 마감하였으며, 마당 한쪽으로 세 개의 기둥을 세워 세 개의 깃발을 올렸다. 태극기와, 남북통일을 바라는 한반도기,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이라 새긴 또 하나의 깃발이 그것이었다.

1997년부터 시작하여 7년이 넘게 기도하고, 꿈꾸고, 설계하여 만들었다. 이제 그들은 6월 14일 입당을 기념하여 기공 때처럼 지역주민들에게 떡을 돌릴 것이며, 청소년들을 초청하여 농구대회를 열고, 옥한흠 목사를 초청하여 신앙집회를 열 것이다. 입당예배는 온 교인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저녁 시간에 드린다. 새로남교회는 새로 건물을 지음으로써 새 출발을 하기로 이미 다짐하였다. 건축은 골(goal)이 아니라 스타팅 포인트(starting point)가 될 것이라고 교인들은 약속하였다.



2 ‘목양일념’(牧羊一念).

많은 목회자들의 방에서 나는 ‘목양일념’이라 적힌 액자와 족자를 보았다. 목양일념은 흔하였고, 흔한 만큼 목양은 일념에 머물지 않았다. 목양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목회자들은 교회를 기업으로 여겼고, 성장으로 일념을 삼았다. ‘양’을 상실한 목회는 ‘양’을 희생시킴으로써 삯군의 일이 되었다. 구호가 된 목양일념은 왜소하였다.

오정호 목사를 오래 만나면서 나는 그로부터 목양을 일념으로 삼은 이의 얼굴을 본 듯하다. 제자훈련을 통하여 평신도를 사역자로 세우는 일은 목양일념을 벗어나면 불가능하다. 옥한흠 목사가 광인(狂人)을 목회자의 자세로 내세운 것은 목양일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미쳐야[狂] 미치는[及] 일이었다. 오정호 목사를 만났을 때 그는 늘 미치기 위하여 미치는 듯하였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지만 목회자는 “털다가 오히려 감동을 주는 존재”라고 그는 자주 말하였다.

언젠가 새로남교회 인터넷 사이트를 훑다가 아버지로서의 오정호 목사에 대하여 쓴 아들의 편지를 보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아버지다움과 목회자다움에 대하여 긴 글을 남겼다. 존경과 사랑의 정이 감동을 주었다. 이번에는 취재를 하면서 사모의 편지 한 통을 발견하였다. 거기서 아내가 바라본 오정호 목사의 목회자다움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너무 오래 참아서 답답하다고 불평했지만 당신의 마음속에는 그 누구도 미움의 자리에 앉히지 않았습니다. 누구와도 원한을 품지 않고, 사진틀의 먼지를 털어버리듯 세월 속에 파고드는 아픔을 그렇게 털어버린 당신을 기억합니다. 너무 더디 움직인다고 불평했지만 결국은 다 품어 안고서 움직이는 당신을 봅니다. 주님의 당신의 그 중심을 보셨겠지요. 펄펄 끓다가 식어버리는 얇은 주전자가 아니라, 언제나 붉게 뜨거운 열기를 녹여내는 용광로인 당신을 보셨겠지요.”

그는 아내가 본 대로 더디 가더라도 품어서 함께 가는, 그런 가슴을 지닌 목회자였다. 그와 더불어 사역하는 이들은 오래 함께하였다. 10년을 넘게 동역하는 목사가 있었고, 교인들은 경쟁하며 ‘목사님을 사랑하는 이유’들을 나열하였다. 그들은 “목사님을 만난 것이야말로 평생에 가장 큰 복”이라고 고백하였다. 오정호 목사는 그런 사랑에 감동하여 더욱 목회자다움, 목양일념, 광인의 길을 버리지 못한다고 하였다.



3 새로남교회는 다섯 가지의 핵심 가치를 강조하였다.

“새-새생명 탄생을 위하여 복음전파에 전력투구한다. 로-로마서의 기록자 바울 같은 인재 양성에 힘써 통일을 대비한다. 남-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의 행복을 위하여 가정사역을 실천한다. 교-교회가 속해 있는 지역사회를 적극적으로 봉사한다. 회-회사생활에 성실하고 창의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임하여 동료들에게 모범이 된다.”

그들이 추구하려는 가치는 오랜 시간을 두고 몸으로 만들어내었다. 그러므로 그 가치들 하나하나에는 그들 나름의 노하우와 역사와 전망을 가졌다. 그런 과거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남교회는 지금 제2의 엑소더스(출애굽)를 선언하였다. 새 성전 건축은 그런 선언을 뒷받침하는 표상인 셈이었다.

박명철 기자
  

  류강미기자 kcnn-news@hanmail.net  (크리스챤 뉴스위크 신문)

로그인 없이 좋아요 추천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