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작성일  
원본링크  
언론사  
기자  
″교회-향기는 풍기되 악취는 없어야″

시민과 호흡 맞추며 ′대전사랑′ 앞장     탈북자 돕기 운동 새롭게 펼쳐

차세대 인물탐구(종교)-오정호 새로남 교회 담임목사

아련한 기억이다.
크리스마스보다 성탄절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던 어린 시절 교회는 구휼(救恤)의 의미였다.
언 손을 호호 불어 녹이면서 찾은 교회는 튀밥과 분유, 사탕을 나눠주는 곳이었다. 가난에 찌든 시절, 단 맛에 굶주렸던 60년대는 교회가 주는 사탕과 분유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인식을 성장하는 동안 늘 ′좋은 일을 하는 곳′으로 오래 오래 간직하게 만들었다.

약간은 깡마른 몸에다 안경을 쓴 동네 교회 목사님은 참으로 선한 분이었다. 늘 교회를 지켰다. 포마드 기름으로 단정하게 빗은 머리와 색은 바랬지만 품위를 주는 양복은 스스로를 경외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다툼이 일반화된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조용한 말로 양쪽의 흥분을 가라앉히던 그 모습은 어른이 되어서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얼마 전 그 목사님이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곤 '보람있게 산 분이 가셨구나'하고 아쉬워했다.

그 후 신문사를 직장으로 하면서 수많은 사건을 접했다. 그 중에는 교회에 관한 것도 있었다. 재정적으로 불투명한 부분으로 인해 법정에 간 사건도 보았다. 하느님의 율법에 따라야 할 교인들이 왜 인간이 만든 법의 심판을 받으려고 하는가하는 부정적인 시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또, 교회를 지키는 목사의 점잖지 못한 행동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할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기억 속에 있던 동네목사님을 끄집어내어 머리를 씻어내곤 했다. 하지만 교회 숫자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구성원들의 사건화가 잦아지면서 어릴 때 기억은 상당히 지워져 버렸다. 대신 양적 성장에 따른 부정적인 시각과 참 종교인에 대한 갈망이 자리를 잡아버렸다.

이는 비단 기독교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불교든 기독교든 어두운 면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종교가 사회의 소금이라는 원론을 대입하면 안타깝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러던 차에 오정호 목사(46)의 얘기를 들었다. 현재 대전시 서구 탄방동 새로남 교회에 담임목사로 있고 과거 개척교회에서 사회의 소금이 되기 위해 애쓴 분이라는 내용도 전달받았다. 더구나 오목사의 고향이 경북 의성이라는 점이 더욱 마음을 동(動)하게 만들었다. 의성은 필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대전사랑 강조하는 목회자

봄이 무르익어 가는 26일.
새로남 교회 담임 목사실에서 만난 오목사와는 초면이지만 그래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나리꽃과 미꾸라지를 잡던 생각이 난다며 고향에 관한 건 늘 그리운 것으로 표현했다.
의성 안계가 태어난 곳이니 낙동강 지류에 펼쳐진 넓은 들판이 특징인 지역이었다. 거기에서 대전으로의 이주는 어떠한 연유가 있었을까. 필자도 늘 듣던 질문이었다. 경상도에서 어떻게 충청도로 왔느냐는 것이다. 오늘은 역으로 물어보았다.

〃대전에 연고는 없습니다. 목사니까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왔을 뿐입니다. 목회자는 소명에 따라 일하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물으면 저는 대전사람이라고 합니다. 대전에 온지 만 8년이 되었습니다. 교회 사람들과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리더십은 사랑에 의해 나옵니다. 대전을 얼마나 깨끗하게 사랑하느냐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대전사람임을 강조하는 생활은 이미 오랜 일이다.
실제로 그는 지역사회 봉사를 교회의 핵심가치로 삼아 언행을 일치시키고 있다.
오목사가 말하는 성직자로서 모토는 곧 새로남 교회의 핵심가치가 되고 있다.
우선 교회만이 가지는 고유한 사명인 '복음전파'가 첫 번째 가치이다. 또, '인재양성'이 있다. 청소년, 대학생, 청년들에게 교리를 통해 다가가 차세대를 대비하고 인재양성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 통일을 대비한다는 것이 그 배경이다. 세 번째는 '가정사역'이다. 사역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일을 부여받는 걸 말한다. 교인들이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데 필요한 훈련의 장을 마련해준다는 말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가정의 화목을 위해 새로남 교회가 앞장서겠다는 뜻이다.

네 번째가 '지역사회봉사'다. 사랑을 통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며 교회가 스스로 담을 치는 행위를 자제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교회가 주민들과 친화력을 가져야 하고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목사가 스스로 말하는 대전사람과 통하는 것으로 '문턱없는 교회'가 최종 목표이다. 마지막으로 '모범'이 있다. 회사 생활에 성실하고 창의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말이다. 성실과 창의, 이들 둘을 가지면 어느 집단에서든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고 이것이 어우러질 때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만들어 진 가치다.

〃교회는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가정을 세우기 위한 프로그램도 그래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사회와 교회가 연장선상에 서는 데는 힘, 즉 믿음의 힘이 필요합니다. 물론 믿음은 성경에서 나오지요. 또, 인격의 힘도 있어야 하지요. 요컨대 윤리적인 탁월성과 재정적인 투명성, 지도자의 깨끗한 언행 등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정신이 바르냐 아니면 구겨졌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교회는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어야〃

오목사는 크리스천 집안에서 태어났다. 4형제 중 둘째인 6살 때 아버지는 신앙생활을 위해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개척교회를 만들어 목사로서 활동한 아버지 오상진 목사(69)는 늘 그의 정신적 지주였다. 큰형은 로스앤젤레스 사랑의 교회 목사로 일하고 있다. '목사로서 돈을 벌게 아니니 지역주민을 섬겨야 한다'는 신조로 살아온 아버지는 빈곤했던 시절 이발로 봉사를 하고 넝마주이에게도 사랑을 쏟았다. 그 때 오목사는 인생에 가치 있는 일이 무엇 일까를 고민하고 결국 그것은 하나님을 알고 절대적인 가치에 헌신을 하는 데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버지의 돈독한 신앙심 영향이었다. 아버지는 현재 부산 기독교 연합회장을 맡고 있으며 지금도 기도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건강한 가정을 위한 가장의 역할을 설교할 때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오상진 목사님'이란 글로 교인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아버님께서는 형제를 교육하실 때 자식은 하나님의 자식이었습니다. 결혼식 때 그것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가 신랑의 손을 잡고 입장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낳아주신 아들을 길러서 이제 독립적인 길을 가도록 놓아준다는 뜻이 실려있었습니다. 경제적인 후원자보다 신앙적인 후원자로서 늘 저의 곁에 계셨습니다. 저의 형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투에 넣어 주셨고 저에게는 생일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는 축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아버지 영향으로 목회자 길 걸어

부산 가야 초등학교, 동의중, 중앙고, 총신대 그리고 대학원과 미 퓰러신학대학원을 나오기까지 평범했지만 생각은 많이 하는 학생으로 동료들에게 각인되었다. 특히 국어와 사회에 관심이 많았으며 제일 싫어하는 과목은 수학이었다. 아마 일정한 틀을 요구하는 자연과학보다 보다 자유분방한 인문 과학 쪽에 더 흥미가 있었다는 걸로 들린다.

〃학교 다닐 때 중요시 한 건 동료들과의 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미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분단별로 성적순에 따라 차별화 되는 것을 보고 못한 사람도 인정을 받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어릴 적에 가졌습니다. 법이나 교육이 약자 편에 서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자의 편에 서면 눈물을 닦아 줄 수 없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폭넓은 마음을 가진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성장과정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건 아버지가 사다준 위인 전기였다.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와 어려웠던 순간을 극복하는 도전정신이 담겨있는 위인전기는 인생의 기초를 닦는 데 더 없이 좋은 교과서였다. 그 덕에 웬만한 위인 이야기는 다 읽었다. 그게 지금 설교를 하는데 도움도 되고 인생을 사는 데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목회활동 수업을 열심히 하던 어느 여름.
아버지 일을 도와주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간 오목사는 이 교회에 강사로 내려온 조성희씨를 만나게 되었다. 1978년의 일이었다.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동질감이 쉽게 접근을 허락했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 더 없이 좋은 촉매제가 되었다. 사랑을 하기 시작했고 그 사랑은 첫사랑이었다. 둘만의 애틋한 정은 5년 후인 1983년 결혼으로 이어졌다.
현재 부인 조성희씨(43)는 대전극동방송 프로듀서 겸 아나운서로 활동 중에 있다.

〃목사 안수 받는 날 하루 전이었어요. 아내가 찾아와서 '회사는 망하면 경제가 어렵게 되지만 목사는 잘못되면 영혼이 망하게 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없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목회자는 삶을 통해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정말 그렇게 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하는 말이었지요. 기쁘기도 하고 각오를 새롭게 다졌지요. 목사의 정신을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그 때 다시 한번 추스렸지요.〃

부인 조성희 여사와의 사이에는 기환군(18·미국 유학중)과 기은군(12·한밭초 5)이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할 경우에만 목사를 시키겠다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다.
한가한 시간이 나면 주로 모자라는 잠을 채우고 산보를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게 여가선용의 방법이다.

삶을 보여 주는 것이 목회자

오목사는 생소한 종교 용어로 설명을 할 때 이해가 어렵다는 표정을 짓자 직접 화이트 보드에다 글을 쓰는 적극성을 보였다. 목사의 '목'(牧)자를 기를 '목'을 쓰는 이유는 공동체를 섬기는 역할을 담당하라는 뜻이라고 설명을 하면서 화이트 보드로 다가갔다. 그는 'Serving by leading, Leading by serving'라는 영문을 썼다. 이 말이 바로 목사 지도력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남을 이해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구나 하는 느낌을 주었다.
대전에는 1994년에 내려왔다. 경부선 열차를 타고 다니면서 대전 역에서 가락국수를 먹은 인연 밖에 없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 된 건 우연치 않는 일이었다. 지도력있고 참신하면서 성도들과 호흡을 할 수 있는 목회자를 구한다는 연락을 받고 교단의 추천을 받아 새로남교회로 생활공간을 옮겨왔다.

〃대전에 연고지가 없다는 게 오히려 더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교회에서도 '예수 사랑, 대전 사랑'을 써 놓았습니다. 예수만 믿을 게 아니라 대전사랑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스티커 5만장을 만들어 안전벨트 매기 운동을 하면서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그의 대전사랑은 남다르다. 대전시민과 호흡을 맞추고 건강한 교회가 되어서 지역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제몫을 다하는 일로 보고 있다. 그럴 때 지역주민들에게 환영받는 교회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 올 것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목사이기 때문에 교회와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걸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지역주민들이 교회로 인해 문화적 혜택을 입고 건강한 가정을 꾸리고 자녀 교육을 잘 할 수 있다면 역할을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사회와 더불어 사는 교회 건립〃

지난 2월 24일 대전시 서구 만년동 1650평 부지 위에 교회 신축 기공식을 하면서 대전시장과 서구청장을 초청했다. 교회만의 행사로 성격을 가졌어도 될법한 기공식에 지역 기관장을 초청한 건 역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결정이었다. 신축 교회는 지역주민을 위한 다목적 룸 등 시민을 우선 배려한 공간 배치로 대전 속에 새로남 교회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최근 들어 관심을 보인 분야는 탈북자이다. 지난 3월 17일 중국에서 25명이 집단 탈출하자 그 날 즉석에서 모금을 했다. 거기서 300만원의 성금이 걷혔다. 돈의 다과보다 그런 발상이 더 가치 있는 일이었다. 또, 남쪽으로 넘어 온 그들을 위해 편지 쓰기 운동을 펼쳤다. 역시
100명이 참여했다. 탈북자들이 정부에서 조사가 끝난 다음 전달할 예정이다.

〃지도자로서 어려운 점은 사실이 아닌 걸 오해받을 때입니다. 오해가 경우에 따라서는 풀리면서 순수하게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오해 자체는 반갑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그런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전임자와의 관계에서 투서와 오해가 있었지요. 하지만 오해는 반드시 지나고 나면 다 풀립니다.〃

아직도 그 흔한 휴대 전화는 가지고 다니지 않고 있다. 전화가 혼자만의 생각을 깨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행선지는 정확히 알려놓고 다닌다. 그래서 오목사가 있는 곳을 알자면 새로남 교회로 문의하면 그의 동선을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

교회와 목회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물어보았다.

〃교회는 우격다짐하는 사람에 의해 품격이 달라져 버립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가치관도 서로 다릅니다. 여기에서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우선 목회자의 자질이 좋아야 품격있는 교회를 만들 수 있지요. 다음으로는 역시 성숙한 자세를 가지는 신자도 필요합니다. 교육자의 자질이 좋고 신자들 또한 믿음이 두터우면 자연 좋은 교회가 되지요. 교회는 향기는 풍기되 악취는 안됩니다.〃

청빈(淸貧)도 중요하지만 청부(淸富)사상도 중요하다는 오 목사는 깨끗하게 돈을 벌어 잘 쓸 것을 강조하면서 모든 사람이 전도와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대담을 끝냈다.
약 2시간에 걸쳐 대담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그는 수저를 들기 전 동행한 우종윤 기자와 필자를 위해 기도를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기도는 잠시동안 진행되었다. 두 사람 개인에 대한 바람과 디트뉴스24, 그리고 올바른 세상을 위해 머리를 숙였다. 짧은 순간 교회를 비롯한 종교계를 보는 거칠었던 눈이 적지 않게 씻어져 내림을 느낄 수 있었다.

(연락처) 042-485-1217

  ″새로운 시대의 종교지도자″

내가 본 오정호 - 경종민 한국과학기술원 전자전산학과 교수


″오목사는 전통에 대한 보수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수요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종교지도자입니다.
종교단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보면 교리에 충실한 곳과 사회현실에 적극 참여하는 곳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목사는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기 않고 항상 균형을 유지합니다.
또, 일을 추진할 때는 비전을 가지고 젊은 세대들을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공교육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청소년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교회 교육, 훈련프로그램을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보통 교회를 신축할 경우 땅값이 싼 곳에 넓은 부지를 사들여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목사는 새로남교회 신축부지로 만년동 한복판을 선택해 대중에게 예수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점도 있지만 강한 추진력으로 이러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김중규기자·iota-@dtnews24.com, 우종윤기자·man-pa@dtnews24.com>

로그인 없이 좋아요 추천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