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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y 이야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로마서 14;10.

나는 한 침례교인을 통해 1989년 12월에 Mercy 를 처음 소개받았다.  이 분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했지만 내 마음속에선  이 분과 주님의 사랑을 나눌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 이 분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함을 느꼈기에 그를 잘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봐서 복음도 전할겸 우리집으로 모시고 가서 차를 대접했다.

9살 때 나이지리아를 떠나 영국 가정에 양녀로 입양되어 온 Mercy.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녀의 삶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멸시천대를 받으면서 한평생을 지내다보니 사람을 만나는 것이 끔찍하고 증오하리 만큼 싫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그녀를 돼지만도 못한 짐승을 쳐다보는 눈초리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오만 가지 것들을 자기에게 던졌다는 것이다.

그럴 법도 한 것이 1935년쯤 영국에는 흑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에는 심부름을 다녀오는 이 분을 교통 순경이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유치장에 집어넣었으니 어린 나이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는가! 그래도 영어를 배웠기에 말이 통하여 양부모에게 연락을 하여 빠져 나왔지만 그 이후로 그녀는 사람들을 무서워하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거의 모든 사람들을 불신하게 되는 무서운 함정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성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거칠어지고 신경질부리는 것은 밥 먹듯이 하면서 누군가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안하고 지내왔던 것이다.

양부모님의 특별한 관심과 부탁 때문에 그래도 고등학교는 무사히 졸업했다. 하지만 학교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학교에 가면 옷을 찢기는가 하면 귀가 찢겨 피를 흘리는 것은 보통이었다고 한다. 매일 한번씩 몽둥이나 깨진 유리조각들 혹은 돌멩이로 실컷 두들겨 맞아 온 몸이 피 상처투성일 때가 많았다. 학교에도 가기 싫어서 문을 잠그고 한구석에서 벌벌 떨면서 양부모가 끌어낼까 봐 무서움과 공포에 휘말려 한동안을 지내야했다. 그러나 양부모의 설득에 두 손을 들고 다시 학교를 옮겨 다녔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같은 상황이 반복될 뿐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너무나 측은하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여 어쩔쭐을 몰랐다.어느새 내 빰이 눈물로 얼룩져 있어서 얼른 눈물을 닦으며 마음속으로 간단하게 기도했다. 그 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그가 일주일에 한번씩 나를 만났으면 하는 것이었다. 나는 쾌히 승낙을 하고 그를 위해 잠시 기도해준 후 그날은 헤어졌다.

그는  나이지리안 무슬림 사람과 결혼을 하여 아들, 딸들을 낳았지만 이혼을 했고 자식들과는 만나지 않고 있었으며 ,이웃들과도 틈만 있으면 말다툼을 하여 사람들이 상종도 안 해주기 때문에 매일 혼자 집에서만 보낸다고 했다. 자기의 쓴 뿌리 때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앙가품을 해야지만 속이 시원하기에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다 . 나는 갑자기 잠언 말씀이 생각났다.
잠언29;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주님, 제가 걸려도 보통 걸린 게 아닌 것 같습니다. 평생 60살 넘도록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쓰라린 경험 속에서 자랐기에 나쁜 열매만 주렁주렁 달린 그에게 제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나요? 주님! 주님의 사랑은 강팍한 사람이라도 촛물처럼 녹이시는 줄 믿습니다.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하오니 지금 그를 찾아가셔서 그의 마음에 좌정해 주세요. 그의 쓰라린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그의 죄를 흰 눈보다 깨끗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를 귀하게 주님을 위해 사용해 주세요. 아멘.'

기도가 끝났지만 여전히 내마음 한구석엔 떨리는 것은 물론 그를 만나는 것 조차 무척 두려웠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붙잡고
'잠언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나는 기도하면서 일주일 후에 다시 Mercy를 만나러 갔다. 그는 누군가가 방문을 하면 늘 험상궂은 인상을 쓰면서 누구인지 확인을 하고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이유인즉 하도 세상이 험해서 그렀다는 것이었다.(나는 속으로 ‘당신이 이 세상을 험하게 만드는데 한목을 차지하시는 줄을 모르시는 군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자 웃으며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무슨 벼슬이나 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자기가 오늘도 이층집 사람하고 한바탕 싸웠다고 했다. 그 이유인즉 그 이층집 사람이 담요를 털어 먼지가 자기 집 유리창에 쌓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한 욕을 해대고 문을 발로 차며 물건들을 던지면서 겁을 주고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면서 주님께 지혜를 구했다.먼저 그의 못된 성품을 끄집어 내기 보다는  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리고 서서히 조심스럽게 이 세상에서 그녀를 사랑하시는 분이 계심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모하메드'와 알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그분의 말이 다 끝나기까지 기다렸다. 기도하면서 말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그 분의 손을 쓰다듬으면서, '예수님이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시기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어요.'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 예수님이 자기를 벌주지 않겠느냐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성경을 펼치면서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같이 읽어보자고 하면서 요한복음을 폈다. 그러면서 주님이 그분을 위해 대신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는 정말이냐고 하면서 지금 당장 주님을 믿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눈을 감고 있었다. 한참 후 눈을 뜨면서 자신의 친부모는 자신을 팔아먹었고, 많은 영국인들은 그녀를 동물 취급하였으며, 남편은 그녀의 재산을 날려먹었고 자식들은 자기를 원망하고 저주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를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다니 이러한 사랑을 왜 자신이 여태껏 몰랐었는가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이 분이 감정에 의해서 이러면 어떻게 하나 하여 기다렸다. 그는 울기를 마치고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를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과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말을 듣고 또 나`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15:3-4 말씀을 나한테 다시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내가 읽기와 설명을 마치자 그는 갑자기 일어나 엉덩이를 흔들면서 내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자기는 '자유의 몸이라면서'. 이젠 죄의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나를 꼭 안아 뽀뽀를 하면서 이 기쁜 소식을 자기와 같은 사람들에게 전하려면 더욱 더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공부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일주일에 두 번씩 시간을 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우니 우리의 수요일 제자 훈련 팀에 와서 어떻게 타종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가를 배우고, 목요일에는 기초 성경공부팀에 참석하라고 하였다.

그 이후 그는 제자훈련팀과 성경공부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성경말씀을 열심히 기록할 뿐만 아니라 삶에 적용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일년 후 세례(침례)를 받고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처소에서 봉사하며, Coffee Shop(교회에서 친교를 목적으로 그 지역사람들을 위하여 운영하는 모임)에서 복음을 전하고 또 Friendly Club에서도 정년 퇴직자들이 모이는 모임에서도 도우며 복음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주님 닮기 원한다면서 먼저는 자기를 학대하며 멸시 천대했던 분들을 용서해주고 자신의 전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강하던 자존심과 오기가 주님의 보혈 때문에 사라져 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음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웃집에 찾아가서 그동안에 있었던 과오와 자기의 못된 행동, 말할 수 없이 상스러웠던 말들도 용서해달라고 빌자, 모든 사람들이 놀라며 믿어지지 않는지 멍하니 자기를 쳐다보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계속하여 용서를 빌면서 자기 집에 가서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마치 동네에 잔치가 벌어진 양 그들이 갑자기 Mercy를 끌어 안아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그의 기준에 판단하기에 앞서서 주님안에서 그들을 사랑하게 되고, 작은 예수가 되라는 성경공부를 기억하면서 실천했더니 자신의 삶에 기적이 일어났음을 고백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마태복음 25;40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선교사 아닌 선교사
제자 훈련팀에서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선교사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선교지란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밭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자마자 바로 우리를 데려가지 않는 이유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시기를 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남녀노소,나이에 상관없이, 빈부귀천, 학벌과도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자들을 당신의 의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 말씀과 기도시간이 끝나자 Mercy는 찬송가에 맞추어서 나이지리아, 즉 흑인들 특유의 춤을 추며 성경공부에 참석한 자들에게 웃음꽃을 자아냈다.주님 한 분의 강권하심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이 변화되어 이렇게 평화를 가져오게 하다니 오직 주님만이 참 삶의 행복을 가져다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다가와서 자기 집 (방 한칸과 부엌 그리고 화장실이 딸린 집)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자기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것이다. 나와 멤버들은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듣기만 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나는 같이 기도해주고 헤어지면서 괜히 불안했다. 68세의 나이에  손자손녀까지 둔 할머니가 자신의 나라로 그것도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선교사로 간다....? 일주일 후 성경공부가 끝난 다음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의 계획을 말렸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말씀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라고 하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가 선교사이며, 주님을 믿으면 복음을 들고 나가라고 했지 않느냐며, 자기는 주님의 부르심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주님께 회개하며 Mercy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분을 위해 기도하며,우리들 그러니까 성경공부팀이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의논하기 시작했고 석달에 걸처  몇 가지를 준비하여 보냈다. 먼저 그는 6개월 동안 자기 나라를 방문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전도지와 많은 책들을 준비하고 매일 같이 서적들을 보며 훈련받고 나서 1992년 말에 나이지리아로 선교사 아닌 선교사로 떠났다.

그가 나이지리아에 도착한 후 보내온 편지에는 자신의 생을 아름답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언어와 풍습이 같은 자기 나라 모슬렘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지만 믿음의 기도와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주님의 나라가 그곳에서도 펼쳐질 것이라고 했다. 무척 외롭지만 주님과 동행하고자 말씀과 기도로써 하루를 시작하며 또 자신을 사랑해주시는 여러 동역자들의 사랑 때문에 매일같이 견디고 있다고 했다. 지혜를 얻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중보기도의 부탁과 함께. 그녀에게서 소식이 올 때마다 나는 무척 안쓰러웠다.

그러나 주님께 맡기며 전 세계에 편지로 기도요청을 했다. 그런데 Mercy는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어 1995년도 말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듬해 3월말에 나를 불쑥 찾아 온 그분은 벅찬 소식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나이지리아 현지에 6월 1일 유치원을 개업하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그전에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에 대한 결심이었던 것이다.

모슬렘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 곁에 계시며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전하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Oxfam과 중고가게들을 뒤지면서 성경에 관련된 어린이들의 책을 보이는 대로 샀다. 또 장난감들도 필요한 대로 모두 싼값에 쉽게 구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금식기도를 하면서 유치원에 대한 모든 일정을 주님께 아뢰었다.. 비록 건물이 없이 텐트를 써야 했지만 복음을 전하는데는 지장이 없기에 우리의 기쁨의 그 무엇과도 비교가 안되었다. 그는 특유의 아프리카 춤을 추면서 주님께 찬양을 드렸다. 그가 소속되어 있는 목요성경공부팀 사람들이 얼마 안되지만 정성껏 헌금하여 79 파운드를 (그당시 120,000원 정도) 전달해 주었다. 모두가 기도와 정성어린 손길로 동역하고자 힘을 써 주었다. 다시 힘을 모아 기도한 후에 현지에 있는 침례교회와 손을 잡고 유치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또한 동시에 복음을 나누느라 바빴다.이 유치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자원봉사자들로 모두 다 그 교회 출신들이다.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구입해서 보내고 기도로써 그 사역에 동참했다. Mercy는 15년이 넘도록 기쁨으로 나이지리아 현지 유치원의 어린이들과 그 어린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엄마들을 상대로 복음을 열심히 전했다. 15년이 넘도록 그가 뿌린 씨았들! 지금 그는 거기에 없지만, 성령님의 손길에 의해  매순간마다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짐으로,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 끊임없는 영광이 드려지고,

물론 Mercy에게 많은 위로와 격려 가  될뿐 아니라,그를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신 많은 동역자 여러분들에게도 영광의상급이 안겨지기를 바란다. Mercy(87세) 는 2010년 봄에 몸이 쇠약해지자 나이지리아에서 돌아와  현재 아시안촌 Tooting에서 간혹 복음을 전하며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