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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조선에 한글 성경 번역이 없었다면
우리가 오늘날 한국교회를 이룰 수 있었을까요?
번역 선교 사역에 열심히 뛰고 계시는 정제순 선교사님의 사역과 가정을 축복합니다.

선교위원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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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선교 소식을 드립니다...”

예준이 이야기로 새해 첫 인사를 드립니다. 둘째 예준이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기억하시는지요? 파푸아뉴기니에서 사역할 때 늘 예람이 혼자 놀곤 했습니다. 가족들이 많은 다른 가족들이 부러워했던지 그림 그릴 때도 대가족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동생 만들어 달라고 하더니 드디어 기도를 시작했다고 1991 년 1 월 21 일 기도편지로 보냈었지요. 하나님이 예람이의 기도에 응답이나 하듯 정확하게 1 년 뒤인 1992 년 1 월 21 일에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만 5 년 3 개월 만입니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예수님이 준비한’의 “예준”입니다.
예준이는 어려서부터 얌전하고, 말수도 적고, 책읽기를 좋아한 순종적인 아이였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한 순종적인 아이였습니다. 어렸을 때 독한 말라리아에 걸려 무려 17시간이나 열이 40~42도 사이를 오를락 거리고 두 번이나 혼수상태를 겪기도 했지요. 하도 힘든 시간이 지속되자 “하나님 데려가시려면 가시라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의사들이 말하길 말라리아가 나아도 뇌막염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측도 있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공부에 관해선 자기 스스로 잘하여 단 한 번도 걱정을 끼치지 않았던 아이였습니다. 놀아도 성적은 잘 나와 자신만만도 했었지요. 초등 때부터 상도 많이 타고, 고 3 때는 리더십으로 두각을 나타내 우등학생 대표까지 하였지요. 본인은 미국 대학에 가려는 것을 GBT 선교부 정책도 있지만, 우리들 스스로도 한국 대학에 다니도록 설득해서 한동대에 진학하기로 하였고, 유혹을 끊기 위해 한동대 외에는 아무 대학도 원서를 넣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장학생이 되리라고 확신했었지요.

원서를 낼 때 예람이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했지요. “아빠, 예준이는 한 번 떨어져 봐야 겸손해 진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지요? 아 글쎄 그 아이가 한동대에 보기 좋게 낙방하였답니다. 면접에 나온 한글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고, 수학도 2 문제 밖에 못 풀었다고 하여 (문과가 특기인 예준이에게 수학의 쓴 맛도 본 것이지요). 한국에 오자마자 여름방학 때는 한동대 학생들에게 5 주간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던 그 아이가, 처음에는 대기자 명단에 있다가 최종발표에 탈락했습니다. 예준이도 처음 당하는(?) 쓴 경험이라 적지 않게 놀라고 실망을 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교만함을 다시금 생각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는지 낙방 후 스스로 10 일 동안의 단식기도원에 다녀왔답니다. (지극히 한국 문화지요?). 지금 어떻게 되었냐고요? 할 수 없이 미국에 있는 기독교 대학인 휘튼과 칼빈에 원서를 내자마자 칼빈대에서 교수 장학생으로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엄청난 학비 때문에 다른 대학보다 기독교 대학중 가고 싶은 휘튼보다는 학비가 조금 더 저렴하고, 선교사 자녀들이 많이 다니며, 장학금을 많이 주는 칼빈대 쪽으로 가기로 했답니다. 그래도 학비가 비싼지라 이런 저런 장학금을 얻으려고 미국 기독교 재단에 서류를 낸 상태입니다.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기대하였었는데, 갑자기 예준이 삶의 방향이 바뀌고, 부모와 함께 같은 캠퍼스인 안전지대를 떠나 모험으로 살아야 하는 인생을 스스로 해야 하기에 일이 복잡해 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 모두가 평강을 되찾고, 하나님의 계획을 곰곰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감사하고, 다음 단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준이도 자기보다 못한 친구들도 들어가 처음에는 창피하고 아빠랑 연결되어 더더욱 자존심 상했지만, 이번 일로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또 다른 계획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공부 잘한다는 것은 확실히 상대적이고, 놀아도 점수가 잘 나오니 더 노력 안한 쓴 맛을 톡톡히 본 것이지요.

예준이는 말합니다. “1 학년 마치고 한국 와서 반드시 군대 갈 것입니다. 그래야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희들은 이런 대화도 했습니다. “군대 다녀와서 될 수 있으면 한국에 있는 대학으로 편입하는 것이 좋겠다. 아무리 장학금 받아도 미국이 학비가 비싸고 상황도 그렇지 않느냐?” 주님의 계획에 이 아이를 전적으로 다시 맡기면서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증언할 수 있는 멋진 신앙인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아릴락 일정:
(1) 1 월 5 일 : 석사 2 년 학생들 언어학적 데이터 수집 및 분석 과정 시작.
(2) 1 월 6 일 : 아릴락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3) 1 월 7 일: 1 학년 학생들 문화인류학 강의시작
(1 월 7 일). (4) 2 월 23-25 일: 아릴락 신년 영성수련회.

■ 말씀 사역과 번역 자문:
(1) 1 월 19 일 (GBT 캠프);
(2) 2 월 20-3 월 20 일 (선교 특강 5 회);
(3) 2 월 22 일 (합신 총동문회);
(4) 인도 (나식) 성경번역 자문 (3 월 21 일-4 월 20 일)

■ 회의 및 모임:
(1) 1 월 11-14 일 (아시아 SIL-WBT 전략회의, 마닐라)
(2) 1 월 20 일 (아릴락 정기이사회);
(3) 아릴락 정기 중보기도 모임 (매주 둘째).
위에 열거한 구체적인 기도 제목 외에도 금년 한 해 동안 다음과 같이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 아릴락과 동역할 더 많은 교회와 동역자들을 얻길 기도합니다.
■ 더 많은 제 삼 세계 지도자들이 아릴락에서 훈련받길 기도합니다.
■ 더 탁월한 학적, 영적 훈련기관이 되길 기도합니다.

교수 사역: 지난 10 월-12 월까지는 한동대 학부와 아릴락 대학원 강의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몰랐습니다. 왜냐면 대학원 강의 때문에 행정 일과 강의가 년 중 최고로 많이 겹치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럴수록 “하나님 이들을 더 일으켜 주시길 원합니다. 더 헌신된 사역자들로 키워주시길 원합니다. 성경번역과 성경 사용을 통해 세계 구석구석에 튼튼한 교회와 제자들을 더욱 성장시켜 주옵소서.”
아릴락 수료식: 12 월 17 일은 일 년을 장식하는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아릴락 졸업생들이 제 4 기 수료식을 가졌습니다. 금년에 수료한 학생들은 석사 12 명, 1 년 과정 3 명, 모듈 6 명 총 21 명입니다. 이들의 힘찬 발걸음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시리라”는 말씀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선교지에서 이방인의 객으로 살아가려고 출발하는 이들의 발걸음에 치열한 영적 전쟁이 기다릴지라도 이들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길 원합니다.

한 해 마무리와 준비: 12 월 25 일에는 종무식, 27-28 일에는 시무식을 가졌습니다. 또 떠나야 하는 스탭진들에게는 그들의 섬김과 봉사에 감사드리고, 그들과 함께한 세월들의 소중함도 새겨보았습니다. 새로 오는 스탭진들에게는 아릴락 스탭진들 모두가 일일이 축복기도를 하면서 2011 년도 주님이 행하실 새 일을 다시 꿈꾸어 보았습니다.

향후 계획: 1 월에서 3 월까지 다음과 같은 크고 작은 모임과 행사들이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모든 일정과 사역을 위해 봉사하시는 아릴락 교수진, 행정진, 학생들, 중보기도팀들 모두가 크신 주의 지혜와 힘을 위로부터 공급받길 원합니다.
저희와 삶을 나누게 됨을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음 소식은 4 월 인도 번역 자문을 다녀와서 다시 드리지요.

2011 년 1 월 10 일 정제순/홍정옥 예람, 예준, 예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