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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권성수 목사(대구동신교회 담임)


아내의 사랑, 가정의 행복
내 아내는 나의 마음에 큰 안정을 주었다. 나는 전도사 시절에 십이지장 궤양과 가난, 그리고 사역의 고민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궤양 때문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가난해서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교육전도사를 맡아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만큼 주일학교를 성장시키지 못했다. 주일학교 예배 시간이 되면 설교하기 전에 엎드려 기도하면서도, 여전히 “오늘은 몇 명이나 올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사역의 욕심이 커서 그랬을까? 담임목사님이나 교인들은 “권 전도사님, 정말 잘 하신다.”라고 평가해 주셨지만, 나는 항상 ‘왜 기도하고 노력한 만큼 주일학교가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불만과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좋게 해석하면 ‘거룩한 불만’(holy discontent)이지만, 나쁘게 해석하면 욕심이 차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러나 결혼 후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안정되어갔다. 눈물로 기도해서 하나님의 선물로 얻은 아내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편했다. 아내가 어떤 경우에도 짜증을 부리지 않고 평온했기 때문에 그 평온과 안정이 내게 전달되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말랐던 외모가 한스러웠던 차에,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밥맛이 좋아져서 패인 얼굴이 살로 차올랐고 체중도 상당히 늘어났다. 결혼 전 목욕탕에 갈 때마다 체중이 54.5㎏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저울에 올라가기 싫었지만, 결혼한 후에는 60㎏ 정도 되었고 점점 체중이 늘어서 목표치였던 65㎏보다 조금 더 나가 이제는 다이어트를 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결혼 후 7년이 지나도록 자녀가 없을 때 나와 아내는 사막의 모래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것을 느꼈다. 보통 부부라면 다 갖는 자녀가 우리 부부는 왜 그리도 갖기가 어려웠는지. 병원도 찾아다니고 약도 구해 먹었지만, 아무 효험이 없었다. 아내는 매월 기대가 산산조각으로 깨어지는 고통을 되씹어야 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으로 두 딸을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는 기적적으로 얻은 딸들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교육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내는 나 대신 자녀교육을 잘 해주었고, 이것이 안정된 목회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대로 잘 자란 딸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과 아내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가정의 행복 면에서는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흡족한 마음이 있다.
내가 총신 신대원 교수로 인기를 끌다가(?) 대구에 목회하러 갈 때 “가려면 혼자 가세요!”라고 하면서 심각하게 반대했던 아내가 국제제자훈련원을 다녀온 후에는 드디어 나와 함께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의 동역자가 되었다. 아내는 사랑방 순장도 하고, 전도폭발 훈련자도 했는데, 교인이 불신 가족이나 친구를 데려오면 전도폭발훈련에서 익힌 복음으로 80% 이상 그 자리에서 결신 시킨다. 아내는 나 대신 대면(對面) 상담이나 전화 상담도 한다. 결혼생활 내내 아내와 생활에 대한 모든 면과 목회와 신학, 사회 전반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해서 그런지, 아내가 상담할 때 가끔 옆에서 들어보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내가 다 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흐뭇하다. ‘주님을 섬기는 동역의 기쁨이 이런 것인가!’ 하고 실감한다.
    
사모인 아내를 향한 감사
아내는 비교적 여유로운 집안에서 고생을 모르고 자랐다. 학교 공부도 곧잘 했고, 부모님의 사랑도 듬뿍 받았으며 올곧은 가정교육도 받았다. 장인어른이 양반 가문 출신으로 딸 다섯을 낳으셨고 아내는 그 중 맏딸이었다. 아들이 없어 대를 잇지 못한다고 술을 드셨던 아버지의 탄식과 딸만 다섯을 낳아 한이 맺히신 어머니의 한숨을 들으면서 자란 아내였지만, 이상하게 구김살 없이 자랐다. 늘 웃는 아내의 모습은 상처와 갈등을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잘 처리한 모습으로 보인다. 신앙이 남달리 좋았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가슴에 맺힌 한이 없는지 지금까지 궁금하다.
결혼 초기에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일편단심으로 무리한 짓을 좀 했었다. 신혼방도 남의 돈을 빌려서 얻고 전도사 봉급 9만 원을 받는 처지에 교회 건축헌금 40만 원을 약속해서 아내와 대판 싸운 적도 있었다. 교회 장학금을 지원받아 해외 유학을 가야 하는 형편에 갑자기 두 동생의 대학 입학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아내가 결혼 잘못했다고 집을 나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전도사와 결혼한다고 심하게 반대하셨던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몇 시간 만에 다시 돌아왔고 지금까지 나와 함께 잘살고 있다. 나는 아내의 ‘오뚝이’ 같은 모습에 놀라면서 감사한다.
내가 가장 감사하는 것은 아내가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모 때문에 목회 못하는 경우를 더러 본 나로서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사모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많은 곳이 교회가 아닌가. ‘사모님 옷차림이 왜 저래?’ ‘목사 사모라고 뻐기는 거야?’ ‘자기가 뭔데 우리 일에 간섭해?’ ‘사모가 기도도 안 하고…’ 아내가 이런 얘기를 듣지 않고 산다는 것이 너무 좋다. 교인들은 내 아내가 무던하고 사치하지 않고 교회 일에 간섭하지 않으면서 조용하게 자신의 관심과 재능에 따라 봉사하는 사람으로 알아준다.

지혜로운 아내의 역할
목회를 결정하고 대구로 내려올 때, 아내는 ‘딸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걱정이 태산 같았다. 자녀교육을 위해서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경제적인 여건이 좋은 사람들은 자녀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이런 추세에 역류해서 서울에서 대구로 딸들을 데리고 내려오는 나를 볼 때 아내는 정말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아내의 우려가 사실로 드러났을 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딸이 대구에 있는 중학교에 갔다 온 첫날 “국어 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절반은 못 알아들었어요.”라고 했다. 좀 과장된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선생님의 사투리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니 아빠로서 할 말을 잃었었다. 아내와 딸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아내는 더러 아픔과 갈등을 털어놓기는 했지만, 이왕 하는 목회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굳게 했는지 자녀교육 문제로 괴로우면서도 바가지는 긁지 않았다. 그래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목회에 지장을 주지 말아야지!’라고 생각을 해도 마음은 머리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는데, 아내는 머리로 마음을 통제했던 것 같다.
10여 년 목회하는 동안 두세 차례 위기가 찾아왔다. “이젠 그만 둬야겠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절로 나왔다. 그러나 아내는 전략적으로 내 대신 흥분함으로써, 목회를 포기하자는 아내를 내가 말리는 방식으로 내 자리를 찾아가도록 도와주었다. 만일 목회의 고비를 맞을 때마다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목회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사모의 안정과 평온함
사모가 개인적으로 안정과 평온을 누리는 것이 중요한 만큼, 가정적으로도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 남편이 마음껏 목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튼튼한 베이스가 바로 가정의 안정과 평온이다. 남편에 대한 교인들의 반응도 잘 걸러서 남편에게 유익하도록 들려주는 지혜를 곁들이면 좋을 것이다. 남편의 약점을 지적해야 할 때도 부드럽게 지적하면서 항상 남편의 기(氣)를 세워주어야 한다. 밖에서 아무리 심한 경우를 당했다고 해도 아내가 “여보, 누가 뭐래도 난 당신이 최고야!”라고 한마디만 해 주면, 남편은 금방 살아난다.
사모는 무엇보다 마음과 표정에 안정과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표정을 보고 살게 되어 있다. 마음에 불평과 불만이 있으면 그것이 표정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어렵지 않은 목회는 없다. 모세의 목회, 바울의 목회, 심지어 예수님의 목회에도 어려움은 있었다. 다만 ‘나를 사랑하사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는 실존적 신앙 체험을 통해서 가정의 평안을 유지하도록 힘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글/ 권성수 목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신학박사(신약:성경해석학) 취득 후,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와 독일 튜빙켄 대학교,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연구하였다. 총신대학교 재단이사, CTS 대구본부장, 대구성시화 본부 대표본부장, OM 대구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대구 동신교회 담임목사이며, 총신대학교 목회신학 전문대학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국제제자훈련원 대구‧경북지역 칼넷(CAL-NET)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