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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모가 행복한 목회를 만듭니다

- 주서택 목사



내면의 행복은 건강한 자존감에서 나온다
가을이 되니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로 가득하다. 은행나무 잎사귀 사이로 쏟아질 듯 달린 은행 열매들이 얼마나 탐스러운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경탄을 자아낸다. 가지에 가득 달린 은행 열매는 나무가 1년 동안 열심히 살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기특한 마음으로 나무를 만져본다.
목회현장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 열매가 목회 현장의 열매라면 은행나무는 목회자요, 사모는 나무가 딛고 있는 땅과 같을 것이다. 대지를 어머니의 품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모의 행복은 땅이 가진 힘과 같다. 땅도 힘이 넘칠 때가 있는가 하면 기력이 부칠 수도 있다. 그래서 농부들은 땅에 거름도 주고 때로는 농사를 짓지 않고 땅을 쉬게도 한다.

내면의 행복이란 속사람이 가지는 힘이다. 겉사람이 가진 육체의 힘이 있듯이 속사람도 힘이 있다. 속사람의 힘이 강할수록 자아에 대한 바른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떤 가치를 가진 존재인가?’에 대한 자아개념은 안정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건강한 자존감을 갖지 못할 때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판단에 자신을 맡기므로 마음의 안정감이 없이 파도에 떠다니는 부유물처럼 흔들리게 된다. 그것은 속사람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참으로 말이 많은 곳이다. 그리고 그 많은 말들의 중심에 목회자와 사모가 있다. 백 명이면 백 명, 천 명이면 천 명이 제각기 다른 의견과 말이 쏟아져 나오는데 속사람의 힘이 약할수록 사람들의 말과 판단의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사모의 행복은 은사보다 성품이다
어떤 사모님이 생각난다. 그분은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는데 그 용모에 반한 신학생과 결혼을 했다. 남편은 설교도 잘하고 성도들에게 인기도 많았는데 어느 날 도시의 큰 교회 담임목회자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교회로 부임한 뒤 사모는 괴로워졌다. 교회 성도들 중에 사모보다 똑똑하고 학력이 높은 성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학력이 짧고 성도들보다 부족하다는 열등감이 점점 커지면서 남편까지도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자기보다 잘나 보이는 여자 성도들과 의논하고 그들을 칭찬할 때마다 사모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남편이 신학생이던 시절, 헌신적으로 직장생활하며 뒷바라지했던 지난 세월이 너무 억울하고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괴로움에 시달리던 사모는 하나님께 능력을 달라고 매달렸고 은사를 받게 되었다. 사모의 은사 사역은 교회 안에 큰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성도들 사이에 분란이 많아지고 목회자의 부부관계도 갈등이 심해져 갔다. 남편은 사모의 은사를 인정하긴 했지만 은사만 있을 뿐 무식하다는 생각이 있었고, 사모는 남편이 설교는 잘하지만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부부의 결과는 별로 좋지 못했다.

사모가 행복하게 목회사역을 감당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분명 은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내면의 행복은 은사보다는 바른 정체성이나 성품과 더 많은 관련이 있다. 은사는 성품의 크기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은사’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으나 그 선물을 담은 마음의 크기가 어떤가에 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오히려 그 은사로 인해 힘들어질 수도 있다.
목회자들은 남편으로서 자신의 아내가 어떠하기를 바랄까? 필자가 주관하는 <목회자 영성수련>을 진행하면서 목사님들과 가정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심도 있게 나눠보았다. 그런데 아내에게 은사가 부족하고 신령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목회자는 없었다. 대부분 목회자들 역시 아내에게 뛰어난 능력을 기대하기보다 성격과 인간관계, 스타일 등으로 고민하고 어려워하고 있었으며 일반적으로 평범한 남편들이 아내에게 바라는 그 바람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속사람의 힘이 강할수록 사모의 행복은 더 높아져간다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직관이 뛰어나 매우 지혜롭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겸손하여 남자보다 더 깊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도 있으며, 타인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능력이 더 크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이 잘못 사용될 수도 있다. 남편의 설교를 국어 선생처럼 감시하는 사모, 사사건건 어린애처럼 남편을 챙기고 할 일을 가르치는 사모, 남편의 인간관계 능력을 불신한 나머지 자기가 목회현장에 대신 나서고 성도들을 자기 밑에 굴복시키려는 태도는 남편이라는 나무가 목회현장에서 튼실한 열매를 맺는데 결코 도움이 되는 태도들이 아니다. 이런 태도는 사모의 내면이 불안하고 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들이다.
내면의 힘이 약할수록 시기와 질투가 강하게 드러나고 소유욕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이 어느 곳으로 가는지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지나치게 반응한다. 교회 안에서 자기보다 더 인기가 많고 인정받는 성도가 생기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에게 상담 받는 것보다 다른 권사나 집사에게 상담을 받으려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사모의 이런 마음의 갈등을 성도들은 알고 있다.
목회자의 아내가 목회현장에서 남편을 돕는 진정한 능력을 가지려면 은사보다 행복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은사가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모 스스로 내면의 건강한 자존감과 안정감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존재가치와 이유를 사람에게서 찾지 않고 하나님에게 뿌리를 두는 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겉사람의 근력이 꾸준히 길러지듯이 속사람의 힘 또한 꾸준히 길러져야 한다.

자족하는 맑은 가난함을 가진 사모
속사람의 힘을 기르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자족하는 맑은 가난’이라고 말하고 싶다. 행복한 아내, 진정으로 지혜로운 아내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조금 엉뚱하지만 어릴 때 읽은 이야기 한 편, ‘사과 한 자루’가 생각난다.
어떤 농부가 집에서 키우던 송아지를 팔러 갔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도중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 송아지를 염소와 바꾸고, 계속해서 다른 것과 바꾸다가 결국 사과 한 자루와 바꾸게 되었다. 이런 황당한 거래를 자랑삼아 주막에서 얘기하자 그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이 집에 가면 부인에게 야단맞을 거라고 했지만 농부는 사과잼을 만들기 좋아하는 우리 아내가 매우 좋아할 거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했고, 결국 그들은 내기를 하게 되었다. 집에 왔을 때 남편은 비싼 송아지 대신 사과 한 자루를 내려놓으며 어떤 과정으로 이 사과와 바꾸게 되었는지 말해주었고, 그 말을 듣던 아내는 놀랍게도 남편을 칭찬하며 좋아했다. 결국 농부가 내기에 이긴 것이다.

물질적인 이해관계로 따지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농부는 빵점짜리 남편이다. 아내 또한 남편을 돕는데 빵점이다. 하지만 다른 가치관으로 본다면 어떨까? 물질적 가치관이 아닌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그것을 존중하고 용납해주는 것을 중요하게 본다면 이 아내야 말로 가장 지혜로운 아내이며 스스로 행복한 아내다. 상대방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행복하게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혜롭게 남편을 도우려고 했지만 남편이 그로 인해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바른 도움이 아니다. 일반적인 세상의 아내들이 그렇듯 사모들도 자기 남편을 자신의 이상에 맞는 목회자, 하나님의 종으로 개조하려고 열심이다. 하지만 상대를 개조시키려는 순간, 상대는 개조되지 않으려고 방어한다. 인간은 인간이 개조시킬 수 없다. 부부는 서로를 개조하라고 주님이 맡기신 것이 아니라 서로 도우라고 만나게 하셨다. 서로를 용납하고 격려해주고 사랑해주라고 만나게 하셨다.
개조시키려는 마음은 근본 동기로 들어가 보면 분명 이기심과 불안과 염려가 깔려 있다. 내가 행복하지 못할수록 스스로를 마음에 안 들어 하고 나를 고치고 싶어 하듯이 상대도 고치고 싶은 부분만 보인다. 내면의 힘이 큰 자일수록 상대를 있는 그대로 용납하지 않는가! 주님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용납하셨다. 우리의 치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그대로 용납하셨다. 그것이 주님이 가진 힘인 것이다.

행복한 아내, 행복한 사모, 그리고 행복한 남편
행복한 사모는 남편을 행복하게 해준다. 행복한 사모가 되려면 먼저 행복한 아내가 되어야 한다. 행복한 아내가 되려면 사과 한 자루를 가져온 남편을 칭찬해주고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쳐다봐주는 농부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
목회자 부부는 함께 사역을 한다. 부목사 사모라 할지라도 알게 모르게 사모는 남편과 함께 사역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러기에 다른 직업을 가진 부부보다 남편의 일처리 모습을 비교적 자세히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사모는 남편이 송아지와 썩은 사과를 서로 바꾸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무수히 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답답한 마음으로 많은 사모들이 남편의 선생이 되어 뒤에 앉아 설교를 평가, 분석하고 국어 선생님처럼 일일이 맞춤법 틀린 곳을 고쳐주려 한다. 하지만 어떤 남편도 사모의 그런 태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또 그렇게 한다고 해도 백점짜리 설교 원고를 만들어 내지도 않는다. 그러면 사모는 더 지적하고 간섭하게 되어 결국 두 사람 모두 행복해질 수 없다.
사역현장에서 많은 사모들이 남편으로 인해 힘들어하지만 목회자 역시 사모로 인해 힘들어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어떤 목사님은 사모가 집에서 TV도 맘대로 보지 못하게 분위기를 만든다고 하소연하는가 하면, 어떤 사모는 목사였던 아버지의 스타일에 맞춰서 자기를 바꾸려고 한다며 힘들어하는 목회자도 있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람은 사람이 바꿀 수 없다. 특히 아내와 남편은 서로를 바꿀 수 없다. 상대를 자기 기호에 맞게 바꾸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겠지만 그 소원은 내려놓아야 한다. 훌륭한 아내의 역할은 사과 한 자루를 가져온 남편을 잘했다고 반겨주는 것이 아닐까? 목회하는 남편을 잘했다고 반겨주는 곳은 이 세상에서 오직 한군데 사모의 품이어야 한다. 마지막까지 남편 편이 되어 남편을 행복하게 해줄 때 사모 또한 행복해진다. 속사람이 행복하면 모든 것이 기쁨이 되고 감사를 누릴 수 있다. 속사람을 건강하게 회복하고, 속사람이 힘을 가지면 목사인 남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중천에 떠있는 보름달처럼 사모의 행복은 남편과 목회 현장에 두루 비춰주는 아름다운 빛이 될 것이다.

글/ 주서택 목사
현재 청주 주님의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내적치유사역 연구원장으로 김선화 사모와 함께 내적치유를 통해 많은 영혼을 살리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내 마음속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 「마음에 숨은 속사람의 치유」 외 다수의 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