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태초에 물음이 있었습니다.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물음입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동산 가운데 숨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찾아가 물으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들판을 배회할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습니다. “가인아,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갈이 사라에게 쫓겨 광야를 방황할 때 멀리서도 우리의 일어서고 앉는 것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찾아가셔서 물으셨습니다.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왜 울고 있느냐?”
  이처럼 구약성경에는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질문들이 생각보다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이 물음이 우리처럼 무지의 물음이거나 협조를 요청하는 물음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범죄를 모르셔서 물으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벨을 찾을 수 없어서 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시는 물음이었겠습니까? 아니면 하갈이 멀쩡한 집을 놓아두고 광야를 헤매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 되어 던지신 물음이겠습니까? 결코 아닐 것입니다.

 

  집 안에 들어오면 저는 목사 이전에 한 여인의 남편이며 세 아이의 아빠요 손주들의 할아버지 자리에 앉게 됩니다. 집에서는 밖에서 볼 수 없는 좀 더 진솔한 제 모습이 드러납니다. 어쩌면 교인들이 알게 되면 시험에 들 수 있는 모습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생을 살아온 아내도, 자식들도 이해할 수 없는 제 모습, 나만이 아는 나, 아니 하나님만이 아시는 내가 있습니다. 이것을 좀 고상한 말로 실존이라고 합니다.
  저는 삼수를 하던 21살 때 처음 교회를 나갔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일반 대학을 포기하고 총신대에 입학했습니다. 군 복무와 신대원까지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고 나니 31살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바로 평생 제가 섬겼던 맑은샘광천교회 담임목사가 된 것입니다. 주일학교 문 앞에도 가 본 적이 없고 부목사 생활도 거의 해 보지 않은 제가 당시 서울에서 장년 출석만 800명이 넘는 교회에 청빙을 받고 담임목사가 된 것입니다. 동기들이 목회를 배우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고 있을 때 저는 결코 작지 않은 교회 담임이 된 것입니다. 저는 그때 당시 제 아버지뻘 되는 열두 분의 장로님들이 왜 어린 저에게 찾아오셔서 담임이 되어 달라고 부탁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 부탁에 무슨 배짱(?)으로 내가 응했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제 목회 생활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교회가 부흥이 된다는 것입니다. 경험이 전무한 제가 목회를 하는데 부흥이 안 되어야 맞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경험해 본 분들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목사님, 목사님, 우리 목사님~”, “은혜받았습니다, 목사님….”그렇게 10년쯤 지나니까 제가 뭐가 된 줄 착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새벽기도회 30분 전에 강단 밑에 무릎을 꿇고 전할 말씀을 묵상하다가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날 새벽 본문이 요한복음 5장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병자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베데스다는 우리가 잘 알듯이 ‘은혜의 집/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명절날 예수께서 양 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 은혜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에 비친 은혜의 집은 아이러니하게도 은혜와 상관이 없는 사람들, 행각 다섯에 죽지 못해 앉아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좁은 베데스다 못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무려 38년 동안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좁은 곳에 38년 동안 앉아 있는 사람, 이 사람은 누굴까요? 은혜로운 집 베데스다에서 가장 은혜로운 장소인 못 가에서 38년 동안 앉아 있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이 사람은 베데스다의 전설 같은 인물입니다.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내려가는 사람은 낫는다 하더라는 전설까지 꿰뚫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의 병이 심히 오래된 것을 아시고 찾아가셔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여러분은 이 질문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시나요?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시다니요. 아니 이 사람이 낫기가 싫은데 무려 38년을, 인생 전체를 허비하면서까지 이곳에서 진을 치고 앉아 있었을까요? “네가 어디가 그렇게 아파서 이토록 오랫동안 앉아 있느냐?”라거나, 아니면 “내가 너를 낫게 해 주면 앞으로 어떻게 살겠느냐?” 뭐 이 정도는 물으셔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낫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기다려 온 사람에게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상식 이하의 질문이 아닌가요?
  저는 그날 새벽 이 질문 앞에서 나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주님의 무서운 눈빛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눈에 비친 이 38년 된 병자는 낫기를 원한다는 그의 고백과 달리 결코 낫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처음에는 그도 낫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겠지요. 아직 젊은데 얼마나 낫고 싶었겠습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베데스다의 터줏대감이 된 것입니다. 수많은 환자의 가족들이 병문안을 올 때마다 이 터줏대감에게 음식도 나누어 주고 자신들의 병자를 잘 부탁한다고 온갖 좋은 것을 나누어 줍니다. 그러다 보니 세월과 함께 안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지도 처음 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 번 되면 할 만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습니까?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이 사람의 식구들도 이제는 지쳤을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지금 나아 봐야 별반 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간절함의 흉내를 내면서 앉아 있는 게 훨씬 좋은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 주님이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저는 그날 새벽 38년 된 병자가 곧 나라는 사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베데스다 은혜의 집에서 가장 은혜로운 강단에서 살고 있는 제 모습 말입니다. 순박한 교인들의 모습에는 늘 은혜가 충만하고 신령하기까지 보이지만 타성에 젖어 쇼하는 제 모습을 본 것입니다. 마치 주께서 “너는 누구냐? 진짜 제대로 목회하기를 원하느냐?” 묻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날 새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강단 밑에서 얼마나 울었는지요. 때가 묻은 제 모습이 너무나 혐오스러워 참 많이 탄식을 했었습니다.

 

  성공한 목회가 뭘까요? 큰 교회 짓고 많은 성도가 모이는 것이 성공한 목회일까요?
  은퇴하고서야 철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실존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성공한 목회입니다. 요즘 바울 서신들을 묵상하면서 바울이 위대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자임을 잊지 않으려고 편지 서두에 인치듯이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묻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글/이문희 원로목사
총신대 종교교육과 졸업(B.A). 총신대 신대원 졸업(M.div). 리폼드 신학교 목회학 박사(D.Min). 총신대학교 신학과 교수와 라이프호프 기독교 자살 예방센터의 1대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맑은샘광천교회 원로목사이며, 저서로는 《패자부활》,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인생 쉼표 하나》가 있다.

번호 제목 날짜
115 [특집] 영성 훈련의 출발점은 건강 관리입니다 - 최재호 목사(대구성일교회 담임/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file 2023.06.07
» [원로목회서신] 나는 누구인가? - 이문희 목사(맑은샘광천교회 원로) 2023.04.12
113 [특집] 철저한 회개에서 시작되는 진정한 회복 - 김영민 목사 (길벗교회 담임) file 2022.10.12
112 [교회사] 존 낙스와 스코틀랜드에서의 개혁 (이상규 교수 - 백석대학교 석좌교수) file 2022.07.20
111 [특집] 성도들의 방어기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방법 - 황동한 목사 (함께하는교회) file 2022.05.11
110 [독후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옳습니다 - 고은희 사모 (종암제일교회) file 2021.10.28
109 [특집]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 용서이다 - 윤종현 목사 (국제생명나무사역 대표) file 2021.09.13
108 [해외 스케치] 나의 23년 아랍 선교 여정 - 김은숙 사모(요르단 선교사) 2021.05.20
107 [특집] 목회자가 겪는 마음의 전쟁 (1) - 이관직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2021.04.07
106 [특집] 숨어 있는 상한 감정이 삶에서 나오는 성향들 - 김만홍목사(은혜샘교회 담임) 2021.03.31
105 [특집] 개인주의 신앙과 물질 만능주의를 넘어서 - 화종부 목사 (남서울교회 담임) 2021.01.21
104 [특집] 알곡과 가라지를 분별하라 - 박종순 목사(충신교회 원로) 2020.10.29
103 [특집] 교회 건강을 지키는 영적 분별력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 이상웅 교수 2020.09.24
102 [원로의 목회 서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 리영숙 목사(광주서문교회 원로) 2020.07.23
101 [해외 스케치] 선교사 자녀의 엄마로 산다는 것 - 김은희 선교사(남아공 더반) 2020.06.25
100 [역사 속의 여성] 교회 설립의 사명자, 홍대실 권사 - 박창훈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2020.06.03
99 [교회사] 중세 후기 교황권의 문제 -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신학과) 2020.04.29
98 [원로의 목회 서신] 사랑에 빚진 자 - 김영태 목사(청북교회 원로) 2019.12.18
97 [특집] 큰 핍박, 큰 울음, 큰 기쁨 - 송태근 목사(삼일교회) 2019.11.06
96 [특집] 말씀으로 훈련되는 사모 - 박희석 목사(광주사랑의교회) 2019.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