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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다이어트

이보경 사모



새벽 아침의 공기를 가로질러 아버지의 품을 향한다.
라디오를 켜는 남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찬양,
하덕규 씨의 애절한 목소리가 담긴 옛 CCM이다.

"당신의 곁에 있어요. 나 오랜 방황에서 이제 돌아와
당신의 곁에 있어요. 나 오랜 슬픔 이제 끝나고
찾았었던 건 자유, …"

그때 내가 고등학생이 아니었던가 싶다.
외롭고 고독하고 가난한 마음에 이 노래의 가사들이 얼마나 마음 한쪽을 쓰리게 했었던가?
그런데 이제는 지난날들을 잊고 현재의 시간에 멈추어버린 나를 발견한다. 오늘까지 달려와 오늘의 내 모습을 만들어온 지난날의 내 얼굴을 잊고 살아왔던 것 같다.

"아버지, 저 왔어요."
순간, 지난날의 내 모습과 나의 지금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외롭고 가난한 심령에, 늘 무언가 슬픈 감정이 남아있던 어린 영혼의 모습, 그때 나의 영혼의 무게는 얼마나 가벼웠던가? 그래서 아버지를 만날 만한 곳이면 어디든지 뛰어가고 언제나 무릎꿇고 아버지가 원하시는 곳에 빠르게 날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제 나의 영혼이 점점 비대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왠지 움직이기 부담스럽고 무겁고 힘겨워지며 둔해져가고 있다.
예전처럼 달려가지 않아도 날아가지 않아도 그냥 쉽게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고 그래서 급할 것도 없고 아쉬운 것도 없는 상태…

내 영혼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내 영혼의 군더더기 살을 빼야 한다.
자기만족에 빠진 영혼을 일으켜 온전한 말씀의 거울 앞에 세워야 한다.  
가난한 영혼만이 내 인생의 덧없음과 보잘것없음을 인정하고 겸손히 주의 은혜를 갈구하는 정직한 기도를 드릴 수가 있다.
주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는데, 그 앞에서 내 영혼의 추함을 가리고 포장하고 위장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영혼의 다이어트를 무엇으로 시작할까?
달콤해 보이는 세속적 가치와 헛된 자기 유익을 식탐하듯 먹어대서는 안될 것이다. 모든 일과 관계와 취미생활 등에 성령의 절제가 필요하다.
내 영혼에 유익한 영적 양식을 섭취하기 위해 건강한 영혼을 위한 식단을 짜야 할 것이다.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한 성령충만한 은혜를 채워야 한다.

지속적인 영혼의 훈련과 운동이 필요하다. 자신의 육체를 쳐 복종시키는 훈련들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특히 육체의 흐름을 거스르면서도 주님 앞에 나오는 새벽예배의 훈련들이 언제나 나를 겸허하게 만든다. 하지만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특별새벽기도 20일을 완주하고도 그후 새벽예배를 중단하고 나면 오히려 요요현상이 온다. 자기만족에 빠져 이전보다 더 영혼은 비대해지고 느려진다.

우리의 영혼의 자화상을 생각할 때, 피식 웃음이 난다.
진정한 내 모습은 보지 못하고 껍데기 육체에 울고 웃는 많은 인간의 허상들을 보고 주님은 무어라 하실까?
이 세상은 더욱 성적인 중독현상에 빠져 '섹시'라는 말을 난발하고 다닌다.
어린 유치원아이들조차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세상…
그들이 영혼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추하게 늘어진 살들을 보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늘 많이 먹어도 살찌지 않는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그것이 내 진정한 모습은 아니다.
오늘 새벽 하나님이 내미시는 체중계에 올라 깜짝 놀라 황급히 발을 빼지 않았던가?
아무 가진 것 없고 아무 기댈 곳 없어 외로웠던 지난날의 가난한 영혼, 다시 그때로 돌아가기 원한다.
아버지의 사랑만을 갈구하고 아버지께 의지하여 힘을 얻고 아버지의 위로하심으로 힘든 시간을 이겨가며 현실의 장벽을 넘어서는 꿈을 꾸던 그 때…

"악한 자들에게는 불행이 닥치지만
주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넘칠 것이다.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여,
여호와를 즐거워하고 감사하십시오.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이여,
기뻐하며 노래하십시오." (시 32:10-11)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시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