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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아시기에

 

최영심 사모(예수비전교회)

 

사모로의 부르심

예수비전교회에 온 지 15년 되는 지금 시점에서 목회를 뒤돌아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한다. 주님만이 나의 힘이시며 나의 도움이셨다. 친가, 외가 모두 4대째 목회자 가정의 큰딸로 자라면서 나는 절대로 목회자의 아내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성장하였다. 꿈 많던 대학교 1학년 시절, 현재의 남편인 공대 3학년생을 만나면서 내 인생의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이 사람은 절대로 목사는 안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만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교제하던 형제가 4학년 초에 하나님을 극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하면서 신학을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헤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한 주간 각자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내 의도와는 달리,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사모로 부르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결단하고 사귀던 형제의 군생활을 기다린 끝에 85년 겨울,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사모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전도사, 부목사로 사랑의교회에서 10년을 사역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5년 동안의 미국 생활 가운데 남가주사랑의교회에서 마지막 부목사 사역을 마치고, 200012월 지금의 예수비전교회(, 장성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다. 편안하고 안정된 부목사 사모 역할에서 담임목사의 사모로 섬기게 되자 모든 것이 두렵고 떨리기만 했다.

자라면서 목회자 사모인 어머니의 사역을 보았던 터라 나 자신이 사모 역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편하게 집에서 주무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매일 밤 12시면 교회에 나가 철야 하시고, 밥 먹듯 금식하시며 기도밖에 모르는 분이셨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어머니 같은 사모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사모는 죽어도 안 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해 주셨다. “교인들이 뭐라 하든 모르는 체해라. 인내해라. 기도해라. 어떤 일이든지 변명하지 마라. 자세히 알려고 되묻지 마라. 억울하면 기도해라. 하나님은 다 아신다라고 조언해 주시던 음성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의 말씀들이 나의 목회현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고난이 유익이라

34년 역사를 가진 교회에 5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전임 목사님들의 사역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주변에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부임을 결정하였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처음 6개월간은 허니문 기간으로 순적한 목회생활을 하였다. 그것도 잠시, 목회현장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밀려왔다. 첫 안식년을 갖기까지의 6년 동안 울기도 많이 울었고,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다.

한번은 내가 너무 억울해서 그 당시 은퇴 목사님이신 외할아버지께 울면서 전화를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요셉을 생각해라. 얼마나 억울했겠니?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시지 않았니? 그러니 너도 하나님만 아시면 된다 생각하고 억울해 하지 마라. 다 드러내 주시고 다 갚아주신다며 위로해 주셨다. 나는 눈물 콧물 흘리며 할아버지도 억울한 일 당하셨었어요?”물었다. “그럼! 나도 목회할 때 억울한 일 많이 당했다. 그때마다 요셉을 묵상하며 인내했지. 주의 일을 하다 보면 억울한 일 당하는 것은 너만 당하는 것 아니다. 끝까지 기도하며 인내해라.” 목회의 대선배이신 외할아버지의 말씀에 힘을 얻어 다시 일어서곤 했다.

고난이 올 때마다 남편과 나는 강대상에 올라가 밤새 기도하며 하나님께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성도들은 목사님은 언제든지 떠날 분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열지 않았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내 편은 없는 듯했다.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변명 없이 인내하며, 기도하며 자리를 지키는 우리 부부의 모습에 성도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이곳 목회지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임을 확신하기에 여기에 온 것이 후회는 안 되었지만, 다른 사역지로 보내어 주시기를 간구했다. 하지만 다른 기도는 응답해 주셨음에도 사역지를 옮겨 달라는 기도에는 무응답이었다. 부임한 지 3년 차, 10년 차에 두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다. 고난이 유익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고난당할 때 나의 믿음이 가장 좋았고 뜨거웠다.

 

든든한 기도 지원군, 나의 자녀들

어려움을 당할 때, 나의 두 자녀는 가장 든든한 기도 지원군이었다. 지금은 천국에 계신 친정어머니께서는 내가 큰딸이었기에 어렸을 때부터 목회현장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시곤 했다. 그때마다 기도와 믿음으로 대처한 부모님의 반응을 보아 왔기에 나의 목회에 큰 도움이 된 것을 생각하고, 내 자녀들에게도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그대로 들려주며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울며, 함께 감사하는 생활을 했다.

이 사실을 아시게 된 친정아버지께서 아이들에게 목회의 어려움을 자세히 이야기하면 상처받아서 교회를 떠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나의 자녀들에게 솔직히 말하니 오히려 우리는 엄마, 아빠가 부러워요. 천국에 상급이 얼마나 많겠어요. 나도 하나님을 위해 그런 고난 받았으면 좋겠어요하며 우리를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도 계속 교회 상황을 나누며 기도제목을 달라고 하는 아들, 딸의 말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좋은 위로자와 기도 동역자를 주심에 감사했다. 현재 두 자녀는 미국에 살고 있지만, 지금도 주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전화로 처음 물어보는 말은 주일에 별일 없었어요?”이다. 그러면 나는 이제는 하나님 은혜로 모든 것이 감사하고 은혜롭고 별일 없어!”라고 대답한다.

 

고난을 덮는 샬롬의 은혜

10년 차에 두 번째 고난을 당할 때는 정말 떠나려고 했다. 기도 외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 부부는 강대상에 올라가 하나님께 매달렸다. 일주일을 작정하고 기도하는 중에 첫날 하나님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한 마음을 주시며, 동시에 우리 부부에게 한 알의 밀알이 되라는 마음의 감동을 주셨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그때의 평안함과 기쁨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일주일 기도를 마치고, 주일예배를 통해 목사님께서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며 성도들에게 용서를 구하자, 성도들의 마음이 열리는 은혜로운 성령의 임재를 느낄 수가 있었다.

사람을 찾아가 변명하지 않고, 우리 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고, 오직 성전에 나가 하나님 의지하며 주님께 기도한 것밖에 없다. 어떤 때는 하나님, 우리 부부가 이곳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셨나요?” 하며 주님! 우리 여기 있어요. 예수비전교회에 있어요!” 주님께 울며 부르짖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도 주님은 내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나의 탄식 소리를 들으시고, 나와 함께하시며 지켜주셨다.

큰 고난과 환란이 있을 때는 주일이 돌아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샬롬의 은혜를 주셨다. 마치 전쟁터 같은 주일을 보내고 초주검이 된 주일 밤이면, ‘너무 힘드니 포기하자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일어날 때면 현실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그렇게 평안과 기쁨이 오는지 하하! 호호!” 웃으며 지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특별한 하나님의 손길이었음이 분명하기에 늘 감사함으로 그때를 추억하고 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 하나님을 위해

사모의 길을 두려워하며 주저하는 나에게 친정아버지께서 담대하게 걸어가라고 조언하시며 한 번밖에 없는 인생,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귀하다고 하신 말씀을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목회자 아내의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지만 나는 늘 감사한다. 송명희 시인의 시처럼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기에,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감사하며 갈 수 있다. 나는 감당할 수 없지만 주님 의지하고 주님과 함께라면 넉넉히 감당할 수 있음을 믿는다. 지금도 기도한다. 주님은 나의 힘이시며,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방패이시며, 나의 피할 바위시라고. 나 같은 것 사모로 불러주심을 감사하며 십자가의 길을 행복하게, 즐거움으로 가고 있다. 또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그렇게 걸어가기를 소원하며 초심을 잃지 않도록 기도한다.

 

/최영심 사모

예수비전교회 담임 정우길 목사의 아내이며, 가족으로 아들 내외와 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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