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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건강을 지키는 영적 분별력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의 안내에 따라 -

 

이상웅 교수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들어가는 말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복잡미묘한 상황들을 헤치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영적인 세계의 혼돈과 난맥상은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아서 어느 누가 쉽게 풀어내기도 어려워 보인다. 지난 몇 십 년 사이 3차 물결(the third wave)과 그것의 극단화인 신사도운동이 범교단적으로 침투해 불건전한 성령운동 양상으로 파급되고 있어 교인들은 물론이지만 교회 지도자들조차도 분별과 판단을 하기 어려운 감이 들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진기한 현상들(아말감 이빨이 변하여 금이빨이 된다거나, 넘어뜨려 기절시킴으로 입신했다고 하는 것 등)이나 능력이나 기복을 추구하는 일은 쉽되, 성령 안에서 건전한 변화와 성숙을 사모하는 일은 익숙지 않은 시절이라고 생각된다. 청교도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의 성령론을 전공하고, 예장합동 교단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는 신자들 가운데 편만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불건전한 성령운동에 맞서 건전한 성령의 역사를 어떻게 분별할 것인지에 대해 소개해 보려고 한다. 개인이나 교회가운데 일어나는 어떤 체험이나 현상을 두고 참된 은혜의 역사인지, 거짓된 역사인지 우리는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필자가 십수 년간의 목회 현장에서도 뼈저리게 경험한 바이지만, 영적인 상황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울수록 우리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라는 원칙과 “옛적 길, 곧 선한 길”(렘 6:16)로 되돌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요, 개인 신자나 공동체의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본 글에서는 이런 원칙 위에 서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보려고 한다. 우리가 에드워즈에 주목할 만한 이유는 그는 성경 중심적인 칼빈주의 신학자였고, 오랜 세월 목회자로 사역하기도 했고, 나아가서는 개인적으로 경건할 뿐 아니라 목회 현장에서 2차례에 걸친 성령의 역사를 강력하게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에드워즈는 노샘프턴(Northampton)교회 목사로 23년간(1727~1750) 사역하는 동안 1734~35년에 노샘프턴교회가 발화점이 되어 코네티컷 강 유역 골짜기에 번져 간 노샘프턴 부흥을 경험했을 뿐 아니라, 1740~42년 사이에 일어난 ‘제1차 대각성’(The First Great Awakening)을 경험하기도 했다. 또한 그 대각성 기간 동안에 순회 설교자로서 성령의 역사하심에 귀한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대각성 기간 동안 등장한 광신주의(혹은 열광주의)와 반부흥파라는 양극단에 대항하여 성령의 역사를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에 대한 여러 저술들을 남겨 주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부흥이나 참된 신앙에 관련된 그의 수많은 저술들은 오늘날까지라도 참된 부흥과 신앙의 본질, 성령의 역사와 사탄의 역사를 영적으로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에 대한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가이드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짧은 지면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에드워즈가 1741년 9월 10일에 모교인 예일대학 졸업식에 참석하여 설교한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서울: 부흥과개혁사, 2004)에 담긴 영적 분별론이다. 그는 설교 본문으로 요한일서 4장을 택하여 당시 뉴잉글랜드 지방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참된 성령의 역사와 거짓된 역사를 분별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우리는 이러한 에드워즈의 글을 통해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영분별론을 배울 수가 있다.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이 될 수 없는 소극적인 표지들(negative signs)

에드워즈는 먼저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데 있어서 증거가 될 수 없는소극적 증거 9가지를 먼저 검토한다. 소극적(negative)이라는 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어떤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역사이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는 결정적인 표지가 될 수 없는 것들을 말한다. 즉, 그러한 일들이 성령의 역사하에서도 일어날 수가 있고, 사탄의 역사하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때에는 섣불리 성령의 역사가 분명하다 아니다에 대한 판단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첫째는 매우 일상적이지 않고 아주 비범하고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경우이다. 성령은 지적이고 고요하게만 일하신다고 하는 이들은 비범하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광기나 집단 히스테리라고 보는데, 성경에 의하면 성령께서도 그렇게 일하시기도 하므로 절대적인 표지가 될 수 없다.

둘째는 인간의 신체에 나타나는 어떤 영향들 즉, 눈물, 전율, 신음, 큰소리를 지름, 육체적 고뇌, 혹은 신체적 힘이 빠지는 것 등을 두고 성령의 역사이다 아니다를 결정지을 수가 없다. 몸과 영의 연합법칙에 따라 인간은 내적인 경험을 하는 경우 몸에 이러저러한 영향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사탄의 영향하에서도, 성령의 영향하에서도 경험되어질 수가 있다.

셋째는 큰 소동과 종교에 대한 큰 잡음이 일어나는 경우를 두고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사도들은 세상을 뒤집어엎는 사람들(행 17:6)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넷째는 사람들이 그들의 상상(imaginations)에 커다란 인상들을 받아 입신을 했다거나 천국을 다녀왔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에드워즈 시절 뿐 아니라 현대에도 그런 체험을 했다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입신과 천국 경험이란 고린도후서 12장에 의하면 이 세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의 체질상 쉽게 황홀경에 빠지는 경우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섯째는 부흥 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따라하여 동일한 일이 일어나는 경우도 성령의 역사다 아니다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않는다. 선한 일에 있어서나 나쁜 일에서나 사람들은 본보기를 따라함으로 영향을 받곤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성령의 역사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매우 신중하지 못하고 변칙적인 일들(irregularities)이 일어나는 경우를 가지고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성령의 역사는 온전해도 수용하는 인간이나 공동체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판단에 있어서 많은 실수들이 있고 사탄이 그 역사에 어떤 미혹들을 뒤섞어 놓은 경우들이 있는데 분별을 해야 할 문제이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도매금으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

여덟째는 소위 성령의 영향력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몇몇 사람들이 심각한 실수를 범하거나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또는 이단에 빠지는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전체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못된다.

아홉째는 부흥의 시기에 목회자들이 율법 설교나 지옥 설교를 많이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에 잠기게 하는 경우를 두고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이 처할 심판에 대해 경고를 함으로써 그 영혼을 각성케 하여 회개에 이르고 자비의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선한 목자들의 할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위적으로 공포심이나 패닉 상태에 빠트리는 것은 사탄의 역사일 수도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러한 아홉 가지의 일들은 영적 분별의 절대적이고 안전한 표지가 될 수 없는 것들에 속한다.

 

성령이 역사하실 때에 나타나는 참되고 뚜렷하고 확실한 5가지 표지들(positive signs)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의 역사라고 확실하게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들이 무엇일까? 어떤 영적 현상이나 체험 또는 어떤 성령운동이 일어났을 때에 사탄이 절대로 흉내 낼 수 없고 흉내 내려고도 하지 않는 일들이 있는데, 그것은 오로지 성령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일들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참되고 확실하며 뚜렷한 증거들이 무엇인지를 요한일서 4장 전체에서 발견해 낼 수가 있다.

첫째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다. 성령은 무엇보다 예수님을 높이신다(요일 4:2~3, 15). 예수님은 고별 설교를 통해서도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그가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실 것이며(요 15:26), 자기 영광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6:14).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그의 대속의 사역에 대해 믿게 하시고, 높이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이처럼 성령은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하여 바른 신앙고백을 하게 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며, 예수님께 순종하게 만들어 준다. 따라서 성령 충만은 곧 예수님 충만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사탄이 역사할 경우 성령 자체나 영적 현상에만 초점을 맞추게 하거나,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인성이나 대속의 사역 중 어느 것을 반드시 약화시키려고 한다.

둘째 성령은 거룩의 영이시다.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전심으로 회개하게 만든다. 그리고 거룩을 추구하게 만든다(요일 4:4, 5). 반면에 사탄은 세상에 속한 것들 즉, 죄의 욕심에 속한 모든 것, 인간의 모든 타락한 일과 육욕을 포함하는 모든 것, 그리고 그들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모든 행동들과 대상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사랑하게 만든다(요일 2:15, 16).

셋째 성령은 성경을 높여 준다(요일 4:6). 성령은 우리로 성경을 매우 존중하게 하고, 성경의 진리와 신성을 더욱 확신하게 만드신다. 성경은 성령이 영감하여 기록하게 하신 책이기 때문에, 성경을 사랑하게 하시지, 새로운 계시를 주시는 것이 아니다. 참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시대일수록 성경 연구에 매진했다. 따라서 오늘날 예언이나 새로운 계시를 주장하면서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성령운동을 경계해야 한다.

넷째 성령은 우리가 성경의 진리 즉 건전한 교리와 신학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성령은 “진리의 영”(요 14:17, 15:26, 16:13)이시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진리들을 좋아하게 만들고, 깨닫게 하며, 그 진리를 적용하며 살게 만든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 인간, 죄, 그리스도, 구원, 성령, 교회, 종말 등에 대한 건전한 교훈(sound teaching)을 배우고 익히는 일에 힘써야 한다. 최근 십여 년 동안 한국 교회 내에 신앙고백 문서들과 건전한 교리에 대한 관심이 부흥하고 있는 것은 지성주의적 신앙 편향성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한다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된다.

다섯째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게 만든다. 사도는 요한일서 4장 7절~21절까지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사람 사랑에 대해서는 7절, 11절, 12절에서 말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관해서는 17절, 18절, 19절 등에서 말씀하며, 20절과 21절에서는 두 가지 사랑을 함께 말하면서 사람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정통적이고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수직적인 사랑만 강조하기 쉽고, 자유주의적인 신자들은 이웃 사랑만 강조하기 쉬운데, 에드워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열매 맺어야 함을 잘 강조해 준다. 이 점에서 우리는 에드워즈의 고린도전서 13장 강해를 통해 성령의 열매로서 사랑의 본질과 특징들에 대해서 잘 확인할 수가 있다(『고전 13장 사랑』, 청교도신앙사).

 

이처럼 에드워즈는 성경에 근거하여 성령의 구원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때에 예수님을 높이고, 거룩을 사모하며, 성경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이러한 다섯 가지로 충만한 것이 건전한 신앙이고 성령 충만한 삶이라고 할 수가 있다. 물론 우리는 성령께서 신자들과 교회를 위해 주시는 성경적인 은사들이나 기적적인 도우심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들도 부인해서는 안 되지만, 기적, 은사, 능력, 진기한 체험과 같은 것들만 추구하려 들면 사탄의 미혹에 걸려들기 쉽다고 하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대 교회 안에는 다른 불들로 불이 붙은 사례들이 많이 눈에 뜨이는데, 우리는 하늘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불을 사모해야 할 것이다. 그 성령은 개개 신자들이나 교회 공동체로 하여금 삼위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게 하며, 성경에 근거하여 진리를 사모하게 하며, 죄와 불의를 미워하며, 거룩을 사모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 일에 집중하게 하시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고, 그 사랑을 이웃과 교회와 사회 가운데서 실천하도록 역사하시는 영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건전한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고 누릴 수 있도록 진리의 길에서 매진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글/이상웅 교수

계명대학교 철학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신학부 수학.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박사. 박사교회와 산격제일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저서로 『작은 서신 안에 담긴 위대한 복음-빌레몬서 강해』, 『개혁주의 종말론에 기초한 요한계시록 강해』, 『박형룡신학과 개혁신학 탐구』(이상 솔로몬) 등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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