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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당신은

자녀의 미래입니다

 

조성희 사모(행복연구원장)

 

미국의 한 젊은 부부가 있었다. 아이들을 사랑해서 많은 자녀를 낳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의사의 선고가 떨어졌다. “이제는 자녀를 가질 수 없습니다.” 부부는 딸 하나만 낳고 더 이상 자녀를 잉태할 수 없게 되자 아들을 입양했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자라면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가 학령기 아동이 되었을 때 집중력 장애(ADHD)와 함께 학업의 장애도 있음이 드러났다.

아버지는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의 많은 일들을 정리하고 아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쓰기로 결심했다. 산만함과 충동성이 가득한 아이를 위해 아이의 친구와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아이의 왕성한 활동을 위하여 무엇이나 기꺼이 감당했다. 어렵게 청소년기를 마친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어도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아들은 수시로 공부를 포기했고 자기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우울함과 극심한 방황의 길로 빠졌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많은 기도와 눈물로 자신의 희생을 감수했다. 아들이 고뇌에 빠지면 함께 기도하고 아들이 회복될 때까지 인내로써 기다려 주고, 아이의 요구에 집중하는 눈물겨운 아버지였다. 마침내 아들은 아버지의 조건 없는 사랑을 깨닫고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약점이 있음에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귀한 사역자가 되었다.

장애 아들을 잘 키워낸 아버지는 바로 제임스 돕슨 목사다. 그는 미국 전역에서 가장 훌륭한 자녀 양육 전문가로 이름나 있다. 그가 저술한 책과 방송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배웠고 상담으로 도움을 받았다. 특히 그는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장애아를 위한 교육에도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돕슨 목사는 훌륭한 교육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위해 값을 치르는 날들은 어둡고 긴 터널과 같았다. 그는 훗날, 자신의 장애 아들을 통해 더 많은 가정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제임스 돕슨 같은 아버지가 없었다면 아들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라는 이름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위대한 사랑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서 아들을 사랑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가 역할 모범으로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가 된 것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2),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8:14~15). 이 놀라운 약속을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 사랑을 맛보고 전하느라 사역자가 된 아버지들에게 조심스레 질문해 보고 싶다. 자녀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심어 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노력하였는지. 아버지 자신이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아버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 우리 사회가 보여 준

    아버지의 모습

 

우리나라에서 돕슨 목사님의 가정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부모들은 어떻게 했을까? 우리의 선조들은 가문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어 부모가 자녀의 문제나 장애를 발견하면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장애가 없어도

부모의 기대나 가문의 명맥을 잇는데 부족하면 가차 없이 족보에서 내치기도 했다. ‘아내와 자식 자랑은 팔불출(八不出)’이라는 유교적인 사회 통념과 분위기 때문에 자식을 엄격하게 대하고 아내를 천시하였다. 남의 이목을 중요시하는 선비 문화와 가부장적인 의식으로 인하여 가정이 행복하지 않았다. 특별히 민족적인 아픔의 역사가 많아서 아버지들의 희생과 상처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자식들이 서로 사랑을 표현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

아버지와 자녀의 정서적 교감이 회복되기도 전에 급속도로 나라가 성장하고 물자가 풍성해지며 빠르게 정보를 교환하는 세계화 시대가 열렸다. 양극화 현상은 심해지고 아버지들은 수입에 따라서 그 능력이 평가되었다. 아버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버티느라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열심히 뛰었지만 가족들에게는 투명 인간이 되어 존재감마저 무시당하게 되었다. 참으로 서글픈 이야기다.

이렇듯 우리 사회가 각박하고 아버지의 삶은 족쇄를 채운 것처럼 힘들지만, 불변의 진리가 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버지의 역할과 사명이 있고, 자녀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자녀의 인생의 중요한 역사이며 자녀의 모습과 미래를 형성하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올 한해는 목회자인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이번 호는 특별히 아버지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우리가 이전 세대의 아버지들을 위로할 방법은 없지만, 현재 아버지인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소망을 주는 아버지로 우뚝 서면 좋겠다. 자녀들의 고민과 아픔을 넉넉히 품어 주는 기댈 언덕이 되면 좋겠다. 자녀들의 미래에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 아버지의 삶은

    그의 아버지의 역사 안에 있다

 

누구나 아버지를 부르면 어떤 감회, 추억,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따스한 시간이 회상되는 사람과 반대로 상처와 고통의 흔적이 떠오르는 사람도 있다. 아버지의 존재, 역할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흔적 같지만, 자세히 돌아보면 아버지와의 그 시간은 자녀의 평생에 영향을 미친다. 아버지의 DNA를 통해 외모와 내면의 성품, 은사를 물려받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의 나를 형성한 가치관과 삶의 습관, 태도, , 불호, 직업에 이르기까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아버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버지가 자녀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도 결국은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다. 친절하고 성실하며 좋은 성품을 가진 아버지에게 양육되었다면 좋은 교육을 받은 것이지만, 폭력적이고 거칠고 무자비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면 최악의 교육을 받은 셈이다. 아버지를 통하여 교육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가 되면 자신이 경험한 그대로 자녀를 대할 뿐 아니라 자신이 가장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도 답습하게 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서 팥이 난다는 말처럼 어린 시절 가정에서 보았던 아버지의 역할, 그 모습이 복음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아버지의 역할, 평생토록 헌신해야 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가르쳐 주는 곳은 없었다. 사회적인 성공이나 업적을 이룬 아버지가 자녀교육에서는 좌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회자 아버지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양육하는 모습을 보면 그 집안의 문화, 가풍, 교육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에게서 폭군 아버지가 나오고, 대화와 관용으로 교육받은 아버지에게서 너그럽고 따스한 아버지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순환의 고리를 생각하고 아버지가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봄이 필요하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변명이나 핑계로 돌리지 말고 진지하게 자신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아버지 스스로 약점의 고리를 끊어서 자녀들에게 선순환이 되도록 결단하는 것이 좋은 아버지다.

이 세상에 완벽한 아버지는 없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가 있을 뿐이다. 오늘의 아버지는 큰 나무 밑에서 자라는 어린 묘목과 같이 싫든 좋든 아버지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목회자인 아버지는 감사하게도 육신의 아버지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시고 완벽하신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소속되어 있으니 은혜 중의 은혜다. 새로운 하늘 아버지의 방식으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게 되었다.

 

 

@ 아버지에게 묶여 있는 마음을

    복음으로 자유케 하라

 

어느 날, 신학 공부 중인 한 젊은 사역자가 찾아왔다. 목사 되는 것이 두렵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가 힘들고 어렵다는 고백을 했다. 젊은 사역자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더듬더듬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제가 조금만 잘못하면 소리 지르고, 어머니를 억압하고 난폭했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께 늘 숨죽여 지냈습니다. 이제 어른이 되어서 그런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려고 눈을 감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 사랑의 하나님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무섭고 벌주는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용서하지 않는 아버지가 떠올라서 기도를 이어갈 수가 없어요. 기억 속의 아버지를 지우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아서 너무 고통스러워요.”

내면의 아픔을 고백하는 젊은 사역자의 모습이 애처로워서 함께 울었다. 아버지의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 하나님 아버지의 빛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해 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훗날 그는 목사가 되어서 사역의 현장에 잠시 머물렀지만, 결과는 좋지 않게 끝나고 말았다.

그 청년의 가정은 아버지가 장로요, 어머니는 권사인 믿음의 가정이었다. 교회 마당에서 뛰어놀고 자랐지만 그의 부모는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벅찬 이중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을 알려 준 이도 아버지요, 아들의 미래를 막아 버린 사람도 바로 아버지였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작은 아이에게 영향을 미쳤던 아버지는 장성한 아들의 마음 한구석에서 여전히 아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의 아버지들에게는 그런 상처가 없을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상처가 있다면 기억을 더듬어서 상처의 못을 뽑아내야 한다. 과거의 아버지가 살던 그 시대와 개인적인 삶을 더듬어 보면,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이해가 생길 수 있다. 어쩌면 아버지 역시도 전쟁과 상처투성이였던 우리 민족의 과거사에 희생되었던 분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은 그것들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지금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본다. 주 안에서 이해하고 용서하므로 현재에서 흘려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적이고 어두운 사슬을 끊어 버릴 수 없어 자녀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게 된다. 지금이라도 용서와 회복을 결단하면 사랑하는 자녀들의 삶에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던 어두움의 매듭을 풀게 되리라.

 

 

@ 아버지를 통해서

    자녀에게 전달되는 교육의 영향력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의 아버지인가? 사역이 분주한 것을 강조하면서 부지런히 뛰어다녔지만, 우리의 뒷모습을 보고 따라오는 자녀에게는 무엇을 보여 주었을까. 아버지와의 관계 형성이 자녀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남자다. 세대는 다르고 기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남성이 가지는 특성은 닮은 부분이 많다. 별로 말이 없는 것, 생각은 있는데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것, 말로 따지기보다는 차라리 손해 보고 억울한 것이 더 편한 것,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결코 드러내지 못하는 것, 무뚝뚝하고 투박한 것이 더 남성답다고 믿는 것 등이다. 이런 성향의 아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자로서 자신의 존재감이다. 이 존재감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통해서 세워지는데 특히 아버지의 격려와 칭찬을 통해서 세워진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그의 우상이다. 아버지는 가장 부럽고 완벽한 남자이며 넘지 못할 태산이며 하늘이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존중받은 아들은 결코 어긋난 길로 가지 못한다. 잠깐의 방황은 있어도 다시 돌아온다.

반대로 아버지에게 무시당하고 용납받지 못한 아들은 온 우주에서 버림받은 것처럼 큰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자신감이 상실되어 삶의 용기를 잃어버리고 미래도 쉽게 포기한다.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은 단순하여 단답형의 대화를 사용하며 감정 처리가 미숙한 고로 한 번 관계가 삐걱하면 거리가 멀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들에 게 더욱 넓고 포근한 가슴으로 다가가야 한다. 인생 선배로서의 면모를 보여 줌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아들이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그릇으로 세워지도록 용기를 주어야 한다.

 

아버지와 딸

사랑스러운 딸도 성장하면서 아들과 똑같이 성장통을 경험하고 부모의 마음에 근심을 안겨줄 때가 많다. 아버지들은 대체로 딸의 문제는 엄마에게 위임하고 딸이 성장하면 감정을 공유하는 일도 줄어든다. 아버지는 동성이 아니지만 딸은 아버지를 통해서 처음으로 이성의 존재를 알게 된다. 딸도 아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고 건강한 자화상을 가지게 된다. 아버지로 인해 남성에 대한 기억이 긍정적이며 건강한 남성상을 가질 수 있다. 필요 이상으로 남자를 의존하지 않으며 거짓된 사랑 에도 속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정에 무관심하거나 사랑에 인색한 아버지로 인해 눈물 흘렸던 딸이라면 왜곡된 생각과 판단으로 이성을 대하게 된다. 아버지를 통해서 남성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 딸은 자존감이 낮아져서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기도 한다. “내가 좀 더 공부를 잘하고 예뻤더라면 우리 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무심히 대하지 않았을 거야.” 소심한 여성들이 자주 걸리는 자기 연민의 함정이다. 자존감이 낮아진 딸은 남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지고 지나치게 이성의 비위를 맞추면서 사랑을 구걸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딸에게 있어서, 아버지 의 사랑을 받고 아버지와 친밀감을 가지는 정서적 충족은 딸의 일생 을 행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사건이다. 딸이 장성하여 결혼을 하 면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하면 좋겠다.

 

 

@ 자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목회자 아버지

 

우리 자녀들이 목회자 가정에서 자란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일정 부분 부모의 짐을 함께 지고 있는 것과 같다. 그들이 목회자인 부모, 특별히 아버지를 향한 감정, 바람은 무엇일까? 목회하느라 많이 수고했지만 이제 는 자녀에게 더 좋은 아버지 되기 위한 고민도 나누길 원한다.

 

1. 사역의 스트레스를 가족들에게 쏟아 내지 않아야 한다

~ 피곤해. 스트레스 쌓이네. ~ 짜증 나. 지금부터 나 신경 쓰이게 하지 마!” 목회자가 사역으로 인하여 매일 쌓이는 스트레스를 편하게 풀 수 있는 곳은 가정이다. 가정에서만큼은 긴장을 풀고 편하게 쉼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목회자는 가정에서 쉼을 누려야 돼라는 강력한 인식 때문에 목회자의 가정을 자신만의 도피처, 휴식처로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매일 짜증 내고 신경질 부리고 불평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숨죽여야 하는 가족들을 생각해 보라. 가정에서는 가족과 함께 사랑을 나눔으로 따듯한 정서를 채우고, 가정 밖에서 좋아하는 운동이나 취미생활, 독서, 동역자들과 교제를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가족들이 목회자의 스트레스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면 건강한 가정이 될 수 없다. 아버지가 스트레스 쌓여서 큰소리치고 트집을 잡아 자녀들이 긴장하면 아버지가 집안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사역을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알아?”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목회자에게 사명을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지 가족들이 아니다. 하나님은 가족들이 서로 연합하여 주님을 사랑하길 원하시지, 사역을 위하여 가족을 들러리로 세우신 적이 없다. 집 밖에서 교양과 품위를 갖추던 아버지가 가정에서는 이기적이고 자신의 필요만을 고집한다면 아버지의 이중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자녀들은 크게 실망하여 신앙에 대한 회의마저 들게 된다. 진실로 가정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가족 공동체다. 목회자가 가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목회자의 가정은 독재자 아버지, 독재자 남편이 머무는 시베리아 벌판이 될 것이다. 살얼음을 딛고 행복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2. 가정에서는 목회자가 아니라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사역의 현장에서 지도자로서의 예우를 받는다. 주님의 종이지만 양들의 목자이기에 그런 예우는 마땅한 부분이다. 문제는 목회자 자신이 지도자로 예우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가정에서도 가족이 아닌 목회자로 대우받으려고 하는 모습이다. 목회자 가족들이 교회에서는 성도들을 인식하여 남편을 목사님이라 부르고 아버지를 목사님이라고 부르며 공인으로서 존중한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여보’ ‘아빠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하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정상적이다. 가정에서도 여전히 아버지를 공인처럼 대해야 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스스로 자신을 구별하여 가족들에게 명령한다. “내가 누구야? 내가 주의 종인데 한번 말하면 따라야 하는 것 아니야?”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몰라? 집에 들어오면 마음 편하게 해줘야 되는 것 아니야?” 아버지의 명령과 지시 속에는 내가’, ‘내가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이런 모습은 오래전 가난했던 시대의 아버지들 모습과 비슷하다. 소작농도 제대로 안 되고 어린 자녀들에게 죽도 먹이지 못하는 아버지는 민망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술을 잔뜩 먹고 집에 들어와 죄 없는 가족들에게 억압과 폭력으로 가장의 위신을 세우려고 힘주던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자기도취에 빠진 아버지의 권위는 자녀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가정에서 이런 모습이 반복되면 자녀들은 논리와 합리가 맞지 않는 아버지에게 마음의 문을 닫는다. 세월이 흘러 장성한 자녀들은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아버지를 피하게 된다. 그 가정은 시계가 멈추듯 대화가 사라진 적막함이 감돈다. 목회자의 가정이지만 자녀들은 자신들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인 아버지도 인생의 황혼을 외롭게 맞이하게 될 것이다.

 

3. 아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자녀를 행복하게 만든다

자녀를 건강하고 바르게 잘 키우는 방법은 아주 쉬운 데서부터 출발한다. 자녀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방법도 쉽고 간단하다. 그것은 자녀의 어머니를 사랑하므로 자녀의 마음에 평안을 안겨 주는 것이다. 부모 사이가 행복하므로 자녀가 행복해지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가정의 법칙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전 우주와 같은 존재기 때문이다.

만약 생활의 터전인 땅이 흔들리고 갈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불안한 마음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기 어렵다. 자녀들도 그들의 부모가 서로 싸우고 냉전 상태로 지내면 지축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두려움에 빠진다. 어떤 심리 전문가는 부모의 싸움을 지켜보는 아이의 마음을 이렇게 묘사했다 전쟁터에서 옆에 있던 전우가 포탄에 맞아 죽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충격적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자녀들 앞에서 아내에 대한 배려, 존중, 그 수고를 인정하는 말을 해야 한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어도 웃음과 격려와 지지가 충만한 가정은 자녀를 잘되게 하는 최고의 보약이다.

어떤 목회자 부부는 너무 바빠서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할 여유가 없다. 메마른 나무 장작같이 건조한 관계로 지나다가 갈등의 요소가 터지면 메마른 장작에 불이 붙듯 다툼의 불길이 타오른다. 가정에서 무장 해제한 군인처럼 감정을 그대로 쏟아 내면 자녀들은 총알 없는 총에 맞아 죽게 된다. 참으로 충격적이지 않은가.

어차피 복음을 위해 죽은 아버지라면 자녀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한 번 더 참고 아내 사랑을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특별히 부부가 자녀 앞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의견을 모아 보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결코 위선이 아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전략이다.

 

4. 가족은 가장 연약하고 소중한 양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좋은 아버지는 아내와 자녀들을 우선으로 기억하고 그들의 안전과 행복함이 자신의 책임이 된다. 그런데 이 부분이 잘 안 지켜지는 가정이 바로 사역자 가정이다. 사역자인 아버지는 늘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하는 존재다. 자기 집안은 돌보지 않지만 다른 가정의 문제는 주야를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똑같은 입시생이지만 자신의 자녀에게는 눈을 맞추고 격려의 말을 나눌 시간이 없어도 다른 자녀를 위해서는 특별 심방을 간다. 다른 이들 다 쉬는 주말에는 말씀 준비, 공휴일이면 성도들과 특별 행사를 하느라 아버지는 일찍 사라진다.

이른 아침 집을 나간 아버지가 잠잘 때도 그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자녀들이 어찌 아버지의 가치, 아버지의 향취, 사랑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자녀들은 아버지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자신에게는 무관심하다고 느낀다. 사역자인 아버지는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도 결코 잊을 수 없다. 더욱 힘든 것은 자녀들이 목회자 부모의 짐을 직간접적으로 함께 감당하는 것에 대한 눌림과 희생이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사역자인 아버지를 앞세우고 뒤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자녀들이 불쌍한 어린 양이다.

좋은 아버지는 자신의 가정이 목양의 일번지고 가족들은 가장 연약하고 중요한 양들임을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역자의 가족들은 영적 지도자의 민낯과 일상을 다 보고 더 많은 인내와 사랑과 이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가족들은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묵묵히 기다리지만 마음 깊숙한 방에서는 울고 있을지 모른다. 그들이 가장 많은 상처를 받고 연약한 양들로 떨고 서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말한다. “~ 목사님이 아빠니 정말 좋겠어요.” 그 말처럼 사역자의 가족들이 남다른 특권을 누리는 것도 있지만, 희생해야 하는 몫도 크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알아주어야 한다. 언제나 기다려 준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자녀를 위해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자. 여러 명의 자녀라면 단둘이 만나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햄버거 하나, 음료수 한 잔을 마주하고 눈을 맞추고 말해 보자. “네가 있어서 고맙다. 너로 인해 아버지가 여기까지 힘 있게 달려올 수 있었네.” 예쁜 이모티콘을 곁들인 문자를 보내고, 힘들어하는 자녀에게 손잡고 기도해 주고, 늦게 들어온 날은 잠자는 자녀의 머리에 살짝 손 올리고 기도해 주자. 손편지도 보내고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찾아보면 수없이 많이 있다. “사랑해, 사랑해.” 진정한 목양을 하는 것이다.

 

땅 위에서는 완전한 목회자가 없으므로 완전한 가정, 완전한 아버지도 없다. 그러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부모인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빛도 있지만, 더 어리고 연약한 양들인 자녀들의 눈빛을 두려워하고 그 눈망울을 꼭 기억하는 아버지 되길 소망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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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016 Autumn (25호) 말씀의 훈련은 '내가 복음'을 '주님의 복음'으로 바꾸어 줍니다 2016.09.21
28 2016 Summer (24호) 사모의 영광은 예배의 영광에서 채워집니다 2016.06.22
27 2016 Spring (23호) 교회는 어두운 밤 외로이 서 있는 등대입니다 2016.03.29
26 2015 Winter (22호) 사모의 즐김은 피로회복제와 같습니다 2016.01.04
25 2015 autumn (21호) 사모의 지성은 새의 날개와 같습니다 2015.10.06
24 2015 summer (20호) 사모의 멋은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2015.07.15
23 2015 Spring (19호) 쉼은 크고 넓은 그분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2015.04.02
22 2014 Winter(18호) 절제함은 우리의 질주를 막아주는 성령의 브레이크입니다 2015.01.09
21 2014 Autumn(17호) 사랑함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는 것입니다 2014.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