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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는 걸어 다니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조성희 사모(행복연구원장)

 

얼마 전, 평신도인 장로님과 집사님께서 강연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주제는 이슬람동성애·동성혼 합법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음세대의 영적인 존폐가 달린 문제의 대안을 평신도가 목회자들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동성애·동성혼 합법화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은밀하게 진행되어서 유럽의 교회들을 초토화시켰고 미국마저 침묵하는 교회로 만들었다. 그 바람이 이제 우리에게까지 불어닥친 것이다. 사람들은 동성애는 소수의 성 취향인데 왜 교회가 반대할까 의구심을 가진다. 그러나 실상은 각 사람의 성 취향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교회들을 멸망하게 만든 동성애 합법화의 법 개정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동성애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으로서 동성애를 죄라고 표현하거나 반대, 혹은 공동체의 멤버로 인정하지 않으면 역으로 죄인이 되어서 벌을 받고 투옥되는 법이다. 동시에 유치원을 포함한 모든 교육 기관은 어린아이들에게 성평등의 이름으로 동성 결혼과 동성 부모를 지지하도록 교육시킨다. 이 사상은 유럽의 종교개혁에 근거하여 세웠던 하나님의 절대적인 가치를 반대하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사상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 안에서 금지했던 모든 것을 다시 거부하는 것이 중심이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너답게 사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을 하나님의 품에서 떠나도록 부추기는 매우 위험하고 교묘한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동성애 합법화의 바람을 누가 막아낼 수 있느냐가 문제다. 유럽이나 미국의 많은 교회들도 설마?’ 하고 머뭇거리다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평신도들이 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열정을 다하여 강의하는 평신도 강사들은 전문인들이고,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국 교회와 복음을 지키기 위해 목회자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자신들의 사재를 털어서 연구하며 사람들을 계몽하고 있다. 그들은 목회자가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에 귀한 일꾼들이며 걸어 다니는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다. 평신도 한 사람이 어디까지 빛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예다.

 

 

@ 교회의 평신도 일꾼은 누구인가

 

평신도 일꾼은 목회자와 함께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직분자를 의미한다. 성경에는 직분자를 일컫는 단어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원어의 뜻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신학적인 용어나 해석을 덧붙이지 않아도 성경의 표현들 ’, ‘일꾼’, ‘동역자’, ‘다스리는 자’, ‘인도하는 자’, ‘함께 종 된 자라는 호칭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한국 교회는 목사, 장로, 집사, 권사, 전도사, 선교사의 직분이 주를 이루고 이 직분들을 다시 목회자와 평신도로 분류한다. 목회자와 평신도의 개념은 계급을 나누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기능상, 목회자와 평 교인을 구분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으로 우리는 이미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직분을 가졌다 해도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앞에서 그의 선행을 내세우거나 다른 사람보다 우월함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렇듯 성경이 말씀하는 직분의 의미를 생각하면 평신도라는 용어를 적합한 표현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호칭들(형제, 자매 등)을 사용해도 문화적인 상황과 연령, 신앙의 연륜과 역할에 맞는 적합한 용어가 없어서 부득이 사용하고 있다고 신학자들은 말한다.

 

 

@ 목회자는 평신도와의 차별이 아닌

역할의 구분이 있다

 

목회자와 평신도가 모두 같은 복음의 일꾼이라면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선이 없는 것일까? 안수받지 않은 평신도도 설교하고 목양할 권이 동등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 판단은 교단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말씀을 통해서 보여 주시는 부분만 나누어 보고자 한다.

 

1. 목회자는 복음 사역에 전념하도록 하나님이 불러 세우신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4:11~12). 이 말씀에 근거하면 목회자는 복음 전파에만 전념하는 직분자로 따로 부르셨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역할은 성도들을 말씀으로 온전하게 세우는 것이다. 주님께서도 복음 전파에 집중하는 제자들을 따로 부르시고 함께 숙식하면서 천국의 비밀을 가르치셨다. 승천하시기 전에는 제자들에 게 땅끝까지 가라는 유언적인 메시지를 남기셨다. 초대교회에서도 목양에 책임을 진 사도와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집사들이 구별되어 있다. 이와 같이 목회자는 부르심에서 차이가 있고 맡겨진 역할에서 평신도와 구별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2. 목회자는 교회의 질서를 위해 영적 지도력의 권위를 부여받았다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20:28).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 에베소교회 장로들만 불러서 간절히 부탁한 말씀이다.

사람마다 은혜의 체험이 있지만 교회를 책임지고 이끄는 역할은 부르심과 전문성과 영적인 훈련이 검증되어야 한다. ‘만인 제사장의 신분을 들먹이며 누구든지 설교할 권한과 목양의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면 교회는 어떻게 될까? 교회 공동체는 질서가 무너지고 자칫하면 땅 위에 있는 제도적 교회마저 부인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비행기의 기장은 그의 역할에 합당한 전문성으로 검증을 마친 사람이 조종석에 앉는 것이 마땅하다. 기장의 실력과 판단 한 번에 수백 명의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목회자도 영적인 기장과 같다. 하나님은 목회자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을 향하여 안전한 비행을 하도록 책임지는 사명을 부여하셨다.

 

 

 

@ 평신도 일꾼은 목회자의 손에서 길러져야 한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를 주목해 보라. 그는 엘리사를 주인으로 모신 까닭에 기적의 현장을 목격했고 은총의 통로로 쓰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주인의 뜻과 가치를 따르지 않고 기어코 나아만의 금품을 받아냈다. 게하시의 모습에서 보듯이, 평신도 일꾼이 저절로 목회의 동역자로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와 함께 말씀과 생각을 나눔으로 그 인격과 안목이 철저하게 빚어져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 이유는, 목회자의 목회 철학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동역자로 세워지기 위함이다. 평신도들 가운데는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서 나온 내가 복음’, ‘교회론’, 심지어 목회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교회관이 확고하므로 자기 생각과 방향이 달라지면 견디지 못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목회 철학이 관철되도록 거듭 강조하거나 뒤에서 불평하거나 목회자를 힘들게 한다. 이런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말씀 속에서 그의 판단과 생각을 가지치기하고 목회자에게 허락하신 목회 비전과 철학을 공감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이러한 수고를 더하지 않고 평신도 동역자를 기대하는 것은 마치 심지 않고 거두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다.

 

 

@ 평신도 일꾼을 이해하고 배려함이 필요하다

 

목회의 시간이 흐르면서 느껴지는 것은 성도들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내면까지 어루만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평신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평신도의 존재와 역할과 고뇌를 알아 갈수록 목양은 더 행복해지리라 믿는다.

 

1. 평신도 일꾼은 양날의 검과 같다

TV 프로그램에 요리 시간이 많이 나온다. 요리사가 예리한 칼을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면 전문가의 솜씨가 느껴진다. 만약 요리사의 예리한 칼을 어린아이가 만진다면 어떻게 될까? 칼을 휘두르는 만큼 위험이 증폭된다. 평신도 일꾼도 예리한 검처럼 교회 건강에 중요한 사람으로 세워지기도 하고, 반대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리에 서기도 한다. 어떤 목회자는 이런 부정적인 요소 때문에 평신도를 말씀으로 성장시키는 일을 주저한다. 실제로 분쟁하는 교회의 구도를 보면 목회자의 불안한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양날의 검과 같은 평신도는 여전히 존재하고, 목회자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평신도를 이해하는 공부를 하고 목회자의 모본을 보여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들의 바람을 듣고 소명의식을 고취시키면 함께 걷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리라. 최선을 다한 이후에는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면 된다.

 

2. 평신도 일꾼은 목회자의 동역자다

개척교회를 30년간 섬기시고 은퇴하신 목사님의 글 제목이다. “목사의 겸손이 당회를 살립니다.” 목사님은 자신이 다혈질이고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말 빠르고 발 빠르고 성질이 불같은데 성경을 볼수록 나는 날마다 죽노라외치신 사도 바울의 고백이 마음에 와 닿았다. 목사님은 당회 때마다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의견의 불일치가 있으면 죄송합니다. 다음에 한 번 더 논의하지요.” 한 발 뒤로 물러가서 기도하고 기다렸다. 어느 날 은퇴하시는 장로님이 찾아왔다. “목사님, 제가 목사님 같은 분 만나지 않았으면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를 오래 참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고백은 목회자의 상급이다.

교회를 위한 목회자의 권위는 겸손한 자세로 평신도를 동역자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동역자 의식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과 지시하고 명령하는 자의 위치에서 접근하는 것은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목회자의 성숙한 태도는 화평과 일치를 이루어내고 평신도 일꾼들로 하여금 교회 사랑, 목회자 사랑을 깨닫게 만든다. 목회자 자신의 실수와 부족함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평신도들의 작은 수고에도 격려를 아끼지 않는 목회자는 진정한 인격자다. 평신도가 목회자에게 바라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함께 동역하는 자세로 존중해 주는 말 한마디, 함께 논의해 주고 귀 기울여 주는 태도다.

 

3. 평신도 일꾼은 변화되거나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자녀를 키워 본 부모라면 성장하는 기간 동안 변화무쌍한 시간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귀여웠던 아이가 반항하는 청소년이 되고 고뇌하는 젊음의 시간을 보내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 사람의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평신도 일꾼들도 어린 자녀같이 변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은혜받고 헌신의 열정이 넘쳐 목회자를 기쁘게 할 때도 있지만, 작은 일에 시험 들거나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순종적이던 일꾼이 어느 때부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불손한 태도의 사람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물이 흐르지 않고 갇혀 있으면 변질되듯이 평신도 일꾼들도 은혜의 물결을 따라 더 성숙하든지, 멈추어서 퇴보하든지 변화한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 목회자도 상처를 덜 받게 된다. 예수님의 일등 제자들도 변심하고 도망가지 않았던가. 그 사실을 기억하면 예수님처럼 성도를 넉넉한 가슴으로 보듬어 줄 수 있으리라.

 

 

 

@ 교회에 합당한 평신도 지도자의 모습

 

평신도 지도자는 믿음과 삶의 모본이 되어야 한다. 평신도 지도자가 합당치 않는 말과 행동을 하면 많은 사람이 시험에 든다. 평신도 지도자 한 사람을 세우는 일은 신중에 신중을 더함이 옳다.

 

1. 사람 중심이 아닌 말씀 중심의 사람이어야 한다

일꾼으로 세우고 나니 겉모습과 다르게 자기중심, 사람 중심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죽하면 직분자가 되고 나서 믿음이 더 좋아진 사람은 많지 않다라는 말이 전해져 오겠는가. 신도 지도자가 되므로 마음이 변질된 경우도 있지만, 처음부터 신앙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분별하지 못한 탓도 있다. 평신도 지도자가 말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사람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다. 소금은 짠맛을 잃으면 버리면 그만이지만 일꾼이 말씀 중심으로 서 있지 않으면 교회가 사람 소리로 시끄러워진다.

고린도교회가 대표적인 모습이다. 지도자를 따라 각파가 나누어졌기에 바울 사도는 심히 꾸짖었다.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고전 1:13,17). 사도 바울의 외침이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각인되지 않으면 건강한 교회는 만들어질 수 없다. 교회를 세우는 평신도 지도자는 확고한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무장해야 한다.

 

2. 온유와 겸손을 갖춘 좋은 성품의 사람이어야 한다

평신도 일꾼은 신앙과 더불어 기본적인 성품이 착하고 좋아야 한다. 성품이 좋다는 말은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 배려하는 넉넉한 품성이다. 조금 기분 나쁘고 서운해도 곧 털어버리고, 내 생각과 달라도 품어 내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다. 이기적이고 강퍅한 성품의 사람은 아무리 은혜를 받아도 한순간 은혜를 뒤엎고 혈기를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 교회 평신도 지도자 가운데 인성이 몹시 나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되거나 화가 나면 목회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목회자가 끝까지 인격적으로 예의 바르게 응대하면 ! 너도 욕 좀 해 봐라고 한다니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런 사람은 선량한 성도 100, 1,000명이 있어도 감당하기 어렵다. 그는 쉬지 않고 두루 돌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처럼 사람들의 영혼을 물어뜯는 자다. 강퍅하고 사나운 성품이 거칠 것 없이 터져 나오는 그의 모습을 어찌 교회의 일꾼이라 하겠는가. 평신도 지도자는 능력보다는 화목할 수 있는 성품이 더 중요한 요건이 된다.

 

3. 성숙한 배우자를 둔 화목한 가정의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우리 교회 현장에서 귀한 평신도 지도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성숙한 배우자와 화목한 가정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가장 큰 은혜라고 고백한다. 그분들의 성숙한 동역이 아니었다면 많은 비구름을 헤치고 새로운 역사들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 우리 교회뿐이겠는가. 모든 주의 교회는 성숙한 평신도 지도자들을 통해서 세워져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신도 지도자와 성숙한 배우자는 교회 공동체를 지지하는 받침대가 된다.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면 평신도 지도자의 발언과 태도는 많은 비를 몰고 올 수도 있고 비구름을 몰아낼 수도 있다. 특히 배우자들의 입김과 영향력은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일꾼을 세울 때는 반드시 본

인에 대한 검증과 더불어 배우자의 믿음과 인품의 성숙함, 관계성을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담임 목회자를 청빙할 때 목회자 본인뿐 아니라 사모에 대해서 살펴보는 이유와 같다. 좋은 일꾼에게는 반드시 격조 있고 성숙한 배우자의 내조가 함께 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4. 영혼의 심지가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 권사님의 간증을 들었다. 믿고 따랐던 평신도 지도자가 자신을 집으로 초대했다.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평신도 지도자는 상상하지 못했던 목회자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권사님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목회자에 대한 신뢰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직감하고 동조하지 않았다. 그 평신도 지도자는 이런 방법을 통해서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목회자를 몰아내기 위한 전략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교회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우왕좌왕하던 성도들은 친하게 지냈던 동료의 말을 듣고 움직였지만 권사님은 마음의 중심을 지켰다.

교회를 혼란에 빠트리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님을 확신하고 성도들 몇 분과 함께 기도회를 시작했다. 교회와 목회자를 지키기 위한 평신도 기도회가 큰 불길을 일으켜서 마침내 온 교회의 기도회가 되었고 교회를 살려 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악한 자들의 거짓을 쉽게 믿고 따라가는 성도들을 보면서 권사님은 선포했다. “나는 교회를 위해서 내 생명을 바치겠습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와 주님이 세우신 목자를 믿지 않고 방황하면 누구를 믿고 따르는 것이 될까. 권사님은 주님 사랑, 교회 사랑의 본질을 알고 흔들리지 않았다.

 

 

@ 평신도 지도자를 대하는 사모의 지혜

 

요즈음 시대의 사모님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전공도 분명하여 매우 똑똑하다. 문화와 센스와 미적인 감각까지 갖추어서 멋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목회자의 아내로서 교회를 이해하고 평신도가 누구인지, 자신의 역할에 대한 공부와 연구가 좀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부해서 전공을 만들 듯이 사모도 배움으로써 지혜를 얻게 된다.

 

1. 평신도를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사모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부터 성도를 귀히 여기는 것이다. ‘사모라는 호칭이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신분의 구별이나 더 우월한 직분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대접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섬김받는 것이 익숙한 사모도 가끔 있다고 들었다. 마치 자신이 지도자인 것처럼 성도를 낮추어서 대하고 아무에게나 가르치려고 다가가는 사모의 모습은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성도는 하나님의 양이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벧전 5:2). 평신도는 하나님께 소속된 양이고 목회자는 그 양을 위탁받은 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양을 귀히 여기는 것은 종의 기본자세다. 때로는 뿔난 양이 종을 들이받고 힘들게 만들지만, 그들 역시 주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 있음을 믿으면 많은 문제는 해결이 된다. 마음으로 평신도를 귀히 여기는 것은 기쁨으로 사역을 감당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 평신도의 동역을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평신도 지도자는 목회자의 긴 팔이 되어 함께 교회를 세워 나간다. 사모는 늘 평신도들의 동역을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면 성도를 향한 서운함이나 불평이 사라진다. 성도들의 헌신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감사함은 커진다. 성도들에게 인사할 때도 감사의 마음을 담고,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도 감사의 마음을 담으면 그 진심이 전달되리라 믿는다.

나아가서 평신도 지도자들에게도 격려와 위로가 필요한 때가 있다. 이때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사모가 바쁜 남편을 대신해서 카드 한 장, 혹은 손수건 한 장이라도 준비해서 목회자에게 건네주고 사랑을 표현하게 하면 큰 격려가 될 것이다. 때로는 목회자가 맛있는 식사 한 번 대접하므로 성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사역으로 바쁜 목회자에게 모든 것을 미루다가 감사할 기회, 사랑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모가 지혜로운 사모다.

 

3. 평신도의 수고를 인정하고 칭찬해 줌이 필요하다

성탄의 계절이 되면 교회가 분주하다. 식당에서는 김장을 담그고, 현관과 마당에는 성탄 장식을 하고, 소그룹은 방학을 위한 마무리가 한창이고 할 일이 줄지어서 기다리고 있다. 곳곳마다 성도들의 수고와 헌신이 새겨지는 순간이다. 특히 마당 한가운데에 성탄목을 세우는 날은 날씨도 무척 춥다. 책임자이신 권사님은 찬바람으로 얼얼한 뺨을 비비면서 일하시니 그저 송구스럽다. 이 수고를 함께 경험하도록 훈련생들을 꽃밭 만들기와 성탄 장식에 참여시켰다. 훈련생들은 단번에 이 봉사가 얼마나 큰 수고인지 알아차렸다. 선배들의 노고에 아낌없는 칭찬을 쏟아 놓았다. 사모 혼자서 격려하는 것은 물 한 방울 같지만 모든 후배 성도

들이 함께 격려하니 칭찬의 강을 이루고 그 칭찬은 또 아래로 흘러간다. 얼마나 잘했느냐가 중심이 아니다.

헌신하는 성도의 노력과 태도를 인정해 주는 것이 칭찬이다. 봉사자들에게 인정의 말과 칭찬으로 격려하는 것은 사모의 중요한 사역이다.

 

4. 갈등이 있을 때 화평의 다리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목회자 부부의 관계처럼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에도 갈등하고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마음이 무거운 목회자는 내밀한 고민을 아내에게만 털어놓는다. 그때에 사모의 지혜가 발휘되어야 한다. 우선 남편의 힘든 마음을 받아 주고 공감하여 정서적인 안정을 누리게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만 끝나면 안 된다. 남편의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 느끼는 시점에 갈등의 내용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지혜롭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남편의 예민해진 마음이나 평신도 일꾼의 예민해지는 마음 상태를 잘 해석해서 오해나 깊은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사모가 평신도 일꾼의 진심과 감사한 부분을 다시 일깨워 주면 목회자가 마음을 추스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사모의 기도 시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복 주시고 어루만져 주시기를 간구하면 사명을 다하는 셈이다.

평신도는 자신의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드리면서 헌신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목회자의 자랑스러운 동역자요, 보배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을 통해 사역에 동역했던 아름다운 일꾼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다. 오늘 우리에게도 로마서 16장이 이어질 것을 확신하며 평신도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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