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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교제는

영적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조성희 사모(행복연구원장)


얼마 전 영화관의 열기를 뜨겁게 달구어 놓은 영화 <덩케르크>를 보았다. 세계 제2차 대전에서 독일군에게 포

위되어 전멸 위기에 놓인 연합군이 덩케르크 해안 마을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다이나모 작전’을 그린 영화다.

탈출의 기회를 간절히 기다리는 젊은 군인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것을 지키기 위해 값을 치르는 희생자가

있었음에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팀워크에 눈물이 흘렀다.
영국은 최고의 함대를 자랑하는 나라였지만, 넓은 전선 때문에 수십만의 군대를 구출하기에는 선박이 부족했다.

수천 명의 병사를 태운 군함이 공중 폭격으로 인하여 여러 번 침몰한 요인도 있었다. 결국 민간의 선박들에게

탈출 작전 지원을 요청했다. 바다에서 일하던 민간인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자 즉시 자신의 일을 접고 달려가는

결연함을 보였다. 그들은 공중 폭격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명령을 따라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당시에 투입된 민간 선박은 약 900여 척이 된다고 한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 일에 투입된 배는 그 종류가 다

양했다. 화물선, 유람선, 호화 요트, 통통배, 학교 실습용 보트까지, 모두 나라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기로 결단한

것이다. 연료가 바닥날 때까지 하늘에서 종횡무진으로 선박들을 엄호하는 조종사들의 사투를 포함하여 하늘과

땅, 바다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군과 민간이 연합하여 만들어 낸 탈출 작전은 9일 동안

 총 33만이 넘는 군인을 탈출시켰다. 탈출한 병사들은 후에 미군의 무기를 지원받고 2차 대전에 다시 투입되어

큰 전과를 이루었다고 한다.

‘덩케르크 작전’이야말로 진정한 연합을 잘 보여 준 사례다. 각국의 정상들이 충분한 소통과 나눔의 교제를 통해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세계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연합군이 탄생되었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것

이다.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에서 죄의 속박을 벗어나 영적인 승리를 꿈꾸는 성도들에게도 ‘덩케르크 작전’ 이 필요하

다고 생각한다. 혼자서는 탈출하기 어렵지만 믿음의 성도들과 함께 교제하고 연합하면 세상의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힘이 생기리라. 이러한 힘을 만들어 주는 성도의 교제란 서로 사귀어 가까이 지내는 것을 뜻하며

헬라어는 ‘코이노니아’라고 한다. ‘코이노니아’의 뜻은 바로 ‘연합, 교통, 친교, 사귐, 나눔’ 등이다. 죄인으로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그의 자녀가 되어서 성령 안에서 교제하게 되므로 진정한 교제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b).

오늘의 교회들도 ‘코이노니아’를 통해 한 영혼을 얻고, 세상에서도 칭찬 듣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 기록된 말씀처럼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도들이 연합하면 교회는 영적인 난공불락의 요새가 된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교회는 세상의 위협과 공격을 받아도 끄덕하지 않고 승리의 깃발을 흔들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요새를

통하여 오고 오는 세대 가운데서 견고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신다.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가

교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혈관의 건강이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듯 성도의 교제가 활발하게 일어나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
강한 주님의 몸으로 세울 수 있다. 복음으로 인하여 투옥된 바울 사도가 복음의 동역자인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면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가 각 사람을 세우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잘 나타나 있다.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몬 1:5~7). 사도는 지금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
혀 있으니 연약한 성도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고 흔들렸겠는가. 그때 빌레몬은 성도들에게 다가가 사랑으

로 마음을 다독이고 격려하여 성도들이 평안을 얻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빌레몬은 외롭고 힘든 사도의 걱정

을 덜어 주었을 뿐 아니라 많은 기쁨과 위로를 안겨 주었다. 빌레몬과 사도의 교회처럼 풍성한 사랑의 교제가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함을 본다.


| 성도들이 교회를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우리 교회는 격년으로 열리는 ‘한가족 수련회’가 있다. 2박 3일 동안 함께 은혜받고 풍성한 교제의 시간을 가

진다. 프로그램 가운데 성도들이 교구별로 준비한 은사 발표회 시간이 있다. 연세 드신 어른과 중년의 집사, 청

년 성도들, 오랜 신자, 새가족 모두 어우러져서 찬양과 연극과 율동을 준비한다.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지 늘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각 팀들은 이 시간을 위해서 수련회 한두 달 전부터 모여서 연습한다. 요란한 웃음소리와

함께 시끌벅적한 연습 시간의 출발이 곧 교구의 축제가 시작되었음을 알려 준다. 성도들은 수련회를 통해서

 ‘함께’ 하는 기쁨을 발견하고 행복해한다. ‘함께’ 하는 기쁨을 맛본 성도들은 수련회의 추억을 나누면서 행복한

교회생활을 이어가고 교회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을 본다.
성도들은 교제를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므로 기쁨이 배가 된다. 서로를 좋아하므로 강력한 접착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떨어지기 싫어한다. 서로의 나눔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면 위로받고 동질감을

느낀다. 또한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의 문제를 들으면 “아, 나의 문제는 그렇게 큰 것이 아니었구나”

감사하고 더 어려운 성도를 돌아보는 마음이 생긴다. 교제를 통해 삶의 위로와 활력을 얻게 되면 ‘공동체를

향한 사랑’이 싹튼다. 삶의 중심이 자연스럽게 교회 중심으로 바뀐다. 교회 안에서 주님 사랑, 교회 사랑을

배우면 무엇이라도 함께 감당하려는 의욕이 생긴다. 이러한 복된 성도들의 교제는 교회의 영적 에너지가 된다.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교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 성도들이 영적인 동역자 의식을 공유하게 만든다


‘혼자’와 ‘함께’는 믿음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람은 짧은 시간에 믿음
의 성장과 적극성을 보인다. 수동적으로 사랑을 받기만 하는 자리에서 사랑을 베푸는 자리로 나아가고 동역
하는 것을 배운다. 이들은 예외 없이 목회자의 동역자, 주님의 동역자로 자라 간다. 한 사람의 평신도 동역
자가 목회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우리 교회가 지하의 작은 예배당에 머물 때, 큰 시험거리가 생겼다. 가뜩이나 교회의 분쟁으로 사건이 많은

때에 재정 사고까지 발생했다. 재정을 맡은 사람의 잘못이었지만 당회는 고민 끝에 이 문제를 성도들 앞에
솔직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비게 된 재정을 담임 목회자와 당회 장로님(당시에 한 분이었다), 평신도 리더였던 

한 집사님께서 자원해서 책임지기로 했다. 장로님, 집사님께서 내실 부분들을 정하고 그 나머지는 담임목회자의

몫이 되었다. 우리도 손에 쥐고 있는 돈이 없어서 막막했지만 담대하게 책임질 것을 선언했다.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밤, 몇 분의 집사님 가정이 우리를 찾아왔다. “목사님! 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성도들
이 시험 들지 않도록 잘 해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무슨 돈이 있어 다 갚으시겠습니까? 저
희들도 마음을 모았습니다. 받아 주십시오.” 그분들은 적지 않은 돈을 모아서 전달했다. 우리 목회의 평생에
잊지 못할 사건이었다. 그분들은 평소에 함께 찬양하고 교제하며 교회를 섬겼던 평신도 지도자들이었다. 아

다웠던 그들의 교제는 교회의 어려운 때에 큰 동역으로 이어졌다.


| 성도들이 서로의 모본이 되어 성숙함을 배우게 한다


성도들이 서로를 돌아보고 교제하게 되면 목회자가 줄 수 없는 배움이 일어난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
때문에 선한 영향을 받는데 그 영향력이 커서 물을 머금는 스펀지처럼 젖어든다. 해마다 모집하는 제자 훈
련생들에게 지원 동기를 물어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소그룹 리더들을 거론한다. 멀리서 가르치는 목회자보
다 가까이서 교제하는 성도의 영향력이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매년 7, 8월이면 전교우 성경 통독 대회가 열린다. 여름 수련회를 비롯하여 휴가를 보내기에도 바쁜 계절이

지만 십수 년 동안 진행되어 왔다. 성경 통독이 정착하게 된 것은 목회자의 열망과 성도들 서로간의 격려와

연합의 힘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불평하는 사람, 미리 단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소그룹의 가족들은 그러

한 동료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함께 성경을 읽고, 리더의 집에서 숙박하면서 읽고, 모든 수단과 방

법을 동원해서 말씀을 읽게 하려고 격려한다. 목회자의 말은 피해갈 수 있는데 이 사랑의 그물에 한 번 걸리

면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 결과 선선한 바람을 느끼는 가을이 되면 모두 함께 모여서 말씀으로 주신 은

혜를 나눈다. 생애 첫 일독을 한 성도들, 2독 이상의 다독자도 많이 나오고 10독 이상의 성도들도 많이 있다.

생애 일독자들은 대부분 그들을 이끌어 주는 동료, 선배들이 있었다. 말씀의 맛을 경험한 성도들은 성경 속
에서 자신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결단하여 성숙으로 나아간다. 성도의 모범이 왜 귀중한
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다.



성도의 바람직한 교제는

말씀의 울타리 안에서 빚어진다

 

“친구를 잘못 만나서~” 이 말은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어른들도 어떤 종류
의 사람과 친밀한가에 따라서 신앙의 태도와 가치가 달라진다. 목회자가 권고하는 말을 듣고 따르기는 어려
운데 의외로 주변의 달콤한 말에 쉽게 동화되고 휘청거리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말씀으
로 성도의 바람직한 교제의 원칙을 만들어 안전한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 성도들이 자신의 영혼과 교회의 덕
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말씀을 통해 성도의 교제가 연령별로 어떻게 이루
어져야 하는지, 양 떼의 형편을 따라 상황에 맞는 목양의 원칙과 피해야 할 사람들까지 구체적으로 교훈하
셨다. 피해야 할 사람들은 그들의 특징과 이름까지 자세히 기록한 후에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경건의 모양
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


어떤 사람들은 “교회는 사랑이 많아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책임지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되면 사랑이 없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성경이 제시하는 사랑은 그 의미가 분명하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2). 성경에서의 사랑은

혼자 덩그러니 존재하지 않는다.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의 4가지 요소가 쌍둥이처럼 함께 있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빠지지 않아야 진리 안에 있는 사랑이 된다. 성경의 렌즈를 끼고 보면 진리에 속한 사랑인지,

인간의 정과 욕심으로 일그러진 사랑인지 정확하게 보인다. 이렇듯 명료한 가르침이 또 어디 있겠는가?

목회자는 성도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을 혼동하지 않도록 정확하게 가르쳐서 결코 나쁜 무리에 휩쓸리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이유를 들어 변명해도 성경의 교훈에서 벗어난 교제의 모습은 합당하지 않다.

성경의 가르침으로 울타리를 삼으면 이 말씀이 기준이 되어 우리의 판단과 분별도 그리 어렵지 않다.



영혼을 다치게 하는 교제는

단호하게 금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대해서 절절한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런데 의외로 교회 안에서 잘
못된 교제로 인해 시험에 들고 상처를 받아 교회를 떠나는 사례도 많이 있다. 어느 교회나 한두 번씩 겪는
이런 상황들은 목회자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기에 가슴이 아프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목회자
는 성도를 실족시키는 교제가 없는지 살펴서 단호한 원칙을 세워 두는 것이 필요하다. 용납하지 말아야 할
교제는 어떤 유형인가.


| 진리를 거스르는 사람과의 교제


진리를 거스르는 자들은 살그머니 들어와서 목회자와 성도, 성도와 성도 사이에서 이간질하고 관계를 분열
시켜 교회를 흔들어 놓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들 가운데는 한때 교회를 다녔는데 잘못된 교제를 통하여 믿
음에서 이탈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교회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기에 거짓 가면을 쓰고 성숙한 성도인 양
다가온다. 그들의 본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점이 되면 수습이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
도들에게 어떤 징후가 느껴지면 곧바로 초기 대응할 수 있도록 미리 가르치고 대응하는 매뉴얼도 있으면 좋
겠다. 교회를 허는 자들의 접근 방식과 대화, 관계의 사례들을 담은 책자와 언론의 기사, 인터넷 전문 사이
트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수시로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들이 세웠던 교회에도 거짓된 자들이 항상 있었다. 사도들은 진리에서 어긋난 교제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하게 경고하셨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딛 3:10). 바울 사도가 냉혹해서
사람을 끊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복음을 훼손하고 영혼을 유괴하는 자들이기 때문
에 멀리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 있으므로 그 배후에 있는 영적인 존재를 정확하
게 파악하고 드러내야 한다.


| 금전, 영리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제


자신의 욕심과 유익을 위해 교회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믿음을 빙자하여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사실
은 자신의 음흉한 목적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이다. 목회자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람들도 이 부류의 사
람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서 자신을 완전히 신뢰하게 만든 이후에 숨겨 놓았던 발톱을 세운다.
그들은 비밀리에 성도들에게 접근하여 돈이 급히 필요하다고 아쉬운 소리를 한다. 목회자에게도 귀가 솔깃
해지는 제안을 던진다. “이번 일만 잘되면 헌금하려고 합니다.” 목회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건축이나 각종

이권에 관심을 보이고 자신의 사업장을 끌어들인다. 이 같은 일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며 어떤 경우에도 허
락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는 그러한 때를 대비해서 성경적인 원칙을 가지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태도로 권면
할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가 원칙을 지킴으로 인해 그 사람이 시험에 들거나 교회를 떠나는 일이 생길까 두
려워하지 말자. 혹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사람의 숨겨져 왔던 본 모습을 보는 것이니 나중의 더 큰 어려움을
방지한 것이다. 만약 목회자가 성경적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성도들이 올무에 걸리고,
넘어져서 그동안 쌓아 왔던 믿음의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된다.


| 지나친 친밀함으로 이루어지는 교제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과 환경에 의해서 빚어진 자신만의 성품이 있다. 그런데 평범한 범주를 벗어난 성향의
사람들도 가끔 마주한다. 지나칠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고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사람, 자신이 원하는
모양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처 받는 사람, 오직 한 사람에게만 집착하는 유형들이 있다. 이런 사람
들은 정서가 허약한 사람이므로 조심해야 할 유형이다. 또 어떤 유형은 소박하고 털털해서 누구에게나 고향
과 나이를 물어 친구를 만들거나 가족관계를 만든다. “형님 동생, 친구, 이모 조카” 등 촌수를 만들어서 호칭
을 붙이고 서로 말을 낮추거나 예의와 격을 무시하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한다. 이성 간에도 “오빠와 동생”을
맺고 특별한 관계로 발전시켜 나간다. 가족의 호칭으로 관계를 맺고 교회 안에서 과시하는 것은 공동체의 덕
을 해치는 일이므로 용납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맺어진 영적 가족이 되었다. 하
지만 육신을 입고 사는 이상,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 무시하여 덕이 되지 않는 교제


교회 안에는 딱딱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어린아이 신앙도 있지만, 영혼에 깊은 병이 든 중환자도 있다. 그들은

마음속에 쓴 뿌리가 가득하여서 입만 열면 독버섯처럼 사람들의 영혼을 상하게 한다. 성도들의 믿음을 방해하

고 장애물을 놓아 결국은 걸려 넘어지게 만든다. 그들은 한 영혼의 중요성이나 교회의 건강성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에만 몰두한다.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일삼고 공동체의 질서를 무시한다. 목회자를 존중함이 없고, 영적 질서를

무시하며, 오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이다. 불평불만이 가득하며 매사에 부정적인 시각으로 판단한다. 이런 사람

들과 교제하면 성도들의 영혼이 메마른 사막에 서 있는 나무같이 온전하게 자라지 못한다.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생각난다. 두 사람은 하나님께 올린 불이 합당치 않아 죽임을 당했다.

대제사장의 아들인 두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올릴 불을 정확히 알지 못했겠는가? 그들 마음에 하나님과 아버

지의 가르침을 업신여기는 태도가 수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두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죄악을 결정할 때,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악을 행하는 사람 곁에는 항상 악을 도모하는 자가 함께 있다.

그들의 결국은 멸망이다.



성도와 목회자와의 관계에서

바람직한 교제

 

로마서 16장 말씀을 읽다가 가슴이 뭉클했다. 위대한 사도 바울 곁에 있었던 소박하고 따스한 동역자 이야기
였다.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고 누구는 어떻게 위로가 되었는지 소상하게 나온다. 마치 일기를 쓰듯이
기록한 말씀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아~ 위대한 대 사도에게도 믿음의 교제가 힘이 되었구나.” 우리에게도
성도와의 교제를 통하여 얻는 위로와 격려가 힘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영적 지도자로서의 품격을 지
키기 위해 성도와의 교제에서도 적절한 기준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친밀한 관계라도 지혜로운 나눔이 필요하다


젊고 소탈한 사모들이 말한다. “저는 꾸미는 것 싫어요.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성도들과 편하게 지내요.”
어떤 경우는 목회자의 사택을 오픈하여 성도들이 편하게 드나들면서 살림을 도와 주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사모 자신이 가릴 것이 없다는 당당함의 표현이다. 바쁘게 사는 사모를 도와 주는 성도와 사모의 진솔한 관
계는 아름답지만, 어느 정도의 절제는 필요하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포장하라는 말이 아니다. 개인의 생활
에도 지켜져야 할 내밀한 영역이 있다면 영적 지도자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사모들을 힘들게 하는 소문의 진원지는 대부분 멀리 있지 않다. 목회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목회자의
사택을 드나드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기에 그의 말은 영향력이 크다. 관계가 좋을 때는 더없이 은혜롭
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상하거나 관계가 불편해지면 독이 되어서 돌아온다. 거리낌 없이 교제했던 그 편
함이 후에 큰 문제를 야기하는 올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모는 힘들고 어렵더라도 내밀한 자신의 공간
만큼은 주님과 나누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성숙함에 이르는 길이라 믿는다.


| 성도의 도움을 받을 때도 경계선을 지켜야 한다


목회자에게 성도와의 친밀함은 때로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천사와 같은 역할, 혹은 엘리야를 도왔던 까마귀
와 같은 역할로 다가올 때가 있다. 세상에서 기댈 곳이 없는 목회자에게는 그 무엇보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
나 성도의 도움을 받을 때에도 자신의 원칙을 가져야 한다. 목회자가 먼저 경제적인 아쉬움과 어려움을 토

하지 않는다는 것과 성도의 사랑도 절제하면서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도 결국은 인간

관계이기 때문에 언제나 도움을 주고 언제나 도움을 받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 어떤 성도는 선한

마음으로 목회자의 가정을 도왔지만 목회자가 그것을 당연시할 때 크게 시험 든다는 고백을 한다.

어디 성도뿐이겠는가. 목회자도 성도의 도움을 받는 이유로 그를 영적으로 지도하기 어렵다면 거절해야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세상사의 구전도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 성도 사이의 분쟁에서 재판장이 되지 말아야 한다


가족 같은 교회공동체지만, 사람이 모인 곳이니 사소한 말과 감정의 대립으로 다툼이 일어날 때가 있다. 때
로는 어린아이들처럼 내 편, 네 편을 가르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생기면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와서
자신의 편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눈물을 글썽이며 상처 받은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마음은 공감해 주
되 상대방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조심해야 한다. 성도의 말만 듣고 “아니, 그 집사님이 그런 말을 했다구
요? 그 집사님이 잘못하셨네요.” 이렇게 반응하면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된다. 목회자의 위로를 받은
성도는 돌아서는 즉시 들은 말을 자기 식대로 해석해서 옮기게 된다. “글쎄, 목사님, 사모님도 그 집사가 그러
면 안 된다고 하셨어.” 그 다음에는 누가 찾아올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결국 목회자는 이편, 저편 달래느
라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오해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관계 가운데에서 목회자가 본의 아니게
휘말리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특별히 특정 성도를 두둔한다는 소문은 결코 나지 말아야 한다.


| 목회자가 인의 장막에 가리지 않게 해야 한다


어떤 교회라도 목회자의 필요를 예민하게 살피고 잘 섬기는 성도가 있다. 무더운 여름날의 청량음료처럼 목
회자의 기쁨이 된다. 목회자는 편안하게 섬겨 주는 성도를 찾게 되고 더 많이 의지하고 친밀해진다. 목회자
와 성도가 신뢰의 관계로 발전하면 그 성도는 목회자의 오른팔, 왼팔 같은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다. 목회자
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은 지원자로 부각되지만 공동체에는 좋지 않은 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목회자가 그
성도를 통하여서 정보를 듣거나 지나치게 그의 말만 신뢰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
신도 모르게 특정한 성도들이 만들어 낸 인의 장막에 가려져서 교회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잘못
된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럴수록 그 성도의 입김은 다른 성도들 간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왕의 가장 가
까운 사람들이 왕의 눈을 가려서 왜곡된 정치를 하고 왕권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결과는 조선 왕조에서도 많
이 본 장면이다.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꿈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위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나 실제
로 루터의 삶을 추적해 보면 루터 혼자 이루어 낸 종교개혁이 아니었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주연이라면 주
연을 돕기 위해 일생을 헌신한 숨은 조력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의 일생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루터와 함
께 하나님 나라를 꿈꾸었던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는 루터의 무덤 맞은편에서 함께 누워 있는 개혁의 동역
자 ‘멜랑히톤’이 있다.
멜랑히톤은 12세에 하이델베르크대학을 마치고, 튜빙겐대학에서 수사학과 변증학을 공부한 언어의 천재였
다. 그는 비텐베르크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루터가 연구한 신학 원리들을 체계화시키는 방대한 작업을
감당했다. 사실 루터는 많은 저술 작업을 했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멜랑히톤은 루터의 신학
사상과 저술 자료들을 수사학적인 언어로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냈다. 멜랑히톤의 노력으로 루터
의 주장은 사람들의 가슴에 개혁의 불을 지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종교개혁은 루터와 멜랑히톤을 포함한 주님의 성도들이 함께 이루어 낸 작품이
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꿈으로 불타는 성도들을 모으시고 그들을 통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
신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고의 선물이며 이 땅에서 승리하게 만드는 영적 난공

불락의 요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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