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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조성희 사모(행복연구원장)



얼마 전 남미 선교대회에 참여하기 위하여 브라질을 방문했다. 선교대회가 끝난 후 페루의 마추픽추(Machu

Picchu)를 찾았다. 이곳은 해발 2,400m의 높은 산 위에 건설된 잉카제국의 공중도시다. 공중의 정원이라는

표현에 걸맞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크고 우람한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탑을 쌓듯이 지은 신전과 집, 잘

만들어진 길과 수로까지 완벽한 마을의 모습에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이 높은 산에 저렇게 우람한

돌들을 끌어 올려 도시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것이 불가사의라고 한다.

잉카제국은 남아메리카 인디언이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 산맥의 고원 지대를 따라 건
설한 나라다. 잉카제국은 유럽의 여느 나라 못지않은 찬란한 문화와 황금, 건축 실력이 있었다. 9대 왕이었던
‘파차쿠티’ 황제 시기에는 수십만의 사람을 거느리며 잉카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파차쿠티 황제가 죽은
이후로는 왕권을 잡기 위한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내부 전쟁은 스페인의 침공을 직접 받게 된 1532년
까지 계속되었다. 잉카제국 멸망의 도화선이 된 14대 황제 ‘아타우알파’도 이복형제와 전쟁을 치르고 황제가 되
었다. 그는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세우려고 스페인과 화친 조약을 맺었으나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
제독에게 생포되고 말았다. 왕이 생포되자 잉카제국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우여곡절 끝에 1535년 완전히 멸망
했다. 중요한 것은 200명도 안 되는 스페인 군사가 어떻게 수십만의 잉카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었는가 하는 의
문이다. 문자가 없었던 잉카제국의 이야기는 구전으로만 전해지고, 침략자 스페인의 문서에 기록되었으니 정
확성은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슬픈 역사인 것은 분명하다.
무너진 잉카제국을 보면서 오늘날의 교회가 떠올랐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
다. 교회는 세상과 소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편지다. 이 편지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초청의 메
시지가 담겨 있다. 하나님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편지를 잘 전달하고 영혼을 얻기 위한 하나님의 뜻
이 드러나기를 원하신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견고히 세워갈 수 있을까? 스페인과
같은 대적을 막기 위해서 교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오고 오는 세대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
라를 꿈꾸며 많은 생각을 했다.




잉카제국을 통해서 본

교회와 지역사회

 

하나님의 편지인 교회는 세상에 서 있어야 한다. 세상 속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잉카제국이
주는 교훈을 우리에게 비추어 보고 싶다.


교회는 지역사회와 동떨어진 개교회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200명도 안 되는 스페인 군사가 거대한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것에 대한 추측이 아직도 분분하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잉카 부족의 지도자들이 왕권을 놓고 서로 싸우는 내전 때문이다. 1531년 잉카에 들어온 ‘피사로’는
왕권 다툼으로 만신창이가 된 잉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잔꾀를 낸다. 부족 간에 이간질을 시키고 서로 싸워서
흩어지도록 부추겼다. 어리석은 황제 ‘아타우알파’는 ‘피사로’의 전략대로 동족들과 분열하고 외세인 스페인을
의지하여 화친을 맺었다. 형제끼리 싸우느라 대적을 향해서 대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이다. 분열되었던 잉카

제국의 형제들은 각각 스페인의 함정에 빠져 참혹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온 한국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 열심과 방향이 개교회의 부흥과 성장에만 집중되
지는 않았는지, 형제 교회와 이웃에게는 무관심하고 내 교회만 잘되면 안심하는 사역을 한 것은 아닌지 돌
아보게 된다. 교회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편지가 되려면 개교회만을 생각하는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야 한
다. 교회가 담을 쌓고 혼자 머물게 되면 지역사회와 단절되어서 게토(ghetto)로 남는다. 마치 높은 산자
락에 자리 잡고 고고히 서 있는 수도원과 같이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 형제 교회와 연합하여 지역사회를
품는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백성이 없으면 왕이 없고 나라가 없듯이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면 교회 역시 이
땅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복음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증표이며 이웃과 함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교회는
세상 속에서 복음으로 연합된 하나의 교회가 되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견고히 세워야 한다.


교회는 복음으로 무장하여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피사로’는 왕권 중심인 잉카인들의 특성을 알고 한 사람만 붙잡으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잉카 황제
에게 거짓으로 화친을 요청했다. 황제는 수천 명의 인디언들을 데리고 약속된 장소에 나가면서 중대한 실수
를 범했다. 화친의 조약을 믿고,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인디언들의 손에 무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화친의 장소
에서 스페인 왕에게 충성할 것을 강요당했다. 잉카 황제가 이것을 거부한 순간, 숨어 있던 군인들이 뛰어나
왔다. 그들은 가장 먼저 황제를 사로잡고 무기도 없이 허둥지둥하던 수천의 잉카인들을 단숨에 몰살시켰다.
스페인은 수천 명을 상대하면서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은 희귀한 전쟁을 치른 것이다. 무장을 해제한 채
적진을 향해 나아갔던 잉카 왕은 자신의 목숨은 물론이고 나라의 운명까지 바치고 말았다.
교회는 하나님의 편지가 되어 세상 속에 존재하는 사명이 있지만, 영적인 무장을 해제하고 세상과 어우러져
서는 안 된다. 교회가 세상 속에 있는 것은 적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과 같다. 더욱 예민하게 세상을 관찰
할 뿐 아니라 영적인 무장을 강화해야 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
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세상에 있는 것들은 현란한 광고같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세상의 포로 되게 만든다. 교회는 세속된 것들이 그
럴듯하게 포장해서 다가올 때 맥없이 끌려가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영혼을 유괴하고 가정을 파괴
하는 잘못된 가치와 이론에 대해서 담대하게 선을 긋고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가지는 영적
인 무장이다. 세속 문화와 가치는 언제나 교회를 향하여 맹공격을 가하지만, 교회는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
하여 복음으로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가 어두움에 잠기지 않도록 진리의 횃
불을 높이 들어야 한다.


교회와 세상 사이를 이간질하는 사단의 간계를 경계해야 한다 

‘피사로’는 거짓을 사용해서 황제를 포로로 붙잡고 수만 명의 잉카인들을 조종했다. 황제의 목숨을 살려 준다는
조건으로 많은 황금을 받았으나 결국 황제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황제의 이복동생을 찾아가 왕위를 제
안했다. 인간의 권력 욕망을 자극하여 황제를 처형하는 데 동의를 얻어 낸 것이다. 그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피
사로’는 황제를 죽이고 수많은 잉카인에게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피사로’는 목적을 이루고 난 후, 새롭게
등극시킨 황제도 다시 볼모로 잡아 황금을 바치도록 종용했다. ‘피사로’는 거짓말쟁이고 간교한 자다. 관계를
파괴하는 이간질의 선수였고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모습이 사단을 연상케 한다.
사단은 언제나 거짓과 분열의 영으로 세상에 존재한다. 하나님 나라의 패망과 인간의 영원한 죽음을 최고의 과
제로 삼는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싫어하여 교회가 미움받고 고립되는 일에 힘을 쏟는다.
최첨단의 디지털 기기와 각종 매체를 동원하여 교회와 세상 사이를 이간질하는 데 집중한다. 교회나 성도들의
작은 허물도 크게 부풀리거나 거짓을 동원해서 세상의 비난이 쏟아지게 만든다. 교회가 세상에 미치는 선한 영
향력을 차단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갖가지 음모를 꾸며 믿음의 형제들을 분열시키고 그물에 걸
리기를 기다린다. 예루살렘 성벽을 쌓으면서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대적을 경계했던 느헤미야의 지혜가 필요
하다. 하나님의 선한 일이 방해받지 않도록 사단의 공격을 대비하여 승리하기를 소망한다.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교회가 되려면


교회의 지역사회 참여를 말하면 생각이 양분화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 구원이냐, 영혼 구원이냐를 놓고

설왕설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편지인 교회는 어떤 모습을 가져야 될까.


교회에 맡겨진 두 가지 기능은 선택이 아니라 균형이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구별된 사람들의 공동체다. 동시에 세상으로 파송받은 증인들의 공동체다. 그
러므로 교회가 안고 있는 두 가지 기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만약 교회가 사회 구원에 쏠리게 되면 세상에 빵
을 공급해 주고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
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하신 성경 말씀에 위배된다. 하나님이 세
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이유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또한 교회가 교회 울타리 안에서 머물고 믿는 자들끼리의 만족을 추구한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가두어진 복음이 아니라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복음을 명령하셨다. “가라 세상으로!” 하나
님이 바라시는 두 개의 기능은 모두 교회에게 맡겨 주신 책임이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
다. 중요한 것은 목회자가 어느 한쪽으로 쏠려 균형을 잃으면 성도들의 삶도 신앙의 본질을 놓치고 삶의 방향
이 어긋날 수 있다.
어느 원로목사님의 말씀 속에 등장하는 교회가 있었다. 교회 지도자는 사회 구원을 강조하다 성도들 머리에 띠
를 두르고 데모하는 현장에 동원시켰다. 세월이 흘러 성도들은 다시 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섰다. 이번에는 그
들의 목회자에게 물러가라고 외치는 광경을 연출하였다. 원로목사님은 이것이 담임목회자가 성도들에게 보여
준 모범이라고 하셨다. 교회가 말씀을 기준하여 성도들에게 균형 잡힌 복음을 가르쳐야 할 이유다.


지역사회 섬김을 교회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교회가 지역사회 봉사를 할 때 교회의 유익을 위한 이기적인 도구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순전한 마음과 섬김
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신뢰를 형성함이 매우 중요하다. 교회의 봉사가
우월한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고자세로 느껴지거나 사회봉사를 놓고 거래하듯이 다가가는 태도도 큰 오해와 반
감을 불러일으킨다. “교회가 이것을 해줄 테니 예수 믿으시오.” 이런 유형의 봉사는 마음의 문을 꽁꽁 닫게 만
든다. 실제 세계선교 역사를 보면 유럽에서 파송된 선교사 가운데는 이런 잘못을 범한 경우가 많이 있다. 가난
하고 열악한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함과 동시에 자기 나라의 국익을 위해 원주민을 착취하여 국익의 통로가
된 사례다. 상처가 남아 있는 원주민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며 복음을 전했던 그 나라 사람들을 지금도 거부하는
마음이 강하다고 한다. 이것은 주님의 마음을 품은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만약 교회가 자체의 유익과 이기심
을 추구한다면 지역사회 섬김은 시작하기도 전에 바퀴에 바람 빠진 자동차처럼 주저앉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한다
중남미 27개국 선교대회에 참여하면서 선교사님들의 사역의 고민을 들으니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별반 다르
지 않았다. 여러 종류의 장벽을 뛰어넘고 하나님의 편지가 되려고 애쓰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주일이 되
어 역사가 오래된 한인 교회를 방문했다. 교회는 얼핏 보기에도 위험한 우범지대에 위치했다. 이민 초기부터
그 지역에 기반을 둔 교회는 노숙자들을 먹이고 마약에 중독된 가정의 자녀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사역을 오랫
동안 감당해왔다. 안전에 대해서 염려하는 나의 말에 목사님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교회의 에어컨
을 좀도둑이 뜯어 간 사건이 발생했다. 어디서 도둑을 잡을 수 있겠는가. 할 수 없이 목회자는 그 지역의 두목
에게 이 사건을 전달하고 에어컨 돌려주기를 요청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교회 마당에는 잃어버린 에어컨이
돌아왔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그 지역의 두목은 어린 딸을 교회에 보내고 있었다. 그는 자기 딸을 가
르치고 돌보는 교회의 목사를 존중하여 부하들에게 긴급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누구도 교회를 엿

보거나 함부로 해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범지대에서 오랜 세월 베풀었던 하나님의 사랑이 묘약이 되었
다. 하나님의 사랑이 순수한 동기가 된다면 그 봉사로 녹이지 못할 심령이 어디 있을까.



지역사회를 섬기는

구체적인 준비


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소문이 나서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아야 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이웃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에 젖어 들도록 선한 일에 대한 계획을 잘 준비해야 한다.


교회의 준비


 - 온 교회가 함께 뜻을 모아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교회가 선한 일을 계획할 때 목회자나 앞서 있는 한두 사람의 판단으로 일을 추진하고 선포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성도들은 앞에서는 가만히 있지만 뒤돌아서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들이 수동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히려 교회 앞에서 성도들에게 지도자의 고민을 과제로 던지고 각 팀이나

개인적으로 좋은 생각을 모으게 하면 좋을 것 같다. 격려 차원에서 창의적이고 좋은 의견에는 포상도 정해준다.

성도들은 머리를 맞대고 축제를 준비하듯 설렘으로 의논할 것이다. 성도들과 함께 방향을 정하고 뜻을 모으면

온 교회가 기쁨으로 동참하는 결과를 낳는다. 성도들은 함께 선한 일을 계획한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가 새로남기독학교를 준비할 때 일이 생각난다. 교회 건축을 마친 후, 수백 명의 평신도 지도자들에
게 설문을 받았다. 우리 교회가 이 사회를 위하여 무엇을 하면 좋을까에 대한 질문이었다. 거의 90% 이상의 리
더들이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의 비전을 요청했다. 그 결과 몇 년이 지난 후 교회가 초등학교를 시작할 때 한 건
의 반대 의견도 없었다. 모든 성도들이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물질로 헌신해 주었다. 교회의 꿈이 온 교회가 소
망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으리라.


 - 교회의 재정이 가능한 예산 계획을 세운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좋은 일은 말로써만 되는 것이 아니라 재정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재정 지원이 없이 선
한 일을 지속적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교회가 협의를 거칠 때 재정적인 부분도 충분한 검토가 되
어야 한다. 마음만 앞서서 일을 크게 벌여 놓고 재정의 압박으로 수습을 못 하는 경우가 생기면 지역사회에

덕이 되지 못한다. 교회의 예산을 감안해서 적절한 봉사를 선택하면 온 교회가 버겁지 않고 기쁨으로 감당하는

봉사가 될 수 있다. 만약 이 봉사를 통해 재정적 수입이 산출된다면 그 돈의 규모가 어떠하든 수익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도 미리 협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돈의 행방이 명확하지 않아 오해를 빚기도 하고

큰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있다.
우리 교회는 2001년 교회 건축을 준비하면서 지역사회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카페를

 만들어 지역주민들과 관계를 맺는 첫걸음을 시도했다. 동시에 당회는 카페의 순수익이 얼마가 되든지 100%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성도들의 자원봉사를 통해 지역사회에 기부한 금액은 십수억에

이른다. 서점의 수익금은 지금의 라일락 잡지를 만드는 데 기부하고 있다. 교회가 수익금의 용처를 미리 정하고

실행하니 시험에 들 일이 없고 선한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믿음의 안목으로 지역사회 섬김을

통 크게 작정한 리더들께 늘 감사한 마음이다.


- 교회가 쉽게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출발한다
선한 일의 열매나 좋은 결과는 반드시 재정의 풍성함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재정은 풍성하지 못하나
성도들의 사랑과 헌신의 열망으로 지역사회에서 칭송을 받는 경우도 많이 있다. 지역사회 섬김은 교회의 형편
에 맞게 성도들이 가장 쉽게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출발하면 된다. 여전도회가 중심이 된다면 여성들이 잘하는
봉사를 정하면 된다. 어려운 가정들을 위해 도시락 만들기, 밑반찬을 만들어 나누는 봉사, 일손이 필요한 노인
들을 위해 집안 청소를 감당해 주는 봉사,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탁아와 돌봄 교실 등이 있다. 지식을 나
눌 힘이 있다면 교회 시설을 사용하여 공부방을 운영하거나 방과 후 수업 지도, 주요 과목 무료 강좌를 열고 전
문성이 있다면 가정 사역, 문화 사역으로 주민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다. 교회가 이웃을 위하여 조금만 눈을 크
게 뜨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속속 드러난다. 시골의 작은 교회도 지역의 특성을 살려서 큰일을 척척 해
내는 모습을 보았다. 목회자와 성도 모두 존경스러웠다. 목회자에게는 보람을 안겨 주고 온 교회는 헌신을 통
해 더욱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섬김을 위한 실제적인 준비


- 지역의 특성과 필요에 맞는 계획을 세운다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은 고객의 취향을 연구하여 적합한 서비스와 제품의 품질을 결정한다. 아무리 좋은 제품
이라도 고객의 취향과 요구에 맞지 않는다면 그 사업은 실패한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선한 계획을 세울 때 지역
의 특성과 주민들의 필요를 면밀히 살피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연령, 관심, 필요를 검토하고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 위치, 장소, 방법의 전략도 짜야 한다. 급한 마음으로 서두르거나 계획성이 부족하면 일을 시
작하자마자 펑크 나는 곳이 생기고 지속성도 떨어진다. 시행착오가 많이 생기면 봉사자도 힘이 빠지고 봉사의
열매도 빛을 잃어버린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우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충분히 연구하고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
다. 필요하다면 관공서의 도움을 받고 주민들과 직접 대화도 나누어 보고 설문을 요청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 교회는 대전 지역과 사람들의 필요를 인식하고 새롭게 출발한 섬김이 있다. 그것은 전국적인 마라톤대회
를 개최한 것이다. 주일 외에는 볼 수 없는 마라톤이 토요일에 진행되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마라톤을 즐길 수
있고 전국에서 마니아들도 몰려왔다. 처음에는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고민하며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지금
은 온 교회와 지역의 축제가 되어 더 좋아질 3회 대회를 기대하고 있다.


- 섬김의 현장을 위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직원들을 교육하고 연수하는 것과 같다. 섬김에도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 특
히 지역주민들을 직접 응대하는 봉사자들을 위해 매뉴얼을 만들고 적합한 훈련을 시켜야 한다.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반응을 염두에 두고 미리 교육하여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성도들과 주민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담이 있다. 똑같은 일이지만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고 언어 표현과 행동에도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봉사자의
복장과 태도, 표정, 말투와 같은 사사로운 것들의 준비를 잘하지 않으면 서로 오해하고 상처받는 일이 생긴다.
믿음과 은혜를 강조하면서 실제적인 준비를 잘하지 않으면 실패를 자초하는 것이다. 섬김의 현장을 위해서 업
무 분장과 함께 각 팀의 책임자를 세워야 한다. 누가 그 일을 진행할 것이며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나 어려움
은 없는지 논의하고 모두 함께 책임지는 의식을 갖게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봉사가 되도록 준비
하고 한 사람의 솜씨나 재능을 너무 크게 의지하면 안 된다. 모두가 고르게 역할을 분담하고 조금씩 힘을 모으
면 지속 가능한 섬김이 되어 전문성도 길러진다.


- 선한 일에도 낙심케 하는 복병이 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이 말씀은 지역사
회를 섬기는 교회가 꼭 기억해야 될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선을 행하는 자리에서도 시험에 들고 낙심할 일이 생
긴다는 말씀이다. 실망하고 움츠리게 되는 일이 어찌 한두 번이겠는가? 교회 안팎으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대
비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를 낙심케 하는 복병은 어떤 것이 있을까?
교회의 마음 담은 섬김이 지역주민에게 단번에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다. 교회를 거부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사
람, 달갑지 않은 표현과 몸짓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 다른 사람들이 동조하도록 부정적 분위기를 조성
하는 사람, 한두 번 하다가 그만둘 것이라 예상하고 조소하는 사람, 방해를 목적 삼고 비난하며 공격하는 사람
도 더러 있다. 특히 봉사의 초기에는 이러저러한 시행착오도 있어 발목을 붙잡고 주저앉히는 복병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교회는 담대하여 결코 상처받지 않기를 결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선을 행하는 우리에게 소망
을 약속하셨다.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선한 일을 어떤 모양으로라도 열매를 맺게 하
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교회의 섬김으로

세상에 퍼져 나가는 복음의 향기


계절이 바뀌면 우리가 입는 옷의 두께와 원단, 모양이 달라진다. 입고 있는 옷이 바뀐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변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 세상이 소통하기 위하여 교회가 지역에 적합한 옷을 입고 봉사하지만, 교회의 본
질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모양으로 섬김의 옷을 입든지 그 가운데서 복음의 향기가 느껴져야 한다. 사람
들이 교회 안에 쉽게 들어오지 못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복음의 향기를 맡으면 인간의 본향인 하나님의
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교회의 섬김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편지가 되어 사람들의 가정과 일터에 하나님
의 소망을 전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초대교회 모습에서도 복음의 향기가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장면이 보인다.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선행으로 지역사회에 나누었다. “믿는 사람이…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행
2:44~25),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 4:34~35).
만약 초대교회가 받은 은혜를 기뻐하고 그것으로 머물렀다면 지역 사람들과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 하지만 초
대교회는 은혜받은 증거로 그들의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되 이웃을 위한 헌물로 바쳤다. 이 일들이 얼마나 큰
사역이었는지 사도들이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집사들을 세웠다. 그 결과 지역에 사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
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이것이 바로 교회의 섬김을 통해 지역사
회에 퍼져나가는 복음의 향기다. 우리 교회들을 통해서도 우리 지역과 나라 전역에 복음의 향기가 진동하기
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교회의 섬김으로

다음세대를 이어 주는 복음의 향기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복음을 들고 온 선교사들과 초대 믿음의 선조들이 피와 눈물로 우리 민
족을 살렸다. 이 섬김의 원천은 복음이었고 복음의 향기를 맡은 사람들은 다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나라와

민족을 섬겼다. 우리는 릴레이 선수들처럼 다음세대에게 복음의 바통을 잘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다음세대를 생각하면 기대보다는 염려가 더 많다. 어떻게 하면 다음세대에게 복음의 바통을 이어
가게 할 수 있을까?
인간 중심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이 세태의 달콤한 문화가 다음세대를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동시에 세상
에서 지탄받는 교회의 모습, 믿음과 삶에서 이중적인 어른의 모습이 다음세대에게 상처를 안겨 준 부분이 많
다. 그러므로 다음세대를 돌이키기 위해서는 믿음의 선배인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해야 한다. 더 이상 지
역사회 속에서 손가락질받는 교회가 되지 않도록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신뢰받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다음세
대들이 교회를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세상 속에서 복음의 향기를 널리 퍼뜨려야 한다. 믿음의 자부심이 생기고
세상을 향한 넓은 안목을 길러 주어 사명을 발견하도록 도와야 한다. 다음세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어른들과 물
질의 헌신도 함께 따라야 한다.
우리 교회는 국제 규격의 농구장을 갖추고 있다. 학업에 억눌린 청소년들을 위해 고민하다가 지역 청소년들 대
상으로 농구대회를 개최했다. 지역의 학교들이 어느 정도 호응할까 염려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30개 가까운
학교들이 공식적으로 참여하여 없어서는 안 될 대회가 되었다. 물론 학생들이 기뻐하는 부상도 푸짐한 것으로
안다. 이러한 섬김은 다음세대에게 복음의 바통을 물려주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이다. 우리가 다음세대에게 복
음의 바통을 이어 주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우리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던 그 어떤 일도 헛된 것이 된다. 복음의
단절은 이 민족의 황폐함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지역사회의 심장과 같은 존재다. 심장의 박동이 활기차면 건강한 몸이 되듯이, 교회가 예방과 치료와
회복의 사역을 감당하므로 교회가 속한 지역을 건강하게 세우면 좋겠다. 그로 인해 교회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로 건너오는 화평의 다리로 우뚝 서게 될 줄 믿는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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