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교회는 어두운 밤

외로이 서 있는 등대입니다

 

조성희 사모(행복연구원장)

 

 

수협중앙회에서 제공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팔미도이야기를 보았다. ‘팔미도등대는 6.25 전쟁 때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인천 상륙 작전에 쓰임받았다. 인천 앞바다는 조수 간만의 차가 커서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할 확 률이 낮았다고 한다. 영흥도에서 첩보 활동을 했던 켈로(KLO)부대원들이 19509월의 어느 날 밤 발동선을 타고 팔미도로 들어가 등대의 반사경 전선이 끊어진 것을 수리하고 914일 자정에 등대를 밝혔다.

 

인천 상륙 작전이 감행되던 날 밤, 수백 척의 함정들이 등대 불빛을 따라 아무런 사고 없이 팔미도 해역에 집결하였다. 다음 날 새벽 인천 상륙 작전에 돌입할 수 있었고 전쟁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월미도 등대처럼 항해를 위한 최첨단 장비가 만들어지기 전, 등대는 목숨줄과 같은 것이었다. 어두운 밤, 거센 파도가 이는 악천후를 만나면 등대의 불빛은 희망이요. 생명 그 자체다. 등대는 지나가는 선박들에게 위치를 알려주고 항로의 위험한 곳을 표시해 준다. 선박들이 안전한 항로를 택하도록 인도한다.

교회는 바로 이 세상의 등대다. 크고 작은 파도가 넘실대듯이 시험의 파도가 끊이지 않지만, 언제나 꿋꿋이 서서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한다. 등대가 바다를 벗어나면 그 존재가 무의미하듯이 교회도 세상을 떠나서는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 본연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주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고 부르신 성도들의 모임에 교회라는 거룩한 이름을 붙여 주셨다. 동시에 부름받은 교회를 다시 세상 속으로 파송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 복음 전하는 사명을 맡기신 것이다.

 

 

 

세상 가운데 서 있는 교회에게 꼭 필요한 것

 

바다를 지키고 선박들을 보호하는 등대는 단순히 구조물로만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구조물 안쪽에는 빛을 반사시키는 장비와 전력 공급, 비상시의 모든 상황을 고려한 준비물도 잘 갖추어져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도 꼭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

 

1. 성도들이 올바른 교회관을 가져야 한다

 

땅 위의 교회는 불완전하다. 모두가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작은 어려움이 생기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갈등의 골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세상의 법정에 서기도 한다. 한국 교회의 이런 혼란스러움은 성도들이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교회관이 있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함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지 못한 까닭이다. 하나님께서 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는지, 교회의 가장 큰 사명 은 무엇인지 성경 속에서 배워야 한다. 내가 좋아하고 경험한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 습을 깨달으면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를 사모하는 열망이 생긴다. 그 열망은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방법 을 따라 교회를 사랑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 교회관이다.

제자훈련을 하는 우리 교회는 제자훈련이 끝나면 사역훈련으로 이어진다. 사역훈련에서는 섬김의 지도력과 교회가 무엇인가를 배운다. 성경적인 교회관이 세워지지 않으면 자신의 기질과 성품, 경험에 따른 사역으로 흐르기 쉽다. 훈련을 통해 말씀 중심의 교회관이 분명하게 세워지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가 목회자 못지않게 성경적으로 확고하다.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관을 따르려고 애쓴다. 담임 목회자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은 힘이 된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꿈꾼다. 사모인 내가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고 싶은 성도들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 교회의 본질을 지켜내는 성숙한 교회는 목회자 혼자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 성경으로 정립된 교회관을 가진 성숙한 성도들과의 연합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무엇인가를 아는 지식은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2. 사모에게 더욱 성경적 교회관이 필요하다

 

이미 목회를 하고 있는 사모님들에게 감히 교회에 대해서 나누고 싶은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한국 교회는 목회자 못지않게 많은 눈물과 헌신으로 교회를 섬기는 자랑스러운 사모님들이 많다. 그런데 가끔은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사모들도 있다. 어느 교회는 교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유망한 젊은 목회자가 사표를 던졌다. 이유는 성도들과 사모의 관계가 어려워진 탓이었다. 성도들이 담임 목회자에게 찾아와서 하소연을 했다. 목회자는 사모가 자신의 아내이니 안심하고 성도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권면했다. 사모의 서운한 마음이 분노로 바뀌었다. “나를 거부하는 교회는 내가 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다라고 외치며 홀연히 사택을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성도들이 달려가서 용서를 구했지만 사모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해가 지나도 사모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었던 목회자는 결국 사임을 선택하게 되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이단에 빠진 사모도 있다. 남편이 목회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사모, 교회를 목회자의 소유로 생각하여 남편 대신 자신의 지분을 챙기는 사모, 성도가 미워서 함께 싸우는 사모, 남편의 등 뒤에 숨어서 자신의 이기심을 부리는 사모 등이다.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사모들을 보면 교회에 대한 가치관이 성경적으로 명확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든다. 처음부터 교회를 어지럽히려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모는 아무도 없다.

 

사모의 의식 속에 교회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결과라고 본다. 사모가 교회의 속성과 본질을 바로 알고 있으면 실타래처럼 엉켜진 매듭을 푸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지혜로운 판단과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건강한 교회관을 정립하지 못하면 결국 세상이 나서서 교회를 지도하려고 덤벼들지 모른다. 이미 목회를 하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한 번 더 우리의 교회관을 정립하고 교회를 교회 되게 만드는 사역에 쓰임받으면 좋겠다.

 

 

교회 안에서 잘못 판단하는 생각

 

하나님의 교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 되려면 우리 안에서 각 사람이 생각하는 잘못된 판단을 교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굳어진 편견과 선입견이 서로를 찌르는 가시가 된다. 씨앗을 심기 전에 돌멩이를 골라 부드러운 흙을 만들듯이 교회의 참된 가치를 흐리게 만드는 돌들을 골라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1. 하나님의 교회는 문제가 없어야 된다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교회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깝고 민망하다. 성도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질문한다.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가 왜 거룩하지 못하고 문제가 많은가?” 해답은 간단하다. 주님은 거룩하시고 완전하신데 우리는 심히 불완전하고 악한 죄성을 가진 까닭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위해 유기적인 공동체 두 개를 주셨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정과 예수의 피로 세워진 교회 공동체다. 주님은 두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나타내셨다. 먼저 혈연 공동체인 가정을 살펴보자. 몇 명의 식구가 살든지 문제가 없는 가정이 있을까? 인생은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문제를 안고 있음을 의미하니 문제없는 가정이 없다. 이렇듯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 이름으로 모였으니 문제가 끊이지 않음이 당연하다.

이러한 교회의 특성을 종합병원에 비유하고 싶다. 병원에는 중환자와 경환자, 치료하는 의사와 간호사, 보호자들이 있다. 다음에는 단순 방문자, 환자를 통해 돈을 버는 사람, 고통을 이용해 사기치는 사람, 조직을 관리하는 관리자 등이 있다. 교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영혼의 치료와 회복이 필요한 성도들과 그들을 말씀으로 회복시키는 목회자, 자신의 유익을 위해 교회를 이용하는 자, 단순히 마당만 밟는 자, 거짓된 목적으로 영혼을 유괴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거하는 사람은 다 죄인이며 은혜가 필요한 사람

이다.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거나 은혜에서 멀어지면 누구나 다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태도로 교회를 대하니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교회가 종합병원과 같다고 생각하면 크게 시험 들지 않아도 된다. 각양의 목적을 가진 사람이 드나들지만 결국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역사도 함께 일어날 것을 믿음이다. 머리 되신 주님 앞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점차 많아질 때 교회는 건강함을 유지하게 된다.

 

2. 하나님의 교회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다

 

스스로 지성적이라 여기는 사람 가운데는, 사람이 진정한 교회며 눈에 보이는 건물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주님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사람이 주님의 성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님은 친히 부르신 성도들이 모이는 공동체를 교회라고 부르시며 그 교회에게 세상으로 가라는 파송 명령을 내리셨다. 주님의 제자들도 이 명령을 따라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의 공동체에게 지역의 명칭을 따라 교회 이름을 붙여 주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 목사에게 교회 안에 거하는 각 사람을 권면하고 공동체를 이끄는 원리를 말씀해 주셨다. 후세대는 이 편지를 목회서신이라고 부른다.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칭찬을 받은 안디옥교회도 성도들의 공동체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건물이냐 아니냐로 논쟁할 이유가 없다. 공동체가 모일 때 처소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신혼부부 단 두 사람이 살아도 거처가 필요하고 부부의 처소를 위하여 물질을 들여 살기 좋게 잘 가꾼다. 단 두 사람이 살아도 그들의 처소를 귀하게 여겨야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물며 구원받은 사람들이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 처소를 마련하고 그 건물을 귀히 여기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전 세대가 어우러져 믿음의 삶을 배우고, 선교, 훈련, 교제가 이루어진다. 또한 다음세대에게 교회의 본질을 지켜내는 것이 무엇인지 눈으로 보고 배우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찌 교회 건물을 귀히 여기지 않겠는가.

우리보다 50년 먼저 복음이 전해졌던 일본은 아직도 선교의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정부의 정책적인 억압도 있었지만 믿음의 선구자였던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그는 무교회주의자였다. 그는 교회를 무형의 사람이라고 가르치며 어디서나 자유롭게 예배드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은 교회를 세우지 않았고 결국 교회는 흐지부지되었다. 그 영향을 받은 일본 교회는 공동체를 위해 건물을 세우는 것이 힘들다. 성도들은 주님을 사랑하지만 교회를 위하여 물질을 바치고, 몸으로 헌신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건물이 없으니 공동체를 지탱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훌륭한 지도자 요셉도 세월이 흐르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일어났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배당인 건물이 우상시 되어서도 안 되지만, 의미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다음세대를 간과한 판단이다.

 

3. 목회에도 금수저가 있다

 

요즈음 세상에서는 수저 이야기가 한창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면서 물고 나온 수저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진다는 황당한 소리다. 그것은 운명적이며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조장하는 논리에 많은 사람이 쏠리고 있다. 그 결과 3, 4, 7포까지 이어지는 젊은이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라는 구도를 만들어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문제는 목회자 가운데도 일부 그런 의식을 가진 젊은 목회자들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출신 배경, 경제력을 목회의 불리한 조건으로 간주하여 한탄하는 것이다. 마치 금수저가 목회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처럼 부러워하는 목회자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목회의 성패를 소유로 판단하고 자신을 이라 생각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분이실까. 복음은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무엇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지 염려된다.

세상의 수저론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이 땅의 교회를 위하여 희생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순교의 피를 뿌리고 개척자의 고통으로 살았던 선조들은 이라고 해야 할까. ‘이라고 해야 할까. 지나가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듯이 잠시 우리의 마음에 스치는 세상의 바람임을 깨닫고 차단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축복은 연단과 자기희생 없이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세상보다 크시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추스르고 십자가 앞에 엎드리면 좋겠다.

 

 

건강한 교회를 위하여

 

병약하면 마음도 약해지고 삶의 태도도 약해진다. 교회도 건강성을 잃어버리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스스로 위축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교회가 건강하기 위한 원칙이 많이 있지만 몇 가지만 나누고 싶다.

 

1. 세상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몇 년 전 예수 믿는 지도자의 파렴치한 범죄 이야기를 다룬 <도가니>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내용이 충격적이어서 세상은 교회를 향해 무수한 비난과 욕설을 퍼부었다. 그 영화에 등장하는 장로라는 사람은 교회의 구조 속에 숨어 있는 거짓된 자가 분명하건만 교회는 변명할 길이 없었다. 주님의 이름이 모욕받는 것이 우리의 잘못임을 알고 눈물로 기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세상은 교회를 몰아붙였고 성도들은 죄인이 되었다. 교회가 이웃을 사랑하여 많은 선을 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비난하는 세상의 태도는 편향되고 옳지 못한 것이 많았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죄책감을 느끼다 못해 복음 전하는 일이 주저되어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직장에서나 이웃에게 고개를 들지 못하고 교회 다니는 것이 큰 죄를 짓는 것처럼 두려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때 나는 참을 수 없어 이 일에 대한 성도의 올바른 태도를 글로 써서 남기기도 했다.

우리의 잘못으로 인하여 세상이 교회를 비난하는 것은 겸손히 받는 것이 옳으나 까닭 없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비아냥거림에 대해서 무조건 침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말과 행위를 묵인하는 것이 겸손은 아니다. 혹여 우리의 가정과 가족에게 연약함이 있을지라도 지나가는 사람이 우리 집에 오물을 버리게 하거나 불을 지르는 행동까지 허용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세상은 교회의 특수성과 본질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물질적 가치와 경영의 논리로 비난하는 예도 많다. 돈이 얼마나 들었는가? 그 돈이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마치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에게 돈을 낭비한다고 비난했던 가룟 유다처럼 경제 논리로 접근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를 향한 비난이 쏟아질 때 우리가 애통하며 책임져야 할 몫과 세상의 그릇된 인식을 분별해야 한다. 이 땅에 주님이 오실 때까지 교회는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 어떤 상황에도 비굴해지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외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 교회의 본질을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한다

 

아프리카 한 지역 교회의 목회자가 성도들의 소리를 들었다. “요즈음 교회들 죽어가고 있어. 살아 있는 교회를 볼 수가 없어.” 목회자는 주일예배 때 교회 앞에서 광고했다. “오는 주간에 장례식이 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여해 주세요.” 성도들은 모두 장례식에 참석했다. 뚜껑을 열고 고인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것이 관례이므로 성도들은 관을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관 안에는 거울이 놓여 있고 자신의 모습이 비쳐졌다. 깜짝 놀라는 성도들을 보고 목회자가 말했다. “여러분, 관 안에 누가 있습니까? 교회가 죽었다는 말은 여러분이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어찌 내가 없이 교회가 있으며 교회 없는 내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성도들은 숙연하게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회개했다.

나 자신과 오늘의 한국 교회를 생각해 본다. 교회가 죽었다고 쑥덕거리면서도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던 아프리카 성도들과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다를까. “교회가 문제야. 병들었어.” 도처에서 걱정하는 말은 많이 듣지만 진심으로 주님의 교회에 책임의식을 가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모두가 누군가를 향하여 손가락질하며 너 때문에 문제야라고 외치지만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마음으로 애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금은 한국 교회가 세상의 등대가 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까 아파하며 눈물 흘려야 할 때다. 주님의 십자가는 한 생명 살리려는 몸부림인데 우리의 분주함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위함이 맞는지 냉정하게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생명이 위급한 사람을 찾아가는 119나 소방차를 보라. 한시라도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고 질주한다. 모든 차량들은 그 앞에서 길을 비켜준다. 생명을 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음이다. 육신의 생명이 이렇게 중요할진대 영혼을 살리는 일의 중요성과 긴급성은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교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거룩한 고민은 우리의 몫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본질적인 일에 충성하면 건강한 교회가 되고 본질을 잃어버리면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 이기적인 다툼이 일어난다. 영혼구원을 갈망하는 목회자와 교회는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된다. 교회의 본질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건강한 교회로 세워 가신다.

 

3. 형제 교회와 연합해야 한다

 

어느 날 지면을 통해서 목회자들의 모임을 소개하는 광고 문구를 보았다. “작은 교회가 더 아름답다힘들게 고군분투하는 목회자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한 모임이라고 이해했는데 그런 비슷한 문구의 광고와 모임들이 여러 번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더 아름답다는 것은 비교를 담고 있는 말이고 비교는 상대편이 있다는 말이니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저런 슬로건 아래 모이게 되면 목회자들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 저 모임에 참여하면 형제 교회들과 목회자들 사이에 서로 존중하고 연합하는 마음이 더 커질까? 교회의 외형적인 모습으로 서로를 판단하여 경계선을 긋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이 들었다.

성경은 눈에 보이는 규모를 가지고 교회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큰 교회, 작은 교회가 우리의 초점이 될 수 없다. 예수 이름이 왕성하면 살아 있는 교회가 되고 사람 냄새가 가득하면 죽은 교회가 되는 단순한 원리가 전부다. 이 원칙을 모르는 목회자가 있을까. 중요한 것은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하여 대적을 눈앞에 두고 형제끼리 연합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 두렵다. 교회가 서로 연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미래는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통합적 세상이라고 하지만 교회의 순결성과 거룩성은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달콤한 것으로 교회를 유혹할지, 거센 파도를 일으켜 삼키려 할지 모르지만 교회는 세상과 더불어 타협할 수 없다. 영적 혼란과 어두움의 시기에 교회는 어디에서 힘을 얻으며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겠는가. 주님의 사랑과 긍휼로 형제 교회의 손을 잡아야 산다. 연약한 교회나 부지중에 실족한 동역자를 안타까움으로 돌아보고 회복하도록 도와야 한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위임받은 것처럼 넘어진 자를 정죄하고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주님의 회개는 아주 엎드러져서 일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리고 회복시키는 은혜다. 그 특별한 은총을 입은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땅 위에 있는 주님의 교회는 편의상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원칙상 모두가 한 하나님의 교회다. 천국 가면 교회별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이름 중심으로 모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교회는 세상에 남겨 놓은

하나님의 비밀 병기다

 

세상이 칠흑같이 어둡고 쓰나미 같은 파도가 넘실거려도 우리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구원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세상의 그 어떤 존재가 감히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핏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허물 수 있겠는가. 기독교 2000년 역사 동안에 교회를 허물려고 했던 세력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하나같이 실패했고 그들의 궤계는 오히려 복음의 불길을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어두움이 짙을수록 더욱 빛나는 불빛처럼 우리 교회는 여전히 세상의 희망이다. 세상의 대안이다. 복음은 눈물과 피 흘린 땅에서 더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오신 목회자의 말에 의하면 나이지리아 동북부에 IS가 있다고 한다. 지난 2년간 3,000개가 넘는 교회가 파괴되었고 순교자도 많이 생겼다. 그런데 순교자들의 고백이 놀라웠다. “나는 이제 고향으로 간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모두 천국에서 만나자. 그리고 내가 죽어도 결코 보복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것은 우리 주님의 사랑이 아니다.” 이 말은 실제로 살인 병기인 IS 대원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있다고 한다. 어느 마을에서 3명의 IS 대원이 한 목회자를 살해했다. 그들은 살해당하는 순간에 목회자가 미소 지으며 그들을 용서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2명이 교회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힘이고 능력이며 영광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비밀 병기다. 두려워하지 말고 더욱 담대히 나아가자.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도 생명수가 마르지 않게 하시며 구원 얻는 영혼을 만들어 가신다. 교회의 진정한 머리이시며 구원자이신 우리 주님이 이미 승리의 깃발을 꽂으셨음이다. 할렐루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6:18)

 


e-book에서 보기

번호 제목 날짜
40 2019 Summer (36호) 분별력은 사역자의 걸음을 밝혀 주는 가로등입니다 file 2019.07.03
39 2019 Spring (35호) 분별력은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file 2019.04.15
38 2018 Winter (34호) 청소년 자녀는 조개 속의 진주입니다 file 2019.01.04
37 2018 Autumn (33호)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전 우주와 같습니다 file 2018.10.10
36 2018 Summer (32호) 어머니의 사랑은 자녀를 살리는 보약입니다 file 2018.06.27
35 2018 Spring (31호) 아버지 당신은 자녀의 미래입니다 file 2018.04.01
34 2017 Winter (30호) 평신도는 걸어 다니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file 2018.01.05
33 2017 Autumn (29호) 성도의 교제는 영적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2017.09.28
32 2017 Summer (28호)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2017.06.23
31 2017 Spring (27호) 복음은 죽은 자를 살려 내는 생명의 피입니다 2017.04.05
30 2016 Winter (26호) 건강한 리더는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에서 출발합니다 2016.12.28
29 2016 Autumn (25호) 말씀의 훈련은 '내가 복음'을 '주님의 복음'으로 바꾸어 줍니다 2016.09.21
28 2016 Summer (24호) 사모의 영광은 예배의 영광에서 채워집니다 2016.06.22
» 2016 Spring (23호) 교회는 어두운 밤 외로이 서 있는 등대입니다 2016.03.29
26 2015 Winter (22호) 사모의 즐김은 피로회복제와 같습니다 2016.01.04
25 2015 autumn (21호) 사모의 지성은 새의 날개와 같습니다 2015.10.06
24 2015 summer (20호) 사모의 멋은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2015.07.15
23 2015 Spring (19호) 쉼은 크고 넓은 그분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2015.04.02
22 2014 Winter(18호) 절제함은 우리의 질주를 막아주는 성령의 브레이크입니다 2015.01.09
21 2014 Autumn(17호) 사랑함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는 것입니다 2014.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