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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의 지성은 새의 날개와 같습니다

 

조성희 사모(행복연구원장)

 

몇 년 전,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사고가 났다. 착륙할 지점에 대한 조종사의 과실로 인하여 꼬리 부분이 땅에 부딪히면서 동체착륙을 하였다. 그로 인해 두 명의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대형 참사에 비해 사상자의 수가 현저히 줄게 된 것은 참사 현장에서 재빠르게 비상조치를 잘 감당한 노련한 승무원들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특별히 최선임인 한 여승무원은 자신이 심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고 신속하게 승객들을 비행기 밖으로 탈출시킨 공로가 컸다. 그녀의 침착한 대응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각 언론들도 용감한 그녀의 모습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 어떻게 그런 침착한 대응을 할 수 있었습니까?”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그녀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 그것은 평소에 훈련을 통해 늘 인지하고 있던 매뉴얼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비상사태가 벌어지니까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몸이 스스로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몸에 익힌 매뉴얼이다. 사실 비행기 안에서 만나는 승무원들의 예쁜 모습은 빙산의 일각이다. 승무원들은 비행기가 바다나 활주로에 비상착륙 시, 승객들의 안전을 돕기 위한 지식과 수영, 기초체력들을 늘 점검받고 훈련한다. 반복된 교육과 훈련은 승무원들의 삶에 체득화되어서 위기 상황이 도래하자, 머릿속에 입력된 사고와 정보를 따라 몸이 움직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성의 힘이다. 지성은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배우고 익힌 지식과 반복되는 교육, 경험 등을 통하여 체계화된 의식의 세계다. 단순히 감정이나 상황, 혹은 맹목적인 끌림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자기 인식을 가지고 사고하며 판단하고 행동케 하는 능력이다.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의식의 세계에 무엇이 입력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사고의 틀이 형성되고, 대부분의 판단과 행동은 그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의 지성이라고 하면 배우고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어 어떤 일을 판단할 때는 그 가치 안에서 사고하려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성경도 이 부분에서 우리의 지성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깊이 알기를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이 백성이 망한다고 탄식하신 하나님은 지식을 얻기 위해 힘써 여호와를 알라고 명하셨다. 안다는 표현은 하나님을 깊이 맛보라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 없이 믿거나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힘써서 알게 되면 그 앎이 곧 힘이 되고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는 은총이 됨이다.

지성은 우리의 삶에 새의 날개와 같다. 새의 매력은 힘찬 날갯짓으로, 땅 위에서 뛰어난 어떤 동물도 보지 못하는 하늘 높이의 세상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다. 사역자인 우리가 지성을 계발시키면 우리의 사고와 인식의 틀을 강화시켜 새의 날개처럼 날아오르게 만든다. 크고 넓은 세상을 보게 하며,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식과 사고력을 갖게 하여 탁월한 통찰력과 판단력으로 사명을 감당케 한다.

 

지성과 영성은 충돌하지 않는다

 

내가 신학을 했던 80년 초에는 무엇이 더 영성적인가에 대한 논쟁이 많았다. 지성은 영성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어떤 선교단체나 사역자, 특별한 영감을 추구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지성에 대한 오해가 있다. 사람이 노력하고 준비하는 것은 반영성적이라 생각하고, 깊은 영성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지성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해외의 한 선교단체에서 출판한 책을 읽은 적 있다. 저자는 영성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말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어느 집회에 초청되어 강단에 섰으나 그 순간까지도 성령께서 전할 메시지를 주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강단에서 청중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이 기도하고 성령께 귀를 기울였는데 아직까지 특별한 말씀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이 자리에 임하셔서 여러분에게 들려줄 말씀을 지금 주시도록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회중들이 뜨겁게 기도했더니 성령께서 그에게 영감의 말씀을 주셨고 모든 회중이 은혜로 충만했다는 이야기였다.

 

책을 다 읽은 후 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는 왜, 자신이 준비해 와야 할 메시지를 성령께서 주시지 않는다고 말할까? 마치 함께 있는 청중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 성령의메시지가 강하게 임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저자의 경험과 영적 깊이는 다 알 수 없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저자가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저자가 생각하는 성령의 메시지는, 사람의 노력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방식으로 특별하게 임하는 것이고, 사람이 고민하며 연구하여 미리 준비하는 것은 영적인 것에 못 미치거나 뒤떨어지는 것으로 해석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성령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은혜를 베푸시고 메시지를 주시는 때도 있음을 안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가 언제나 특별한 방식으로만 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반은총 속에서 역사하실 때가 많다. 일반은총은 우리 삶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며 지극히 상식적인 삶의 통로를 통해서 일하심을 의미한다.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지성의 선물이며 판단의 기초가 되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어떤 지도자는 한쪽으로 치우친 영성을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성과 의지력, 냉철한 판단력을 과소평가한다. 지성적인 판단과 분별은 아예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 결과 지극히 상식적이고 균형 잡혀야 할 성도의 삶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 삶의 질서를 무너뜨리거나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람 가운데는 무식한 어부들도 있지만 학식이 풍부한 바울과 다니엘, 모세와 같은 지도자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범사에 배우려는 마음이 지성의 그릇을 채워준다

 

요즈음은 작은 아이들도 자기주장이 강하다. 말을 채 배우기도 전에 시어(싫어), 내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더 나이가 들면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하며 귀찮아한다. 청소년의 시기가 되면 어른들이 아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비위를 맞추는 상황이 벌어진다. 부모의 말도, 스승의 가르침도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 세대를 보며 어른들은 우려를 표한다. 듣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배우지 않는다는 말이 되고, 배우지 않는 아이가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염려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은 어떤가. 배우려고 애쓰는 마음과 태도가 있는가? 배움의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겸허한 마음으로 나아가는가? 아쉽게도 배우기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목회자, 곧 사역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수용할 만큼 부드러움이 있지만, 속에는 자신만의 고집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목회자를 위한 어떤 세미나에서는 제일 말을 안 듣는 사람이 목회자라고 지적하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이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자는 매 순간마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다.

지성의 넓이와 깊이를 쌓는 배움을 멈추고는 끝까지 잘 감당하기 어렵다.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는데 각 사람의 지성적 판단에 따라서 해결하는 태도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지성의 훈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요한 시점에 그릇된 착오나 판단의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지성을 쌓는 일에 힘써야 한다.

지성의 계발을 위해서는 먼저 배우려는 마음과 자세를 결단함이 필요하다. 사모들은 일인다역을 감당하느라 자신의 발전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쉽지 않다. 자신을 잊어버리고 말뚝을 박아 고정시켜 놓은 것처럼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한 과거의 경험, 취향, 판단, 기질에 따라 그럴듯한 이론을 세우고 스스로 울타리 안에 갇혀 살기도 한다. 과거의 학벌과 배경을 자랑하는 사람의 지성은, 그 시점에서 멈추어 버렸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나 무엇이든지 배우려고 애쓰는 사람은 지성의 그릇이 커져 간다. 늘 자신의 부족함에 목말라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는 사람은 시대의 흐름을 보는 직관력과 주님이 주시는 비전을 보게 된다. 그의 배움은 무한한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이 될 것이다.

 

사모의 지성을 채워줄 배움의 현장들

 

지성은 반드시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고 학위를 받는 학문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학위를 중심으로 통용되는 학문만을 지성이라고 한다면 어찌 사모의 지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사역자인 우리에게 필요한 지성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나아가 사역이라는 특수성과 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지혜롭게 만드는 지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배움의 현장을 통해 지성의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 목회자나 리더들을 위한 세미나가 있을 때 무조건 배우러 가자

우리의 남편 목사님들은 배울 기회가 참 많다. 이미 신학을 통해서 목회자의 소양을 다 갖추었음에도 끊임없는 배움의 자리가 마련된다. 그에 비해 사모들을 위한 배움의 현장은 희소하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모는 결혼하고 목회의 길을 걷게 되었으니 힘든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우리의 현실 가운데는 여성 사역자의 바른 생각과 태도를 배우는 곳이 따로 있지 않은 만큼, 우리 스스로 배움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다행히 요즈음은 다양한 주제를 가진 목회자 세미나가 많이 열리고 있다. 성경 세미나를 포함해서 리더십과 인간이해 등 사모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는 주제들이다. ‘기회가 곧 은총이다라는 말처럼 마음만 먹으면 배울 내용이 참 많다. 아무리 부족한 강사라도 나보다야 낫겠지 하는 마음과 무조건 듣고 배우겠다는 결단을 하면 된다. ‘목사도 아닌데~ ,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어도 과감히 뿌리치고 참여하자. 주변에 나 같은 사람 얼마나 있는가 두리번거리지 말고 집중하여 배워보자. 목회에 도움 되는 각양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새로운 도전과 안목, 회복의 은혜도 맛보게 된다.

 

* 목회의 동역자나 선배들에게 다가가 배움의 기회를 얻자

요즈음은 어느 교회를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 인터넷을 통해 직간접으로 경험할 수 있다. 목회 철학, 목양 프로그램 등 마음만 먹으면 그 교회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다. 동료들과 선배들의 교회, 건강한 교회, 소문이 잘 난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문을 두드려 배움의 시간을 가져 보자. 혼자 걸으면 앞을 가늠할 수 없어 힘들지만, 그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이 안내해 준다면 유익하지 않을까.

같은 목회자끼리 허심탄회하게 질문하고 듣다 보면 그 자체가 귀한 배움이 된다. 배우려는 마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목회를 잘하고 싶어 다른 교회를 본받고 모방하는 노력을 누가 나쁘다고 말하겠는가? 모방이 없이 처음부터 하늘에서 떨어지는 아이디어는 없다. 모방을 통해서 새로운 생각이 더해지고 새로운 생각이 쌓이면 남다른 창의성을 발휘하게 된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숨어 있는 자존심이 발목을 붙잡고,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다 포기한다. 우리의 마음을 넓혀서 먼저 손 내밀고 다가가기를 노력하자.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어 부지런히 배우려는 태도를 가볍게 대하는 사람은 없다. 혼자 고민하여 답을 얻으면 한 개의 답을 얻지만, 열 사람과 함께 나누면 열 개의 답을 얻을 수 있으니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땅 위의 모든 교회는 다 하나님이 소유하신 목장이다. 복음의 형제인 우리가 서로 배우면 하나님도 크게 기뻐하시며 나눔의 은혜를 주실 것이다.

 

* 현장을 찾아가는 체험으로 배움의 폭을 넓혀 가자

백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뜻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많은 일과 사람들 속에 파묻혀 지내는 목회자에게, 배움을 위한 현장체험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목이다. 그러나 정작 목회자는 할 일이 많아 교회의 울타리 안에 갇혀서 다른 세상을 접하지 못할 때가 많다. 만약 그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전부라면 새로운 자극이나 도전, 영혼의 싱그러움을 회복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지성을 자극하고 도전하려면 생생한 현장을 찾아야 한다. 세계의 역사, 순교의 현장, 선교의 현장, 교육의 현장, 인간이해의 현장, 창조의 섭리를 깨닫게 하는 자연의 현장, 헤아려 보면 무수히 많은 현장 배움터가 있다.

나아가서 성도들이 사는 직장의 현장뿐 아니라 재난과 고통의 현장도 귀한 배움이 될 수 있다. 현장은 그 어떤 교사의 가르침보다 탁월한 가르침이 되어 가슴 깊숙이 자리잡아 잊혀지지 않는 산교육이 된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며 새로운 각오와 결단으로 이어간다. 체험현장의 배움이 쌓이면 많은 지혜와 목양의 해답도 얻을 수 있다.

 

* 독서의 창을 열어서 신선한 바람으로 지성을 깨우자

목회자의 가정에는 남다르게 책이 많이 있으니 책을 많이 읽을 것 같은데 바빠서 신문 한 장 읽지 못할 때가 많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바쁜 나머지 책을 밀쳐 두게 되면 창문은 있으나 열지 않아 밀폐된 공간 안에 있는 것처럼 닫힌 생각으로 가득해진다. 고집과 과거의 경험에 묶여 답답하고 경직된 생각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쉽고 단순하면서도 무궁무진한 독서의 창문을 활짝 열어 지성의 신선한 바람을 맞아들이면 좋겠다.

책은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 경험, 연구를 집약한 것이니 우리의 지성에 많은 도전과 자극을 준다. 목양, 인간이해, 관계, 대화, 가정, 교육, 문화, 역사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제목들이 있다. 어떤 책을 구입할까 고민하지 말고 먼저 주변에 있는 책을 살펴보자. 좋은 책은 한 번 읽고 던지지 말고, 주제별로 잘 정리해두었다가 나만의 지성의 보고를 만들면 사역에도 유용하다. 사모들을 위한 책만 찾지 말고 과감히 목사님들의 목회를 위해 준비된 책들도 읽어 보자. 많이 읽을수록 목회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깊어지리라.

 

*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의 부요함을 누리자

목회자는 말씀에 인생을 건 사람이고 성경의 가르침을 전하는 삶이다. 성경 속에서 해답을 찾고 성경 속에서 생명을 얻는다. 우리가 성경을 사랑함은 절대적이지만, 그 말씀을 묵상하고 깊이 배우려는 자세는 흐트러질 때가 있음을 고백한다. 분주한 일들 때문에 그만큼 시간을 떼어 놓지 못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다.

다른 잡다한 책은 손에 잡히는데 이상하게 성경이 손에 잡히지 않는 현상, 성경을 읽으려고 하면 자꾸 다른 할 일이 떠올라 앉아 있기가 힘든 태도는 이미 영적인 힘을 잃은 것이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또 어떤 이는 성경을 읽지 않고 신앙도서를 읽으면서 은혜를 받는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신앙도서는 어디까지나 은혜의 샘이신 성경의 물줄기에서 튀어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 같은 것이지, 결코 생수의 근원이신 말씀을 대신할 수 없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어떤 배움보다 중요하다. 광야에서 만나를 구하듯이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경건의 시간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치열하게 일하는 종들을 혼자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경을 통해 많은 약속을 하셨다. 야고보서에 기록된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배우기 위해 여쭈어 보자 하나님, 이 문제를 어떻게 할까요? 가르쳐 주세요.”

 

 

선한 목적을 위해 갈망하는 지성은 아름답다

 

교회와 성도를 잘 섬기려는 선한 목적을 두고 지성을 연마하는 노력은 겸손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모들은 높은 학력이나 전공을 가지고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교회와 성도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은 열망 때문에 사역하게 되었음을 듣는다. 자녀를 돌보는 엄마가 자녀를 지키기 위해서는 불사신 같은 초인적인 힘이 생기는 것과 같다. 재능도 없고 경험도 없지만 영혼을 얻는 일이면 생소한 분야도 겁 없이 뛰어드는 용감한 성도 사랑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김치를 담그고, 뜨개질을 하고, 물건을 만들어 나누고,

지역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섬긴다. 독서 그룹을 만들어 지성을 함양시키고 제자훈련, 특별활동 그룹을 만들고 교회의 이모저모를 가꾸어 나간다. 마치 도자기를 빚는 도예가의 손길처럼 정성을 다하여 교회와 성도를 섬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섬김이 끝까지 아름답게 열매 맺기 위해 그만큼 배우고 수고하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만약 이런 과정이 없이 생각만 가지고 뛰어든다면 목회자도 다치고 성도들도 상처받는다. 지도자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눈물을 흘리며, 배우고 연마하는 몸부림만큼 열매를 맺는다. 교회도 유익하고 성도들도 행복해지는 좋은 일이 어찌 저절로 이루어지겠는가. 세상에 아무런 희생 없이 좋은 것이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수고와 노력은 기본이고 책임마저 주어지니 힘들고 어렵다.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사랑의 실천을 위해 배우는 사람은 다시 일어서는 힘도 강하다.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져 주님의 손길이 그를 붙잡고 주님의 지혜가 그의 지성을 가득 채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 퍼즐 한 조각 같은 지성도 하나님의 작품으로 빚으신다

선한 목적을 위해 필요한 지성을 쌓고 연마하는 것은 가치 없이 버려지지 않는다. 사람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퍼즐 한 조각 같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장 가치 있고 귀한 배움이라 인정하실 것을 믿는다. 부족함이 많은 나의 삶에도 하나님이 친히 하신 일들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서 <라일락> 잡지를 만들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수년 전 부산의 한 교회 사모회에서 간증문을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으로 우리 교회 이야기를 간증 형식으로 실었다. 그로 인해 사모회지를 받아 보게 되었는데 우리 교회도 사모들이 많기에 글을 써서 서로의 삶을 나누면 좋을 것 같았다. 모두들 좋다고 박수쳐서 우리 교회 사모들의 이야기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회지 이름을 공개 모집했는데 담임목사님의 라일락이 만장일치로 선택되었다. 200811월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향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꿈을 안고 <라일락>이 탄생되었다.

작고 얇은 소책자에 우리 가족들의 이야기로 세 번 만들었는데, 그 다음에 힘들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남편을 내조하랴, 아이 돌보면서 글 한 편 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사모들의 행복을 위해서 시작한 일이니 힘들게 가야 할 이유가 없어서 선뜻 그만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런데 우리 소책자를 보았던 한국과 미국의 사모님들로부터 모든 사모들을 위한 책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았고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어서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단정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고민이 되었다. 어느 날,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로부터 몇 년 전, 우리 교단에서 주최하는 사모수련회의 강사로 간 날이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집회 장소를 찾아 강단에 섰지만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개척교회를 비롯해서 힘들게 사역하시는 사모님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없었다. 겨우 강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핸들을 잡고 눈물로 기도했다. “주님! 저는 고생하시는 사모님들께 할 말이 없습니다. 다음에는 뒤편에서 말없이 섬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순종하겠습니다.”

 

그때의 고백이 생각나면서 무조건 거부할 수가 없어 남편에게 의논을 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심지어 당회 장로님들은 한국 교회를 섬기는 일이라며 작은 사무실 공간을 비롯해서 재정을 지원하기로 결정해 주셨다. 원래 우리 교회는 건축할 때 뜻을 정한 것이 있었다. 10층에 들어서는 카페 수익은 이웃을 위해서 전액 환원하고 서점의 수익금은 모두 문서선교에 지원하기로 결정해 놓은 상태였다. 카페는 이미 수익금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었고 문서선교는 라일락을 발행할 만큼의 여분이 남아 있었다.

나는 원래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다. 늘 교회나 성도들에게 누가 될까 염려하는 마음이 많다. 하나님은 이런 나의 약함을 잘 아시고 마치 등 떠밀듯이 평생 해보지 않았던 일에 발을 딛게 하셨다. 하나님이 앞장서시고 옆에서 돕는 동역자들의 헌신으로 어느새 5년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있는 퍼즐 한 조각을 취하시고 커다란 작품을 친히 만드신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퍼즐 한 조각은 무엇이 있을까? 보잘것없는 평범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니 다른 오해가 없으면 좋겠다.

 

* 나의 퍼즐 한 조각

나는 오랫동안 나만의 글을 써 온 경험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삶이 힘들어 하나님께 푸념하는 일기를 썼고, 철이 든 20대에는 매일 말씀을 읽고 내 마음을 고백하는 글을 썼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싶어 노트에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출판사에서 나오는 좋은 큐티집이 많이 있지만 오래전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나는 늘 새해가 되면 대학 노트를 준비하고 깨달은 말씀, 암송 구절, 기도 노트까지 다 기록했다. 대학 노트 한 장 두 장을 꽉꽉 채우며 받은 은혜를 기록하고, 가끔은 펑펑 울어 노트가 눈물로 얼룩진 페이지도 있다. 지금의 나는 큐티책을 많이 이용하지만 강단의 메시지나 강의들은 무조건

기록한다. 은혜의 감동이 희미해질 때 다시 묵상하는 맛을 알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하는 경건의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오늘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퍼즐 한 조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 한 가지는, 20여 년간 극동방송에서 자원봉사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일이다. 20대 초반에 시작한 봉사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유학을 떠나기 전, 그리고 유학을 다녀와서 다시 이어졌다. 서울 방송사를 비롯하여 대전까지 이어진 방송사역은 고생도 많았고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힘들게 느껴질 때마다 하나님이 시작케 하신 일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만해도 좋다고 하실 때까지 순종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20년간 프로듀서 없이 스스로 준비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 다양한 글을 접하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글의 흐름을 인지하는 훈련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문인이 아니어서 부족함은 많지만 글을 보면 어느 정도는 이야기의 흐름과 중심을 볼 수 있는 눈을 만들어 준 것이다.

 

마지막은 성도들과 함께 공부한 제자훈련이다. 이제 교회에 부임한 지는 만 20년이 넘었고 햇수로는 22년 차다. 부임한 일 년 후부터 시작된 제자훈련은 안식월을 받은 그 해를 제외하고는 계속되었다.

나는 매년, 하루나 이틀을 할애해서 온종일 훈련을 했는데 성도들과 같이 울고 웃다 보니 그들의 고민이 보였다. 삶의 다양한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동시에 교회를 통해서 상처받고 시험에 드는 성도들도 꽤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상처 입은 성도는 그 상처를 평생 간직하고 있으며 뿌리내린 불신 때문에 어떤 목회자를 만나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아비의 마음으로 성도를 대하지 못하는 우리의 책임이 크게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성도들과 함께한 제자훈련은 내게 스승이 되어서 잡지의 주제를 기획하고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퍼즐 한 조각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도 않고 발밑에 뒹굴다 버려질 것이 뻔하다. 그런데 사랑의 하나님은 초라한 퍼즐 한 조각을 버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두 손 가득히 많은 퍼즐 조각들을 가져와 커다란 작품이 되게 친히 맞추어 주셨다. 사역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모님들의 간증도 동일하리라 믿는다. 퍼즐 한 조각 같은 사모의 지성이 위대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위대하기 때문임을 우리는 안다. 하나님의 은혜는 최고의 사람에게 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을 품은 사람에게 부어진다. 선한 목적을 위한 이 열심은 곧 하나님의 마음과 눈물을 담은 눈물병이 되어 세상을 향해 뿌려질 것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5)

 

 

 

번호 제목 날짜
40 2019 Summer (36호) 분별력은 사역자의 걸음을 밝혀 주는 가로등입니다 file 2019.07.03
39 2019 Spring (35호) 분별력은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file 2019.04.15
38 2018 Winter (34호) 청소년 자녀는 조개 속의 진주입니다 file 2019.01.04
37 2018 Autumn (33호)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전 우주와 같습니다 file 2018.10.10
36 2018 Summer (32호) 어머니의 사랑은 자녀를 살리는 보약입니다 file 2018.06.27
35 2018 Spring (31호) 아버지 당신은 자녀의 미래입니다 file 2018.04.01
34 2017 Winter (30호) 평신도는 걸어 다니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file 2018.01.05
33 2017 Autumn (29호) 성도의 교제는 영적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2017.09.28
32 2017 Summer (28호)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2017.06.23
31 2017 Spring (27호) 복음은 죽은 자를 살려 내는 생명의 피입니다 2017.04.05
30 2016 Winter (26호) 건강한 리더는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에서 출발합니다 2016.12.28
29 2016 Autumn (25호) 말씀의 훈련은 '내가 복음'을 '주님의 복음'으로 바꾸어 줍니다 2016.09.21
28 2016 Summer (24호) 사모의 영광은 예배의 영광에서 채워집니다 2016.06.22
27 2016 Spring (23호) 교회는 어두운 밤 외로이 서 있는 등대입니다 2016.03.29
26 2015 Winter (22호) 사모의 즐김은 피로회복제와 같습니다 2016.01.04
» 2015 autumn (21호) 사모의 지성은 새의 날개와 같습니다 2015.10.06
24 2015 summer (20호) 사모의 멋은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2015.07.15
23 2015 Spring (19호) 쉼은 크고 넓은 그분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2015.04.02
22 2014 Winter(18호) 절제함은 우리의 질주를 막아주는 성령의 브레이크입니다 2015.01.09
21 2014 Autumn(17호) 사랑함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는 것입니다 2014.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