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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자녀는

조개 속의 진주입니다

 

조성희 사모(행복연구원장)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게도 큰 부담이 있다. 이미 장성한 자녀들과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부족한 엄마로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과 가슴 저미는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것은 사역자 어머니들의 공통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지금 청소년을 양육하는 어머니들을 생각하면서 나의 마음을 나누려고 한다. 큰아들에게 누가 될까 염려도 되지만, 사역자의 사명과 자녀 양육의 사명을 감당하느라 벅찬 어머니들을 위해 용기를 내 본다.

 

어느 날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반가움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건너편 아들의 목소리는 충격적이었다. “엄마, 나 망했어요. 나 어떻게 해요? 엄마,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 말을 시작으로 아들은 대성통곡을 했다. 너무나 서럽게 울부짖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은 두근거리고 머릿속은 온통 하얗게 되어 온갖 상상이 일어났다. ‘무슨 대형 사고를 친 것일까?’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태연한 척 아이에게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많이 힘든가 보구나. 울어라, 울어도 된다. 실컷 울어라.” 그리고 속으로 함께 울었다. 아이는 꽤 긴 시간 울고 난 뒤 띄엄띄엄 말을 이어갔다. “엄마, 나 아무래도 좋은 대학에 못 갈 것 같아요. 실망시켜서 죄송해요. 열심히 하긴 했는데.” 너무 뜻밖의 말을 듣자 안도의 숨이 나오면서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아이를 위로했다. “괜찮아. 네가 최선을 다한 것이 중요하지. 무슨 대학을 가지고 그래? 누가 너보고 아이비리그 가라고 했니? 우리는 괜찮다.” 아이는 조금 진정이 되자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엄마, 교인들 보기에 괜찮겠어요?” ! 그 순간 가슴이 꽉 막혔다. 아이가 오랫동안 마음 조인 것이 목사의 아들로서 가진 부담이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생각이 조숙한 편이어서 부모가 설득하면 언제나 양보하고 따라 주었던 심성이 고운 아

이였다. 지인의 소개로 미국 남부의 시골 학교에 목회자 자녀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떠났다. 아들은 스스로

목회자 자녀로서의 부담을 안고 살았는데 나는 그것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겨울 방학 때면 한국에 오고

싶어 애타하면서도 막상 비행기 표를 끊어 주겠다고 하면 이런 말을 했다. “엄마 겨울 방학은 짧아요. 비행

기 표는 비싸고요. 교인들 보기에 괜찮을까요?” “엄마가 아들 보고 싶어서 표 끊어 주는데 누가 말하겠니?”

라고 대답해 주었다.

아들은 방학 때 처음으로 머리 염색을 했다. (어느 목사님이 강사로 오셔서 방학 때 염색하는 것이 대세라면

서 돈을 주고 가셨다.) 그런데 자신이 염색이나 하고 다니는 불량 학생이란 소문을 미국에서 듣고 무척 놀라

워했다. 어떻게 하든지 부모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던 아들은 간절히 원하던 대학의 뜻을 이루지 못하

자 크게 낙심하면서 마음이 무너졌다. 통곡하면서 울었던 그날 이후 아이가 말했다. “엄마, 이제 나는 목회자

자녀로 살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 엄마에게 도움이 안 돼요. 그냥 나는 나대로 살겠어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아이는 깊은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오랜 날들을 영혼의 방황자로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어둠

에 갇힌 후 돌아보니 외로움이 병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94, 우리는 미국 유학 중에 성령의 강권함으로 싸움하는 곳으로 소문난 교회에 부임했다. 주님의 교회

를 세우고 싶어서 주야로 뛰어다니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초등학교와 유아원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열쇠를

쥐여 주고 일사각오로 매달렸다. 그렇게 주야로 뛰어다니면서 자녀를 주님께 맡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

녀를 주님께 맡긴다는 의미가, 부모가 없어도 자녀들이 알아서 잘 자란다는 말이 아니었건만, 어리석은 나는

그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큰아이는 초등학교 6년 동안 해외를 포함해서 전학을 5번이나 했고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로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허겁지겁 문을 나서는 남편을 보고 내가

말했다. “여보! 나는 대전에 와서 한 사람을 잃었어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들이 쪼르르 나오더니 말했

엄마, 엄마는 한 사람을 잃었어요? 나는 두 사람을 잃었어요.” 그 말이 얼마나 의미심장하고 중요한 말이

었는지 몰랐다. 중학교 때 심리 검사에서 아이가 많이 외롭다고 나왔는데도 검사가 잘못 나왔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늘 밝고 명랑했으며 불평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순하고 착한 아이여서 아이의 외로움을 포

착할 순간도 놓쳐 버렸던 것이다. 마음 깊숙한 방에 눌러 놓았던 외로움이, 존재감이 흔들리는 사건이 생기

자 마음의 둑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아들로 인하여 흘렸던 눈물은 이 지면에서 다 표현할 수 없다. 많은 시간을 주님 앞에 엎드렸고 낙심되었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마침내 약속해 주셨던 말씀대로 이루어 주셨

. 마치 묶인 매듭을 풀듯이 한꺼번에 하나님의 일을 이루셨다. 지금 아들은 신학을 하고 전도사의 사역을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기독학교를 세웠다. 긴 세월 동안 아들을 위하여 흘

렸던 눈물이 이제는 다음 세대 하나님의 자녀들을 바라보게 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

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이 세상의 모든 청소년들이 다 사랑스럽지만 특히 사역자 가정의 청소년 자녀들은 아름다운 보석이다. 조개

속의 이물질이 여기저기 쓸리고 부딪혀서 영롱한 진주가 되는 것처럼, 사역자의 자녀들이 겪는 외로움과 방

황과 고뇌는 진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청소년기의 삶을 빚어서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에 정금같이 만들

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청소년 자녀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부모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약속하신

실상이 이루어지는 날을 꿈꾸며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사역자 가정의 청소년 자녀 이해하기

 

1. 청소년기 자녀의 특징

 

청소년기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어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다. 번데기가 나비로 날아오르는 과정처럼 중요하고 예민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사춘기가 동반되는 청소년기는 긴 터널을 걷는 것과 같아서 혼자 내버려 두면 좌충우돌하며 유혹과 장애물에 넘어질 수 있다. 부모가 청소년기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사랑의 등불을 들고 함께 걸으면 안전하게 터널을 지날 수 있다.

청소년기는 호르몬의 변화를 통해 남성과 여성다움이 두드러지고 외모에 관심이 집중된다. 유행에 민감하

고 연예인을 좋아하며 무엇이나 모방한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성적인 욕구도 활발하여 성에 대한 지식

과 올바른 태도를 배워야 한다. 정신적으로는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욕구가 강해서 사사건건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권위자에 대한 존중과 순종의 마음이 변하여 지시와 가르침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

고 따질 뿐 아니라 짜증과 신경질, 분노의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친구가 너무 좋아서 무조건 친구를 따

르려는 경향이 많다. 혹 부모가 친구를 판단하려고 하면 마치 자신이 욕을 먹는 것처럼 강하게 거부하는 것

도 청소년의 특징이다.

 

2. 사역자의 자녀만 경험하는 청소년기의 고뇌

 

사역자 가정의 청소년들은 어린 시절부터 사역자의 자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 꼬리표에 합당한 사

람이 되도록 가르침을 받고 교회 청소와 피아노 반주, 아기 돌보미, 성도들의 심부름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

게 부모의 사역을 도왔다. 그런데 청소년기가 되면서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배웠던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이 있

음을 발견하게 된다. 높은 도덕적 가치와 잣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라고 부추기는

자극적인 세상은 신세계처럼 보인다. 자신과 세상과의 괴리감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갈등에 휩싸인다. 지금까

지 배워왔던 하나님의 말씀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요일 2:15).

잠시라도 사역자의 자녀라는 중압감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부모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박차

고 나와서, 친구들처럼 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분수에서 솟구치는 물줄기같이 시원하게 자신의 욕구를 쏟

아 내고 싶은데 방법이 없으니 답답하다. 부모와 자신이 속해 있는 환경에 대해 불만과 거부감을 표현해 보지

사역자의 자녀라는 꼬리표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사역자 가정의 자녀에게만 있는 남다른 고통과 갈

등이다. 그러므로 사역자의 자녀들이 치르는 청소년기는 매우 가혹하고 힘든 계절이 될 수 있다. 두 마음의 전

쟁을 치르는 청소년 자녀들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들의 심적인 고통과 영적인 갈등을 부모가 헤아려 주지

않으면 누가 이해해 줄까.

 

 

@ 청소년 자녀가 바라보는 사역자의 가정이란

 

청소년 자녀에게 사역자 가정은 어떤 느낌을 줄까? 청소년기가 되면 부모와 자신의 입장, 존재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청소년 때에 그들이 느끼는 사역자의 가정은 어떤 의미로 와 닿을까.

 

1. 유리 상자 속 인형의 집 같다

 

유리 속에 있는 인형의 집은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훤히 들여다보인다. 인형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숨길 곳이 없는 셈이다. 청소년 자녀들은 자신이 바로 이런 인형의 집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실제 사역자의 집이 눈에 보이는 사역의 현장 안에 함께 있는 경우도 많다. 교회의 제일 높은 층, 교회 안쪽에 붙어 있어서 붙박이 방 같은 곳, 바로 앞 뒤 집 같이 붙어 있어서 교인들의 지나다니는 소리가 다 들린다. 이는 집안에서 큰 소리로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일이면 교회 식구들이 몰려와서 휴식처로 삼기도 하고 식당으로 삼기도 한다.

설사 물리적인 위치는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심정적으로 사역자의 가정은 인형의 집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사역자인 부모의 모든 수입과 필요를 사역지에서 제공받고, 부모의 일과 가족의 휴가나 여가 사용까지도 교회 앞에서 드러날 때가 많음이다. 어디를 가도 아는 사람을 만나고,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면 불편하게 느낀다. 마치 어린 아기가 낯가림을 하듯이 청소년기가 되었다는 증거다.


2. 작은 목사가 되기를 요구받는 수도원이다

 

어떤 가정의 아이들도 모든 교인에게 인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역자의 자녀들은 교회 마당을 밟는 순간

부터 마주치는 모든 어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해야 한다. 인사를 소홀히 하면 오해받고 부모에게 누를 끼

치는 일이 발생한다. “목사님 아이인데 인사성이 없네? 목사님 가정에서 자녀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청소년기가 되면 어떤 유행하는 옷을 입었는지, 어떤 아이들과 친구로 어울리는지, 어떤 동네, 어떤 장소에

서 보았다는 등 교인들의 뒷담화거리가 되기 쉽다.

부모는 이러한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자녀들에게 끊임없이 교훈을 베푼다. “너는 다른 아이들과 달라. 너는 목회자, 선교사 자녀잖아. 네가 그러면 아빠가 어떻게 사역을 할 수 있니? 자식도 잘 못 가르치면서~” 매사에 조심하라는 부모의 권면은 예민하고 자존심이 강한 청소년기에는 거부하는 마음만 커진다. 항상 이것을 해라, 하지 말라가 따라다니는 가정은 엄격한 수도원 같아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자신은 없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지는 삶을 연출해야 된다는 생각에 더욱 화가 난다.

 

3. 부모의 무거운 짐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통로다

 

사역자의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사역지에서 자랐기에 어른 아이가 된다. 어른들 곁에서 성장하다 보니 곁

눈질로 보고 귀동냥으로 듣는 것이 많아 눈치도 빠르고 분위기 파악도 빠르다. 따라서 사역지의 부정적인 모

습이나 어려움도 빨리 감지한다. 부모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로부터 어떤 존중을 받는지도

느낀다. 상처받거나 갈등하는 일도 단번에 알아차린다. 부모가 자녀 앞에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해도 자녀들은 부모의 말에 속지 않는다. 저녁 늦게 걸려오는 전화, 부모가 조심스레 응대하는 모습, 오랜

시간 회의를 마치고 늦은 시간의 귀가, 침울한 모습으로 한숨 쉬는 모습, 부모님이 조심스레 주고받는 이야

기들의 파편 조각만 듣고도 충분히 느낀다. 부모의 사역에 어려움이 생기면 가정에서도 우울하고 무거운 그

림자가 드리운다. 사계절의 변화처럼 사역의 현장이 바뀌면 사역자의 가정도 그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역자의 가정은 예민한 청소년 자녀에게는 사역의 무거운 짐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현장이다. 청소년 자녀

들은 부모가 들고 오는 사역의 무게를 감당하고 평안히 감내할 그릇이 되지 못한다. 용광로 같이 끓어오르

는 욕구와 격동의 젊음이 있지만 사실은 체격만 커 보이는 어린 아이이기 때문이다.

 

 

@ 청소년 자녀가 가장 많이 받는 상처

 

자존심으로 충만한 청소년기에는 작은 일에도 상처받기 쉽지만, 결코 지우지 못하는 상처도 있다. 그 상처

는 회복이 더디고 자녀의 일생에 찌르는 가시로 남기도 한다. 자녀의 상처를 잘 헤아려서 믿음의 손해를 보

지 않게 하면 좋겠다.


1. 부모가 사역의 열심 때문에 자신을 소외시킨다고 느낄 때

 

사역자의 자녀들은 부모가 사역하느라 자신들에게 소홀히 대했다는 서운함이 있다. 또한 사역의 특성상 다른 사람들 쉬는 주말에 일하고, 휴가철에는 여름 행사를 진행하느라 더욱 분주하고, 분위기가 끝물일 때 겨우 가족들과의 시간을 갖게 된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면 다른 가정들은 가족을 중심으로 화목한 기쁨을 누리지만 사역자의 자녀들은 아버지 없이, 혹은 엄마도 없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부모는 그 행사를 진행하는 주최 측이고 모인 사람들을 섬겨야 하는 책임이 있음이다. 어디 그뿐인가. 입시철이 되면 부모는 다른 가정의 자녀들을 격려하고 기도해 주느라 바빠서 정작 자기 자녀는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녀들이 그런 상황을 어떻게 다 이해하고 소화시킬 수 있겠는가. 부모가 자녀들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고 수시로 다독여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녀들의 서운함을 당연시하지 말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쌓였던 서운함이 상처가 되고 분노로 바뀌면서 하나님이 부모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자녀들도 있다.

 

2. 부모가 상처받고 고통당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사역의 목적은 선하고 아름답지만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은 갈등과 아픔, 시련의 골짜기를 지난다.

회가 분쟁이 일어나 분파가 생기고 사람들이 서로를 찌르는 가시가 되어 사역자를 괴롭히는 상황도 벌어

진다. 문제는 부모가 연단 받고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자녀들의 마음에 시험이 드는 것이다.

분쟁과 갈등에 휩싸인 어른들의 싸움은 자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잘 지내던 친구와 선후배들이 사

라지고 부모로 인해서 이편저편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부모를 괴롭히던 사람들도 이전에는 가까이 지냈

던 어른들이니 자녀들에게는 얼마나 큰 충격이 되겠는가. 사역자 부모는 낮에는 상처받은 성도들 싸매어

주고 집에 들어오면 걸려 오는 전화를 응대하느라 아이들의 끼니도 제때 챙겨 주지 못한다. 교회가 시험에

들면 전화기에 불이 난다. 한번 수화기를 들면 한 시간 통화는 기본이고 사역자 마음대로 거절할 수도 없

. 부모는 아이들에게 이런 상황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많은 부분을 함구하지만, 자녀들은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상처를 깊이 묻어 둔다. 이렇듯 자녀들은 사역지의 혼란과 다툼, 부모의 고통이 큰 상

처가 되어서 불신과 반감으로 교회 사랑을 잃어버린다. 다행히 주님께서 자녀들에게 시험을 덮고 남을 만

큼의 은혜를 부어 주시니 그저 감사한다.

 

3.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느낄 때

 

사역자의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귀로 들었던 하나님의 사랑을 개인적으로, 부모를 통해서, 혹은 사역지의

안정감과 평안을 통하여 맛보기를 원한다. 그런데 부모가 수고하는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확

신을 갖지 못하면 자녀들은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른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함으로 생기는 열등감처럼 민감

한 청소년들도 그러한 마음에 사로잡힐 수 있다. “왜 우리 부모의 사역은 이럴까? 왜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을까? 왜 나는 이런 가정에 태어나야 했을까?” 청소년 자녀에게 다가오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

를 문다. 특별히 열악한 곳이나 특수 사역을 하는 부모를 보면 더욱 마음이 상한다. 희망이 없는데도 묵묵

히 그 자리를 지키는 부모를 하나님께서 왜 돌아보지 않으실까 생각하니 하나님께도 화가 나고 부모에게도

화가 난다. 마음으로는 부모를 사랑하는데 겉으로는 반항하며 부정적으로 대꾸한다. “하나님이 살아 있는

데 왜 모른 척하시나요? 하나님이 정말 있기는 한가요?”

자녀의 믿음이 흔들린다고 생각하면 부모는 가슴이 미어진다. 그러나 너그러이 받아 주어야 한다. 믿음 없

는 자녀라고 꾸짖고 너는 잘한 게 뭐가 있니? 너나 잘해라라고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부모가 사역지에

서 고생할 때 자녀들도 고생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 그들이 바라는 것,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아쉬움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해 갖게 되는 서운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므로 마땅히 이해하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 청소년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지혜

 

청소년 시기에는 자신감의 결여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스스로의 고민도 많다. 부모에게 큰소리치

고 방문을 쾅 닫고 나가지만 사실은 몸이 큰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그들의 반항은 너무 빨리 어른처럼 행동

했던 지난날에 대한 보상을 필요로 한다. 크리스탈 같은 여린 마음으로 부모의 사역을 지지해 왔으니 이제

는 부모의 차례가 되었다. 위로하고 격려하며 어린 시절 자녀가 부모를 기다려 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부모

가 그 자녀를 기다려 주어야 한다.

 

1. 믿음에 대한 거부가 있을 때 사랑으로 기다려 준다

 

매우 순종적인 아이도 청소년기가 되면 신앙에 대해서 고민한다. 자신의 믿음인지 부모의 믿음인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수련회도 참여하고 스스로 고민하다가 확신이 없으면 회의적인 마음에 사로잡

힌다. 하나님이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며 교회도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가장 나쁜 상황

이 전개되는 셈이다. 자녀의 이런 모습을 발견하면 사역자 부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어떻게

내 자녀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하지? 어떻게 지금까지 가르친 삶의 가치를 벗어 던질 수 있지?”

격을 받은 부모는 성경을 들고 온갖 진리로 설득하려고 애쓴다. 단언하건대 다 소용없는 일이다.

앙을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만큼 공허함과 외로움이 크다는 말이다. 오히려 부모가 믿음의 눈

을 뜨고 자녀의 가슴에 뚫려 있는 공간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 부모가 사랑으로 채우리라

결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도 도울 수 없는 사역자의 자녀는 부모가 도와야 한다. 부모와 사역으

로 인해 잃어버린 사랑이 많기 때문이다.

 

2. 이해되지 않아도 한발 물러서서 바라본다

 

청소년이 되면 기질과 성품에 따라서 자녀를 대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녀와 거리를 두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이 지혜롭다. 청소년기에는 공부도 해야 하고 유혹도 많으니까 원천 봉쇄를 외치며 밀착하려고 하는 부모는 지혜롭지 못하다. 오히려 선수를 양육하는 코치처럼 격려하고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고 많았다. 너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어. 힘내~” 따스한 말과 눈빛으로 관심을 보이고 가정예배 때나 등하교, 취침 시간에 손잡고 기도해 준다. 그러면 자녀가 도움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따스한 부모에게 손을 내밀게 될 것이다. 자녀의 행동이 다 이해되지 않아도 잔소리하는 것은 역효과를 줄 뿐이다. 자녀를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잘 참는 훈련을 해야만 자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3. 자녀의 언행에 상처받지 않기로 결심한다

  

청소년이 되면 사역자 부모의 설교가 자녀에게 먹히지 않는다. 그들의 논리와 주장은 자기중심적이며 궤변

에 가까울 때가 많다. 부모가 대화를 나눈다고 계속 이어가다 보면 논쟁이 되고 논쟁은 급기야 화를 내고 상

처로 매듭을 짓게 된다. 청소년 자녀는 감정의 동요가 큰 만큼 부모보다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고, 가감 없이

독한 말을 뱉기도 한다. 자녀에게 모진 말을 들으면 부모는 상처를 받는다. ‘저 아이가 내 자녀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크게 상심한다. 자녀 때문에 상처받고 낙심천만인 부모, 서로 외면하면서 평행선을 긋는 부모

도 보았다. 부모는 자녀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들은 자신이 하는 말

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감정을 따라 던지는 것뿐이다. 자녀의 말보다 그 마음을 읽어야 한다. 만약 우리 주님

께서 우리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기로 작정하셨다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주님을 울게 만들지 않았을까.

오래 참으시던 주님을 생각하고 매일 용서해 주므로 부모 자신의 상처도 씻어 버리는 것이 좋은 태도다.

 

4. 경청을 잘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조언한다

 

청소년의 마음을 움직이는 한 가지 특효약은 진심으로 경청하는 자세다.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

하는 경청을 하면 자녀들이 기뻐한다. 경청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귀히 여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자녀들은

부모가 자신을 어른으로 인정해 주고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하면 내심 뿌듯해한다. 부모와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하는 자녀는 건강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반대로 부모와 대화가 단절된 자녀는 그만큼 가정 밖으로

나돌고 부모를 속상하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삐딱한 걸음을 걷는다.

좋은 부모는 자녀의 하찮은 이야기라도 잘 들어 주고 자녀를 지지하는 발언을 계속 이어간다. 결과보다는 과

정의 태도를 많이 칭찬해 준다. 그러다 보면 또래 친구나 일 년 선배에게 조언을 들었다고 우기던 자녀가 조

금씩 부모에게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인생의 선배처럼 대화를 나누다가 생각과 가치를 나누고, 마침내 하나

님의 꿈으로 이어지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 신뢰가 무르익으면 부모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던지는 한 마디는

성령이 역사하시는 중요한 카드가 된다.

 

청소년 자녀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싶다면 공부해라재촉하지 말아야 한다. ‘공부라는 두 글자를 빼면 자

녀와 친밀하게 지낼 뿐 아니라 온갖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자녀의 꿈을 함께 그리며 마음껏 추억도 만

들 수 있다. 청소년 자녀를 양육하는 모든 어머니들을 통해 자녀도 살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은혜가

넘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끝으로 두 아들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기도해온 약속의 말씀을 나누면서 이 글

을 맺고자 한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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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Winter (34호) 청소년 자녀는 조개 속의 진주입니다 file 2019.01.04
37 2018 Autumn (33호)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전 우주와 같습니다 file 2018.10.10
36 2018 Summer (32호) 어머니의 사랑은 자녀를 살리는 보약입니다 file 2018.06.27
35 2018 Spring (31호) 아버지 당신은 자녀의 미래입니다 file 2018.04.01
34 2017 Winter (30호) 평신도는 걸어 다니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file 2018.01.05
33 2017 Autumn (29호) 성도의 교제는 영적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2017.09.28
32 2017 Summer (28호)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2017.06.23
31 2017 Spring (27호) 복음은 죽은 자를 살려 내는 생명의 피입니다 2017.04.05
30 2016 Winter (26호) 건강한 리더는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에서 출발합니다 2016.12.28
29 2016 Autumn (25호) 말씀의 훈련은 '내가 복음'을 '주님의 복음'으로 바꾸어 줍니다 2016.09.21
28 2016 Summer (24호) 사모의 영광은 예배의 영광에서 채워집니다 2016.06.22
27 2016 Spring (23호) 교회는 어두운 밤 외로이 서 있는 등대입니다 2016.03.29
26 2015 Winter (22호) 사모의 즐김은 피로회복제와 같습니다 2016.01.04
25 2015 autumn (21호) 사모의 지성은 새의 날개와 같습니다 2015.10.06
24 2015 summer (20호) 사모의 멋은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2015.07.15
23 2015 Spring (19호) 쉼은 크고 넓은 그분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2015.04.02
22 2014 Winter(18호) 절제함은 우리의 질주를 막아주는 성령의 브레이크입니다 2015.01.09
21 2014 Autumn(17호) 사랑함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는 것입니다 2014.09.14
20 2014 Summer (16호) 정직함은 영혼의 산소입니다. 2014.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