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은 받는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복이 되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특별히 선교적 관점을 가지고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신약에서도 사도행전의 일부가 선교를 요청하는 명령이라고만 생각했지, 구약의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You will be a Blessing!‘을→열방에 복을 주기 위한→하나님의 선교'로 읽은 적은 없었죠.
카이로스에서는 복을 받는 차원을 넘어서 복이 되어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성경적/역사적/전략적/문화적 4가지 관점으로 설명합니다.
(1) 선교는 신약의 일부에서만 말하는 것이다? 카이로스에서는 성경 전반에서 선교를 어떻게 이야기 하는지 열어줍니다.
![[Resized]IMG_4544.jpeg](https://www.saeronam.or.kr/home/./files/attach/images/336/047/663/002/4d23e09de704711e21122499f0886179.jpeg)
[ 성경이 새롭게 열린 카이로스 훈련 ]
(2) 역사 안에서 선교는 멈춘 적도 있고, 흥왕했던 시기도 있다? 카이로스에서는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선교가 어떠했는지 설명합니다.
![[Resized]IMG_4523.jpeg](https://www.saeronam.or.kr/home/./files/attach/images/336/047/663/002/4f7d5784e43a97360a1400cee7c4e4fa.jpeg)
[ 한국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알 수 있었던 선교지 탐방 ]
(3) 선교는 어떤 방법이든 그 자체로 충분하다? 카이로스에서는 전방 교회 개척을 위한 총체적 변혁의 전략을 안내합니다.
![[Resized]IMG_4531.jpeg](https://www.saeronam.or.kr/home/./files/attach/images/336/047/663/002/27b2fa3ced24b0ed20bed73da08d0647.jpeg)
[ 날카로운 화살이 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
(4) 선교는 멀리 가는 것이다? 카이로스에서는 선교는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로 가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 카이로스에서만 즐길 수 있는 시크릿 활동! ]
저에게 카이로스는 두 가지 힘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잘 살아 구심적 차원에서의 선교를 이루어야 할 때는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끓기도 했고, 막상 팽창력을 따라 타문화권에서 살게 되었을 때는 내 삶이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과 조금도 유사하지 않아 괴로웠던 때도 있었습니다.
카이로스를 마치며 ‘장래에 살고 싶은 방식으로 지금부터 살기’를 다짐해 봅니다. 여기에서 시간을 떼는 노력 없이는 현지에서 저절로 말씀을 읽게 될 리 없고, 지금 하는 결정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는 현장에서 절로 하나님께 여쭐 리가 없죠. ’지금, 여기‘는 가장 적당한 연습의 장이더군요.
![[Resized]IMG_4525.jpeg](https://www.saeronam.or.kr/home/./files/attach/images/336/047/663/002/81933c6a5361ebd321ae799ef8b90b36.jpeg)
[ 항상 짧게 느껴졌던 조별 성장점 나눔 시간, 그래서 우리는 후속 프로그램 FTC를 함께 합니다♡ ]
연습은 조원들과 함께여서 가능했습니다. 성장점 나눔을 통해 도전이 되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멋진 어른 세대가 되어야지 하는 다짐도 했고요. 늘 사랑의 눈으로 돌봐주시는 조장님과 퍼실리테이터분들을 봐서라도 더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5주간 이란어 알파벳을 배웠습니다. 발달장애 친구들의 산책을 돕는 봉사활동도 했고요. 니제르에서 온 유학생과 친구가 되려고 만나기도 했습니다.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멈추더라도 너무 자책하진 않기로 했습니다. 연습이니까요.

[ 마지막 과제 발표, 저는 미래시점에 바라는 것을 현재로 끌어와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
선교는 희생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아니, 대부분의 시간 그렇게 생각했고 아주 일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리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아펜젤러, 언더우드, 허드슨테일러의 시대처럼 수십일 배 타고 건너가지 않아도 되는, 풍토병에 자녀들이 죽을 일은 거의 없는 시대의 선교란 너무 시시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어떤 헌신도 이전 세대의 선교를 향한 내어드림을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나의 내어드림을 헌신이라 말할 수 있나 초라해 보였습니다.
선교에 대한 거창한 기대와 오해가 풀린 건 동생을 통해 알게 된 네덜란드 선교사의 한마디였습니다.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Are you a missionary?”라고 물었는데요. 그의 대답이 어찌나 근사한지, 선교의 개념이 쉽게 재정의 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I have a Mission.”이라고 대답했거든요.
네, 저에게도 미션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름받은 누구에게나 미션이 있죠!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주어진 미션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궁금하신 분이 계신가요?
카이로스에서 같이 고민해 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초대합니다!
![[Resized]IMG_4528.jpeg](https://www.saeronam.or.kr/home/./files/attach/images/336/047/663/002/889f3b01dc3930f5d6776a04e70dc16e.jpeg)
[ 간식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카이로스, 섬기는 손길에 항상 감동! ]
- 하나님의 영광이 계속 우리 삶을 관통하기를 바라며, 7기 카이로스 수료생 정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