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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월호 월간목회

진정 목회 위기는 성숙의 기회인가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불신의 벽을 넘어서라!

필자가 현재의 교회에 부임하여 어떤 장로로부터 귓속말로 처음 들었던 이야기가 제법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음의 귓가에 맴돌고 있다. “목사님, 저 장로를 믿지 마세요” 어떤 사연이 있길래, 어떤 아픔이 있길래 이런 말을 갓 부임한 담임목사에게 해야만 했을까.
우리 교회가 건축중에 먼저 예배당을 아름답게 건축한 다른 교단의 교회를 방문하여 그 교회 담임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첫 마디와 어떻게 그렇게 닮았을까? 그 목사님은 자신의 교회를 방문한 내 손을 꼭 잡고 비장한 말투로 일갈했다. “목사님, 장로를 믿지 마세요” 자신의 교회를 방문한 타 교단의 건축중인 목사에게 꼭 이 말을 해야 했을까? 얼마나 속이 터졌으면 자신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이 말을 했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교회는 건축중에 교회가 큰 시험에 빠졌다. 재정문제가 발생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핵심멤버 상호간에 인간관계의 심각한 훼손이 있었단다.
목사가 넘어서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불신의 벽보다 부담되는 벽이 있을까? 인격의 나약함, 환경의 열악함, 사탄의 계교, 뜬금 없는 교인들의 오해, 온라인 상의 떠도는 카더라 통신, 음해와 왜곡, 이런 종류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와 목회자들이 마치 전쟁터의 패잔병처럼 무장해제 당하고 상처를 입는다. 급기야는 환경에 끌려다니며, 연명하는 목회를 하는 나락에까지 떨어지게 된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베리아의 찬바람, 북극의 칼바람 같은 위기의 때도 견뎌야 했다. 지금와서 돌아보니 그 시기는 영적 근육을 강화하고 목회의 내공을 쌓는 축복의 시기였다. 그러나 아픈 시기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 편에 서라!

어떤 일이든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필자가 부임한지 얼마 안되어 인간관계에 얽히고 섥혀 있던 당회원들이 전임 사역자의 목회지 회귀에 따른 교우들의 요동침은 어리숙한 목사가 웃으면서 치루어내기에는 실로 버거운 일이었다. 돌이켜보니 그 때가 필자의 목회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회피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비판한다고 끝날 일도 아니었기에 믿음으로 정면돌파 하기로 결단했다. 정면돌파는 한가지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확신은 나 스스로의 계획과 능력으로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 자리에 세우셨다는 확신이었다. 파송하신 분이 주님이시니 문제해결에 능력도 주님의 손에 있음은 자명한 이치가 아닌가. 일단 해결의 열쇠를 쥐신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반응하지 말고 주님께 믿음의 올바른 반응을 하자고 마음을 추스렸다.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루에도 여러 번 씩 마음이 상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의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니 형언할 수 없는 심령의 평안함이 나를 압도하였다. 완벽한 시선 고정은 아니었지만 목회자의 정도를 지키려는 몸부림이지 않았을까.
그 상황에서 진정 은혜의 샘물이 메말랐다면 필자 역시도 세상 사람들의 방식으로 대응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전투를 치르면서 마음속에 각인된 진리가 있다. “어떠한 순간이든 하나님편에 설때 하나님께서는 책임지시고 이끄신다”는 원리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을 때에 그 결정적인 순간을 주님사랑, 교회사랑, 영혼사랑으로 채우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이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픔과 감사가 교차된다. 나만은 교회 풍파에서 면제되리라 생각한 것이 얼마나 모자라고 어리석은 생각인가 하는 것과 그 순간에 주님께서 신실한 교우들과 환경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종을 만나 주셨는지에 대한 감사이다.
목회는 만남의 연속이다. 목회는 관계이다. 목회는 hand in hand, heart to heart, soul to soul relationship이다. 목회는 내가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섭리적으로 허락하신 관계를 사랑과 신뢰로 채워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포도원의 울타리를 허는 여우는 항상 존재한다.
은혜로우신 주님께서는 “목양일념” “정도목회”를 고집할 때 동역할 수 있는 일꾼들을 예비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다. 목회의 어려운 때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동역한 당회원의 고백이다.

「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기 위하여 장로들부터 제자훈련을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다른 장로들은 제자훈련 도중이나 제자훈련만 마치고 떠나는 장로도 있었으나 저는 끝까지 남아 제자훈련 1년, 사역훈련 1년, 또 전도폭발훈련 1년까지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님들을 더 사랑하고 섬겨야겠다는 것을 배우면서 점점 더 성숙되어 갔습니다.
중도에 당회원이 8명에서 5명이 떠나 3명으로  줄고 한 분은 이민가고 또 한분은  떠나가고 결국 저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장로님들 모두 떠나보내고  저만 홀로 남겨두신 하나님이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면서 왜 이렇게 이끌어 오셨을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계실거야 하는 생각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는 중에 건축헌금을 관리하는 집사가 건축헌금 중 일부를 우선 개인의 사업에 유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변상하고 나머지 얼마는 갚지 못하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당회에서는 성도들의 헌금을 개인이 사용하고 갚지 못한 부분을 목사님과 저가 무한책임을 지고 분명하게 변상하기로 결정하고 성도들에게 공포하였습니다. 작정한 건축 헌금도  다 하지 못한 저에게는 큰 돈이었으나 아내가 기쁘게 동참해준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마음속 깊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새로남교회 일꾼이야기)

설악산이 절경으로 소문난 배경에는 기암괴석은 물론 골이 깊고 산세가 험하기 때문이다.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진리가 꽃피워 열매 맺는 현장이 가능할까?

전략으로 접근하라!

우리교회를 방문하는 목회자들과 평신도지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교회성장과 은혜로운 목회현장의 비결을 물어온다. 목회에 무슨 비결이 있을까마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자리를 충성되이 지키고자하는 원칙, 거기에 사람 소중한 줄 알아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자하는 목자의 심정과 열정이 비결 아닌 비결이다. 이미 모든 동역자들이 경험하는 영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뒷모습이 아름다운 목회자로 각인되어 있는 필자의 멘토이신 옥한흠목사께서 한국교회의 목회현장을 진단하기를 삼허가 판치는 목회라고 규정하고 내실을 다져야 할 것을 촉구한 일이 있다. 삼허가 무엇인가? ①허수(虛數) ②허세(虛勢) ③허상(虛像)의 목회와 교회의 모습이다. 새로운 시대에 성경적인 교회 모습과 복음의 영향력을 유지 심화하기 위하여 교회도 예외없이 성경의 원리로 구조조정을 하여 삼허를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삼실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곧 ①실수(實數) ②실세(實勢) ③실상(實像)의 목회로 환골탈태해야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솔로몬의 지혜는 소문을 압도하고도 남는 지혜였다. 이 일은 알맹이 있는 목회에 대한 소망의 빛을 던져준다. 알맹이 있는 목회 곧 명실상부한 목회는 자연발생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땀과 수고와 눈물을 필요로 한다. 전략을 요구한다. 목회자가 목적이 분명하여 교회 앞에 비전을 제시할 때 교우들은 안심하고 확신가운데 따라온다.」

▶ 교회 발전 장기 계획
  1995~1996 영적도약을 위한 의식적, 구조적 터전 마련
  1997~1998 평신도 지도자 훈련강화(훈련정착과 교육시설확충)
  1999~2000 성전건축을 위한 토대마련, 성장을 위한 영적인프라 구축
  2001~2002 선교사역 박차, 사회봉사 확대, 성전건축 시작
  2003~2004 성전건축 완성, 중부권에 평신도 훈련 모델 제시로 섬김과 나눔
  2005~2007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상 구현, 교단적 사회적 책임 감당

▶ 목양지침 : 복음으로 영향을 끼치는 교회
   전파하는 교회(전도, 선교), 가르치는 교회(교육, 훈련)
   치료하는 교회(예배, 상담), 봉사하는 교회(섬김, 나눔)

스페인의 소문난 도시 바르셀로나에는 창의적인 건축가인 가우디(Gaudi)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올림픽을 통해 소문나기 전부터 바르셀로나는 예술적인 건축으로 알려진 곳이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건축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세계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감동을 새겨 놓는다. 가우디 역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한 결과 현대 건축에서 그의 이름을 우뚝 세울 수 있었다.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독특성으로 일가를 이룬 가우디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과 인내와 조화를 통하여 건축가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목회자는 혼자서 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수많은 성도들과 더불어 함께 주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는 소명자이다. 가우디가 건축한 성가족교회의 구조와 웅장함은 함께 협력한 탁월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과의 조화로움의 열매이다.
새로남교회 역시 드러난 사람들 이면에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감당하는 수많은 교우들의 충성가운데 하나의 유기적이면서 조직적인 공동체를 이루어 왔다. 외부의 사람들은 담임목회자를 주목하지만 실상 주목받아야 할 대상은 때로는 침묵 정진하는 다수의 교우들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받은 메일은 이 같은 사실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어제도, 오늘도 고백하듯이 제 인생에서 목사님을 만난 것이 하나님의 큰 축복이라고
다시한번 고백합니다. 목사님을 위해서 평생기도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
“저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게 느껴진 가시밭길 인생의 여정에서 주님을 향한 마음과 힘이 남아 있을 때 새로남교회에 정착하고 목사님을 만나 훈련받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큰 은혜의 인생의 여정의 조력자로서 조용히 섬기겠습니다.”
사무엘하 23장에는 다윗을 도와 다윗왕국을 세운 용사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새로남교회의 역사를 기록할 때 기록해야 할 수많은 충성된 교우들의 이름 역시 필자의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