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신앙의 침체와 이성의 추구

로마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의미 없는 30년 전쟁이 끝날 무렵, 17세기 유럽은 계몽주의의 영향권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계몽주의는 과학 혁명, 이성 종교, 철학 혁명 등을 아우르는 사조로서,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믿으며 ‘이성의 힘’으로 사회를 개혁하려는 데 목적을 두었던 시대적 사조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이성과 합리성이 진리의 판단 기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특히 계몽주의에 근거한 과학혁명과 철학혁명은 정통 신앙을 점점 무너뜨렸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기는 했지만, 세상의 운영은 그가 만들어 놓은 이성의 법칙에 의해 돌아갈 뿐이라고 여겼던 겁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들로 인해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이 점점 희미해졌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100여년 밖에 안 된 시점에서 기독교는 다시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됩니다. 종교개혁 신앙을 교파별로 확립하는 과정에서, 중세교회가 사용하던 스콜라주의로 돌아가는 우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스콜라주의는 ‘이성적 사유를 통해 논증하고 이해’하려는 중세 철학의 흐름이었는데요, 당시 시대적 흐름 속에서 교회 역시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된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로마가톨릭교회로 회귀하는 교회의 모습에 많은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나타난 것이 ‘경건주의’였습니다. ‘교리를 삶으로!’ 경건주의의 슬로건입니다. 경건주의는 독일의 필립 야콥 슈페너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후 니콜라우스 진젠도르프가 발전시켰고, 헤르만 프랑케에 이르러 완성됩니다. 영국의 존 웨슬리와 동생 찰스 웨슬리는 경건주의를 배경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실천하자는 행동주의를 주장하며 삶의 변화와 도덕의 변화를 꾀했습니다. 또한 선교의 열정에 힘쓸 것도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죽은 정통’을 비판하고 삶 속에서 경건의 실천을 강조하고자 했던 경건주의는, 결국 ‘객관적 진리’를 무시하게 만들었고, 율법주의와 도덕주의를 추구함으로 알맹이 없는 신앙을 양산해내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후대 현대신학의 가장 큰 적인 자유주의와 무신론을 태동하였으며, 종교혼합주의와 다원주의 역시 경건주의의 영향에 의한 것입니다.

부흥운동과 변화의 바람

이렇게 계몽주의와 경건주의로 인해 복음의 권위가 무너져 가고 있을 때, 영국 청교도들은 삶과 신학을 균형 있게 강조하며 신앙회복에 힘쓰게 됩니다. 그들은 성경에 입각한 삶을 살고 싶어 했고, 말씀과 지성에 따른 실천과 행동이 있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이런 청교도의 신앙은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가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특히 미국 제1차 대각성운동의 선구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차가운 이성주의자들과 광신적 열광주의자들을 모두 경계하면서, 균형 잡힌 부흥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에드워즈에 의해 시작된 부흥의 불길은 수년 후 조지 휫필드에 의해 더욱 타올라, 미국 전역을 휩쓸게 됩니다. 이런 에드워즈의 부흥운동은 지성과 감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개혁주의적 부흥운동의 모범사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위기 가운데 나타났던 경건주의와 청교도주의 부흥운동은 엄청난 선교 열정으로 표출됩니다. 당시 경건주의 운동의 요람이었던 할레대학과 모라비안(헤른후트) 공동체는 수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해 선교에 힘썼고, 청교도주의 부흥운동은 18세기 영미권의 부흥과 선교를 촉진시켜 해외선교의 열정으로 나타났습니다. 근대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도 선교의 선구자 윌리엄 캐리를 비롯해 중국 선교에 헌신했던 허드슨 테일러, 아프리카의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다 순교한 데이비드 리빙스턴 등, 수많은 선교사들이 바로 청교도주의 부흥운동이 낳은 열매였습니다. 삼각패널을 돌려보시면 인물사진과 소개, 사역장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겸손과 섬김의 사회개혁

현대 선교의 특징은 복음과 더불어 사회 개혁, 그리고 삶의 개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일평생 영국 노예제도 폐지 운동을 펼쳤고, 결국 그의 열정적인 노력으로 1833년 노예제도 폐지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습니다. ‘고아원의 아버지’로 불렸던 조지 뮬러는 고아원 사역을 해나가면서 수많은 기도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에 대해 이렇게 확신했습니다. ‘고아원 사역의 근본적인 목적은 나의 보호 아래 있는 고아들이 필요한 모든 것들을 기도와 믿음을 통해 공급받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시며,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분이심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 해방의 꿈을 안고 비폭력 저항 운동’을 펼쳤고, 더 나아가서 인종차별, 빈곤, 전쟁에 반대하며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