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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의 기술

2020.12.27 11:41

화목의 기술

 

 

목사에게는 싸움의 기술이 필요하다. 싸움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화목을 위한 자아와의 싸움의 기술이다. 필자는 싸우는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다. 어느 목회자가 전쟁터 교회에 부임하기를 원하겠는가?

장로교회 목사의 간절한 소원은 은혜로운 당회이다. 은혜로운 당회는 은혜 받은 목사와 장로가 이루는 것이다. 당회의 구조상 한 사람이라도 은혜에서 떨어지면 그 찬란한 당회의 기능은 순식간에 마비된다.

부임 초기에 기도의 제목은 오직 한 가지 “주여, 화목한 교회를 이루게 하옵소서!”였다. 교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목회적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정작 교회의 본질을 세우는 일에 대해서는 무능하게 되는 기형적 결과를 낳는다. 목회자의 마음이 전쟁터가 되면 성도들에게 어떤 은혜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필자는 강단에서 찌르고 쏘는(?) 설교를 하지 않기로 작정을 하였다. 물론 회중석에서 도끼눈을 뜨고 있는 교우들을 볼 때에 일순간 마음이 흔들리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 스스로 다짐한 약속을 지켜내려고 내면의 적지 않은 싸움을 치러 내기도 하였다.

화목을 향한 첫걸음은 주일 낮 예배시간 기도 인도하는 장로님과 손을 잡고 하는 기도였다. 26년째 계속 진행 중이다. 초창기에는 예배시간 전 강단위에서 함께 손잡고 기도하였다. 그 후 예배시간 15분전 목양실을 방문하는 장로님의 손을 잡고 기도를 드렸다. 기도 내용에는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과 장로님과 동역을 감사함과 장로님의 자녀들과 사업의 은혜로운 성장을 위한 기도였다. 손을 맞잡고 기도드리는 시간은 목회자인 나와 동시에 손잡고 함께 기도하는 장로님을 영적으로 정위치(正位置)하는 느낌을 받는다. 감사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부부도 살다보면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갈등을 빚기도 하는데, 나이 들어 만난 담임목사와 당회원사이가 날마다 찰떡조합으로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해를 무너뜨려 이해를 도모하는데 주님 앞에서 함께 손잡고 드리는 기도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손을 잡음으로 전달되는 온기, 목소리로 전달되는 간절함, 거기에 성령님의 위로하심과 새 힘이 부어진다면 거기가 바로 시은소(施恩所)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완성된 인격이 누가 있을까? 목회자나 장로 역시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인격과 사역의 공사중(工事中)임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필자는 경험상 알고 있다. 사랑받은 영혼은 부드러워진다. 비판받는 영혼은 차돌맹이처럼 딱딱해진다는 사실이다. 인생에서 사랑을 빼버린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목회에서 사랑을 제거해 버린다면 무엇이 남아야 할까? 목회자로서 늘 스스로 부족함에 고민하지만, 율법의 완성이시며 동시에 죄인이 괴수에게도 완벽한 사랑을 베풀어 주신 주님 닮은 모습이 한 구석에서라도 발견된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세상에는 수많은 만남이 있지만 목자와 양떼의 관계로, 담임목사와 당회원 장로의 관계로 만난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기적이요, 어떻게 보면 섭리요, 어떻게 보면 운명이라 할 것이다.

무엇이 이 만남을 의미 있게 하고 복되게 하며 축복의 열매를 맺을 것인가? 사랑외에 그 무엇이 있을까?

군인으로 말하면 지상전투, 해상전투, 공중전투를 교회안에서 치룬 목회자의 한사람으로서 목회원리의 첫 번째 원리를 “능력보다 화목!”이라고 설정한 것도 화목 즉 사랑을 상실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절박함 때문이었다. 에베소교회는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상실했기에 위대한 조직, 탁월한 분별력, 사회적 영향력은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오직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주님과의 첫사랑과 양떼를 향한 목자의 마음만은 꼭 붙잡기를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