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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세에 42.195㎞를 완주해 춘천마라톤 사상 최고령 완주기록을 세운 김인찬 할아버지가 6시간41분의 기록으로 골인점을 통과한 뒤 두 팔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이기원기자kiwiyi@chosun.com

[춘천마라톤]최고령 완주 88세 김인찬翁

"100세때 다시 도전할거야"
76세때 디스크 판정 후 달리기 시작
"허리통증도 검버섯도 다 없어졌어요"
춘천=박돈규기자 coeur@chosun.com

입력 : 2005.10.23 22:19 56'


23일 오후 6시2분. 백발의 마라토너는 해가 떨어진 후 닳고 닳은 결승선을 지났다. 올해 88세의 김인찬(경기 고양시 성사동)옹(翁). 6시간41분이 걸렸지만 이날 가장 빛나는 완주였다.

“안 죽고 살아 있으면 100세 때 풀코스 다시 도전할 거야. 그럼 기네스북에 오르겠지? 허허허.”

춘천마라톤 사상 최고령 완주기록을 세운 할아버지는 숨도 몰아쉬지 않았고, 농담을 던질 만큼 마음도 넉넉했다. 김씨는 “한 10㎞ 더 뛰고 싶은데…”라며 틀니를 뺀 입으로 환하게 웃었다.

기록은 대수롭지 않았다. 병마에 쓰러졌던 그가 12년 만에 달리기로 일어선 승리의 드라마가 더 값졌다. 1993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병원에 간 김씨에게 퇴행성척추염과 디스크 판정이 떨어졌다. 의사는 “고령이라 수술을 하지 않는 게 낫다”며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한동안 일어나 앉기도 어려울 정도로 통증은 심했다.

“눈앞이 캄캄했어. 인생 끝인 줄 알았지.”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 50m를 걷는 데 30분이 걸렸지만 할아버지는 단념을 몰랐다. 1994년부터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 상가건물의 관리소장으로 일하는 김씨는 지난 10년 가까이 비번인 날엔 집에서 벽제 서울장묘문화센터 등을 거쳐 25㎞를 달렸다. 대회라곤 10년 전 5㎞ 건강마라톤 출전이 전부. 가족들은 “병 도질까 겁난다”며 뜯어말렸다. 그러나 풀코스 도전은 일생일대의 꿈이었다.


춘천에서 K그룹(기록 미보유자)으로 출발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후미에서 달렸다. 그러나 “날씨 참 좋네”라고 딴전을 필 만큼 몸은 여유로웠다. 오르막 난코스인 25~30㎞ 구간엔 62분이 걸렸지만 30~35㎞는 50분, 35~40㎞는 47분으로 오히려 빨라졌다. 교통통제 시간을 넘긴 30㎞ 이후엔 인도로 달렸지만, 자세도 거의 흐트러지지 않았다. 발바닥 통증이 찾아올 땐 서너 차례 길가에 주저앉아 운동화를 벗었다. 발바닥을 쓸고 주무른 그는 일어나 다시 달렸다.

양팔을 번쩍 쳐들며 결승선을 통과한 김씨는 “달리기를 시작한 뒤 허리 통증도 사라지고 검버섯까지 다 없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완주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며 입을 열었다.

“독거(獨居)노인들, 희망 잃고 쓰러진 분들. 저를 보세요. 송장 같았던 사람이 이렇게 살아났습니다. 여러분도 훌훌 털고 일어나세요. 낙담 말고 힘차게 뛰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