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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1 충청투데이

오정호목사(새로남교회 담임)

사람됨의 보람은 자신이 이웃을 향한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는데서 찾을수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촌에는 여러 인종과 나라가 있지만 뭉뚱그려 두 종류의 인간상으로 구분한다면 남을 축복하는 사람과 남의 복을 탈취하려는 사람일 것이다. 모든 좋은 일은 자신을 포함한 이웃이 진정 잘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진이들로 부터 출발한다. 모든 비극의 불씨는 다른 사람이 누리는 복과 기쁨을 빼앗으려는 파괴적인 태도로부터 출발한다. 역사 이래 발생한 수많은 전쟁과 갈등의 이면에는 복을 독점하려는 불량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음을 본다.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이 쓴 책 “내가 정말 알아야 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를 펼쳐 보면 처음 나오는 가르침이 “가진 것을 나누면서 살아라”(Share everything)이다. 자기의 가진 것을 타인과 나눈다고 하는 것은 진정 고상한 인격을 소유할때만 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원초적 본능인 소유욕은 끝까지 움켜쥐기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땀의 대가로 손에 쥐게 된 것을 이웃과 나눈다고 하는 것은 그저 되는 일이 아니다. 타인과의 마음 담은 나눔은 반복적인 가르침과 훈련의 열매이다.
풀검은 유치원에서 익혀야 할 원리와 태도중에서 “사람을 때리지 말 것”(Don't hit people)을 강조하였다. 사회 폭력이나 가정 폭력은 하루아침에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 어떠한 태도로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한 것을 일깨워 준다. 지금도 각 가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폭력사태는 그 뿌리가 어린 시절에 어떠한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드렸는가에 놓여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놀이가 끝난 후에는 제자리에 놓을 것”(Put things back where found them)을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게 하는 훈련 역시 질서 있는 사회생활을 하는 일원으로서의 기본기를 확립하는 원리이다. 어릴 때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면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과 타인의 소유의 경계선을 넘나들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사기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일에서나, 휴가철이 지난이후 사람들이 다녀갔던 산이나 해변이 온통 쓰레기로 몸살을 앓곤 하는 현실을 직시할 때 일리 있는 지적임을 알 수 있다. 잊을만하면 매스컴을 타는 다단계 판매 때문에 재산을 잃어버리고 망연자실해 있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 역시 한 사람의 인격속에 잠재해 있는 탐욕이 사회적에서 분출될 때 그 부정적 영향이 확대재생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축복의 독점과 축복의 나눔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고전적인 예가 있다.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예외 없이 찾아보는 갈릴리바다와 사해이다. 갈릴리바다는 위쪽 헬몬산에서 내려오는 청정한 물을 계속 공급받을 뿐 아니라, 요단강을 통하여 아래로 계속 흘러 내려보낸다. 이와 반대로 요단강을 통하여 갈릴리 바다의 물을 공급받은 사해는 결코 다른곳으로 흘러 보내는 일이 없다. 그 결과 갈릴리 바다는 수많은 어종이 서식하는 살아 숨쉬는 바다의 대명사로 쓰임 받고 있다. 사해는 문자 그대로 어떤 고기도 살지 못하는 사해(死海/Dead Sea)로 전락하였다. 인생사에 있어서도 갈릴리 바다와 같이 축복의 통로가 되어 자신이 누리는 복을 이웃과 함께 공유하는 인생이 있다. 자신도 살고 남도 살리는 축복된 인생이다. 사해처럼 독점욕에 정복되어 타인의 삶과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인생이 있다. 어떤 종류의 인간상이 행복할 것인가는 물어보나마나이다.

탁월한 통찰력으로 오고 오는 세대의 사람들에게 지혜를 깨우쳐주고 있는 솔로몬 임금은 그의 잠언에서 인생사의 원리를 압축하여 묘사하였다.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 지리라”(잠언 11:25) 진실로 자신을 행복한 인생으로 가꾸려면 더불어 사는 상생의 원리 즉 이웃을 향한 축복의 통로로서 쓰임받기를 기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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