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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16일 (화) 16:41:52 박민균 기자 min@kidok.com


  
 ▲ 송신도 할머니가 가족들과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 준 오정호 목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여 보니 고향 떠난 십여년에 청춘만 늙어…” 그 누구보다 송신도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 <타향살이>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광복된 지 66년이 흘렀지만, 송신도 할머니는 아직 그 빛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일본땅에서 타향살이를 부른다.

일본에 거주하면서 유일하게 종군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히고 10년 동안 소송을 벌인 송신도 할머니가 광복절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모진 고난과 죽음을 이겨낸 송신도 할머니는 88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또렷하게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참상을 증언하며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전쟁피해자들을 외면하고 있는 일본 정부를 향해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보상해 주지 않으면 용납 못한다”고 외쳤다.

송신도 할머니는 8월 13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최한 ‘제10회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특별강연을 하고, 15일 고향인 대전에서 광복절기념식 참석과 여성단체 관계자 만남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송신도 할머니는 1938년 16살의 어린 나이에 속임을 당해 무창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됐다. 일본군부대를 따라 장안 응산 포기 함녕 등에서 7년을 보내고, 결혼하자는 일본군인에게 또 속아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송 할머니는 조선인이고 위안부였다며 온갖 멸시를 받고 살았다.

그러나 일본에서 처음 위안부 문제를 제기한 고 김학순 할머니 소식을 듣고 송신도 할머니도 1993년 도쿄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2003년 3월 최고재판소에서 상고가 기각돼 패소가 확정될 때까지 10년 동안 일본을 대상으로 투쟁을 펼쳤다. 비록 재판은 졌지만, 모든 것에서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10년 동안 위안부의 삶과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집회에 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더 중요한 것은 미움과 고통의 상처만 남았던 송신도 할머니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멸시를 받으며 살았기에 누구도 믿지 못했지만,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세상으로 나오게 됐다. 송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1993년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돌보고 있는 재일동포와 의식있는 일본인 자원봉사자들의 힘도 컸다. 지난 3월 일본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송 할머니가 살던 미야기현은 형태도 없이 쓸려나갔다. 생사확인마저 안되던 송 할머니를 찾아 도쿄로 이주시킨 것도 자원봉사자들이었다.

한국교회희망봉사단은 쓰나미 피해 상황을 조사하면서 송신도 할머니를 알게 됐고,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와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 후원으로 이번 한국 방문을 진행했다. 송 할머니는 14일 사랑의교회에서 오정현 목사와 만난 후, 15일 저녁 오정호 목사의 초대로 대전에 거주하는 조카 김춘자 김애자 씨를 만났다. 오정호 목사는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나님의 은혜로 상처를 씻어내고 건강하게 여생을 사시기 바란다”고 위로했다.

한국교회희망봉사단 김종생 사무총장은 “현재 국내 70명과 해외 10명 등 80여 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살아계신다”며, “정대협에서 이분들을 위한 쉼터와 전쟁과여성의인권박물관을 건립 중인데 한국 교회가 앞장서서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송신도 할머니는 16일 가족들과 함께 고향인 대전 신도안을 방문하고, 17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하는 수요집회에 참석한 후 일본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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