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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 파는 목회자들 있다"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가는 에너자이저,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


▲ ⓒ크로스로


용감한 형제들은 개그콘서트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교회에도 용감한 형제가 있다. 오정현목사(사랑의교회)와 오정호 목사(대전 새로남교회)가 바로 그들. 외모에 있어서도 닮은 듯 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는 형제 목회자는, 성격이나 목회에 있어서도 저마다 가진 은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고 있다.

용감한 형제 가운데 동생 오정호 목사가 지난 3월 28일부터 진행된 거룩한빛광성교회(정성진 목사 시무) 부흥회를 인도한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새벽부터 이어지는 일정에 고단할 법도 한데 낮지만 강한 목소리로 질문에 성심을 다해 답하는 그에게서 ‘에너자이저’라는 소문대로 역동적인 힘이 느껴졌다. 주님의 신실한 종으로 쓰임받는 것에 늘 감사와 기쁨을 느낀다는 오 목사의 말처럼, 말씀을 전하는 사명은 고난과 역경 중에도 항상 그를 일으켜 세우는 동력이 되는 듯 했다.

마침 거룩한빛광성교회의 부흥회 주제도 ‘쓰임받는 성도, 건강한 교회’였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목회자로 건강한 한국교회를 위해 불철주야 달려온 오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을 싣는다.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개척교회 목사의 아들로 성장했으니 환경은 참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어렵다고 해서 슬프게 생각할 건 아닙니다. 남들보다 못먹고 못입었다는건데, 다르게 생각하면 교회 울타리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치관을 형성하고 믿음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보호막이 되어주었습니다. 배는 고팠지만 마음은 풍족했습니다. 제가 아들이 둘인데 개척교회를 하면서 이 아이들을 양육했었다면 지금보다 믿음이 더 좋았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웃음)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어느 환경에 처한다는 건 섭리적 사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환경을 어떤 각도에서 어떤 가치관으로 보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목회자 자녀들 가운데 오히려 어긋나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목사님은 부모님으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가르침 중에 어떤 부분이 많이 남아 있는지요?

제 아버지께서는 다른 사람을 절대 비난하신 적이 없습니다. 개척교회 목회를 하다보면 갖가지 사연이 많고 혹여 어떤 사람 때문에 피해를 입었어도 그 사람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한번은 아버지께서 보증을 서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이 더 어렵게 된 적이 있습니다. 분명 아버지는 고통스럽고 괴로워하셨겠지만 자녀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으셨어요. 나중에 제가 성장한 후 보니 교회에는 천사만 있는 게 아니라 영 아니올시다 하는 사람까지 있는데, 아버지가 대단히 인내하고 자신을 강하게 절제하셨구나 깨달았습니다. 제 친구들 중에도 목회자 자녀들이 많았고 그 가운데 폭력적인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이 교회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풀었기 때문이라 생각되는데, 제 아버지는 그러신 적이 없어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또, 아버지는 형과 저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셨습니다. 가정예배를 드릴 때 빠트리지 않았던 것이 북한과 사할린에 있는 동포들과 남북한 평화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저는 학교 교육을 통해 애국심이 생긴 게 아니라 가정예배를 통해 애국심과 민족애가 생겼습니다. 형님이나 저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시절, 현충일에 아버지가 저를 부산 대연동에 있는 UN묘지에 데리고 가셨어요.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고 설명해주셨죠. 그때 든 생각이 ‘내가 누리는 축복이 거저가 아니었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친미, 반미같은 이념 대립을 떠나서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함을 깨달았죠. 그런 아버지를 통해 자연히 신앙과 인성교육이 됐습니다.

호가 은천(恩泉)이라고 들었는데, 특별한 사연이 있으신가요?
                
저는 옥한흠 목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 분과의 만남을 섭리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옥 목사님의 호가 ‘은보’(恩步), 즉 은혜의 발걸음입니다. 제가 제자훈련 목회자협의회(Cal Net) 전국대표로 섬기고 있는데 저를 제자훈련 사역으로 이끌어주신 것도 옥 목사님이셨고요. 목회자협의회 행사에서 옥 목사님을 모시려고 했는데 건강이 악화되어 오시지 못하고 전화로 기도를 해주셨는데 “오 목사님안에 주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의 샘물이 마르지 않게 해주시길 원합니다”라고 하셨어요. 그 기도를 통해 느낀게 나는 은혜가 마르면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을 걷고 있음을 생각했죠. 그래서 영적 스승인 옥 목사님과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은천’이라고 호를 지었습니다. 전 은혜라는 말을 좋아해서 부목사로 동역하다 개척해 나가는 분들에게도 ‘은해’(恩海), ‘은산’(恩山)과 같은 호를 지어드립니다.  

대전 새로남교회에 대해 소개를 해주세요. 어떻게 부임하시게 되셨고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목회를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새로남의 의미는 ‘뉴 본’(New Born), 새로 태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1994년에 부임했는데요, 사실 제가 미국에서 신학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했을 때 옥한흠 목사님이 대전에 있는 어떤 교회 얘기를 해주셨어요. 교회 목사님이 떠나고 내분으로 양떼들이 방황하고 있다면서요. 부임하게 되기까지 어려움도 많고 갈등도 많았지만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는 잠언 29장 25절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교회 부임하고 처음 4, 5년간은 숨도 못 쉬겠더라고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매주 새로운 가족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은혜고 추억이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저는 꼼수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어려움이 생기면 정공법으로 돌파구를 찾지요. 그래서 제 목회신조가 목양일념, 정도목회입니다.

그리고 저는 목회에 있어서 제자훈련에 집중합니다. 제자훈련이 훈련을 받는 사람 뿐 아니라 목사에게 가장 큰 유익이 됩니다. 늘 나를 돌아보고 새롭게 변화됨을 추구하기 때문에 목회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이른바 다른 거에 눈 돌리지 않고 한우물 목회를 하게 만들죠. 지금 331명의 동역자들이 있는데 이 분들이 교회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동역관계를 통해 예측가능한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제자훈련에 살만 좀 더 붙이는 격인데, 제자훈련을 받은 분들이 믿음의 연약한 분들을 돌아보며 제자훈련의 연결고리를 만들어갑니다. 목회자가 목양의 현장에 있지 않으면 본질을 잃어버리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제가 직접 제자훈련 과정을 인도합니다.

새로남교회가 2004년 입당예배를 드리고 2008년 헌당예배를 드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교회가 건축과 관련해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데 새로남교회의 건축과정은 남달랐다고 하던데, 어떻게 진행이 되었습니까?

교인 7,8백명이 되었을 때 새로운 예배당에 대한 필요성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주위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배당 짓는건 대토목 공사도 아니고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하자, 이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와 교인들은 건축 문제를 두고 끊임없이 주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참 감사한건 하나님께서 교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기획단계부터 분위기도 좋았고 과정은 더 좋았습니다. 제가 건축위원들에게 건축과 관련해 종이컵에 담긴 커피 한 잔도 안먹겠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건축과 관련한 청탁 등 먼지 날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교인들도 그대로 따라주셨죠. 직분자들이 헌물할 때도 장로나 권사가 되는 징검다리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헌물은 헌물로 그쳐야 하니까요. 이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움찔했겠지만 주님의 영광과 뜻이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그래서 건축이 끝난 후에도 잡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건축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새로남교회 건축이야기’라는 책을 내서 건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새로남기독학교를 세우신다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다음 세대의 부흥을 위하여’를 기치로 걸고 성경적 가치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언어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복음안에서 자란 인재들을 양육하는 건 한국교회를 짊어지고 갈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일이거든요. 교회 가까운 곳에 건물을 세우고 있는데 올해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에 대해 참 용감하신 분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공식 석상에서 부조리함에 대해 직언을 주저하지 않으시는데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신념이 있으신지요?

저는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주께서 왜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하셨을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최근에도 어느 모임에 참석했는데 사전에 공지된 분 말고 또 한 분이 강사로 왔다는 걸 현장에서 들었어요. 알고 보니 기독당 관계자였어요. 마침 제가 모임의 임원이었기 때문에 고민을 했고 결국에는 발언을 했습니다. 애초에 공지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우리와 시각이 다른 사람이라고요. 그리고 지금 상황에 특정 정당에 소속된 분을 모시는 게 시의적절치 않다고 얘기했죠. 결국 그 분은 강단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느냐는 것입니다. 분명 그 모임의 내부 인사와 접촉을 했을 것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제가 속한 예장 합동교단이 구설에 많이 오릅니다. 한국교회에서 차지하는 규모만큼 거기에 합한 능력과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거든요. 저 역시 부끄럽고 고개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예장 합동이 한국교회 장자교단으로서 해줘야 하는 역할이 분명 있는데 아쉬운 행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비본질적인 것이 본질을 압도했기 때문입니다. 장자교단이라고 하면 한국교회를 견인할 수 있는 영성과 윤리성이 있어야 되는데 가는 곳마다 교단을 등에 업고 감투를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팥죽 한 그릇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파는 행위입니다. 한기총 사태를 보십시오. 지난해 전국신학대학교 교수 34인 선언도 그렇고 100인 교수 선언에서 한기총을 향해 다락방과 개혁교단의 회원자격을 박탈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저 또한 한기총이 이단으로 밝혀진 집단을 회원교단으로 받아들인 것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했습니다.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영적 근친상간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한기총 임원회에서 앞뒤맥락은 다 자르고 제가 간음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걸 보면서 이 분들이 정말 회개할 줄 모르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사과는커녕 자기 이름 걸고 어쩌면 불이익 당할지도 모를 상황을 염두에 두고 나선 교수님들 가슴에 못을 박고 말이지요. 한기총의 행태는 자신들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잘못된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발언하고 직접 행동하시는 성향은 이단과의 길고 긴 법정투쟁으로도 이어지게 되었죠?

저는 사실 문학소년 기질이 있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읽고 글쓰고 묵상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데 제가 대전기독교연합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을 맡았을 때 구원파 박옥수 측이 자신들을 알리는 책자를 배포하고 홍보활동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들이 이단이라는 것을 전단지를 통해 알렸고 이에 대해 고소를 당했습니다. 민형사 소송을 4년 6개월 동안 했고 경비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법무법인 로고스와 새로남교회 교인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해주시고 지원해 주셨습니다.

한기총에는 이단성이 있다고 의심받는 사람들이 주류에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흠 없는 사람을 내세워도 어려울 때에 왜 의심받는 사람을 내세웁니까? 결국 이단들이 발을 붙이는 모판을 만든 것은 정통 교단에 속해있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요즘은 이단들이 더 방송도 잘하고 홍보를 잘합니다. 이러한 때에 분별력을 갖지 못하면 혼란을 겪습니다. 현대종교 같은 매체도 정말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는 총신대 교수님 19분이 이단 옹호세력에 의해 큰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내부에 이단과 관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외부의 적은 눈으로 구별이 가능하지만 내부의 적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더 겁나고 무섭습니다. 이단 문제는 한 교회가 나서서 되는 게 아니에요.

요즘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실 것 같습니다. 교회다운 교회로의 회복을 위해 어떤 것들이 우선되어야 할까요?

교인을 성도라고 하는 이유가 주님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거룩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거룩성은 행함,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거룩성이거든요. 목회자인 저도 마찬가지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람데오라는 말처럼 거룩은 곧 신전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를 비롯해 사람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분명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거룩성 회복은 교회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결혼을 예로 들면 제가 결혼할 때 아내가 신부화장에 상품으로 끼워주는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그러니 그 드레스 수준이 오죽하겠습니까? 저는 속이 상했지만 아내는 개의치 않아 하더라고요. 웨딩드레스가 신부를 빛나게 하는게 아니고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빛나게 하는 것이죠.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붙잡고 있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거룩성은 누군가가 나에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백성으로 살아가면 초가삼간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은 돈을 우상으로 섬기기 때문입니다. 우상이 내 안에 들어오고 내가 그것을 섬길 때 다른 가치들은 소멸됩니다. 핵심은 그거에요. 주님보다 돈, 맘몬을 더 중요시해서 생기는 문제들이 지금의 한국교회 현실이고, 이 문제를 인식하고 바로 설 때 한국교회가 가야 할 길이 열릴 거라 봅니다.

진은지  |  solideo2eye@gmail.com

*  본 기사는 지난 4월에 인터뷰한 기사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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