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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향심(愛鄕心)은 자신도 살리고 고향도 살린다. 지방색(地方色)은 자신도 나라도 망하게 한다. 필자는 경북 의성에서 출생했다. 육쪽마늘과 사과로 이름 있는 곳이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을 기점으로 '영미야~'로 유명한 컬링의 본산이 되었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서 세계 속의 항구 부산에 살다가 대학 진학을 서울로 했다. 서울에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다가 미국에 유학 가서 살기도 했다. 그리고 대전의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초청받아 현재 25년 째 일하고 있다. 과연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 이 글로벌 시대에 고향을 운운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경상도 사람인가, 서울 사람인가, 충청도 사람인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적어도 복음을 전하는 목사의 세계에는 지방색이 없는 줄 알았다. 이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난만(天眞爛漫)한 생각이었다. 여러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 강도는 세지 않을지라도 표면적 애향심을 빙자한 지방색이 버티고 있었다. 목사가 지방색에 물들어 있다면, 교우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다른 교파나 이웃 교회와의 수준 높은 연합에도 금이 가게 된다. 목사의 마음이 기울어지면 교우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게 되고, 급기야 보이지 않는 문턱이 사람들의 마음을 갈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그 속내는 결정적인 순간에 비집고 나오게 된다. 특히 교회에서 어떤 큰일을 계획하거나 교회의 일꾼 곧 직분자를 선출할 때,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듯 지방색은 공동체의 건강성을 무너뜨리는 소리 없는 암세포와 같다. 혹자는 경상도 출신의 목사가 충청도에서 목회를 하니 지방색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 이전에 목회자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민족의 덕스러운 지도자 고당 조만식(曺晩植) 선생은 평소에 고향을 묻지 말라고 교훈했다. 우리 민족의 성숙과 발전을 저해하는 지방색의 실체를 잘 간파하고 있었던 그였기에 그런 교훈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태어난 곳이 어찌 결혼의 문제에 영향을 미쳐야 하고 또 동업자를 선택하는 일에 결정적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하는 걸까? 나아가 지방색이 정치권에서 작동하게 되면 무한경쟁의 시대 국가 간의 경쟁에서 어떻게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인맥과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룰 수 있을까? 특히 지방색이 국가 안보를 담보하는 국방과 관련한 일이라면 더욱 신중함이 필요하리라. 

한편 우리나라의 현실을 살피노라면, 과연 언론이 지방색을 갱신하여 애향심의 미덕으로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였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개 언론은 자사의 유익을 우선시하기에 공동체의 미덕에 대하여 나팔 소리는 크지만 실제는 경제 이익이나 언론의 평판을 높이는 일에 함몰되기 쉽다. 언론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사명이 국민을 계도하는 역할이라면, 지금까지 국민들이 체감할 만큼 지방색에 대한 해악을 뛰어넘게 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정치의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민심을 다잡는데 노련한 정치인들은 애향심으로 포장된 지방색을 활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획책하려 할 것이다. 상황 판단이 흐려진 이들은 그들의 선동에 휘둘릴 것이고, 그 결과는 국격의 추락과 민생의 파탄과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만드는 흑역사로 나타날 것이다. 

나사렛을 활동 무대로 삼은 예수님조차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방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자는 장로교회 목사로서 교우들 앞에, 민족 앞에, 나아가서 사랑하고 경배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을 부단히 비춰보기 원한다. 나는 복음의 영광에 물든 목사인가, 아니면 지방색에 물들어 경도된 시각을 지닌 목사인가? 필자는 어린 시절 가정교육을 받을 때 '애향심은 미덕이지만 지방색은 죄'라는 사실을 배워 익혔다. 그러하기에 진정 기독교의 복음이 용광로(melting pot)가 돼 남북 간, 계층 간, 동서 간, 지역 간의 갈등을 순화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복되게 하는 일에 쓰여야 한다고 믿고 있고 그렇게 살기 위해 힘쓰고 있다. 

오정호 새로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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