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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바다 덮음같이 - 김은숙

2012.02.09 10:48

조회 수:1504



물이 바다 덮음같이

김은숙 사모(베를린 한인선교교회)



안녕하세요? 저는 독일 베를린 한인선교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한은선 목사의 아내, 김은숙 입니다. 저희 교회는 창립된 지 32년 된 교회로, 어린아이들을 포함하여 재적 180여 명에 매주일 출석교인 140여 명 되는 가족 같은 교회입니다. 주로 독일로 파견된 간호사들과 공관직원들, 독일 유명 회사의 공장 직원들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성도님들, 유학생들과 이민2세들, 그리고 독일인 성도님들로(동시통역) 구성되어 조금은 다양한 계층과 연령층이 모여 있는 선교 공동체입니다.

교회 초창기에는 주로 이곳에서 처음 주님을 영접한 분들이 많다보니 한국교회의 정서나 교회 문화와 달라서 한국식이니 독일식이니 하며 크고 작은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 같은 분위기를 이뤄 처음 찾아오는 손님이나 초신자들에게 ‘분위기 좋은 교회’라고 칭찬을 듣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초대교회를 재현하는 교회’를 만들고자 목양일념으로 목회를 지속해온, 담임목사인 남편의 목회관과 늘 은혜 안에 거하는 선교가족들의 영성 깊은 신앙의 열매라 생각합니다.

선교와 목회 사역
유럽, 특히 독일에서의 목회는 ‘목회가 선교이며 선교가 목회’인 특별한 사역현장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본 교회를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 받은 분의 숫자가 260명이 넘습니다. 따라서 사역 역시 그에 맞춰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회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선교에 집중되었고 지금까지 어림잡아 4십만 유로에 가까운 선교비를 지출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수년 전 독일 교회를 판다는 광고를 보고 계약 성사 단계까지 갔다가, 교회 구입할 돈으로 차라리 선교를 하자는데 뜻이 모여 교회 구입을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목회가 선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특별히 초창기 때부터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선교에 전념해 왔습니다. 유럽에는 22년 전에 창립된 코스테(Koste, Korean Student Mission in Europe, 유럽유학생 선교회)가 있는데, 제 남편인 한은선 목사는 창립 때부터 상임총무로 섬기다가 5년 전부터는 코스테 대표로 섬기고 있습니다. 일 년의 절반을 이 사역에 매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젊은이 사역에 힘을 집중하는 것은, 차세대 지도자를 키워야 민족 복음화와 유럽의 열방을 주께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선교 마인드 때문입니다.

사모로서의 역할
사모인 저는 남편이 이러한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편안한 가정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남편은 ‘설교 목회’를 한다고 할 정도로 설교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때로는 제가 그런 남편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설교를 듣고 평가는 아니지만 문제를 지적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은 제게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다고 하더니 “그냥 은혜 받는 일에 힘쓰고 문제가 보여도 지적하지 마라. 어차피 지적해 주지 않아도 설교의 문제는 설교자 자신이 가장 먼저 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를 지적하다 보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나중에는 제가 교인 중에 가장 은혜받기 어려운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은 누구보다 더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설교 시간에 가장 크고 많은 ‘아멘’은 제 입에서 나오고 있답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님들의 구성 비율상 유학생이 많은 편입니다. 제게도 두 딸이 있는데 큰아이는 베를린 공대에서 바이오를 전공하고, 작은딸은 뮨스터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가끔 작은딸로부터 객지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듣다 보니, 우리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유학생들도 모두 아들․딸 같아서 조용히 뒤에서 도와주고 있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가방 하나 들고 찾아오는 학생들도 있고, 유학은 왔는데 도무지 어떻게 공부를 할 생각이었는지….
독일어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들이 처음에 정착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도 어린 나이에 이곳 독일에 간호사로 와서,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처음 정착할 때 겪은 여러 가지 체험이 있기에 그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잘 압니다. 그냥 모든 게 다 내 일 같아서 돕다보니 가끔은 ‘내가 무슨 유학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들이 어느덧 학문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가 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남들이 모르는 기쁨이 있습니다.
3년 전 고국을 방문했을 때, 일명 ‘서울 구역’이라는 유학파들이 60여 명 넘게 모였습니다.
그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지도자로 쓰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목회자를 도와 사모로서 섬긴 보람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서로가 옛 추억을 더듬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서울에 교회를 개척해도 되겠다고 농담을 하는 식구도 있었습니다.

비전과 기도
이제 유럽의 이민 1세대들은 거의 육십을 넘는 고령 사회로 진입하여 주변에서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사모인지라 여전도회원들과 자연스럽게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노후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베를린에는 독일 사람들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이 450명이 넘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고국으로 완전히 귀국을 할 수도 없고 여기 살 여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국에 돌아가도 한국말과 문화를 모르는 독일 남편이 문제이고, 독일에서 여생을 마치자니 한국식 생활 습관이 문제가 됩니다.
특히 음식 문화는 독일 양로원에서는 결코 해결 받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가끔은 청국장도 끓여 먹어야 하고 김치도 먹어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의 독일 양로원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남편과 함께 기도하고 있으며 교회 제직회에서도 이 문제를 공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한국의 문화와 정서가 용납되는 양로원을 세우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를 위해 함께 사역할 사명 받은 자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젊은이 사역만큼이나 시급해진 한인 노령사회 복음화와 그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분명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기억날 때마다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선한 일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모의 자리
독일은 한인들에게 있어서 이민사회가 아닙니다. 잠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왔다가 엉거주춤 정착하게 된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를 찾아오는 분 중에는 상처 입은 분도 많고 외로움으로 몸부림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남편은 말씀과 기도로, 저는 일상적인 삶에서 그들을 만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료하기 위해 소리 없이 기도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이미 드러난 문제라도 드러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가야 하는 것이 사모의 역할이자 사모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모란 교회 안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할 자리라는 것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실감하게 됩니다.
사모가 교회사역이나 흐름에서 너무 드러나면 담임목사님의 위치를 애매하게 만들어 사모가 목회한다는 소리를 듣기 쉽고, 너무 감추면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니 그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 두 상황을 얼마나 기도하며 지혜롭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사모의 자리가 아름다울 수도 있고 곤혹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한 예로, 남편은 가능하면 성도님들과 상담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언젠가 모 집사님과 상담을 하셨는데 한 육 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그 집사님이 갑자기 이상한 태도를 보이더니 결국은 교회를 옮기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야 옮길 수 있다 해도 그 이유는 알아야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목사님의 설교가 문제였습니다. 그날 설교 내용과 집사님의 상담 내용이 겹치게 된 것입니다. 집사님은 육 개월 전 상담한 내용을 가지고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자신을 책망한다고 오해를 한 것입니다.
남편이 설교할 때 그 상담 내용을 고려할 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상식적으로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피상담자는 상담자와 달리 자신이 상담한 내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고, 상담한 내용을 가지고 자기를 책망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인격모독 내지 목회자에 대한 신뢰를 의심할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오해가 풀려서 수습이 잘 되었지만, 그 일 이후로 가능한 상담은 제 몫이 되고 있습니다. 피상담자에게 담임목사보다는 사모가 더 편하기도 하고, 또한 아주 중요한 문제는 한 번쯤 걸러지거나 완충 내지는 가교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모의 할 일 중에 목사님의 손길이 닿기 애매한 부분이나 목사님의 목양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빈틈을 채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우들 간의 인간관계나 신앙문제가 드러나면 조용히 풀어가는 것도 잘하는 것이지만, 아예 문제가 가시화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운 일입니다. 일단 문제화 되고 나면 수습하는 일이 몇 배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모의 자리는 늘 긴장을 늦추지 않고 깨어서 기도로 성령님의 도우심과 주님의 지혜를 구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더욱이 외국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이민교회의 사모는 1인 4,5역을 감당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만성 피로로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잔잔한 미소와 따뜻한 가슴으로 그들을 품고 기도와 감사의 자리를 지켜가다 보니 어느덧 '어므이~' 하며 안기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가족처럼 따뜻함으로 다가오는 성도님들이 교회의 예배와 기도를 통해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모의 자리에 있음이 감사할 뿐입니다.
교회의 사모로서, 한 가정의 주부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또 한 남편의 아내와 직장의 간호사로서 나 자신이 가진 능력에 비해 짐이 무거운 편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주님 앞에 엎드리게 되고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가 더 크기에 상대적으로 짐이 가벼워지는 체험을 합니다.
아직도 하프타임으로 일하는 현직 간호사이기에 의지할 곳 없는 젊은이들이 갑자기 한밤중에 몸이 아프거나 문제가 터지면 병원이 아니라 제게 전화를 걸어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의사가 아니라 어머니의 품인 것을 알기에 한 영혼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내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사명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고 상황도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늘 사모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는 것만으로도 사모의 자리는 충분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모의 자리를 흔들림 없이 지켜가는 이 땅의 모든 사모님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글/김은숙 사모
독일 베를린 한인선교교회의 담임인 한은선 목사의 아내로, Wannsee Krankenschwester Schule(간호사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HELIOS Klinikum Emil von Behring(베를린 내의 종합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