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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교회 사역 인터뷰 - 김지영 사모

2012.01.26 13:23

조회 수:1789



농촌 교회 사역 인터뷰

김지영 사모(시온교회)



4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시온교회는 충남 보령시 천북면 신죽리에 자리 잡고 있다. 천북면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그야말로 황량한 농촌이 아닐 수 없다. 이곳에 1993년에 부임한 김영진 담임목사와 아내 김지영 사모는 지금의 예배당을 건축하고 다양한 농촌, 문화 사역을 펼치고 있다. 남편과 한마음으로 농촌 목회를 돕고 있는 김지영 사모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농촌 목회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Lilac. 사모님의 신앙과 성장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Kim. 저를 품에 안으시고 늘 찬송가를 불러주시던 어머니의 찬송소리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곤 합니다. 주일 학교 교사로 섬기셨던 어머니께서는 밤이 되면 우리 다섯 남매를 불러 앉혀 성경이야기를 아주 실감 나게 전해주시곤 했어요. 얼마나 재밌던지 저희 모두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 속에 푹 빠져 있었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전해주시던 어머니는 제 신앙에 가장 큰 멘토 역할을 해 주신 분이에요.

Lilac.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특별히 농촌 목회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Kim. 남편이 수도권 지역에서 부목사로 섬기던 중, 이 지역에서 목회를 하고 계셨던 절친한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이곳을 소개받았어요. 같이 이웃하면 재미있겠다는 선배 목사님의 말씀도 좋았지만, 교회가 위치한 야트막한 산언저리에서 지저귀던 새소리에 반했지요. 이렇게 오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어느덧 19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Lilac. 시온교회의 지역적 특징은 어떠한가요?
Kim. 시온교회가 있는 천북면은 서해안고속도로와 밀접해 있고, 우리나라 축산 밀집 지역으로는 면 단위 중 규모가 가장 큰 지역에 속합니다. 교우들은 대부분 농민으로 주로 경종농업(耕種農業)과 축산업을 하고 있습니다. 양돈이 주축을 이루면서 한우와 젖소, 그리고 양계 농장이 큰 규모를 이루고 있는데, 축산업이 주종을 이루었기에 여타 농촌에 비해서 농촌 경제 활동이 제법 규모가 있는 편이에요.
하지만 아무리 생동감 있게 말한다 해도 농촌은 여전히 황량한 빈들의 모습을 띠고 있죠. 축산지역이라서 구제역 후유증도 크고요. 연이어 닥칠 FTA의 파고도 넘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작은 기쁨일지라도 서로 나누며 그들과 하나 되어 하나님을 경험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어울려 살지 않으면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것이죠.

Lilac. 이런 농촌 지역에서 어떤 모습으로 목회를 이루어오셨나요?
Kim. 부임 초기 시온교회는 오래된 농촌교회가 대체로 그렇듯이 정해진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모습이었어요. 건물이 낡은 것은 그렇다 쳐도, 교회의 힘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체계적인 바탕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고, 변화를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농사는 밭농사 위주이며 그중에서도 배추 농사를 가장 많이 짓는데, 배춧값이 형편없이 떨어져도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묵묵히 참고만 있는 모습은 지켜보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희도 농촌교회로서 농촌의 고민을 같이 나누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어요. 문화적인 역량을 키우면서 지역민들과 함께 농촌 축제를 만들어 왔고, 농촌 학교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친환경 농업을 장려하고 유쾌한 농촌 환경 만들기에 지역민들과 머리를 맞댔습니다. 교회는 신앙 정체성으로 말미암아 지역에서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동안 시온교회는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호흡하기 위해 한 걸음씩 걸어왔어요.

Lilac. 지역 주민을 위해서 어떤 문화사역을 하고 계신가요?
Kim. 시온교회가 지향하는 방향 가운데 하나가 문화사역이에요. 이름이 거창한 듯하지만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고, 감성을 통해 농촌의 정서를 두드리고, 나아가서 그 문화를 통해 교회의 자립과 지역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죠. 보통 농촌에는 문화가 사라졌다고들 하는데 본래 농촌이 가지고 있는 모습 자체가 훌륭한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해요.
저희 교회는 일찍부터 영상물을 활용하기 시작했어요. 17년 전에 빔프로젝터를 구입해서 마을 극장 역할을 하기도 하고, 교회학교 아이들에게는 전국 각지를 다니는 문화여행과 피아노를 비롯한 음악교실을 통해서 문화적인 감각을 키워주었죠. 또 컴퓨터도 가르쳤어요.
무엇보다도 농촌지역에 있는 들꽃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서 들꽃을 통해 삶의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유쾌한 일이었어요. 봄이 되면 각 가정의 꽃들을 교회에 모아서 들꽃축제를 열기도 했죠. 조그마한 땅이지만 그래도 작은 운동장을 교회 내에 만들어 매년 10월 말경에 추수감사 운동회를 하면서 추수와 결실의 기쁨을 나누고 있고요. 그리고 농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영농교실을 개최하여 농업에 대한 최신 정보와 지식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Lilac. 들꽃축제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Kim. 해마다 5월 초에 들꽃축제를 열고 있어요. 처음 시작은 가정마다 키운 꽃들이 너무 예뻐서 한군데 모아 함께 감상하자고 한 것이었는데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한두 해를 거치면서 우리 지역과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소개하는 매개체로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었죠. 가까운 지역에 있는 도시민들을 초청해서 천북의 꽃을 감상하고 농촌에서 즐길 수 있는 체험놀이도 하면서,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건강한 먹거리를 나누고 판매하는 자리를 만들었어요.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들꽃이고, 꽃이기보다는 잡초라고 생각해 관심을 두기는커녕 오히려 귀찮아했던 것들이었지만 이름표를 붙여서 한곳에 모아두니 그 아름다움은 어느 야생화 전시장 못지않은 감동을 주었죠.
그동안 사용해왔던 들꽃축제라는 이름은 제5회부터 ‘온새미로 축제’로 이름을 바꿨어요. 들꽃축제라는 이름을 사용하다 보니 때론 우리 생각과 달리 보기 좋고 근사한 꽃을 생각하고 온 방문객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말 그대로 자연에서 피는 모든 꽃을 들꽃이라고 여기면서 그 속에 있는 농촌의 건강한 생명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요즘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산뜻한 야생화 전시회의 영향 때문에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이지요. ‘온새미로’는 ‘자연 그대로’, 또는 ‘생김새 그대로’ 등의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에요. 농촌의 작은 교회가 자체적으로 예쁜 꽃을 모아서 사람들에게만 보여준 것이 이제는 제법 큰 축제가 되었죠.

Lilac. 그 외에 또 어떤 사역이 있나요?
Kim. 지역에 대한 교우들의 열정으로 신죽리가 농촌 녹색체험마을로 선정되었어요. 농림수산부로부터 지원받은 예산으로 체험관도 건축했지요. 체험마을 이름은 축산과 건강한 채소를 결합한 ‘쌈지돈 마을’로 정했고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시온교회는 천북면 내에서 나름대로 지역민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교회가 되었어요.
많은 분들이 교회의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예배당에 드나들고, 함께 선진 농촌 견학을 가는 등, 지역 발전에 대한 교회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목회자와 교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어요. 이런 일들은 앞으로 지역 아이들을 위한 주말학교를 만들기 위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죠.
또 저희 교회는 지역문제에 참여하는 자세를 갖고 있어요. 보령시 교육청의 지역 초등학교의 통폐합 방침에 함께하기 위해 목사인 남편 스스로 초등학교 스쿨버스 기사를 자원해서 5년째 하루 2시간 30분 정도 차량을 운행하고 있고, 지역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도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교회가 참여하고 있어요.

Lilac. 이런 여러 가지 사역 속에서 사모님이 담당하시는 역할은 어떤 것인가요?
Kim. 교회에서는 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시골이다 보니 성가대 지휘도 제가 맡아서 하고 있고요. 목사님과 함께 심방을 가기도 하고, 신앙이나 자녀 문제 등의 상담도 해 드리고 있어요. 지역을 섬기는 일 중에는 낙동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는데, 2년 전에는 아이들과 함께 KBS 다큐멘터리(1-2부) ‘리처드 용재오닐과 함께 하는 음악회’도 준비했었답니다.

Lilac. 사역의 효과적인 운영방법이나 보완할 점, 숙지해야 할 것 등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Kim. 친환경 농산물 판로 개척, 지역 자생적인 축제 개최, 도시민들이 유쾌하게 방문할 수 있는 농촌 마을조성 등 이 모든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준비와 노력을 해 나간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하다고 봐요. 확실한 비전도 필요하지만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농촌선교와 농촌경제를 위해 한 개의 기업이나 단체가 한 개의 농촌마을과 결연을 맺고, 상호형편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여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일사일촌(一社一村), 혹은 학교와 농촌이 이웃이 되는 일교일촌(一校日村) 맺기 운동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하고요, 지역 여성들의 활동개발에 교회가 장을 만들면 좋겠어요.
이런 일은 확실히 현장견학과 함께 많은 이야기가 필요해요. 무엇보다 농촌목회에 대한 정체성 확립이 필요한데 자본주의에 입각한 목회가 아니라, 본래의 생명 살리기에 대한 목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장을 생각하더라도 농촌의 참된 성장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죠.
또한 맡은 지역 혹은, 동일한 생활권에 있는 교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함께 일하면 어느 정도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고 다양한 사역을 나눌 수 있어요. 시온교회는 우선 옆에 있는 교회들과 더불어 교회학교 활동을 같이하고 있으며, 농산물 직거래에 있어서 몇몇 교회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Lilac. 농촌 사역을 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Kim.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군요. 성도님 한 분 한 분, 함께 일궈온 일들, 함께 나누었던 시간, 때론 힘들고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조용히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니 정말 모든 것이 다 소중했고 앞으로도 소중할 것 같아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지금은 안수집사님이 된 교우 이야기입니다. 일도 열심히 하지만, 술도 참 좋아하던 분이었어요. 교회는 나오지 않으면서도 술에 취하면 꼭 목사님을 찾아오는 거예요. 술 취한 분이 오면 반가울 리 없건만, 그래도 남편은 서재로 안내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습니다. ‘술에 취해 다른 곳에 가는 것보다 교회로 오는 것이 더 안전하고 좋은 일이 아니냐?’라는 것이 남편의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은 서재에서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가수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야!’였습니다. 목사님은 기타로 트로트 반주를 하고, 술에 취한 이는 목청껏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문제는 그 후로 술만 마셨다 하면 목사님을 찾아와 기타 반주에 맞춰서 ‘일편단심 민들레야!’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앞집이 권사님 댁이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지만, 듣다 보니 그 노래에 자신의 미처 말하지 못한 온갖 답답한 마음이 실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목사님은 그것을 잘 받아줬고, 그분은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나 봐요. 지금은 안수집사님이 되었고, ‘일편단심 민들레야’ 대신에 성가대에서 열심히 찬양하고 있습니다.

Lilac. 사역을 하면서 가장 힘드셨던 일이나 가장 큰 보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Kim. 힘든 점이라면 아무래도 서로 마음으로 소통하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서로의 다른 관점들이 생각과 마음을 흔들어 버렸을 때 다시 마음을 모으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들이 쉽지 않았거든요. 인간관계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다양함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똑같은 나뭇잎도 없고 똑같은 눈송이도 없고 모든 것이 다 원본이다.’라는 글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농촌 사역의 가장 큰 기쁨은 자연과 가까이 있다는 것이에요. 정말 소중하고 필요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주 만물을 통해 들려주시는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Lilac. 앞으로의 기도제목, 그리고 사모님들과 나누고 싶은 말씀을 부탁합니다.
Kim. 기도제목이라면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 그분이 오늘 우리에게 진정 바라는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늘 고민하며 주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그런 사역을 하고 싶어요.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 특히 우리 지역에는 순교자가 많은데 그렇게도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 들으며 오늘 내가 가야 할 길을 걷고 싶어요.
사실 목회는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니지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길을 만들어 두셨겠지만요. 하나님 선교에 동참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지켜보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해요. 그러므로 어떤 목회의 모습이 우월의 대상이나 기준이 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정말 진리를 향해 가고 있다면 그 길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테니까 말이에요.
목회는 행동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일이에요. 결국은 사랑하는 일이지요. 그것이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서로 위로하고 서로 행동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일을 응원하는 것입니다. 농촌목회가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농촌목회를 꿈꾸는 사모님들에게 저의 응원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김지영 사모
충남 보령의 시온교회에서 19년째 사역하는 남편 김영진 목사를 도와 농촌목회의 전반을 돕고 있으며,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