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하나님께서 하시게 하라 - 오대희

2011.10.15 10:38

조회 수:1401



하나님께서 하시게 하라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우리의 삶에 실현되길 원한다면 방법까지도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께서 하시게 해야 한다



[성경속의 여성 - 사라]

오대희 목사(칼럼니스트)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남편과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에 이르렀다. 믿음으로 떠나는 여행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맡겨야만 하는 고된 여행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언제나 흔들림 없이 반응했다. 그 길을 함께 걷는 사라 역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동행했다. 하나님께서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실 때 믿음으로 떠났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땅을 향해 가라고 하실 때에도 순종으로 그 길을 걸었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믿음으로 그 길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믿음 좋은 아내도 하나님께서 남편의 몸을 통해 상속자가 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을 때는 참 많은 회의가 들었다. 그 약속이 이뤄지기에 자신의 몸은 너무 늙었으며, 소망이 없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을 통한 상속자
가나안으로 이주한 지 십년 되는 해였다.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에게 이야기했다.
“여보, 지난번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상속자를 주신다는 말씀 기억하세요?”
“그럼요. 그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지요. 아들을 주신다고 말씀하시고 나서 쪼갠 고기를 놓고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셨지요.”
당시 관습을 따라 그들의 상속자는 우리의 집안일을 돌보는 가신(家臣)인 엘리에셀이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통해서 상속자가 나올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기 전까지 그들의 상속자는 엘리에셀인 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고기를 쪼개놓게 하시고 그 약속을 다시금 확증해 주셨다. 그 당시에는 종종 상대와 약속을 할 때 고기를 쪼개놓고 그 사이를 함께 지나다니는 방식으로 약속을 맺었다. 만일 약속을 어길 경우 이 고기처럼 쪼개져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 담긴 언약식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앞에서 행하시며 친히 상속자를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여보, 제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저는 이미 여자로서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어요. 내가 원한다고 그게 어디 뜻대로 되나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상속자를 주신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답은 하나예요. 제 여종 하갈이 있잖아요. 잘 생각해 봐요. 하나님의 뜻은 당신을 통해 상속자를 낳는 것이잖아요.”
아브라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며, 내 아내는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의 상태가 아니다. 그렇다면…’ 긴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아브라함도 아내의 의견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사라는 이 방법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일이 이 부부의 일생과 후손 대대로 치명적인 골칫덩어리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더 커져야 할 믿음의 용량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믿음이 연약할 때는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기보단 내 뜻에 하나님께서 맞춰주시길 바라는 간사한 마음도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한다. 그리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겠다고 수도 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드린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한다. 하나님께서 내 일생을 통해 이루실 크고 위대한 약속들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나의 삶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전능하심도 믿고, 하나님의 살아계심도 믿으며,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실 것도 믿는다. 그러나 그 문제가 나의 삶 속에 있을 때는 정말 가능할지 깊은 내면으로부터 의심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그들조차도 믿음에 한계는 존재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에는 너무 초라한 자신의 몸을 보게 된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이 거룩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되기도 한다. 이런 염려는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점차적으로 연약한 자신의 삶에 초점을 두도록 한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하면서도 연약한 내 육체를 바라보노라면, 우리는 슬슬 아주 독창적인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뜻을 내 능력으로, 내 힘으로 이루어 드리지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단산(斷産)한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믿었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다른 방식으로 이루고자 했던 사라처럼, 지금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너무 멀리 있어 보이는 이 현실 속에서 내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시도한다. 이런 시도가 어쩌면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기꺼이 행해야 할 믿음의 행위로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볼 때는 거의 완벽한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처럼 보이게 말이다. 그러나 조금 찜찜하다는 것을 내가 알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 아니 조금 찜찜한 정도가 아니라, 이것은 아주 크게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라수록 잘못되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된다.

방법까지도 하나님께 의뢰하는 삶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내 인생의 모든 일의 과정도 하나님께서 하시게 해야 한다. 뜻이 그분의 뜻이라면 방법도 그분의 방법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사라와 같은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크신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해 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각이 너무 많고 복잡해지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개입하실 자리가 없어진다.
우리는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종이 생각이 너무 많으면 주인이 피곤해진다. 충직한 종에게는 다 알지 못해도 묵묵히 주인의 말씀이기에 따르는 우직함이 번득이는 지혜로움보다 더 빛날 때가 많이 있다.
종이 바르게 섬기려면 사역의 순수함이 몸에 배어야 한다.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 단순하고 더 우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원하며, 하나님의 뜻이 더욱더 온전하게 우리의 삶에 실현되길 원한다면 방법까지도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께서 하시게 해야 한다.  

사역의 현장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만나게 되는 갈등의 현장에서 수없이 사라처럼 갈등하게 된다. 남편들도 이러한 갈등을 하기도 한다. 정말 지혜로운 아내라면, 정말 지혜로운 사모라면, 남편이 갈등하고 있을 때 남편이 세상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시도할 때 옆에서 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방법까지도 하나님께 의뢰하여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게 하도록 우리를 드리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