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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창문너머 소망의 햇살이 비쳐옵니다

- 우간다에서 보내는 편지


적도의 땅
우간다 생활 4년, 짧지 않은 시간인데 이곳에선 한 계절만을 지낸 듯합니다. 건기와 우기로 나뉠 뿐 계절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죠. 신혼 때부터 사용하던 정든 물건을 내려놓고 100kg의 물건만을 갖고 나와 다시 살림을 시작한 건 꼭 소꿉놀이 같았습니다. 사소한 물건조차 구하기 쉽지 않기에 한국에 두고 온 물건들이 왜 그렇게 아쉽고 그리운지요. 세탁소에서 그냥 주던 철 옷걸이와 무심코 버렸던 이면지들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졌죠.
우간다 사람들은 관계중심의 삶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결혼식이나 다른 행사들은 물론, 주일에 교회 오는 것도 늦게 오더라도 교회에 온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중요합니다.

비가 오면 집에서 기다리다가 비가 그치면 서서히 발걸음을 움직입니다.
예배 시간에 늦었다고 나무라는 목사님도 없고, 늦었다고 미안해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만나면 반갑고 기쁠 따름이지요. 그래서인지 예배는 기본 3시간 이상, 길게는 하루 종일도 이어집니다.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부인은 어떠냐?’, ‘아이들은 잘 있냐?’, ‘집에 있는 염소들은 잘 자라냐?’는 등 온갖 질문과 안부를 묻고 나서야 가던 길을 갑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사람을 만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뒤에 가던 차들도 이해하는지 불평 없이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려주기도 합니다. 성격이 급하고 시간 약속에 철저한 남편과 저는 문화차이에 한동안 아주 힘들어했지요.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선교지 사역
처음 2년은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느라 보냈고, 그 다음은 사역의 현장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은 우간다 곳곳을 다니며 신학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열악한 환경의 지방 목회자들을 훈련시키고 신학교 강의를 하고 저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유치원에서 교사로 사역합니다. 집을 자주 비우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은 먼 길을 운전하며 사역을 하는 남편, 그리고 집에 있는 아이들과 저도 사고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지요. 크고 작은 교통사고도 여러 번 당하고, 두 번이나 집에 도둑도 들었습니다.
현지인들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을 ‘무중구’라고 부르며 언제나 주목하고 있습니다.
집을 비우고 들어오는 시간과 무슨 일을 하는지 까지 그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두 번 도둑을 맞은 것도 남편이 집을 비우고 우리가 교회에 간 주일 예배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너무 무서워 어찌 할 줄을 몰라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차가 없는 경찰은 즉각 오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경찰을 부를 때는 직접 자기 차로 데려오거나 차비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도 ‘아무 것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조사비용을 요구하고 뒷돈을 바랄뿐이었습니다. 사건의 정황으로 보아 그 일을 한 사람을 알기에 그 사람과 대면하고 얘기를 나누었지만 ‘모른다’는 대답뿐 아무런 결과도 없었습니다.
폭군 정치 치하의 이디아민 시절과 반군들의 살육행위를 겪은 우간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생존의 법칙임을 터득했습니다. 진실을 얘기하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문화적 배경을 알면서도 너무 답답했습니다.

나누고 싶은 보혈의 은혜
‘어떻게 이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들의 진실을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숨길 수 없는 확연한 피부색이 큰 거리감으로 느껴지며 얼굴색이 다른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한국에 온 서양 선교사 언더우드의 기도문처럼 저도 이들의 마음이 도저히 보이지 않음을 공감합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잘 알고 지내고 나름대로 아껴주며 잘 해 주었는데…’ 잃어버린 물건 때문이 아니라 잃어버린 사람 때문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사람은 떠났습니다.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아 잃어버린 물건에 대해서 다시 언급하지 않기로 했는데, 끝까지 마음을 열지 않고 어둠의 길을 택한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물건 몇 개를 잃었지만 그는 정직한 마음을 잃었습니다. 물건을 판 몇 백 만원이 그의 인생에 주는 기쁨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겠는가? 더 귀한 것이 여기에 있는데, 어떻게 하면 복음의 참된 기쁨과 보물을 이들의 마음에 심어줄 수 있을까?
여리고 작은 자매의 마음에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가 흘렀더라면, 삶의 과정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깨달았다면 눈물과 함께 진실도 나누었을 텐데 아쉽기만 합니다. 피부색은 검어도 마음만큼은 정직으로 새하얗고, 빛으로 환하기를 기도하며 두 손을 모아봅니다.

하나님의 위로
이런 사역의 어려움과 험한 아프리카의 삶 속에서도 주님이 주신 작은 선물들이 있기에 생기가 돕니다.
우간다에 오기 전 목동의 숙소에서 선교 훈련을 받을 때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햇빛이 차단된 건물 뒤쪽의 어두운 방에 머물게 되었는데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집은 탁 트인 창문 밖으로 멋진 광경이 보이는 환한 곳으로, 특히 야경이 아주 볼만했습니다. 그 숙소의 훈련생은 답답할 때마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얼마나 행복해할지 상상이 되었습니다. 목동에 머무는 기간 내내 앞집 창문을 부러워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우간다로 들어오기 전 언어연수과정을 수료하려고 6개월간 남아공에 머물렀는데 그곳 숙소를 보자마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현지인이 구해놓은 숙소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집이었습니다. 환하고 탁 트인 장소, 아침이면 크고 넓은 창문사이로 맑은 햇살이 쏟아지는 곳, 게다가 창문 밖으로 그 유명하다는 테이블 마운틴이 한 눈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집안에서도 창문 밖의 유명 관광지를 공짜로 구경할 수 있었고 야경도 언제나 즐길 수 있는 방에 바로 제가 서 있었습니다.
“은희야, 창문 밖 멋진 광경이 그리도 보고 싶었냐? 이 정도면 되겠냐?”

목동에서 앞집을 부러워하고 내 처지를 슬퍼했던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목동에서 감히 상상도 못했던 남아공의 집과 창문, 목동의 작은 창문과 비교하면 게임도 안 되는 사이즈와 광경, 나에게 보이는 작은 현실과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멋진 계획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대한 기대나 관심은 없고 그저 좁은 시야로 보며 불평하고 투덜대는 제 모습에 하나님은 얼마나 애태우시고 마음 아프셨을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어훈련과정이 끝나고 우간다로 향할 때 남아공의 멋진 광경을 두고 오자니 솔직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면서 그 다음 창문은 어떨지 기대되었습니다.
또 다른 놀라운 계획을 기대하며
우간다에서 머문 첫 번째 집은 석양 노을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지금 머무는 숙소의 창문은 남아공만큼은 못되지만 우간다의 키다리 나무 야자수와
바나나 나뭇잎을 언제나 즐길 수 있습니다.
다음 숙소의 창문은 작고 다시 어두운 방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이제는 창문을 볼 때마다 나를 위해 어떤 놀라운 일들을 준비하실지 기대하며,
소망으로 웃음 지으며, 작은 창문을 통해서도 분명한 계획을 펼쳐놓으실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합니다. 창문을 열 때마다 이곳 사역을 통해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알아갈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매일매일 더 가까이 하나님께로 다가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글/김은희 선교사
서울 서현교회(김경원 목사 담임)와 한국 외항선교회 파송 우간다 선교사로 어린이(유아) 교육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총신대학교 유아교육과를 졸업했으며, 한국해외선교사 훈련원 (GMTC)을 수료했다. 가족으로는 남편 이동해 선교사와 두 자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