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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에 부는 성령의 바람 - 김명옥

2011.08.24 19:01

조회 수:1806 추천:1



일본 열도에 부는 성령의 바람

김명옥 선교사(요한동경교회)



일본의 두 얼굴
일본에 선교사로 온 지 26년이 됩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이 두 번 변하고 조금 있으면 세 번 변하려고 합니다. 한 길을 10년 이상 가다보면 무엇인가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결같이 일본 복음화를 소망하며 26년이 지났는데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습니다. 어느 선교지든 다 어렵지만 일본도 상당히 어려운 나라입니다.
일본은 두 얼굴을 가졌습니다.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 문화의 틀에 대해 기록한 책 <국화와 칼>에서 일본 문화는‘그러나 또한(but also)’이라는 표현으로 함축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를 가꾸는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반면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립니다. 칼도 국화와 함께 한 그림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일본인은 최고로 싸움을 좋아하는가 하면 동시에 얌전하며, 군국주의적인 동시에 탐미적이며,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완고하면서도 또한 적응성이 풍부하며, 유순하면서도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고,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며, 용감하면서도 비겁하고, 보수적이면서도 또한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르게 될 때에는 범죄의 유혹에 지고 맙니다. 이 모든 것이 일본을 이루는 날줄과 씨줄이며, 이런 모순들 모두가 공존하는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을 살펴보면, 우상 숭배의 죄가 일본인들을 극단적인 기회주의자로 만들어 그들이 진리를 깨닫고 진정한 회개와 구원에 이르는 것을 방해합니다. 크리스천이 신, 구교 다 합해 1%도 되지 않는 나라라면 그 국민의 마음이 어떨까요? 일반적으로 그런 나라는 미신과 악령의 역사로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 광포함과 비인간성으로 얼룩져 있기에 반드시 구원시켜야 할 민족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복음화되지 않은 민족 중의 하나인 일본은 친절하고 깨끗하고 예의가 바르다는 이유로 도리어 배워야 할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모순들 속에서 더 많은 중보기도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기도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26년 동안 일본 선교 일변도로 사역해온 저는 일본이야말로 복음이 필요하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필요한 민족이라고 믿습니다.

선교에의 헌신
저희는 민족 복음화 운동이 불같이 일어나던 시절, 대학생 선교회(CCC)에서 예수님을 만나 민족 복음화의 비전을 갖고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다 평신도 순장으로 평생을 살기를 약속하고, 같은 스승에게 말씀을 배우며 훈련을 받다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성령의 역사로 크게 부흥하던 때,‘EXPLO 74, 80 세계복음화 대회’등에 함께 참석해 주님 사랑의 열정을 불태우며 세계 선교를 위해 어떤 모습으로든지 헌신하려는 뜨거운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주의 종으로 헌신하려는 것보다 평신도 순장으로 평생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를 위해 살며 헌금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300명의 선교사를 후원하는 사장님이 되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1980년, 남편이 다니던 회사의 제 1차 해외연수자로 뽑혀 일본의 동북대학원에 유학을 가게 된 것이 일본 선교사가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년 유학 후 귀국하여 열심히 회사 생활에 전념하며 교회 안수집사로 충성스럽게 봉사한 남편은 회사 생활 11년 동안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말씀 그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려운 가정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생활하며 가정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차차 어려운 가정
경제가 윤택해지고 가족과 친척이 화목해지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실생활에서 체험하며 나아가던 중, 일본 선교사로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1986년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일본에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둘이 한 마음으로
우리는 평신도 선교사로 일본 젊은이 캠퍼스 선교를 위해 일본 CCC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은 동경 시내 한복판에 있는 개신교 100년 전통의 요도바시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일본어가 능통하기에 바로 캠퍼스 선교로 투입되었고, 모 교회 담임 목사님의 배려로 파트타임으로 사역하며 일본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캠퍼스에서의 학생 선교와 일본인 교회의 파트타임 사역자로 사역하는 것 외에도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 유학생을 훈련시켜 같이 일본인을 선교하려는 목적으로 요도바시 교회 한국부를 개척하였습니다. 1988년에 16명으로 개척을 시작하고 일본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같은 스승 밑에서 제자 훈련받고 민족 복음화의 비전, 세계선교의 비전이 같았기에 남편의 사역에 같이 동참하며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한 마음 한 뜻이니 이것이 사역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공연히 힘 빼는 줄다리기, 신경전, 의견 차이를 좁히는 과정의 시간 낭비, 정력 낭비 없이 제자화, 복음화의 한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 은혜입니다. 혹여 갈등이 있을 때에도 마귀의 공격에 속지 않고 바로 회복되어 사역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에 대한 사랑보다 주님에 대한 사랑의 힘이었을 것입니다.
요한 동경 기독교회는 제자 훈련을 통한 민족 복음화 비전으로 한국부, 일본부, 중국부, 영어부 8부 예배에 3,000여 명이 예배드리고, 일본 전역에 개척한 36개 지교회가 있습니다. 일본 신칸센 역을 중심으로 대학교가 있는 곳에 개척하여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 성도들이 함께하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소망을 전하며
제 2의 경제대국, 철저한 준비성과 완벽한 체제, 깨끗함과 친절로 칭찬받으며 실력 이상으로 평가되던 일본이 지난 3월 11일의 동북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기회로 일본이 겸손해지고 하나님 앞에 교만을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동경으로부터 360km 떨어진 동북 미야기 현의 중심지 센다이에 요한 센다이 교회가 있습니다. 이번 지진으로 전기, 수도, 가스 등 생활 시설이 끊어지고 고속도로망이 끊어져 두 주 이상을 추위와 어둠에 시달리며 모두 교회에 모여 지냈습니다.
또한 자신들 역시 재난자임에도 불구하고 쓰나미로 폐허가 되어버린 이시노마키 지역의 구조 활동을 위해 나섰습니다. 봉사활동의 중심지가 된 요한 36개 교회가 하나 되어 난민에게 식사 제공 및 재난지역 자원봉사와 지원물자 운송, 찬양과 연주를 통한 치유사역 등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매일 저녁 동경을 비롯한 전 지역교회에서 밤새 450km, 600km, 1,000km를 달려 모든 물자 공급이 끊어진 재해 지역에 물, 음식, 휘발유, 의복, 생활필수품 등 필요
한 것들을 모두 보내 주었습니다.
이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달되도록, 가족과 집을 잃고 피난처에서 망연자실한 저들이 예수 안에서 소망을 갖도록, 그리고 그렇게 거절했던 복음밖에 살 길이 없음을 깨닫고 구원에 이르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희 교회는 지진이 일어난 바로 그 주일부터 지금까지 10주째 구제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피 값을 치르는 일본 복음화
평범한 사람인 우리가 주님 안에서 진짜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남편 김규동 목사가 창립 10주년 예배 바로 그 다음 주일에 극좌파 공산당 혁명노선 협회 사람들에게 테러를 당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대학 캠퍼스에 복음을 전해 많은 일본 학생들이 예수님을 믿자, 예수 믿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 공산주의자들이 남편을 테러한 것입니다. 철봉과 칼로 여러 곳을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러나 머리를 치려던 것이 광대뼈를 부수고, 칼로 얼굴을 찌르려던 것이 귀를 찢고, 아킬레스건을 끊으려던 것이 비켜나가고, 팔을 찌른 것이 뼈까지 닿아 패혈증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살게 해 주셨습니다. 두려움을 이기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한결같이 꾸준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사역하게 해 주셨습니다. 대적자의 방해와 독설, 악한 협박 등으로 가슴 졸이며 애타게 지나온 세월들인데 이제는 열매 맺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일본 문화의 틀이 성경 말씀으로 깨지면서 반드시 성령의 회개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저희 요한 교회에서 예수 믿고, 세례와 제자 훈련을 받아 헌신한 일본인 사역자들이 자기 민족의 죄를 품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에게서 우리는 소망을 봅니다. 그동안 일본 기독교는 진정한 회개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성령님이 주시는 참된 회개를 체험하고 성령의 역사를 사모할 때 그렇게 기다리던 일본 복음화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오늘도 계속해서 제자 훈련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글/김명옥 선교사
1988년 남편 김규동 목사와 함께 요한 동경교회를 개척하였고, 일본인 현지 교회인 요한 와세다교회를 개척하여 일본인 제자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일본 코스타강사, 민족학교, 요한 국제기독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아들 부부와 딸 부부 모두 일본에서 함께 사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