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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열정, 사명의 열정 - 이재순 사모

2011.08.30 18:56

조회 수:1984 추천:2

복음의 열정, 사명의 열정

- 이재순 사모(안산동산교회)



올해로 환갑을 맞아 사역 32년이 되었다.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는 복음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그 외의 다른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학창시절 준비해 온 꿈에 대한 열정도 복음만큼 중요하진 않았다.
주님을 알게 되고, 사모란 이름으로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는 교회를 위한 중요한 선택과 결단이 요구되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지난 날 살아온 내 삶의 방식과 타고난 기질이 있었기에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사모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고 살아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복음전도자’란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유년 시절 유복했던 가정환경과는 달리 청소년기 이후는 아버지의 사업의 실패로 많은 부분을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가까스로 첫 학기 등록금만 마련해 이화여대에 들어갔지만 다음 학기부터는 장학금이 절실히 필요했다. 미션 스쿨인 학교의 장학금 신청서에는 목사님의 서명이 필요했다. 그때 교인이란 서명을 받기 위해 친구를 따라 나선 것이 교회에 나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은 CCC(대학생선교회)와의 만남이다. 어려운 가정 경제로 휴학을 하고, 2년간 은행에서 근무를 했다. 하지만 어렵게 시작한 학업을 중단할 수 없어 그 당시는 아주 드문 일이었지만 다시 3학년으로 복학을 했다. 그때 지금은 선교사의 아내가 된 신실한 학교 후배를 만났다. 대대학생활의 많은 변화들로 교회마저 잘 나가지 않던 내게 1973년 CCC에서 진행하는 ‘겨울성서대학’에 함께 가자고 졸라대던 그 후배 덕분에 그곳에서 내 모든 가치는 예수님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회심 이후 CCC에서 순장으로 활동하며 ‘엑스플로 74’등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남편을 만난 곳도 그때 행사에 참여했던 ‘잔디순’이란 CCC 순모임을 통해서였다. 당시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신학공부를 하고 있는 가난한 학생이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대학생 선교회의 권면으로 학교에 남아 조교를 하고 있었다. 대학원에서 학업을 계속하며 ‘학원복음화’를 위해 헌신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하신 말씀처럼 당시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음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혼자 보단 둘이 낫겠다는 사명감이 크게 작용하여 남편과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교회와 성도를 위한 헌신
나는 대학에서 복음을 접했고 신앙생활의 중심이 대부분 CCC를 통해 이뤄졌다. 그러다보니 복음에 대한 열정만 있었지 목회가 무엇인지 잘 몰랐고 사모의 역할에 대해서는 더욱 알 리가 만무했다. 또 결혼 전에 다른 사모님을 만나본 경험도 없었다.
결혼을 약속할 때 남편은 자신은 교회 일을 하고 나는 하던 공부를 계속하며 학교에 남아 복음을 전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남편이 안산(반월공단)에 개척교회를 한다고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서울 인근도 아니고 신촌에서 안산까지 왕복 5시간 이상은 소요되는 거리, 게다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와도 같은 안산에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것이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렇게 갈등하고 고민하며 시간을 지체할 무렵 주님은 꿈을 통해 나를 포기시키셨다.  
어느 날 꿈속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한 사형수를 보았다. 어찌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차라리 빨리 죽으면 덜 고통스러울 텐데 왜 죽지도 않고 저렇게 버티고 있을까 싶은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사형수의 모습이 포기하지 않는 자아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내 모습임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남편의 뜻대로 교회를 개척하고, 나는 학교에 계속 나가면서 목회를 조금씩 돕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목회를 시작하고나니 사모가 없이는 목회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도무지 목사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도를 해놓고도 사모가 없으면 심방을 갈 수가 없었고 그 외에도 사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결국 사모생활 1년 만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속해오던 공부와 학교사역을 모두 내려놓고 교회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당시 박사학위 공부를 눈앞에 둔 상황이었고, 몇몇 대학에선 강의 제안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니 주변에서 들려오는 만류와 아쉬움의 소리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 하나님 편에서 결정하길 너무 잘했다고 생각한다. 복음전도자로 살기로 결심한 사명감이 컸기 때문에 교회 중심의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목회를 몰랐기 때문에 학교에 계속 남아 학원 복음화를 위해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모가 자기의 일을 갖고 목사의 아내로서만 있는 것은 결코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남편이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는 이미 사모도 목회자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게 직업인 줄 알고 거기에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복음의 사명을 좇아 달려감
350만 원짜리 지하실 예배당에서 주일이면 공단 전기공사로 전기가 모두 끊겨 대낮에도 촛불을 켜놓고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여름에는 선풍기조차 켜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예배를 드렸다. 특히 지하실이라 모든 것이 썩어나가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지하실 노이로제가 생기고, 햇볕이 드는 집에 심방만 가도 감격스러워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음에 즐겁고 감사하기만 했다.
화장실 청소부터 밥하고, 빨래하고, 낮엔 전도하고 밤늦은 시간엔 공장 청년들을 데려다 공부시키고, 목사님 안 계실 땐 설교까지 하며 그 피로가 목전까지 차올라도 난 도리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안 해 본일 없이 없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살았다. 복음의 사명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처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니 주님은 고난도 넉넉히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셨다.

우리 교회의 첫 성도는 동네에서 다 알아주는 알코올중독자였다. 그 성도를 얼마 동안 데리고 살면서 보살피고, 가르칠 때 주님은 그를 통해 일하셨다. 변화되어 가는 성도의 모습에서 우리는 새 힘을 얻었고, 주변 사람들은 우리 교회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성도들은 ‘도대체 교회가 뭐 길래 남부러울 것 없이 많이 배운 분들이 이곳까지 와서 저런 사람들을 상대하며,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며 복음을 전할까?’ 싶었다고 한다. 또 목사님이야 남자니까 자기 일에 헌신한다고 하지만, 대학에서 강의까지 하던 사모가 자기들을 위해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헌신한다는 생각에 용기와 위로를 얻었던 것 같다. 하나님 편에선 내가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당연한데 성도들에겐 좋은 본보기가 되었나 보다. 그들은 늘 전도를 할 때면 이런 나의 삶을 교회의 자랑으로 삼아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순종을 가능케 하는 사명감
목회의 큰 기쁨 중 하나는 교회가 성장하고 안정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교회에 관한 일을 묻는 일조차 점차 적어지고 교회의 아주 중요한 일도 주보를 통해 소식을 듣게 되는 일들이 잦아지면서 왠지 모를 섭섭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교회가 부흥하고 체계를 잡아갈수록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사역의 박탈감은 고독 그 이상의 우울증을 가져왔다.
젊은 날 꿈을 내려놓은 것에 대한 후회도 생기고, 내 존재가 소멸돼가는 듯한 마음도 생겨났다.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가정에서도 ‘빈둥지증후군’을 겪어야 했는데, 교회에서도 그런 현상이 겹쳐서 나타난 것 같다. 남편의 사역방식이 개척교회 때와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40대 인생의 손실기에 마음은 끝없이 외롭기만 했다. 젊은 시절 교회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기에 그 허전함은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말도 하지 못했다. 사모가 고민한다고 하면 ‘사모가 기도해야지! 뭘 그런 걸 갖고…’라고 할 것만 같았다. 지금에서야 이런 고민의 때가 있었기에 더욱 성숙해진 계기가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고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그 당시는 너무나도 힘들고 괴로웠다.  

이런 흔들림 속에 돌파구로 찾은 것이 상담공부였다. 상담공부를 통해 사모 역할에 대한 이중관계를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다. 사모도 엄밀히 말하면 성도다. 성도라면 교회가 정한 일에 순종해야 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물론 집안일에 있어서는 내 뜻대로 하기도 하고, 주장을 높일 수도 있고, 또 남편이 아내의 의사를 높여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교회 일에 있어서만큼은 사모도 역시 순종하며, 당회가 결정한 일에 돕는 역할로서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조연의 역할이다. 내가 교회 일에 뭘 정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 지도자와 공동체가 정한 일을 성도들이 잘되도록 순종하는 것처럼, 사모 역시 돕는 자리에 서는 것이다.
사모가 어떤 역할로서 서야 하는지 정리가 되고나니 내적 갈등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이후로는 남편이 교회 일을 물어 와도 “이거 목회죠? 그럼 당신이 결정하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또 “당회를 교회에서도 하고, 집에서도 하고 두 번 합니까?”라고 농담을 던질 만큼 여유로운 마음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이렇게 기질을 뛰어 넘어 교회 앞에 순종하고, 사모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모의 사명감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사명의 열정을 회복하는 결단
사모는 좋든 싫든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교회가 커질수록 소외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도와야 한다. 몇 년 동안의 노력으로 상담사역이란 전문성을 갖추자 교회를 위해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었다. 최근에는 상담사역과 우리 교회에서 주관하는 ‘생수의 강’수련회 프로그램에 일부 참여하고 있다. 젊은 사역자들을 도와 그들의 결정 앞에 순종하며 일이 더 잘되도록 함께 돕고 있다.
나는 사모도 목회자요, 그것이 직업이라 생각하고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 정도도 헌신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 같은 마음이 들곤 한다. 교회를 위해 구체적으로 도울 것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비록 중년의 위기가 오면서 시작한 상담공부였지만, 교회를 더 잘 섬기기 위해 지식을 쌓고 전문성을 갖추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모로서 교회와 성도 앞에 충성하는 길이요, 섬길 방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엇엔가 집중하고 섬기는 것에는 모두 그 시기가 있다. 내가 그 때를 맞춰 일을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감 때문이었다. 또 그것은 오직 한길만 바라보고 열심히 살아 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나는 올해 연초에 우리 교회 사모들 모임에서 한해 소망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소망카드에 적은 것은 ‘열정’이었다. 나는 지금도 다시 한 번 사명자로서 내가 회복해야 할 열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앞으로 평균 수명이 90세까지 된다고 하면 30년 후를 위해 어떻게 살아갈지 지금 결단이 필요한 것 같다. 오직 복음의 사명으로 달려온 인생, 이제 30년 후에 후회하지 않을 새로운 사명감을 향해 나아가길 소망해 본다.

글/ 이재순 사모
안산동산교회는 목회32년을 맞아 ‘하나님을 경험하는 교회, 세상을 축복하는 교회, 미래를 열어가는 교회’란 비전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재순 사모는 상담사역과 ‘생수의 강’ 수양회 사역을 맡고 있다. 가족으로는 남편 김인중 목사와 출가한 자녀 2남 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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