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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위해 울어줄 사람 당신뿐입니다 - 고훈 목사

2011.07.11 12:51

조회 수:2223 추천:2



날 위해 울어줄 사람 당신뿐입니다  

- 고훈 목사



주님은 내 아내와 하나 있는 딸을 사모로 만드셨다. 목회의 길을 가던 딸은 목사를 남편으로 만나 세 아이를 낳고 사모가 되었다. 이것은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영광이다.

사모의 길
사모의 딸인 여섯 살 된 외손녀가 교회 유치원에서 한문공부를 한다기에 목사를 한문으로 써보라 했더니 목사(牧師)를 목사(木死)로 썼다. 어린아이 입에서 나온 찬미를 온전케 하신 하나님(마 21:16)이시라더니……. 목사는 주님처럼 나무에서 십자가 지고 죽을 사람이 아닌가? 아이 수준으로 장로(長老)를 장로(葬路)로 써 본다. 주님처럼 장로가 길이 되려면 십자가를 네 개나 지고 길에 묻혀 주님께 나아가도록 길이 돼야 한다. 집사(執事)는 석사(石死)라 써 본다. 스데반 집사가 교회 위해 돌 맞아 순교했기 때문이다. 교사(敎師)는 교사(橋師)다. 교사는 제자의 다리가 되어 죽으라는 뜻이다. 사모(師母)는 사모(死母), 살모라 써 본다. 살모사는 자식을 위해 자기 몸을 새끼들 먹이로 주고 죽는다. 이 삶이 교회를 위한 사모의 희생이다. 놀랍게도 성경에 사모란 이름은 없다. 역할도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최초의 선교사라 할 때 사라는 분명 사모였다.

하남교회에서
하남교회는 신학교를 마칠 때까지 내가 6년간 섬긴 빛고을 광주의 변방 농촌교회다. 장년부터 아이들까지 합쳐 50여 명이 주일 낮이나 새벽이나 밤 예배나 항상 같은 수로 모이는 교회였다. 나와 결혼한 아내는 내가 기숙사에서 공부하는 3년 동안 교회를 지켜주었다. 아내는 이제는 사모가 된 첫딸을 업고 교인 집을 심방했었다. 할머니 집사들은 사랑이 많아서 심방 끝나고 오는 길이면 그 집 며느리 모르게 아이 업은 포대기 속에 참깨며 들깨, 콩, 팥, 녹두 등을 보자기에 싸서 넣어 주었다. 마을에서 500m 떨어진 공동우물까지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 먹던 그 시절, 집사님은 우물가에 고추장 단지를 갖다놓고 기다리다 뒤따라와서 주곤 했다. 거절하자니 순수한 교인들 사랑을 거절하는 것 같아 괴롭고, 받자니 도적질하는 것 같아 괴로워 아내는 그 사랑의 선물들을 교회로 가지고 와 눈물로 감사기도를 드렸다.
첫딸 아이를 임신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30분에서 한 시간 거리의 전도심방을 가기 위해 발목 위까지 덮인 눈길을 걸어 다니다 눈이 구두 속으로 들어가 녹은 물로 저벅거린 적도 있었다. 아내는 그런 추위 속에서도 행복해하고 감격하기만 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그해 겨울, 아내는 임신 6개월 된 몸으로 식량이 떨어져 저녁을 굶어야 할 때가 있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40일이나 금식하셨고, 많은 종들 또한 주님을 따라 40일씩 금식한다는데 그깟 한 끼 금식(?)이 대단한 일인가 싶어 기도하고 잠들려는데, 밤 11시경 눈 밟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마루에 무엇을 놓고 가는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사람은 말없이 가고 없는데 땔감으로 쓸 나무와 쌀 한 자루가 있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밥을 해서 상을 차려놓고 기도를 하니 아내는 밥을 목에 넘기지 못하고 울었다. 주기도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주의 종은 밥 한 그릇도 소홀하게 받지 않고 눈물겨운 감사로 받아야 한다는 영적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제일교회에서
신학공부를 다 마친 그 해, 우리는 제일교회로 부임했다. 첫딸이 태어날 때 아내는 아내대로 난산을 겪고, 딸은 황달이 흑달이 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30만 원의 입원치료 비용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때 신학교 입학금이 3만 원일 때였다. 내게는 엄청난 액수였다. 빈손으로 내려온 나는 지나가는 선교사님께 기도 한 번 해주십사 부탁했다. 그러자 유리 상자 속에 격리된 출산 3주 된 내 딸 위에 손을 얹고 “하나님, 종의 딸이오니 믿음의 부자 되게 해 주세요” 하고 웃고 가셨다. 그 다음날 기적처럼 흑달, 황달이 점점 사라져 30만 원 병원비 안 들고 퇴원하게 되었다.
그 아이가 세 살 됐을 때, 교육관 건축자재를 싣고 후진하던 8톤 트럭의 앞바퀴 속으로 들어가 깔린 사건이 있었다. 같이 놀고 있던 5살 된 장로님 딸이 내 딸을 향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을 운전기사가 보고 잘못을 직감하여 차를 멈춘 후에야 내 딸을 건져낼 수 있었다. 허벅지는 타이어 바퀴로 물리고 한 달 동안 걷지 못하더니…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 이상 없이 곱게 자랐다. 내가 딸아이에게 목사가 되든지 사모가 되든지 하라고 한 이유는 두 번씩이나 하나님이 살려주셨으니 그 생명 보답하란 이유였다.
  
제일교회를 섬긴 해가 34년이 되었다. 신학을 졸업하고 첫 부임 후 오늘까지 변함없이 한 교회를 섬기고 있다. 혹자는 내게 광개토대왕의 피를 받았느냐고 한다. 지난 33년간 쉬지 않고 건축을 위한 대지확장과 복지시설을 위한 부지매입에 목회 생애를 다 바쳤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차세대를 위한 ‘세례 요한의 길 목회’라 믿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결코 헛된 자랑으로 보이지 않길 빈다. 50여 명으로 시작한 교회가 15,000여 명 교세로, 50평이었던 예배당이 건평 11,000평으로, 400평의 대지가 3,000평의 대지로 넓혀졌고, 그 외의 무료 노인병원, 종합복지관, 장애인 비누생산 작업장과 주간보호시설 2곳, 노인요양원 3개소, 장애인 고아원 1개소를 12,000평 복지타운 위에서 운영하고 있다.

아내는 가난했어도 애초부터 사례비를 가정살림에 보태지 않고 건축헌금에 넉넉히 헌신했다. 이는 우리 당회의 큰 배려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아이 유학경비와 결혼식 비용을 충당해 준 것은 물론이거니와, 건축완성 때까지 사례비를 모두 건축비로 작정하여 드리면 판공비란 명목으로 다시 아내 통장에 넣어주곤 했다. 아내는 시장 안가고 옷 안 사입기로 유명하다. 그것이 아내의 목회였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전 9:9)

메릴랜드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과 며느리가 임신 7개월째 쌍둥이를 조산하고 3개월 동안 존 홉킨스병원의 인큐베이터에서 치료한 비용이 40만 불(약 5억 원)이었다. 그러나 환자의 부모가 목사요 보호자가 유학생이란 이유와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란 이유로 미국 정부가 다 탕감해 준 은혜를 입었다. 아내는 평생 성전건축 헌금 드린 것이 5억인데 하나님은 동시에 이것을 해결해 주셨다고 놀라워한다.

침묵하는 사모
아내의 침묵하는 영성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격 탓이다. 나는 몸이 심히 약한 목사다. 바울보다 몇십 배 더 약한 목사다. 폐결핵 3기로 투병하던 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신학교 갈 때 8년을 기다려준 사람이 아내다. 위암, 췌장암, 십이지장암, 임파선암으로 10여 년간 투병할 때 함께 아파해준 사람이다. 그녀에게 남편 목사는 교회였고 생명이었고 삶이고 죽음이었다. 결핵이 재발하고 폐렴과 패혈증, 죽음의 상태 속에서 5일간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중환자실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던 아내. 나는 그 아내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한 편의 시로 대신하고자 한다.


나의 아내


나를 흙으로 빚을 때
당신은 나의 가슴으로 빚었습니다
당신 몸에서 향취가 솟아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내 아이를 받은 여인
당신은
우리 사이에
세월도 허물지 못할
다리를 놓았습니다

당신은 단 하나밖에 없는
우리 집 얼굴입니다
밖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찾는 얼굴
밖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찾는 얼굴
밖에서 돌아온 나도
맨 처음 보고싶은 얼굴은
당신입니다

당신이 비워놓은 자리를
채울 보물은
이 세상에도 저 세상에도 없습니다

당신 손끝에서
살림들이 숨쉬고
보살핌 속에 오늘도
식구들은 제자리를 찾습니다

내가 홀로 있을 때
내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은 당신뿐입니다
내가 슬플 때
내 대신 눈물을 흘려 줄 사람도
이 세상에서 당신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의 홀어머니로 하여
아직은 두 번째 사람입니다
나의 주님으로 하여
영원히 두 번째 사람입니다


글/ 고훈 목사
안산제일교회 담임목사이며 시인으로서 수 편의 시집과 설교집, 다수의 저서를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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