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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한 자녀로 키우기 위한 성경에서의 자녀양육법

 

황현주 교수(혜천대학교 아동보육과)

 

노아 이야기 -

자녀를 기대하며 축복한 아버지, 라멕

성경에는 첫 번째 인류인 아담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인류의 첫 번째 지도자를 꼽는다면 단연 노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아는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인류를 ‘대홍수’라는 재앙에서 구한 첫 번째 지도자였다. 하나님은 노아가 “의인”이며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떻게 노아가 이처럼 인류의 지도자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5-22)"

 

노아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은혜와 동행 그리고 준행이었다. 즉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에 대한 준행이 노아가 인류 최초의 지도자로 쓰임 받을 수 있는 비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아가 하나님께 인류의 지도자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자녀를 기대하며 축복한 그의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계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창 5:28-29)"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자녀가 죄악이 가득한 이 땅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할 것이라는 큰 그림이 있었다. 자녀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고 이를 말(언어)로 표현하였다. 이처럼 라멕은 자녀에 대해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자녀를 축복한 최초의 아버지이다. 성경을 보면 라멕 이전의 다른 부모들은 사실 자녀를 기대하고 축복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음 구절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창 4:1)

 

·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창 4:25)

 

·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창 21:5-7)

 

존귀한 자녀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하며 인류를 위한 큰 축복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부모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축복의 말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들려주는 축복의 말은 그 아이의 삶을 뒤집어 놓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많은 부모들은 의심한다. “정말로 내가 아이를 축복하면 우리 아이가 존귀케 되나요?”, “말로 축복하는 건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너무 쉽잖아요? 그렇게 쉬운 거라면 많은 사람들이 존귀해져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죠?” 돈도 들지 않고 얼핏 듣기에 별로 수고로워 보이지도 않는 그 일이 그렇게 영향력이 있을 거라고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자녀를 축복하는 일이 많은 부모들의 말처럼 정말 쉬운 일일까? 누구나 자녀를 축복할 수 있는 것일까?

 

야곱 이야기 -

왜곡된 축복, 그 쓰디쓴 열매들

성경에는 노아처럼 부모의 축복을 받은 자녀의 모습도 기록되어 있지만 반대로 부모의 축복을 받지 못해 비참했던 자녀의 모습도 나온다. 바로 아버지 이삭과 그의 자녀 야곱과 에서가 그려진 창세기 27장이다.

창세기 27장의 주제는 <복>이다. 실제로 이 본문에는 <복>이라는 단어가 성경 전체 중 가장 많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펼쳐지는 그림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여기엔 아버지의 잘못된 축복으로 인해 상처받고 뒤틀린 아내와 자녀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나는 창세기 27장을 <최악의 축복장>이라고 이름 붙였다. 분명 이삭도 하나님 앞에서 자녀를 열심히 축복했다. 그러나 자녀에 대한 그의 축복은 왜곡되고 잘못된 축복이었다.

 

첫째, 이삭의 자녀 축복은 하나님을 제외한 ‘나’ 중심적인 축복이었다.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창 27:4)”

둘째, 이삭의 축복은 자녀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축복이 아닌 「~하면~한다」 식의 조건부 축복이었다. 사냥을 해서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맛있게 먹게 하면 마음껏 축복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그의 축복은 결정적으로 편애적인 축복이었다. 그는 쌍둥이 아들 가운데 남성적이고 활달한 큰아들 에서를 더 사랑했다. 조용하고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작은아들 야곱이 오히려 자신을 빼닮았지만 아마도 이삭은 자신의 약점까지도 그대로 닮은 자녀를 사랑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결국 이삭은 자신과 반대인 큰아들만 편애했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들을 편애한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잘 안다. 에서와 야곱 모두 아버지가 자신들을 똑같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다.

 

우리 가정에서도 부모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는 아이들은 실제로 부모의 관심과 돌봄을 늘 받기 때문에 자기가 사랑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부모의 애정이나 부모가 제공하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버지의 일방적 편애를 받았던 에서 역시 장자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당연히 자신을 축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작은아들 야곱은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에 늘 목말라 있었다. 갈급하게 아버지의 축복을 구하던 그는 잘못된 방법인지는 알지만 거짓과 속임수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싶었다. 축복에 대한 갈급함은 평생 동안 야곱을 따라다녔고 그는 상대와 방법을 불문하고 축복을 받아냈다.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온 장인어른 라반에게서도, 심지어 하나님과 밤새 씨름하여 환도뼈가 골절되는 고통 속에서도 기어이 축복을 받아냈다. 아버지를 향한 축복에 대한 갈급함이 그의 삶속에서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삭의 편애는 아내 리브가마저 자녀를 편애하도록 하여 역기능 가정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남편이 큰아들만 예뻐하자 리브가는 작은아들의 상처와 눈물을 껴안으며 남편의 사랑의 몫까지 채워주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편애로 발전됐고 결국 리브가조차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작은아들의 축복 찬탈을 실제적으로 주도하기에 이른다. 자신을 속인 야곱의 배후에 어머니가 있음을 알았을 때, 에서가 느꼈을 충격과 분노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가 야곱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던 이유 중 하나는 어머니에 대한 깊은 배신감이 아니었을까?

편애는 가정을 산산이 조각내었고 야곱은 자신의 유일한 사랑공급처이자 안전 기지였던 어머니의 그늘에서마저도 떠나야 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어머니의 그늘로 돌아오지 못했고 상처와 좌절감을 주었던 아버지만 후일 겨우 뵈었다. 그가 이 상처의 벽인 아버지를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은 그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에 대한 편애로 이어지고 그것은 성경에서 가장 가슴 아픈 드라마 중 하나의 전조가 된다.

 

기억하자. 편애는 왜곡된 축복이다. 그리고 왜곡된 축복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니다. 부모의 편애는 사랑을 넘치게 받는 아이와 못 받는 아이 모두에게 축복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을 파괴하고 부모와 자녀의 삶을, 더 나아가 미래 자손의 삶을 어그러뜨리는 죄악이 된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가 내가 받아야 할 사랑을 빼앗은 형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이 빠진 ‘나’ 중심적인 축복, 내게 잘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만 주는 조건부 축복, 내 눈에 예쁘게 보이는 아이만 기뻐하는 편애적인 축복은 결국 가정과 미래에 쓰디쓴 열매를 삼켜야 하는 고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부모들은 노아의 아버지 라멕이 행했던 것과 같은 건강한 축복을 자녀들에게 해주지 않는다. 편애를 넘어 고함과 욕설이 난무하고 심지어 늘 술에 취해 자녀를 학대하고 저주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부모의 이혼으로 아예 축복을 해 줄 아버지가 없는 경우도 있다. 내 주변만 둘러보아도 그렇다. 아버지가 차라리 안 계시면 좋겠다며 눈물 흘리는 학생들, 여러 가지 경제적·정서적 궁핍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학교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축복하는 부모도 없고 일찍부터 삶이 고통스러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아이들은 존귀한 삶을 살 수 없을까? 우리는 그 답을 「역대상」에 나온 야베스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야베스 이야기 -

고통을 존귀로 승화시킨 기도,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

성경의 「역대상」에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들을 포함하여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 가운데 ‘존경(존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람이 단 한 명 있다. 바로 야베스이다. 왕도 귀족도 아니었던 그에게 어떻게 ‘존경(존귀)’이라는 별칭이 붙을 수 있었을까? 성경에서는 야베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야베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다른 형제들보다 더 존경을 받았습니다. 야베스의 어머니는 ‘고통 중에 아들을 낳았다’는 뜻으로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고 지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나에게 복을 주십시오. 나에게 땅을 더 많이 주십시오. 나와 함께 계셔 주시고, 아무도 나를 헤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내가 누구한테도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야베스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대상 4:9-10, 쉬운성경).

야베스는 경제적으로 가족적으로 삶이 고단한 사람이었다. 경제적 주체인 아버지가 자녀의 이름을 짓는 유대 전통과는 달리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지어준 것으로 볼 때 성경학자들은 야베스가 사생아였거나 혹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것으로 추측한다. 성경에서 과부와 고아를 도와주라 명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듯이 여자가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유대에서 과부와 고아는 극빈층의 삶을 살았을 것이고 야베스 역시 철들기 전부터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야베스가 처한 고통은 단순한 경제적 고통만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낳고 키워야 했던 그의 어머니에게 오늘날로 말하면 ‘산후우울증’이 생겼던 것 같다. 아무리 자신이 처한 상황이 힘들어도 갓 태어난 아기에게 분풀이식으로 지어준 이름이 ‘고통’이었으니 말이다. 짐작해 보건대 야베스는 어머니의 따뜻한 돌봄은커녕 안정애착도 형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주와 다름없는 이름을 어머니로부터 지음 받고 고통에서 출발한 야베스의 삶은 단순히 고통으로 마감되지 않았다.

 

야베스에 대한 성경 말씀에서 그의 평생을 나타내는 핵심 단어 3가지를 찾으면 존귀(존경), 고통, 이다.

그렇다. 야베스의 삶은 고통으로 시작되어 존귀로 끝났다. 그리고 그의 고통을 존귀로 뒤집을 수 있는 변수는 바로 ‘기도’였다. 자신을 축복해 줄 육신의 아버지도 없었고 어머니마저 축복할 여력이 없었지만 그는 그 자신의 기도를 통해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큰 아버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을 요청할 수 있었다. 그가 어떻게 이런 대담한 요청을 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속에서 야베스는 그 자신이 축복의 주체와 유통자가 된다.

어찌 보면 축복과 기도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축복은 기도를 부르고 기도는 축복을 낳는다. 복을 비는 부모의 마음은 자녀에 대한 기도이며 자녀에 대한 기도 속에서 믿음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축복이 발현된다. 당신을 의지하는 모든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선물을 언어로 취하면 ‘축복’이 된다. 결국 부모의 축복이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전달하는 일과 다름이 없다. 그런 맥락에서 야베스의 기도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축복이며 부모가 없는 자녀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복을 비는 특별하고도 직접적인 손길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실 건강한 축복의 아버지 라멕과 왜곡된 축복의 아버지 이삭, 그리고 아버지가 부재했던 야베스의 삶 모두에게 작용했다. 어렵고 힘겨운 삶마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소망 속에서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야곱은 축복에 대해 병적인 갈급함이 있었지만, 오히려 병적인 갈급함을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원하고 받아내는 에너지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과 축복 없이 고통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야베스도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기도를 통해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존귀로 뒤집었다. 이처럼 우리의 하나님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만들어 내시는 우리의 친아버지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우리 아이의 부모로 세우셨음을 잊지 말자. 우리 부모들은 건강한 축복의 유통자로써 부름 받은 자들이다. 오늘날 내게 맡긴 부모로서의 이 사명을 깨닫고 전심으로 순종할 때,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아이들은 부모인 우리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발판을 딛고 훨씬 더 건강한 에너지와 용기로 각자에게 주어진 장애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믿음을 시험하는 악한 세상에 맞설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이자 세상의 리더들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당당하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글/황현주 교수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현재 혜천대학교 아동보육과 교수로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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