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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 걷는 길 - 정안나 사모

2012.03.27 11:17

조회 수:1822 추천:3



주님과 함께 걷는 길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은 멀어도 가까운 길입니다

  

지금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된 1997년 1월 12일은 우리가 계산교회로 부임한 날이다. 회색빛 구름이 짙은 한겨울이었다. 11살, 5살이 된 두 딸을 데리고 교역자실 한쪽에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색한 분위기로 보낸 첫 주일은 춥고도 긴 하루였다. 그날이 유난히 차게 느껴진 것은 계절 탓만이 아니었다.
당시 교회는 12년 동안 의욕적으로 목회하시던 목사님이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시면서 큰 충격 속에 있었다. 그 후 부임한 목사님도 불과 5개월 만에 교회를 떠나게 되고, 1년 8개월간 성도들은 영적 리더십의 공백 가운데 의견이 나뉘면서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되었다. 이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져서는 안 된다는 성도들의 위기의식 속에서 13대 담임 교역자로서의 사역이 우리에게 시작된 것이다. 성도들에게는 간절함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안정감이 없었다. 유학을 마치고 1996년 가을에 귀국한 우리는 그동안 교회가 겪었을 문제들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오로지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셨다는 사실 한 가지만 붙잡고 있었다.
  

나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눈물의 기도

첫 주일, 난데없이 교역자실 밖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 끝의 방문을 발로 차면서 무언가 불만 가득한 소리로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지만 교회의 분위기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참으로 두려웠다. ‘앞으로 어떻게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나는 조금도 투쟁적인 성품이 아닌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갑자기 이 모든 짐이 내게 지워지는 것 같았다. 사모로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도 못한 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새벽이든 밤이든 교회로 달려가 하나님 아버지께 호소하며 기도하는 길 밖에는 없었다.
그런 나에게 주님은 눈물을 주셨다. 교회에 들어서기만 하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났다. 찬양이 시작되면 모든 곡조의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생생하게 움직이면서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되었다. 그때의 교회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어졌었는데, 심지어 예배실에 앉아 붉은 벽돌만 쳐다보아도 눈물이 났다. 그동안 성도들이 겪었을 곤고함과 상처가 절절히 느껴지면서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부어졌다. 눈물은 주님이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해의 눈물, 불쌍히 여기는 눈물, 공감하는 눈물, 따뜻한 눈물, 측은히 여기는 눈물, 간절한 눈물…….

어느 날 심방을 받던 한 성도가 “그동안 우리는 엄마, 아빠 없는 고아 같았어요. 이렇게 함께 지내게 해주셔서 주님께 너무 감사해요!”라고 고백을 했다. 가슴 아픈 말이었다. 내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일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의 마음이었다. 내 마음을 주님께서 준비시키시고 그 마음으로 성도들을 대할 때 점차 따뜻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주님께서는 나에게 폭풍과 같이 기도를 시키셨다. 그때까지 나는 기도에 특별한 은사도 없고 신비한 체험도 없는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을 통해 격려하시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도하게 하셨다.
기도는 형식보다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오래 많은 것을 기도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나의 생각과 뜻을 주장하는 기도라면,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다. 주님은 나의 죄, 이 세대의 죄, 먼저 믿는 우리들의 죄, 인간 본성의 죄에 대해 회개하며 기도하기를 원하셨다.

영적 혼란이 있는 곳에는 영적 도전이 있다. 교회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신비 체험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생겼고, 새로 부임한 우리에게 “이번 주일 오후에 이러 저러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경우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싸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시편 37편의 “여호와를 의뢰하라(Trust also in Him)”는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교회의 온전함과 성도들의 바른 믿음을 위해서 기도했을 때, 그 예언은 완전히 빗나갔고 하나님께서는 혼란한 영적 질서를 놀라운 방법으로 바로 잡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모든 문제를 잠잠하게 해주셨다.


회복의 열쇠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

이런 사정 속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말씀의 회복이었다. 사람의 말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의 형편과 사정에 유효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필요에 따라 참으로 다양하게 역사하신다. 남편은 모든 예배에 선포되는 말씀을 준비하는 일과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기로 하고 이 일에 매진했다. 유학 중에 얻은 소중한 열매 중 하나는 설교뿐만 아니라 성경공부를 통해서 나타나는 삶의 변화와 유익에 대한 확신이었다. 많은 좋은 교재들을 구할 수 있었고, 그중 우리 지역교회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새롭게 교재를 마련하여 양육 체계를 세우게 되었다.  
먼저 양육에 헌신할 성도들을 리더로 세우기 위한 과정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없었던 말씀 훈련에 대한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선뜻 자원하는 분들은 많지 않았다. 어렵게 한 반을 꾸려 일대일 양육자들을 교육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그 과정에 참여하기로 했다. 대학시절, 전형적인 모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던 나는 선배를 통해 일대일 양육을 받으며 은혜를 체험하고, 말씀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사모가 되면서부터 양육에 대한 꿈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양육할 리더가 급하게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새로 등록한 부부인데 당장 말씀 공부를 시작하기 원한다는 것이었다. 만나 보니 어린 아들을 둔 젊은 부부였다. 아내는 위암 말기로 수술을 한 직후였고, 남편은 암으로 치료 중인 아내와의 약속 때문에 교회에 등록을 하고 따라 나온 경우였다. 아내는 수술이 잘되었다는 남편의 말에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자 의욕이 넘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편이 조용히 나를 만나자고 했다. 사실 자신의 아내는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암이 퍼진 상태라 의사가 손도 대지 못하고 덮고 말았다고 하면서 이제 살 수 있는 날이 불과 2,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간청으로 시작한 성경 공부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접하게 된 남편은 점차 마음을 열고 구원의 확신과 천국의 소망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주님께서는 이후 그 여성도의 생명을 일 년 이상 연장시켜주셨고, 가족들은 날로 쇠약해져 가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고통스러운 기간을 이겨내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마침내 그녀는 아버지의 집으로 부름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이 첫 번째 양육은 내게 큰 슬픔과 더불어 뼈저린 교훈을 가져다주었다. 바로 ‘영생의 실재성’이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며 영생을 얻은 삶만이 참으로 영원하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주시는 영생의 선물은 죄인인 인생이 사모해야 할 유일한 소망이자 내가 가장 열정적으로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이라는 교훈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일대일 양육은 내게 영적 활기와 복음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귀한 사역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을 믿고 변화되는 성도들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누리는 은혜를 교회에도 베풀어 주셨다. 점차 동역할 리더들이 세워지고 여기저기서 말씀 공부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갔다.  
또한 1년 반 기간의 소그룹 과정을 위한 리더 훈련이 시작되어 점차 리더들이 배출되었다. 단 한 개의 반으로 시작된 3단계 소그룹 반은 이제 140기 이상의 과정이 진행 중에 있다. 예배에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교회의 분위기는 안정되고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표정과 말씨, 분위기도 바뀐다. 새롭게 시작한 양육 과정이 활성화되면서 성도들의 믿음과 헌신이 회복되고 모든 부서의 사역이 힘을 얻게 되었다. 부서마다 자원하여 섬기고자 하는 성도들이 모이고 자연스럽게 사역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진정한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어느 해 가을이었다. 해마다 이사철이 되면 그동안 함께 지내던 성도들이 여기저기로 이사를 한다. 더 나은 생활여건과 교육환경을 찾아서, 직장을 따라서, 또 연로하신 분들은 자녀들 곁으로 옮겨간다. 가족같이 정든 교우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그해 가을에는 유난히 눈에 띄게 여러 가정이 이사를 했다. 서울로도 가고 지방으로도 떠났다.
10월의 어느 주일 예배 후에 계단에서 인사를 하는데 어느 여성도가 “저희 이사해요. 다음 주부터는 못 나와요.”하고 인사를 했다. 늘 반갑게 대하던 분인데 가볍게 작별인사를 하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교회를 떠나는데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주님께서 보내주신 교우들을 정말 귀하게 여기며 마음을 다해 돌본다고 생각했는데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다. 그리고 마음을 주는 것이 두렵게 느껴졌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주님께 아뢸 때 주님께서는 베드로전서 5장 2-4절의 말씀을 주셨다.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면류관)을 얻으리라”는 위로의 말씀이었다.

나의 수고나 헌신, 그것이 사람들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내가 아니어도, 그 누구의 도움이 없어도 구원하실 자를 반드시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부족한 나를 불러 사용해 주시는 것은 지극히 큰 영광이고 복이다.
그리고 주님은 내게, “너는 양들의 주인이 아니라 나의 목장의 목동이란다. 목동은 양들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니? 목동의 수고는 양이 아니라 목장의 주인인 내가 알아주면 된단다.” 하고 깨닫게 해 주셨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사역과 해결되지 않는 경제적인 어려움, 부당하게 받는 오해와 수고의 열매가 없다고 여겨질 때는 영혼의 곤고함이 찾아오기 쉽다. 사역의 현장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할 부분은 마음의 생각과 태도를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의 크고 작은 모든 헌신에 대한 궁극적인 보상과 칭찬은 오직 목자장이신 예수님만이 완전하게 해주실 것이다. 그 후로 이 말씀은 수시로 묵상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금석이 되었다. 오직 주님이 주시는 기회를 따라 기쁘게 섬기며 헌신할 뿐이다.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하나님

여름 장마철이 되면 교회에서 으레 겪는 행사가 물을 퍼내는 일이었다. 가까이에 계양산이 있어서 저지대는 아니었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지하 본당에 비가 새고 물이 차서 밤에도 새벽에도 물을 퍼내야 했다. 여기저기 물통을 받쳐놓고 예배드리는 날도 있었고, 습기가 심해 누전이 되면 전기가 끊겨 마이크도 없이 예배가 진행되기도 했다.
마침내 본당 한쪽 벽에 균열이 생기자 모두들 걱정하며 보수 공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건축을 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위험을 그대로 안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재정 준비도 전혀 없는데 일을 추진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교회 건물 바로 옆에 오피스텔이 신축되면서 장로님들이 오히려 지금이 건축을 시작할 때라고 앞장서 주셨고 성도들도 한마음으로 따라 주었다. 모든 환경과 시기와 상황을 주장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지금의 건물이 세워졌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서    

내가 사용하는 책상 첫 번째 서랍에는 오래된 열쇠가 있다. 이전 건물의 담임 목사실 문의 열쇠다. 이것은 나에게 지난날을 생각나게 하는 증표다. 잠언의 기자는 비전이 없는 백성은 방자히 행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래를 향한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때 오늘의 삶이 바른길로 갈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도 위험하다.
과거를 잊는다는 것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받지 못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자칫하면 사람의 마음에 교만을 불러온다. 오늘의 내가 나 혼자의 힘으로 된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지나간 역사에는 내가 보지 못했고 겪지 못했지만 분명히 있었던 수많은 사실들이 담겨 있다. 또한 지금까지 함께하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이 덮여 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눈물과 헌신, 수고와 땀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게 된 것임을 잊지 않고자 때때로 그 열쇠를 꺼내 본다.

지금까지 참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지나왔다. 태산과 같은 문제 앞에 섰을 때, 가시를 밟는 것 같은 괴로운 인간관계를 겪을 때, 외로움의 골짜기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때가 있었다. 그런 고통의 시기에는 하루하루가 참 길고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지난 15년이 참 빠르게 흘렀다고 느껴진다. 물론 아직도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간청하는 기도 제목들이 있다. 그러나 이 산도 언젠가는 주님의 지혜와 능력 안에서 평지가 될 것이고 주님의 뜻이 가장 좋은 것이었다는 고백을 드리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순간을 바라보면서, 내 안에 쓴 뿌리가 자라지 못하도록 말씀을 붙잡고 영혼과 마음을 단속하며 주님을 더욱 신뢰할 것을 다짐해 본다.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은 멀어도 가까운 길입니다.”   


   
글/정안나 사모
1953년 설립된 계산교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 가정, 교회"라는 표어 아래 온 교우들이 예배와 교제, 말씀과 훈련, 구제와 봉사, 전도와 선교에 힘을 쏟고 있다. 정안나 사모는 계산교회의 13대 담임인 김태일 목사의 아내이며 슬하에 2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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