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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초기 그리스도인의 삶과 실천 -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신학과)
 
앞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기원에서부터 로마제국하에서의 기독교 확산, 기독교에 대한 박해와 이에 대한 변증, 그리고 이단의 출현과 교회의 교사들, 곧 초기 교회 지도자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또 300여 년 가까이 박해받던 기독교가 어떻게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는가에 대해 소개하였다. 그렇다면 로마제국하에서, 무엇보다도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던 고난의 시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리스도인들은 로빈슨 크로스처럼 외로운 섬에서 고립된 채로 살았을까? 아니면 세속의 한가운데서도 그 시대의 조류에 영합하며 소시민적인 행복을 추구했을까? 혹은 불신자들 가운데서 노출된 채로 살았지만 새로운 가치, 곧 천국의 윤리로 살았을까? 이번에는 이런 점들에 대해 소개하면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

길 가는 나그네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근본적으로 자신들을 이 땅에서는 나그네로 인식했다. 그들은 이 땅을 영구한 도성으로 여기지 않고 ‘지나는(passing away) 나그네’ 곧 역려과객(逆旅過客)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자신들을 ‘길 가는 나그네’ 곧 ‘파로이코이’(παροικοι)라고 불렀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 “거류민과 나그네”에서 처음 사용된 이 말은 기독교인들의 삶의 방식과 현실 세계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용어였다. 이에 해당하는 라틴어가 페레그리누스(peregrinus)였는데, 영어의 필그림(pilgrim)은 여기서 기원하였다. 이 말 속에는 비영속성, 일시성, 잠정성 등의 의미가 있는데,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우리의 영원한 도성으로 보지 않고 천국의 소망으로 살았다.
이런 믿음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이교적인 당시 사회에서 이질성을 인식하고 이 세상의 가치와는 구별된 삶을 지향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카타콤을 ‘묘지’라고 불렀으나 그리스도인들은 ‘지하의 잠자는 곳’이라고 불렀다. 비록 저들은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았으나 그들의 머리는 천국에 두고 있었다. 바로 이런 삶의 태도 때문에 이 땅의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살았다. 부귀도 명예도 권력도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부질없는 것으로 여겼기에 이 세상과 구별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갔던 것이다.

익두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 가지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우리의 구세주라는 믿음이었다. 이 굳건한 믿음은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힘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오해를 받았고, 무시당했고 박해받았다. 심지어는 ‘인류의 적’이라는 그릇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당나귀 머리에 경배한다는 거짓을 유포했고, 어떤 이교도는 로마시의 건물 벽에 아래와 같은 그림을 새겨놓았다.



그림 밑의 그리스어는 ‘알레사메노스가 그의 신에게 경배한다’는 의미였다. 이교도들은 성찬식을 오해하여 기독교인들은 아이를 잡아먹는다고 곡해했다. 그래서 소 떼가 죽거나 티베르 강이 범람해도 기독교인들 때문이라면서 “기독교인들을 사자 굴에 집어던지라”고 조롱했다. 이런 암울한 고난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형상화했다. 그것이 바로 익두스(ΙΧΘΥΣ)인데, 이 말은 ‘물고기’라는 뜻이다.

즉 익두스로 읽을 수 있는 다섯 글자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다섯 그리스어 단어의 첫 문자를 조합한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 모양이 기독교 신앙의 상징이 된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세주’라는 믿음, 곧 ‘익두스’(물고기)로 상징된 믿음의 확신으로 고난의 세월을 헤쳐나간 것이다.

그 성읍이 평안하기를 힘쓰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나라를 영원한 도성으로 여기지 않았으나 자기들이 속한 사회의 진정한 평안을 추구하는 자들이었다. 비록 그들이 로마제국의 압제하에서 사회에 소요를 일으키고 소동케 하는 반사회적 인물로 오해받고 비난받기도 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이들은 사회의 평안과 평화를 추구했다. 이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에게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렘 29:7a)고 했던 예레미야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그 도시의 복지를 간구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사사로운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공동의 유익’(public good, usui publico)을 추구했다. 이것이 기독교회가 추구한 사회관이었다. 이 점을 잘 지적한 학자가 켐브릿지대학교 틴델 하우스의 부르스 윈터(Bruce Winter) 박사였다.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시혜자(Christians as benefactors)로 살았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제시한 바 있다.
 
사랑과 선행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사랑과 자비와 베풂을 실천했다. 이것은 기독교적 가치의 실현이었다. 180년 『페레기너스의 죽음』이란 책을 써서 기독교를 비방했던 루시안(Lucian of Samosata) 마저도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그들은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그 형제들에게 도움을 줄 일이 발생하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도움을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형제에 대한 배려를 아까워하지 않았다”라고.
2세기 교회 지도자였던 테르툴리아누스는 “우리가 많은 대적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들에 대한 우리의 보살핌이며 우리의 자애의 실천이다”라고 말하면서 “이교도들은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지를 보라고 말하고, 이교도들은 서로를 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되어 있음을 보라”고 말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조건 없는 베풂’(unconditional giving)을 강조했고 또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3세기 전후 교부들의 문서에서 빈번하게 나오는 공통된 경구는 “이것들은 다 내 것이라고 말하지 말지니라”(οὐκ ἐρείς ἴδια εἶναι)라는 경구였다. 말하자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하고 핍절된 이웃에게 구제하고, 병들고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옥에 갇힌 자들을 보살펴 주는 간호 행위는 바로 복음에 대한 확신,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행해진 사랑과 자비의 사역이었다.
위대한 교회 사학자인 하르낙(Adolf von Harnack)은 교회는 고아와 과부를 보살폈고, 유약한 자와 병든 자와 장애인을 도와주고 간호하여 주었으며, 옥에 갇힌 자와 탄광촌의 고달픈 이들을 돌보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죽은 자를 매장해 주었고, 노예들을 보살폈으며, 재난을 당한 이들을 돌보고 여행자들을 선대했다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사랑과 자비, 선행과 봉사는 기독교 공동체가 추구했던 가치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파라볼라노이
초기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주는 중요한 흔적이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실천이었다. 사랑의 계명,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최고의 윤리였고 기독교의 중핵을 이루는 실천적인 윤리였다. 참된 사랑, 그것은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서나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거룩한 힘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의 여정을 가면서도 이 힘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4세기 이전의 기독교회는 탄압받는 집단으로서 공개적인 회집이나 전도가 불가능했고, 신자들만의 은밀한 예배와 교제만 가능했을 뿐이다. 그들은 공개되지 않는 곳에 모였고(행12:10-17), 공개적으로 전도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로마제국으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의 순정한 사랑의 실천 때문이었다. 이 점을 보여주는 한 흔적이 ‘파라볼라노이’(παραβολάνοι)라는 칭호였다. 우리가 어떤 이를 장로, 어떤 이를 집사라고 불렀듯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파라볼라노이라고 불렸다. 그 의미는 ‘위험을 무릅쓰는 자’라는 뜻이다. 그 배경은 이러했다. 
251년 말에 엄청난 전염병이 유행했다. 이때는 데시우스의 박해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들에 의해 희생을 당하던 시기였다. 이 병은 종교에 상관없이 수많은 이들의 인명을 앗아갔다. 부유한 이교도들은 달아났고 사람들은 전염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 도망다녔다. 도시에는 죽은 이들의 시체가 쌓이고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키프리아누스는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소명에 신실해야 한다. 즉 우리가 단지 우리(그리스도인)만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끼리만 자비를 베푼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세리나 이교도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관용을 베푸신 것 같이 관용을 베풀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온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태양을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내려 씨앗들을 기르시고 이러한 모든 선하심을 그의 백성들에게 보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아버지를 본받아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키프리안은 마태복음 5:43-48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전염병이 돌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쳤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전염병에 감염된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위로하고 도움을 베풀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이들에게 붙여진 영예로운 이름이 파라볼라노이였다. 위험한 전염병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고 사람들을 돌보아 주었던 이들에 의해 많은 인명이 구해졌고, 이 위기 상황을 통과하면서 이교도들은 기꺼이 신자가 되기를 자청하였다. 이들이 말 없는 사랑의 실천자, 파라볼라노이였다.

이상에서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삶을 헤아릴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의 현장에서도 사랑과 인내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불같은 시련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았다. 이 점은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시금석이었다.

글/이상규 교수
미국 Calvin College와 Associated Mennonite Biblical Seminary 방문교수, 호주 Macquarie University 초기기독교연구소 연구교수, 고신대학교 부총장을 역임.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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