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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산의 복음전도자 추명순 전도사

 

박창훈 교수(서울신학대학교)

 

불행한 결혼생활

추명순 전도사는 1908년 충남 서천군 옹정면 서정리에서 태어났다. 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겨우 한글과 쉬운 한문을 깨우칠 정도의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서천 조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여인들을 무시하고 남자들의 권위를 강조하던 그 당시에 추명순 전도사가 받았던 시집살이는 활발한 성격인 그녀도 참아내기 힘들게 했다. 더군다나 첫 아들을 낳은 후 바람을 피운 남편으로 인해 결혼생활은 극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남편은 아내인 추명순 전도사를 구타하고 아예 딴 집 살림을 차렸다. 이 시기 추명순 전도사는 자신의 처지와 남편에 대한 노여움으로 살인 충동마저 여러 번 생겼던 지옥과도 같은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끔찍한 4~5년이 지날 무렵, 지옥과 같은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던 그녀는 한 관상쟁이가 일러준 대로 새벽마다 목욕을 하고 집 마당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기 시작했다. 3년째 되던 어느 날, 그녀는 하늘에서 사다리가 내려오고 천사 같은 사람이 올라오라고 부르는 꿈을 꾸었다. 유리 바다와 불구덩이, 형형색색의 진주 문을 지나 황금 집에 닿았을 때, 눈부시게 환한 광채의 모습을 한 분이 저 여자는 아직 여기 올 때가 안 되었으니 데려다 주어라고 말하는 음성을 듣고 그녀는 꿈에서 깨어났다.

 

벼랑 끝에서 만난 예수님

이 꿈을 꾸고 나서 마침 먼 친척 할머님이 추명순 전도사를 전도하였다. 예수를 믿기도 전에 있었던 신비한 체험을 듣고, 추명순 전도사가 분명히 예수님의 은혜를 입었음을 확신한 이 할머니는 그녀를 비인성결교회로 인도하였다. 나중에 자신의 체험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것을 안 추명순 전도사는 성경 속에 우주의 모든 진리가 기록되어 있으며, 인간들이 그것을 모르는 처참한 상황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예수님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뜨거워져 견딜 수 없었고 남편을 증오하였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게 되었다. 그녀는 마음에 기쁨과 평화와 사랑이 넘치게 되자, 이 귀한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솟구쳐 올라와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를 하는 전도인이 되었다.

전도를 하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모욕과 핍박보다는 남편으로부터 받는 박해가 더 컸다. 남편은 예수 귀신에 미쳐 양반의 체면을 손상시켰다면서 그녀를 사정없이 때렸다. 그러던 중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절망과 비통한 상황에 빠졌을 때, 남편은 이 모든 것이 그녀의 탓이라며 집에서 내쫓았다. 그렇게 쫓겨난 추명순 전도사는 비인성결교회에서 교회를 청소하며 성도들의 심방과 전도활동을 하다가 33세에 지방전도사로 임명을 받았다. 일본 강점기였던 1943, 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쇄됐을 때도 그녀는 계속 교회 문을 열고 예배를 드리다가 경찰에 투옥당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추명순 전도사는 장로교회 두 곳(원두리, 김제용진)을 개척했으며, 1957년부터 안면도에서 전도활동을 했다. 그리고 195952세의 나이로 고군산 군도에서 전도를 시작하였다.

 

고군산 군도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삶

이상의 몇 가지 단편적인 그녀의 삶과 사역의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추명순 전도사는 복음주의자였다. 그녀가 회개하여 얻은 구원의 복음은 귀한 은혜를 알지 못하는 인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솟구쳐 올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에게 있어 우직함은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자 하는 우직함이었다. 그녀의 믿음은 말씀을 따르는데 그 어떤 이유나 설명이 필요 없는 투박함이었고, 그녀의 순수함은 성경을 그대로 믿는 바로 그 순수함이었다. 그녀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듣고, 읽고, 믿었으며, 52세라는 늦은 나이에 복음전파의 명령에 순종하여 고군산도로 향했을 만큼 두려움이 없었다.

추명순 전도사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보다 더 명확하게 복음주의를 정의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있겠는가? 기독교 역사에서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이나 18세기에 있었던 부흥운동, 그리고 20세기에 일어난 빌리 그래함의 신복음주의도 어떤 면에서는 추명순 전도사의 믿음과 순종에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둘째, 추명순 전도사는 순교적 영성의 사람이었다. 해방과 전쟁 직후 여전히 우상과 미신과 무속이 팽배하던 섬마을에서 어떻게 복음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 현재와 같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현재 우리의 다종교 상황에 대한 우려나 걱정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엄살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섬으로 향하는 그녀에게는 다종교 상황을 극복할 철저한 계획이 있었다. ‘첫째는 복음을 전파해서 영혼들을 구원하고, 둘째는 구제사업을 하고, 셋째는 미신을 타파한다는 것이었다.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를 통한 구호양식과 군산의 김용은 목사님을 통한 영적·물적 지원을 통해 섬 하나하나를 복음화할 철저한 전략과 전술이 바로 그것이었다.

6·25 전후에 구호물자를 나누는 일을 할 때, 추명순 전도사는 자신은 굶고 금식하면서 섬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에서 두터운 신뢰를 얻었다. 그들을 위해 섬까지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고 물건을 나누는 것에 사람들이 감동한 것이 아니라, 정작 섬사람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들의 영혼을 사랑한 그 철저한 낮아짐에 감동한 것이다. 추 전도사의 철저한 낮아짐의 자세는 기독교가 참 진리임을 알리는 길이 단순히 이론이나 물리력을 앞세운 힘이 아니라, 세속의 것을 포기하고 헌신하고 순교하는 신자들의 삶을 통해서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해준다. 이 순교의 영성은 역사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오래되어 녹슨 청동기 유물 같은 재래식 수단이지만, 현대의 기독교 위기 상황을 극복할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이다.

 

셋째, 추명순 전도사는 체험적 신앙의 인물이었다. 그녀의 회심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순교의 영성은 바로 이 체험적인 신앙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남편의 배신으로 절망적이었던 결혼생활 중에 꾼 신비한 꿈에는 벧엘에서 돌베개 너머로 야곱이 보았던 하늘로부터의 사다리가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오른 하늘에서 본 환상에는 요한이 보았던 하늘나라의 비전이 있었으며, 예수님과 나눈 이야기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바울의 모습이 있었다. 이 체험적 신앙은 추 전도사로 하여금 남편의 박해로 온몸에 피가 흐르고, 멍이 들고, 실신하면서도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는 주님의 모습을 묵상하며 그 고통을 감내하게 만들었다. 남편이 그녀를 산속에 묻어서 죽이고자 했을 때는 묻혔던 땅이 갈라지는 기적도 일어났다.

이런 면에서 추명순 전도사의 체험적 신앙은 그녀가 복음의 열정과 영혼사랑의 마음으로 서해의 가장 험하고 먼 섬 말도에 이르기까지 섬사람들과 24년을 함께 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고군산도의 가장 끝 섬인 말도는 그녀에게 세상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는 곳이었고, 뭍에서 제일 먼 낙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낙원이었으며,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장 분명하게 인정받는 사역의 장이었다.

그녀가 전도하고 기도처를 세운 선유도, 장자도, 방축도, 신시도, 야미도, 무녀도, 관리도, 연도 등은 폭풍과 깊은 심연으로 둘러싸인 험한 곳이었지만 그녀에겐 시험과 연단의 바다를 넘어서는 안전한 포구요 주님의 품이었다. 그 옛날 영국을 중심으로 있었던 기독교 영성가(Anchoritic Spirituality)들이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살면서 세속의 유혹을 극복하고 부정하는 영성으로 후대에 많은 감동을 주었듯이, 추 전도사의 체험적 신앙은 교회사의 보화와 같은 영성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추명순 전도사는 근대적인 여성사역자였다. 역사를 통해 교회를 성장시키고 이끄는 데 많은 여성사역자들의 눈물과 기도와 헌신이 있었음을 생각할 때, 추 전도사는 가장 모범적인 여성사역자였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그녀는 전통적인 가부장제 속에서 가장 열악한 대상이었던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성이었다. 남편의 욕설과 폭력을 온몸으로 다 받아내야 했고, 남편의 외도를 현실로 인정해야 했으며, 남편의 방탕 속에서 삶을 살아내야 했다. 그런데 그녀가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영접한 후로는 새로운 삶의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여성이 되었다. 이제는 전근대적인 폭정에 마냥 굴종하는 삶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 즉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적극적인 전도자가 되어 미신이 성행하는 섬마을을 돌아다니며 임산부들을 매정하게 격리했던 움집을 철거하고, 용왕이나 산신의 존재가 모두 허구임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매일 술타령을 하던 사람들을 복음으로 변화시켜 근면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되도록 하였다.

 

그녀는 교회 봉사를 열심히 했으면서도 20년이나 키웠던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추 전도사는 아들을 가슴에 묻은 절망과 비통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더 뜨겁게 마음으로 끌어안았다. 로마 군병들의 창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의 임종을 마지막까지 지켜 예수님의 부활의 첫 증인들이 되었던 여인들처럼 추 전도사 역시 아들을 잃어버린 슬픔 속에서 더욱 열심히 사역하여 지방 전도사로 임명받고 후에는 고군산의 어머니가 되었다.

추 전도사의 미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말도를 중심으로 한 전도의 열매로 각 기도처가 교회로 성장하자 여러 젊은 교역자들에게 교회를 맡겨 섬기게 하였다. 요즘 한국 교회의 문제가 되고 있는 교회의 세습이나 몇몇 목회자들이 말년에 자신들이 이룬 사역에 대해 스스로 이름을 내고 경제적인 보상을 받으려는 태도와 비교해 볼 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섬 교회들이기에 후배 사역자를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추 전도사가 후배 사역자들을 소개하면서 지금 우리 교역자들은 모두 이곳 교회들을 부흥시키고 있어요. 나보다야 몇십 배나 훌륭하지요라며 후배 사역자들을 격려하고 높여주었다. 그 후 그녀는 교회와 자신을 위해 거처를 대전 성락원으로 옮겨 기도의 사역을 계속했다. 은퇴식 때 받은 축의금과 격려금 전액을 건축헌금으로 드리고 군산을 그렇게 훌쩍 떠났다.

서해의 섬들 사이로 긴 저녁놀을 그리며 해가 지고 우리의 눈으로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어둠이 몰려올 때 군산 앞바다에 서면, 바닷바람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기억나게 할 것이다. 신선이 놀다 갈 정도로 아름답다는 섬(선유도)에서부터 시작하는 고군산의 섬들, 그 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외롭고 험한 그 섬을 오가며 청춘을 다 바친 추명순 전도자의 이야기를 바람에 실어 전해주고 있을 것이다.

 

/박창훈 교수

서울신대 교회사 교수로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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