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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않는 흔적, 지워야 할 흔적.

2012.06.30 11:28

pianist7 추천:1

-한보라-


제가 대학교에 다닐때의 일이었으니 정말 오래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생생하네요.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점심심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지도교수님도 계셨기에 우리는 교수님을 모시고 함께 갔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식사를 사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마주 앉은 자리가 불편하기도 하고 어렵기도해서 나는 교수님께 물을 따라 드린다고 하고 물병을 들었습니다.
순간, 병을 잡고 있는 내 손모양에 고민이 되었습니다. '버릇없어 보이면 안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예의바른 행동이지?' 그러다 엉겁결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지요. 그때 교수님께서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야! 너는 목사딸이 왜 그러니?"라며 호통을 치셨습니다. 사나운 눈빛과 함께 말이죠. 그 짧은 순간의 영상이 저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실 부모님이 목회자가 되신 후 그러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말이었지만 아마 그 순간은 그동안의 서러움과 상처들이 교수님의 말 한마디를 통해 대 못이 되어 저의 가슴을 찔렀나 봅니다.

어릴적부터 숨기워진 것 없이 다 보여주어야만 했던 사생활들과 내 부모를 향한 거침없는 쓴소리들, 당연한 듯 요구하던 암묵적인 영적 육적 헌신들에  대해 괴로워 하면서도 정작 아무것 하나 손놓을 수 없었던 현실에 방황하던 그 시절의 나는 많은 친구들 앞에서 나와 부모님과 더구나 목사라는 직분에 대해 감정을 참지 못하시던 그 교수님을 나의 기억속에 잊을 수 없는 분으로 남겨놓게 되었네요.
세월이 지나 은혜와 진리안에 깊이 거하면서 그 때의 대 못은 빠졌지만 여전히 못 자국은 남아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그 자국마저 완전히 아물 수 있기를 기도해야겠지요.

저는 지금도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게 될 때면 습관처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앞서 수저를 놓아 드리고 물을 따라 드리고 하는 것이지요. 나보다 나이가 적든 많든 상관없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 날 이후로 생긴 습관인데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니 어쩌면 오히려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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